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편
<-- 전면전 -->
“갑니다!”
“자... 잠깐!!”
강한 적을 상대로 타이와 협력할 생각도 안하고 앞으로 튀어나가는 티에르의 행동에 타이는 살짝 당황한다. 하지만 그런 타이의 걱정과는 다르게 티에르는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휘익!
그대로 시란을 허공에 힘차게 집어던지는 티에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그녀의 행동에 티에르에게 달려들려던 클론의 행동이 순간 멈춘다.
“10초만...!!”
티에르가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반쯤 흑발로 변색되며 그녀의 손에 검붉은 혈검이 만들어진다. 그재서야 클론은 뒤늦게 혈검을 들고 달려드는 티에르의 행동을 알아채버린다.
카앙!
그러나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고 해도 클론은 섬광같은 움직임으로 티에르의 검을 신속하게 막아선다.
“우... 우왓?!”
단 한 번 검이 부딪혔을 뿐인데 티에르는 클론이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클론은 티에르가 기습적으로 휘두른 검을 신속히 막아냈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손으로 예리한 반격까지 가한다.
촤악!
황급히 뒤로물러서지만 클론의 날카로운 검은 그대로 티에르의 옆구리를 가볍게 베고 지나간다. 고통에 아프다고 엄살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티에르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시간을 벌려는 듯 뒤로 두어걸음 물러선다.
“티에르!!”
티에르가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한눈에 파악한 타이도 뒤늦게 그녀를 지원해주려고 달려왔다. 하지만 타이보다 클론이 더 재빨랐다. 티에르가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티에르의 품안에 파고든 클론은 사각에서 티에르의 심장과 목을 향해 두 개의 단검을 강하게 찔러넣는다.
콰드득!!
하지만 그런 클론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에서 멈춰서버린다.
“나이스 혈아!”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이 움직여 클론의 양팔을 단단히 휘감아버렸기 떄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기이한 티에르의 방어에 클론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클론은 단순한 완력으로 팔을 비틀어 어렵지 않게 머리카락의 구속에서 벗어난다.
“티에르! 뒤로 물러서! 네 상대가 아니야!”
뒤늦게 도착한 타이는 황급히 티에르를 자신의 등 뒤에 숨긴다. 하지만 월등한 실력차에도 불구하고 티에르는 전혀 겁먹은 표정없이 여유롭게 클론을 향해 윙크를 하며 말한다.
“타임 오버에요.”
“그게 무슨...”
티에르의 허세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타이쪽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서걱!
클론의 등 뒤에서 예리한 절삭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클론의 눈동자에서 천천히 초점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털썩.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클론의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클론 등 뒤에서 기습을 날렸던 존재가 모습을 들어낸다.
“나이스 시란.”
싸우기 전 허공에 시란을 던졌던 것은 단순히 시선끌기 용이 아니었다. 적의 시야에서 벗어난 시란은 허공에서 여유로운 준비시간을 가진 뒤 기습적으로 적을 습격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등 뒤에서 기습한 것도 신기했지만 단 일격에 광혈의 저주가 담긴 클론을 제압하는 것이 더 의문이었던 타이였다. 심지어 클론을 베어냈던 시란의 검에는 핏방울이 하나도 묻어있지 않았다.
-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영혼이 베어지면 아무것도 못하겠지.
시란은 여유롭게 자신의 검을 털어보이며 단 일격에 클론을 쓰러뜨린 이유를 말해준다. 그녀의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클론은 아무런 미동없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을 뿐이었다.
“그럼... 끝난거야?”
-응. 확실히 베어냈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완벽한 일도양단이야.
자신의 검을 멋들어지게 허공에 두어번 휘두른 시란은 티에르를 향해 자신의 검을 던진다. 그러자 그녀의 영체가 흩어지며 시란의 검은 빨려들어가듯 티에르의 허리춤에 매어진 검집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영혼을 베어낸다고? 그게 가능한거야?”
“조금 집중이 필요하지만 가능하다고 하네요. 시란이...”
타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쓰러진 클론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끝으로 살며시 클론의 목덜미를 눌러본다.
“.......”
아무런 반응이 없는 클론. 하지만 검끝을 통해서 강하게 맥박치고 있는 심장이 느껴졌다. 영혼은 죽었지만 몸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몸은 살아있다?”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되뇌인 타이의 인상이 천천히 찌푸려진다.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불길한 직감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한다.
