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편
<-- 전면전 -->
“에페리아님. 복제된 클론들을 차원이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레오의 보고에 밀크티를 마시던 에페리아는 눈동자만 굴려 레오를 바라본다. 말꼬리를 흘리는 레오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 듯 약간은 짜증이 묻어있는 그녀의 눈빛에 레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다.
“차원 이동 범위는 대륙 전체의 무작위 위치. 확실하신 것입니까?”
“그래.”
“하지만 저희들이 목표한 유적지와 전혀 상관없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불안정한 클론들은...”
“알아 알아.”
레오의 말을 끊은 에페리아는 머그잔에 남아있는 밀크티를 전부 입안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빈 머그잔을 내려두며 읽고 있던 서류를 한쪽에 던져두며 말한다.
“차원에 있는 모든 생물체를 학살하겠지. 내가 원하던 거야.”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있는 커다란 수정을 매만졌다. 레오는 반사적으로 에페리아가 매만진 수정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짙은 보랏빛의 거대한 수정. 수정 구석구석에는 마도학의 정수가 담긴 안전장치가 박혀있었다.
“아리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리엘‘만’ 가만히 있지 않겠지.”
에페리아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레오는 침을 꿀꺽 삼킨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지 레오는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에페리아를 바라보며 지시를 철회하기를 간곡히 애원한다.
“차원의 생물들이 이계의 존재에 의해 마구잡이로 학살당한다. 그러면 차원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겠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원 하나가 붕괴되어가는 큰 사건에 그 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엘...”
레오는 두려움이 담긴 목소리로 한 단어를 말한다. 그런 그의 중얼거림에 에페리아는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도망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하잖아? 이제 끝을 낼꺼야.”
에페리아는 자신의 비밀병기인듯한 거대한 수정덩어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한다.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할지... 아니면 피조물이 창조자에 의해 사라질지. 어디한번 두고 보자고.”
“알겠습니다.”
단호한 의지와 결의가 담긴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그녀가 절대로 지시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않고 그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조용히 그녀로부터 등을 돌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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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동 경보가 난 직후. 이리엘은 황급히 사태를 파악해나간다. 그녀의 말대로 임시로 만든 대륙 지도 곳곳에는 붉은 점으로 정체불명의 물체가 마계에서 소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이리엘과 같이 지도를 살펴보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에페리아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린다. 대륙 곳곳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체불명의 물체들을 소환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 유적지에 소환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라방...”
그런 내 곁에서 리니아는 불안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내 옷소매를 움켜쥔다. 그런 리니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나는 검은 리볼버를 움켜쥐고 아리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이리엘을 바라본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리니아. 키르비르에게 가. 그리고 이 사실을 알려.”
“오라방은?!”
리니아의 걱정이 서린 질문에 나는 입술을 깨문채로 대답한다.
“이리엘과 아리엘이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 거기다 에페리아의 진짜 목적만 알아내면 그녀들을 도와 에페리아를 막을꺼야.”
“나도 도울께!”
리니아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자신있게 나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리니아의 어께를 토닥이며 그녀를 가볍게 밀어낸다. 그런 내 행동에 움찔한 리니아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똑바로 서서 자신이 만든 골렘을 가리키며 외친다.
“봤잖아!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리니아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해.”
“.......”
내 말에 리니아는 분하다는 듯이 작게 볼을 부풀린다. 하지만 내 말에 수긍은 했는지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 도움이 필요하면 당장 부를테니까... 빨리 키르비르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녀라면 그녀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낼꺼야.”
“알았어...”
내 말이 통했는지 리니아는 별말없이 나에게 등을 돌려 출구를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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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키르비르 키르비르.”
디에그 데그에서 걸어나온 리니아는 함선에서 벗어나자 자신의 몸에 천천히 되돌아오는 자신의 마력을 느낀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발 끝에 채이는 돌조각을 걷어차며 투덜거린다.
“키르비르가 뭐길래 그러는거야. 물론 마력이나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나도 나만의 특기와 재능이 있다구.”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로브안에 숨겨둔 다양한 무기들을 확인해본다. 예전에는 그녀 스스로 조합한 물약들과 소형 석궁등의 간단하고 조잡한 무기들이었지만 이리엘과 교류를 시작한 후. 그녀의 무기들또한 상당히 발전되어있었다.
다양한 크기의 폭발물들과 약간의 추진제가 부착된 투척형 폭탄, 여러 가지 특수한 기술이 더해진 소형 석궁용 볼트. 평범한 무기들 같아 보였지만 이리엘의 기술력에 리니아의 연금술이 합해진 걸작품들이었다.
“이제는 나도 만만치 않다구.”
이리엘과 합작하여 만들어낸 놀라운 걸작들을 살펴본 리니아는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는 로브안에 숨겨진 무기들이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로브를 팡팡 두드려 정돈한 리니아는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키르비르가... 어디있더라...”
키르비르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좁은 유적지안에서 그녀만큼 강대한 마력을 가진 존재는 딱 두 존재밖에 없었다. 하나는 유적 심부에 봉인된 로터스. 그는 움직이지 못해 심부에 고정되어있기에 키르비르의 마력과 로터스의 마력을 구분짓기 어렵지 않았다.
“숙소에 있네.”
유적 심부와 떨어진 숙소에 느껴지는 마력의 위치를 파악한 리니아는 정신을 집중해 섬세하게 자신의 마력을 운용해나간다. 그리고 침착하게 목표 위치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주의깊게 공간을 왜곡시킬 발현할 마력을 끌어올린다.
