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편
<-- 전면전 -->
타이와 클론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져간다. 타이가 클론보다 힘의 우위는 확실히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평범한 생물이 아닌 클론에게 결정적인 치명타는 가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심각한 부상까지 입은 타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고 있었다.
“으아아... 어떻게 해요 시란...”
-....
티에르의 말에 시란은 아무 말 없이 타이와 클론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미 싸움터는 타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로 붉게 물들어버린지 오래였다. 멈추지 않은 출혈이 계속되며 상황이 불리해져 갔지만 타이의 눈에 담긴 투지는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혈이와 같이 준비해 티에르.
“뭐... 뭘요?”
-결정타. 저 녀석이 괴물이긴 해도 혈이가 가진 힘이라면 타격을 줄 수 있을꺼야.
시란은 회복되지 않는 타이의 팔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들이 가진 힘은 혈이가 가진 힘과 똑같았다. 즉 혈이의 힘으로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면 괴물도 그 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저 싸움에 우리가 어떻게 끼어들어요...”
티에르는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타이와 괴물 자체가 된 클론의 싸움은 평범한 티에르가 파고들 엄두도 내지 못 할만큼 격렬했다.
-기회가 올꺼야. 그 기회를 잡아야 해.
승산이 없어보이는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는 타이를 바라보던 시란은 자신의 감을 믿는다. 확신이 담긴 시란의 말에 티에르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시란의 검을 뽑아든다.
슈우욱..
티에르와 혈이의 의지에 따라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시란의 검을 감싸 검붉은 혈검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시란의 힘까지 담겨 요기로 푸르스름하게 빛이나는 혈검은 한순간 클론의 시선을 잡아끈다.
“킥.”
하지만 티에르가 가진 너무나도 미미한 힘은 클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클론은 그녀를 가볍게 비웃어주며 조금씩 지쳐가는 타이에게 관심을 집중할 뿐이었다.
“키힛!!”
“크읏!!”
타이를 농락하던 클론은 예고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지른다. 그런 클론의 공격에 타이는 반사적으로 한손을 들어 클론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으읏...!!”
처음에는 너무나도 손쉽게 힘겨루기에서 이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타이가 조금씩 밀려나간다. 계속되는 출혈과 피로로 혼돈의 힘을 운용하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캬하하하핫!!”
이제는 순수한 힘에서도 타이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클론은 광소를 터트리며 자신의 주먹을 회수해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마치 이미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어께를 들썩거리며 여유롭게 타이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기 시작한다.
“......”
그런 클론을 노려보던 타이는 주변을 둘러본다. 클론과의 싸움이 격렬해지며 사방에는 그녀의 몸에서 흩뿌려진 핏물이 자욱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사방에 가득 흩뿌려진 혈흔을 확인한 타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키잇?”
타이는 예고없지 자신의 몸에 끌어올렸던 혼돈의 힘을 잠재운다. 그러자 솟아올랐던 머리카락과 날카롭게 튀어나왔던 송곳니가 천천히 원상태로 복구되어버린다. 갑자기 타이의 몸에서 느껴지던 힘이 사라지자 클론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덤벼.”
간신히 호각으로 싸울 수 있게 힘을 실어줬던 혼돈의 힘을 회수한 타이는 오히려 대담하게 클론을 도발한다.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을 업신여기는 그녀의 태도만큼은 확실히 이해한 클론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본다.
마치 그녀의 속셈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눈치였지만 클론에게는 그런 통찰력보다 지금 타이가 자신을 도발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끓어올랐다.
“캬아아앗!!”
결국 클론은 타이의 도발에 휘말려 무모하게 돌진해오기 시작한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클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타이는 클론이 자신의 코앞까지 접근하자 힘껏 자신의 손을 움켜쥔다.
퍼벅!! 퍼억!
그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바닥에 흩뿌려져있던 타이의 피들이 의지를 가진듯 일제히 날카로운 날을 세워 클론을 향해 솟아오른다. 예고없이 솟아오른 수 많은 피의 송곳들에 의해 온몸이 꿰뚫린 클론의 손은 타이의 얼굴 앞에서 멈춰서 버린다.
“캬르르... 크륵!!”
수 십개의 크고 작은 피의 송곳들이 온몸을 꿰뚫어버리자 클론은 고통과 분노서린 신음을 뱉어내며 내뻗은 손으로 어떻게든 타이의 얼굴을 잡아 뜯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타이는 움켜쥔 자신의 손을 뒤로 잡아당긴다.
