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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하인-279화 (279/298)

279편

<-- 반항 -->

평소와 같이 공터에서 시란과 티에르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기이한 감각이 나를 잡아 이끌었다. 마치 내 머리카락이나 피부를 누군가가 가볍게 꼬집어 당기는 듯한 감각이었다.

무시할 수 있을 만한 통증이었지만 가슴속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다급함과 불안감이 마치 나에게 이 감각을 쫓아서 움직이라고 지시하는 것 같았다.

“잠시만...”

나는 타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금 나를 잡아당기는 감각을 쫓아 걸음을 옮겨나갔다. 나를 잡아당기는 감각은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강해져오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다급함을 알려주듯 감각이 강해지자 내 발걸음또한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건...”

감각을 쫓아서 어느 방문 앞까지 갔을 때. 나는 뒤늦게 이 감각의 원인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키르비르.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리 속에서 그런 확신이 느껴졌다. 그녀가 뭔가 다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황급히 문을 열며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키르비르!!”

우뚝.

문이 열리는 순간 방안으로 달려들려던 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 때문에 몸이 우뚝 멈춘다. 침상위에서 옷이 찢긴 반 나체로 누워져있는 키르비르와 그녀 위에 올라타있는 리니아. 두 여자가 보내는 즐거운 시간을 내가 방해한 것 같았다.

“아... 미안. 재미있는 시간을...”

“도와줘 미친 놈아아아아아!!!”

다시 문을 닫고 나가려는 나를 향해서 키르비르는 욕설이 섞인 구조요청을 보낸다.

“흐헤헤헤... 오라방?!”

내가 방에 들어서자 리니아는 키르비르에게 떨어지며 나를 향해 흐느적거리는 걸음거리로 다가온다. 척봐도 뭔가 문제가 있는 상황. 양팔을 나를 향해 뻗으며 넘어질 듯 불안하게 다가오는 리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아 가볍게 들쳐맨다.

“오라바아아앙~ 아우으응...”

그러자 리니아는 팔과 다리로 어떻게든 내 몸을 휘감아 온다. 내 몸을 더듬는 리니아를 무시하고 원피스가 찢겨진 채로 힘겹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는 키르비르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이야?”

“알려고 하지마. 저거나 박살내줘.”

키르비르는 눈짓으로 방 구석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푸른 빛을 내뿜고 작동하고 있는 낯선 기계가 보였다. 키르비르의 요구에 나는 기계를 가볍게 발로 밟아 손쉽게 박살내버린다.

“후우...”

그러자 가볍게 심호흡을 하는 키르비르. 그런 그녀의 몸에 마나가 휘감기며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다.

카앙!

자신의 마력이 돌아오자 키르비르는 자신의 양팔을 구속하고 있던 수갑을 끊어낸다. 한동안 팔이 구속되어 있었던 것인지 붉게 자국이 남은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던 키르비르는 탁자위에 꺼내둔 약병을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리니아.”

키르비르의 부름에 나에게 엉겨붙고 있던 리니아는 고개를 돌려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그런 리니아를 향해 키르비르는 약병에서 꺼낸 알약을 내민다.

“아웅!”

리니아는 대뜸 알약을 잡고 있는 키르비르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쪽쪽 빨기 시작한다. 그런 리니아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무덤덤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키르비르는 조심스럽게 팔을 당겨 리니아가 물고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이 녀석 왜이래?”

“너가 만들었던 약 기억해?”

키르비르의 물음에 나는 그녀를 함락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푸른 알약들을 떠올린다.

“그거 다 폐기했지?”

“물론!”

키르비르의 물음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이 가볍게 미간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솔직히 몇 개는 남은 것 같은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키르비르의 시선에 나는 마지못해 버리기 아까워 약을 몇 개 숨겨뒀던 사실을 밝힌다. 키르비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리니아가 저렇게 변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 약이 몇 개가 리니아의 손에 들어간 것 같아.”

“그 약이?”

키르비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리니아를 돌아본다. 키르비르가 리니아의 이마에 손끝을 대고 가볍게 마력을 주입하자 리니아는 잠에 빠지려는 듯이 온몸을 축 늘어뜨리며 흐리멍텅한 얼굴로 가볍게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그 약을 가지고 있는건 나와... 이리엘...”

그렇다. 이리엘. 그녀가 내 약을 훔쳤었다. 자신이 쓸 약 하나만 훔쳤을 가능성은 낮았다. 아마도 여분의 약 몇 개를 챙겼겠지. 그리고 그녀는 리니아와 친해지자 리니아의 부탁으로 그 약을 그녀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난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데? 약을 챙긴건 리니아인데... 왜 리니아만 이 꼴이 된거야?”

“난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리니아는 전혀 아니지.”