“혼돈의 힘은 영혼을 타락시키지. 하지만 우리 네베르족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런 혼돈의 힘과 조화를 통해 그 힘을 이용한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아주 어렸을 때. 쌍둥이 동생이었던 네이르와 같이 들었던 어머니의 말이었다.
“영혼의 일부를 내주는 대신 그만큼의 힘을 허락받지... 만일 너희들이 자제력을 잃으면 영혼에 맛을 들린 혼돈의 힘은 너희 영혼 전체를 갉아먹어올거야.”
“타이씨? 무슨 말이에요 그건?”
티에르또한 뭔가 불길한 징조를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타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 타이는 입술을 꽉 깨문채 황급히 등을 돌려 티에르에게 달려간다.
“도망쳐!!!”
“에...? 에에?”
다짜고짜 자신의 허리를 들쳐매고 달리는 타이의 행동에 티에르는 당황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쓰러진 클론의 몸이 들썩거리며 기형적인 자세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 그녀는 그제서야 일이 끔찍하게 뒤엉켰다는 것을 직감한다.
“영혼을 베었다는 것은... 그 영혼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거지?! 그렇다면 클론의 몸에 남아있는 혼돈의 힘은 무력화된 영혼을 전부 먹어치울꺼야!”
“그... 그래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죠?!”
티에르의 말에 타이는 흘끗 뒤를 돌아본다. 이미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몸을 일으킨 클론의 붉은 안광은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몰라!! 지금까지 인간의 형태를 가진 혼돈종은 본적이 없어!”
“혼돈종은 또 뭔데요?!”
“마계에 있는 괴물이야. 영혼 전부가 혼돈의 힘에 먹힌 존재. 보통 의지가 약한 하등한 동물이나 식물들이 그렇게 되거든?! 하지만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인간이 혼돈종으로 변했다는 기록은 없었어!!”
콰득!! 콰드드득!!
그 때. 타이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돌이 으깨지는 소리에 도망치던 걸음을 멈춘다. 타이가 멈춰서자 티에르는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본다.
“저... 저거 뭐에요?”
티에르는 벽에 새겨진 손과 발자국을 발견한다. 방금전만해도 투박한 돌로 쌓아만든 벽이었는데 어느새 엄청난 악력과 각력으로 만들어진 듯한 자국이 새겨져있었다.
“빨라...”
타이는 어께에 짊어지고있던 타이를 천천히 옆에 내려둔다. 그러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일으킨 티에르는 타이가 바라보는 곳을 천천히 돌아본다.
“크킥... 크히히힛...”
그녀들이 도망치던 대로 근처에 높게 솟은 유적 구조물에 손가락을 박은 채 한팔로 매달려있는 클론. 클론은 머리가 반쯤 옆으로 꺽인채 흰자위 전채가 붉어진 눈으로 티에르와 타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티에르와 타이는 천천히 자신의 무기를 꺼내든다.
---------------------------------
억지로 에페리아에게 끌려온 키르비르는 유적 상공에서 에페리아가 만든 공간안에 갇혀 그녀와 같이 유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은?!”
그곳에서 지켜본 기괴하게 변이된 클론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키르비르는 짧은 비명을 내뱉는다. 지금 클론의 모습은 광혈의 저주에 영혼까지 잠식당했던 아리엘의 모습과 비슷했다.
“우와아... 인간형 혼돈종이네.”
놀란 키르비르와는 다르게 에페리아는 흥미가 가득한 콧소리를 내리며 감탄사를 터트린다.
“혼돈종? 이때까지 지성체가 혼돈종이 된 적은 없었어!”
에페리아의 말에 키르비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부정을 표한다. 하지만 에페리아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혼돈종으로 변하기 전. 영혼이 잠식되어서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다른 인간들에 의해 제압되었지. 그래서 자연적으로 인간형 혼돈종을 볼 수 없었던거야.”
“자연적이라는건...”
에페리아의 말을 들은 키르비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돌아본다. 여전히 태연한 에페리아의 태도로 볼 때 그녀가 인간형 혼돈종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던게 분명했다.
“내가 실험정신이 투철하잖아.”
키르비르의 시선을 느낀 에페리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밥먹듯이 해오는 에페리아를 언제나 봐왔던 키르비르였다. 오랫동안 그녀와 떨어져 지낸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에페리아의 본성을 떠올린 키르비르는 마른침을 삼키며 인간형 혼돈종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저건 위험해.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라면서.”