“젠장...”
기존의 텔레포트 마법보다도 더 쉽고 안전하게 공간을 왜곡시켜 장소를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은 키르비르가 알려준 공간왜곡의 응용법이었다. 마법이라는 학문으로 절대로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열등감에 리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입술을 지긋이 깨문다.
콰드득!
주변이 시야가 일그러지며 리니아는 자신의 몸이 허공에 내던져진다는 착각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 공간이 천천히 수정되며 리니아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신의 몸이 이동했다는 확신을 가진다.
“키르비르! 지금 당장...”
그녀는 다짜고짜 키르비르를 부르며 디에그 데그로 가보라는 말을 하려한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천천히 선명해지는 시야 사이로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그녀의 방안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게 누구야?”
“에페리아?!”
그녀는 다름아닌 에페리아. 키르비르와 같이 침상에 앉아서 뭔가를 이야기하고있던 에페리아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리니아를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이야아... 역시 어렸을 때의 내가 제일 귀엽다니깐.”
“젠장!!”
에페리아의 존재를 확인한 리니아는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빼며 로브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키르비르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려한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 있던 에페리아는 그런 키르비르의 어께를 한손으로 눌러 그녀의 행동을 제지한다.
“뭔가 재롱을 피우려는 것 같은데 한번 봐보자고.”
아무런 경계심 없이 생글생글 웃는 에페리아를 바라보는 리니아의 얼굴이 구겨진다. 자신을 우습게 보는 그녀의 행동을 참을 수 없었던 리니아는 무모한 줄 알면서도 그녀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래! 한번 봐보시지!!”
리니아는 로브 속에 집어넣은 팔을 빼낸다. 로브속에서 두 개의 소형 폭탄을 꺼낸 리니아는 키르비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페리아에게 그 폭탄을 집어던진다. 그러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원통형 기계를 꺼내 슬쩍 자신의 발아래로 떨어뜨렸다.
“폭죽놀이야?”
자신에게 던져진 폭탄을 발견하고 에페리아는 실소를 흘려버린다. 그리고 파리쫓듯이 팔을 휘두르자 그녀의 앞의 공간이 왜곡되어버린다.
“흥!”
하지만 리니아도 지지않고 팔을 뻗어 자신의 마력을 운용해나간다
파츠즉!
“얼래?”
리니아가 키르비르에게 배운대로 공간을 왜곡시키기자 에페리아가 왜곡시킨 공간이 중화되어버린다.
“이런...!”
에페리아는 뒤늦게 짧은 신음과 함께 단순하게 마력을 뭉친 실드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 에페리아가 만들어낸 실드에 처음으로 부딪힌 폭탄은 그녀의 예상과 달리 요란한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다. 폭탄은 실드에 닿자 푸른 빛으로 번쩍이며 기묘한 파장을 사방으로 내뿜는다. 그런 파장에 닿은 에페리아의 실드는 허망하게 바스러져 내려버렸다. 실드가 바스러져 내리자 리니아가 던진 두 번째 폭탄이 에페리아의 코앞에 다가온다.
“제법인데?”
짧게 감탄한 에페리아는 당황하지 않은 듯 태연한 얼굴로 두 번째 폭탄을 맨손으로 움켜쥔다. 그리고 움켜쥔 손을 펼치자 그녀의 손안에서 급속히 냉동되어 터지지 않은 폭탄이 바닥에 떨어진다.
“고작 이게...”
철컥.
살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리니아를 조롱하려고 하던 에페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 리니아는 에페리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발아래로 떨어뜨린 원통형 기계를 발 뒤꿈치로 스위치를 눌러 작동시킨다.
“끝났어!”
기이잉!!
발꿈치로 기계의 스위치를 눌러 기계가 작동되자 리니아는 의기양양한 외침과 함께 자신의 오른팔 소매를 걷어 손목에 장착한 소형 석궁으로 에페리아를 겨눈다.
“뭐야 그건... 응?”
하찮을 정도로 빈약한 석궁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리니아를 비웃던 에페리아는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을 깨닫는다. 리니아를 혼내주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아보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몸 주변에 한톨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능력억제장. 이걸로 너와 난 아무런 마법도 못써. 하지만 난 이게 있지.”
“그건 아리엘의 기술이잖아. 단시간에 너가 어떻게 그걸... 너 설마.”
에페리아는 한눈에 리니아가 이리엘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간파해낸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멍하니 리니아를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이내 작은 웃음을 터트린다.
“이야... 대단하네.”
“지금와서 칭찬해도 소용없어. 이능력억제장 안에서는 키르비르도 널 못돕는다고! 자. 마지막 유언이나 해보시지.”
에페리아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사실에 리니아는 의기양양하게 여유를 부린다. 그녀가 보기에 에페리아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불안하게도 에페리아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지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저도 지끈거려요. 가끔씩은 단순히 강한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TOOOOHIKA / 정주행 감사합니다~!
루블리츠 / 아... 생각해보니 마지막이 아니네요. 다음 소제목은 에필로그일테니까요.
IceOfSonic / 애증과 광기 덩어리라... 얀데레를 제대로 표현한 것 같네요.
예비군 예비군 예비군! 내가 예비군이라늬이이이이...
덕분에 오전에 올리지 못하고 저녁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