자신만만한 그녀의 말과 다르게 찢어진 원피스자락 사이로 발갛게 발기된 그녀의 유두가 선명히 보였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음순 사이로 살짝 번들거리는 애액까지.

“그래?”

나는 대뜸 손을 뻗어 원피스 자락 사이로 보이는 작은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감싸쥔다.

“아흣!!”

그러자 키르비르는 작게 교성을 터트리며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내 손이 싫지는 않은지 큰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만... 그만해.”

약 몇 초간 가만히 있던 키르비르는 입안에 고인 군침을 삼키며 살며시 내 팔을 밀어내며 거부의 의사를 밝힌다.

“에이... 약의 효과는 너가 더 잘 알잖아.”

거의 의식을 잃은 듯한 리니아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둔 나는 키르비르에게 다가서며 그녀의 허리를 휘감는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이 고개를 떨구며 소심하게 내 가슴을 밀어낸다.

“나중에. 지금은 아니야.”

단호한 그녀의 거부의사에 나는 마지못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찢어진 옷자락을 감싸안아 자신의 부끄러운 나체를 숨긴다.

“그나저나 날 어떻게 여기로 부른거야?”

나는 나를 이곳으로 잡아 이끌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떤 수를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키르비르가 날 이곳으로 부른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런 내 질문에 키르비르는 자신의 오른팔 손목을 보여준다.

“그건...”

그녀의 손목에는 붉은 띠가 그려져있었다. 그녀와 내가 한 피의 계약. 내 오른팔에도 그녀와 똑같은 붉은 띠가 그려져 있다. 원래는 두 개의 띠였지만 하나의 띠는 내 몸 안에 흡수되었고 오직 하나의 띠만이 남아있었다.

“이 계약의 효과는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었지? 약간 더 집중하면 간단한 텔레파시도 보낼 수 있어. 로터스만큼 강력하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감정? 난 한번도 이걸로 네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난 의아한 얼굴로 내 손목에 그려진 붉은 띠를 매만진다. 그리고 키르비르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불편하고 짜증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너는 이때까지 내 감정을 못 느꼈다고?”

“아... 으응.”

키르비르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되묻는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야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그 대답이 뭔지 감도 안잡혔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솔직하게 대답한다.

“......”

그러자 키르비르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실망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나에 대해 생각해 봐. 그냥 나를 머릿속에 떠올려.”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하라는 대로 해봐!!”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요구에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키르비르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그런 그녀의 갑작스런 외침에 인상을 찡그린 나는 일단 불평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말대로 머릿속으로 그녀를 떠올린다.

“...응?”

머릿속에 키르비르에 대한 기억이 차오르자 가슴속에서 낯선 설레임이 느껴진다. 갑작스럽게 심박수가 빨라지며 신체가 긴장되어져갔다. 당황스러운 변화에 황급히 눈을 뜨자 기이한 감각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뭐야 이건...”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정이야.”

그렇게 대답하는 키르비르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과도하게 채워진 성욕과 두근거림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 그녀의 감정을 느꼈을 뿐인데 그 후유증으로 내 하반신에도 피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넌 단 한 번도 내 생각을... 아니. 나만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녀의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을 때. 키르비르는 화를 참지못하고 바락 소리를 지른다. 그런 그녀의 분노에 당황한 나는 아무말도 못한다.

“넌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아니... 나는...”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단순히 키르비르만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으로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그녀의 감정을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단 한번도 그녀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었다.

“실망이야.”

키르비르는 그 한마디만을 남긴채 냉랭하게 내 곁을 스쳐 방을 나선다. 나는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젠장...”

그녀가 방을 떠나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투덜거린다. 이때까지 그녀에게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에페리아에게 대항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준비할게 많았다는 것이 하나의 변명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그녀만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너무나도 빈약하고 초라한 변명일 뿐이었다.

“.....”

괜한 죄책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방금 전에 했던 대로 키르비르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다. 그러자 그녀의 감정이 조금씩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응...?”

여전히 강한 성욕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어서 느껴지는 것은 옅은 죄책감.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나를 향한 분노나 원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은 두려움이 미세하게 섞여있는 것이 느껴졌다.

“......”

잠시 그녀로부터 흘러오는 감정을 집중하던 나는 그 두려움의 원인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버림 받을 것을 걱정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아... 키르비르...”

여전히 강한 척을 하는 녀석이었지만 속은 한없이 여리고 나약한 키르비르였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바닥에 쓰러진 리니아를 들어올리며 그녀를 챙긴다.

========== 작품 후기 ==========

문탐 / 오랜만입니다

포카리한모금 / 와 던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루블리츠 / 쩝...?

내일은 한글날. 휴일이네요. 아아아아 휴일은 언제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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