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90화 (290/298)

290편

<-- 전면전 -->

에페리아가 만들어낸 거대한 수정을 부수기 위해 나는 이리엘과 같이 부서진 마탑을 오르고 있었다.

“로즈팀. 상황은?”

정확히 이리엘을 목마를 태우고 나 혼자만 마탑을 오르는 것이지만. 그녀는 내 목에 올라탄채 통신기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로터스가 살려준 켈레브라의 부하들일 것이다.

“어떻다고 하는데?”

“부서진 마탑 옥상을 청소중이라고 하네.”

내 질문에 이리엘은 잠잠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마탑 옥상에 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레오. 에페리아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오른팔로 보이는 수인족이었다. 싸울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옥상을 청소한다는 그의 태도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계획이 있어.”

내 몸을 빌려 편하게 마탑을 오르는 것이 미안했는지 이리엘은 자기 나름대로 고심한 계획을 나에게 말해준다.

“우리의 목표는 수정 파괴. 레오라는 존재를 제거할 필요는 없어. 맞지?”

“그래.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목표는 수정을 박살내는거야. 레오를 처리하는 건 그 다음일이고.”

내 확답을 들은 이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을 재차 확인하려는 듯이 무전기로 자신의 부하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몇 초 후 그녀는 정리된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설명한다.

“타메르는 레오를 죽일 기세로 그와 싸워줘.”

“수정은?”

“로즈팀이 처리할꺼야. 타메르가 가진 힘이 강하긴 하지만... 우리 팀도 일시적이나마 그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어.”

“너희 팀?”

“응. 처음엔 타메르를 지원하는 것처럼 싸울꺼야. 그리고 때가 되면... 수정을 직접 공격할꺼야.”

“알았어.”

이리엘의 작전은 간단했다. 레오의 시선을 집중시킨 뒤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수정을 공격해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레오가 우리 뜻대로 움직여준다면 간단하게 수정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전이었다.

“만약에 실패한다면?”

“차선책도 준비되어있어. 타메르가 해야할 일은 레오와 열심히 싸우는 일이야. 그거면 충분해.”

“뭐... 간단해서 좋네.”

레오와 싸우기만 하면 된다는 편한 이리엘의 주문에 나는 피식 실소를 터트린다. 그 사이 부서진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의 끝을 발견한 나는 뛰는 속도를 늦추고 목마를 태우고 있던 이리엘을 땅에 내려둔다.

“준비 됬지?”

“응.”

자신의 허리춤에 매어진 두정의 리볼버와 어께끈으로 등뒤에 짊어진 저격 소총을 확인한 이리엘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천천히 마탑 옥상위로 올라선다,

“아... 오랜만이네요.”

이리엘의 말대로 옥상을 청소하고 있는 듯 커다란 탑의 파편을 어께에 짊어지고있는 레오가 우리를 반긴다. 부서진 탑의 파편을 구석에 내려둔 레오는 흙먼지가 살짝 묻은 자신의 옷을 팡팡 털며 자연스럽게 공중에 떠있는 수정 앞으로 걸어가 우리의 길을 가로막았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는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이 수정도 여러분들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구요.”

그는 적의없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차근차근 수정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 수정은 죽은 영혼을 수집해 내부에 보관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목적은 이 대륙에 있는 수많은 대륙인이죠.”

“그렇게 보관한 영혼을 어떻게 하려는거지? 좋은 의도는 아닐 것 아니야!”

애시당초 사람의 영혼을 보관하려한다는 행위 자체가 비이상적이었다. 아무리 다양하게 생각한다 해도 좋은 의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행위였다.

“죄송하지만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페리아님이 모든 것을 저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레오는 진심인지 머리까지 가볍게 숙여가며 자신의 무지에 대해 우리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든 레오는 우리를 회유시키려는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에페리아님이 하시는 일에서 나쁜 뜻을 가진 건 없었습니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그 분은 모두의 공익을 위해서 일을 하시는거죠. 절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난 이기적이라서 내 희생을 강요받기는 원치않거든.”

나는 레오를 향해 내 혈검의 검끝을 겨누는 것으로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뜻을 내비친다. 그런 내 모습에 레오는 유감이라는 듯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알겠습니다. 싸우는 것은 좋아하진 않지만. 피하지는 않습니다.”

맨손으로 싸우려는지 레오는 양손을 가볍게 풀어낸다. 그를 공격하기 전 나는 이리엘을 돌아본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을 나에게 전해줬다. 이리엘의 계획이 멋들어지게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혈검을 움켜쥔 나는 레오를 향해 달려든다.

“흐읍...!”

옛날처럼 단순히 내 몸의 재생력과 힘을 믿은 무식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티에르와 시란과 수많은 대련을 하면서 어느정도 기교란 것을 쌓았던 짧고 가볍게 혈검을 휘둘러나갔다.

“호오? 스타일이 많이 바뀌셨군요.”

레오는 내가 무모하게 달려들거라 생각했었는지 의외라는 얼굴로 손등으로 내 혈검을 쳐냈다. 아무런 보호구도 없는 맨손이었지만 레오는 아무런 상처없이 가볍게 혈검을 옆으로 쳐냈다.