“캬아아앗!!!”
우득... 우드드득!!
그러자 송곳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클론의 몸을 그대로 찢어버리려고 한다. 온몸이 사방으로 늘어나며 찢겨지려는 고통속에 클론은 유적지가 뒤흔들릴 정도로 괴로운 비명을 뱉어냈다.
“큿...!”
이대로 클론의 몸을 찢어버리려던 것이 타이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출혈로 인해 힘이 많이 약해진 상황. 송곳들에게 클론의 몸을 찢어버릴 정도로 힘을 실어줄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클론을 죽이기는 커녕 더욱 흉폭해지게 고통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흐아아압!!”
그때 뒤에 가만히 있던 티에르의 힘찬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클론을 향한 공포를 밀어내기 위해 힘차게 기합을 지르며 달려온 티에르는 미리 만들어 놓았던 자신의 혈검을 클론의 정수리를 목표로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다.
콰지직!! 뿌득... 빠드득!!
단 일격에 클론의 머리가 으깨지며 가슴까지 티에르의 혈검이 들어 박힌다. 몸이 반쯤 쪼개져버리자 클론의 몸은 사방에서 당겨지는 송곳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좌우로 찢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섬뜩한 소음과 함께 천천히 좌우로 찢겨지는 클론의 모습에 티에르는 짧게 비명을 삼키며 뒤로 물러선다.
“흐압!!”
빠드드득!!
기회를 포착한 타이는 짧은 기합과 함께 자신의 힘을 짜낸다. 곧이어 뼈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반쯤 쪼개진 클론의 몸이 송곳들의 힘을 못이기고 좌우로 찢겨져 버린다.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클론의 몸을 절반으로 찢어낸 타이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며 티에르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티에르는 끔찍하게 반으로 쪼개진 클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쪼개진 클론의 사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후우...”
그런 티에르의 반응을 어느정도 이해한 타이는 바닥에 흩뿌려진 자신의 피를 제어해 클론에게 물어뜯긴 자신의 상처를 감싼다. 마치 끈끈한 고무처럼 그녀의 상처를 휘감은 피는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아주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이제 다 끝난거에요.”
간단하게 상처를 응급조치한 타이는 아직도 넋을 잃고 있는 티에르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멍하니 클론의 사체를 바라보던 티에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타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저거... 움직이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반으로 쪼개진 생물체가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티에르는 반으로 쪼개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클론을 바라보며 타이에게 물었다.
“예...?”
티에르의 말에 타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쓰러진 클론의 사체를 바라본다. 티에르의 말대로 반으로 찢어진 클론의 사체는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피는 등 단순한 경련이라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죽지 않은거야?!”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타이는 황급히 손안에서 혈검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타이보다 클론쪽이 움직임이 더 빨랐다. 반으로 조각난 두 클론의 몸 덩어리는 각자 하나 남은 눈으로 타이와 티에르를 노려보며 그녀들을 향해 달려든다.
“우앗!!”
“읏!”
타이와 티에르는 조건 반사적으로 혈검으로 클론의 공격을 막아내려한다. 하지만 혼돈종이 된 클론의 몸에 혈검이 닿자 혈검은 허무하게 바스라져 버린다. 자신의 미간을 찔러오는 클론의 손톱을 바라보며 타이는 죽음을 직감한다.
콰아아앙!
클론의 손톱이 타이의 미간에 살짝 닿는 순간. 갑작스럽게 강렬한 충격파가 주변을 뒤흔들어 버린다. 타이가 갑작스런 충격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지면에 강한 충격이 가해진 듯 하늘 높이 치솟아오른 모래먼지와 유적 파편들이 회오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는 지 타이는 미간에 생긴 작은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눈앞에 회오리치는 모래폭풍을 바라본다. 그런 폭풍속에는 클론의 신체 일부로 추정되는 육편조각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강한 충격파로 인해 거세게 회오리 치던 모래바람은 시간이 지나자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그리고 곧이어 흩어져가는 모래바람 사이로 폭풍을 일으킨 사람의 모습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엄...마?”
멍하니 폭풍의 중심부를 바라보고 있던 타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몽롱한 목소리로 한 단어를 뱉어낸다.
========== 작품 후기 ==========
루블리츠 /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수요일. 한주의 절반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