“안전장치는 미리 마련해놨어. 진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직접 막아줄테니까 걱정마.”
에페리아는 아주 가벼운 어투로 키르비르의 말에 대답해준다. 그런 에페리아의 말에 신용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의 키르비르로써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특이하네. 혼돈종이라면 살아있는 생물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의를 내보여야하는데...”
혼돈종의 행동을 관찰하던 에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린다. 그런 그녀의 말대로 차원종은 곧바로 타이와 티에르를 공격하지 않고 마치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그들을 관찰할 뿐이었다.
“저건 클론이잖아. 타이의 몸을 복제한 클론... 혼돈종이 적의를 가지게 된건 차원의 틈새에서 오염되서 그런거 아니야?”
“오호... 그러네. 저 혼돈종은 차원의 틈새에 오염이 되지 않았지. 나름 순수한 혼돈종이라는 건가?”
키르비르의 의견을 인정한다는 듯이 에페리아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순수한 혼돈종이라고 해도 그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에페리아가 클론의 몸에 억지로 각인해놓은 포악함과 잔인함이 있었다. 천천히 타이와 티에르를 살펴보단 클론은 입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도 잠시뿐. 차원종이된 클론이 싸울 기미를 보이지 않고 타이와 티에르 관찰하듯 그들의 주변을 맴돌뿐이었다. 약간은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대치상황을 보고 있던 리니아는 흘러지나가는 말투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리니아에게 재미있는 걸 가르쳤더라?”
“......”
에페리아의 질문에 키르비르는 심장이 크게 박동치는 것을 느낀다. 키르비르가 리니아에게 마계의 마법을 알려준 이유를 에페리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긴장한 키르비르의 걱정과 에페리아는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키르비르를 돌아본다.
“괜찮아 괜찮아. 어자피 이제 다 끝났거든.”
“끝났다니...?”
“이제 돌아가야지.”
에페리아는 무거운 이야기를 너무나도 가벼운 말투로 툭하고 내뱉어낸다. 키르비르조차도 그런 에페리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나는 시험을 받는 중이잖아! 되돌아가는 것은 오로지 내 힘으로만...”
“으음... 봉인된 로터스의 밑에 준비해둔 마도기계를 보니까. 로터스의 죽음을 통해 흘러나온 다량의 혼돈의 힘으로 마도기계를 작동시켜 마계로 차원이동할 계획이었지?”
키르비르의 말을 뚝 잘라버린 에페리아는 이미 다 알고있다는 듯이 키르비르가 숨겨놓고 있던 사실들을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이미 완벽한 마도기계를 약간 개조한 것으로 보아... 뭐야... 세명? 네 명까지 차원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용량을 넓혀놨네? 그것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고 있는 거구나.”
이미 에페리아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반항하거나 진실을 숨길 수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린 키르비르는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문다.
“고대도서관의 사서로써 마왕의 뒤를 이을 너의 자격은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해줄게. 자. 그걸로 네 시험은 끝이야.”
“......하지만.”
이대로 침묵을 지킨다면 에페리아에게 억지로 마계로 끌려갈 것이 뻔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무런 반항없이 에페리아의 말에 순응하겠지만 작은 저항감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난 돌아가기 싫어...”
키르비르는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뱉는다. 그런 키르비르의 말에 에페리아는 그녀를 돌아보지만 키르비르는 에페리아의 눈을 마주칠 수 없는지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려 그녀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넌 돌아갈 거야. 내가 그렇게 된다고하면 그렇게 되는거지. 그건 너가 더 잘 알잖아?”
그런 키르비르의 반항이 오히려 귀여운 듯 에페리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에페리아의 한마디에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키르비르는 고개를 떨군채 바들바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주무른다.
“타메르...”
그리고 그녀는 지금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의 이름을 작게 웅얼거린다.
“시작한다.”
키르비르의 웅얼거림을 듣지 못한건지... 아니면 못들은척 하는건지 다시 클론을 향해 시선을 돌린 에페리아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선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악이라고 할 수도 없을정도로 순수하고 탁한 회색빛 기운이 클론의 몸에서 뿜어져나온다. 그리고 마치 싸움을 즐기듯 클론은 환한 미소와 함께 타이와 티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주인공이 쉰다면 소설이 진행이 되질 않죠.
이렇게 또 한주가 갔습니다. 보람찬 한주네요. 국가의 의무를 다하느라 미칠듯이 보람찬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