“공부 좀 했지.”

레오가 쳐낸 검을 부드럽게 회수하며 오히려 반동을 통해 좀 더 강한 힘을 담아 날카롭게 그의 목덜미를 찔러들어간다. 하지만 레오는 그런 내 공격이 우습다는 듯이 여유롭게 한보 뒤로 물러나며 피한다.

“아무리 정교한 척하려 해도 당신에게 검술이란 건 어울리지 않아보이는군요.”

“흥. 쓸데 없는 오지랖이야.”

사정거리 밖으로 레오가 벗어나자 허망하게 허공을 찌른 검을 회수한 나는 다시금 검 끝을 들어 그를 겨눈다.

“젠장.”

긴장감이 없었다. 레오는 수정을 파괴하려는 내 행동을 막으려는 것 뿐이지 나를 공격할 의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부로 빈틈이 크게 나는 찌르기를 해도 레오는 반격할 마음도 없이 그저 뒤로 물러서서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는 맥빠지는 행동을 할 뿐이었다.

“거칠게 가겠어.”

“저도 가식적인 검술은 좀 질색이라서... 환영합니다.”

레오를 무시하고 수정을 파괴하겠다는 어설픈 마음가짐으로는 방어적인 레오에게 손끝하나 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레오에게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콰드드득...

가느다란 혈검에 내 팔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휘감기며 거대한 대검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내 몸집과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가진 대검을 만들어 어께에 짊어지자 레오는 기대된다는 듯이 살짝 눈웃음을 짓는다.

“흐으읍!!!”

아무런 기교도 검술도 없었다. 단순히 힘과 완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야만적인 검술. 오랜만에 팔에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좋은 무게를 담은 대검을 마음껏 휘둘러본다.

“우와앗... 제대로 맞으면 조금 위험하겠는데요?!”

정면으로 막아설 엄두도 나지 않는지 레오는 약간은 다급한 얼굴로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며 내 대검을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레오를 점점 더 부서진 탑 구석으로 몰아붙여 나갔다.

콰아앙!!

거대한 대검 끝에 닿은 벽이 비스킷처럼 허무하게 박살나며 산산조각 나버린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흩뿌려지는 모래먼지 사이에서 구석까지 몰아낸 레오의 인영을 포착한 나는 다짜고짜 위에서 아래로 대검을 내려찍는다.

콰드득!!

“우읏!!”

더 이상 몸을 피할 곳을 찾지 못했던 레오는 오히려 대담하게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낮게 자세를 낮추고 기민하게 내 옆을 스쳐지나간 레오는 재수없는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하지만 그런 레오를 마주 바라보던 나 또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그런 그를 비웃어준다.

타앙!!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리엘의 총성. 인내심있게 기다리던 이리엘은 레오가 자신의 사격을 절대로 피할 수 없을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가 탑끝까지 몰린 순간이 바로 그녀가 원했던 타이밍이었다.

과격한 내 검을 피하기 위해서 레오는 절벅을 뛰어내리거나 오히려 나를 향해 달려들었어야 했다. 모든 경우의 수가 최소가 되는 순간. 레오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으로 행동을 선택했을 때. 이리엘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퍼억!

“으앗?!”

후방에서 쏘아진 이리엘의 탄환은 정확히 레오의 허벅지를 관통한다. 예고없는 기습적인 공격에 균형을 잃은 레오의 몸이 비틀거린다.

투웅!!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레오가 깨닫기도 전. 멀리서 묵직한 발포음이 들려온다.

“이런!!”

그것은 레오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먼 거리에서 발사된 대구경 저격총탄이었다. 영혼을 담은 수정을 위협하는 한방에 레오는 다급히 도약하여 그 탄두를 막아내려한다.

“크읏...”

하지만 이리엘의 탄환이 꿰뚫은 허벅지의 총상 때문에 그는 저격총탄을 막아낼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묵직한 탄두가 정확히 수정 한 가운데를 꿰뚫으려는 순간.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콰아아앙!!

회심의 저격이 정확히 명중한 듯 커다란 폭발과 함께 검은 화염이 수정을 뒤덮는다.

“뭔가 이상해.”

회심의 일격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엘은 이맛살을 찡그리며 레오를 겨눈 저격총의 총구를 내리지 않는다.

“정확히 명중했잖아. 또 무슨 문제라도...”

“중저격총탄은 표적에 명중 후 내부에서 폭발하게 되어있어. 하지만 저것은...”

이리엘의 짧은 설명을 들은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하게 이맛살을 찡그린다. 분명 수정을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방비한 수정의 정중앙을 정확히 노린 저격총탄은 수정의 표면을 관통하고 내부에서 폭발되어 수정을 산산조각냈어야 했다.

스으으...

총탄이 터지면서 시야를 가리던 검은 연기들이 천천히 걷혀나간다. 걷혀진 연기 사이에서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흠집 하나도 나지 않은 커다란 수정이 음울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루블리츠 / ^-^~

0세계0 / 리엔은... 공기죠. 있지만 보이지 않아요.

으으으... 정신없이 일이 바쁘네요. 새벽에 출근해서 돌아오면 자는것만 반복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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