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61화 (261/298)

261편

<-- 변이 -->

“엘!! 소란의 정체가 뭐야?!”

디에그 데그로 들어선 나는 다짜고짜 디에그 데그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엘에게 이리엘의 행방을 묻는다.

-이리엘님은 현재 정체불명의 괴물체와 교전중입니다.

“어디에?!”

찝찝한 불안감이 천천히 현실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 함선을 통제하고 있다는 엘은 이리엘이 괴생물체와 교전하는데 그냥 방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까지 세세하게 캐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쪽입니다.

엘은 통로를 밝히는 조명을 조절하여 이리엘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한다. 나를 쫓아 들어온 키르비르는 그런 엘의 행동에 작게 감탄하지만 상황의 시급함을 알고 그저 아무말없이 내 뒤를 따르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읏... 마력에 장해가...”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키르비르의 짧은 신음소리. 그녀의 의도대로 제대로 마력이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리엘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디에그 데그 안에 마력을 억제하는 모종의 수단을 해놓은 것이다.

-이리엘님의 허가가 없는 이상 이능력 억제장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이능력 억제장?!”

의외로 친절한 엘의 설명에 키르비르는 인상을 팍 구긴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리엘이 설치한 이능력 억제장이 키르비르의 마력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난감해하는 키르비르를 바라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내 혈검을 변형시켜본다.

슈욱..

그러자 이능력 억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 혈검은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내 의도대로 빠르게 모습을 변해간다. 일단 내 힘은 건제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키르비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이리엘을 찾아 복도를 뛰어갔다.

“이리엘!!”

다행히도 이리엘은 멀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기괴한 괴물. 강철문으로 봉쇄된 방에서 빠져나오려는 듯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갈기갈기 찢어낸 문틈 사이로 기형의 괴물이 보였다. 괴물은 자신의 손톱에 다리가 걸린 이리엘을 끝장내려는 듯이 서슬퍼런 예기가 빛나는 손톱을 번쩍 들어올린다.

“마력이 아직...”

이리엘의 위기에 키르비르는 있는 힘껏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려보지만 이능력 억제장은 그런 키르비르의 마력을 봉쇄한다.

“위험해!!!”

괴물의 예리한 손톱이 이리엘의 가슴을 향해 겨누고있었다.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거리. 그녀를 구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젠장할!!”

한 순간 이리엘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려는 내 자신의 모습에 갑작스럽게 역겨움이 치밀어오른다. 이를 악문 나는 내 스스로를 욕하면서 있는 힘껏 이리엘을 향해 달음박질을 한다.

쉬익!!

그러나 단순한 의지나 오기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오직 이리엘의 숨통을 끊어야한다는 광기에 휩싸인 괴물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날카로운 손톱을 그녀를 향해 떨어뜨린다.

“절대로... 잃지않아!!”

이 순간에 아리엘과 했던 약속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리엘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한 약속. 이렇게 허무하게 이리엘을 잃어버리는 것은 내 스스로도.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아리엘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투둑...!

내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열기는 빠르게 내 오른쪽 눈에 몰리기 시작하며 동시에 오른쪽 눈에서 격한 통증이 밀려왔다.

“타메르?!”

옆에서 나를 부르는 키르비르의 짧은 비명이 들린다. 하지만 나는 오직 이리엘을 살려야한다는 일념아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괴물을 향해 팔을 뻗는다.

콰아앙!!

“......”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찰나의 순간이라 머리가 뭔가를 인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손안에서 느껴지는 기분나쁜 감각과 지나치게 거칠어진 숨.

“끄... 끄륵...”

그리고 내 손에 목덜미가 붙잡힌채로 괴로운 숨을 내쉬는 괴물이 내 눈에 보였다.

“이리엘?!”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나는 우선적으로 이리엘의 안위를 확인해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타메르...”

다행히도 그녀는 괜찮았다. 괴물에 의해 관통당한 다리의 상처를 감싸쥔채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젠장... 젠장 젠장!!”

그런 이리엘을 향해 이유모를 욕설을 내뱉는 키르비르가 달려온다. 그녀는 황급히 이리

엘의 다리의 상처를 지혈해주며 나를 바라본다.

“키르비르?”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전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째서 내가 이리엘을 죽이려는 괴물을 막고 오히려 녀석을 벽에 처박아버린 걸까?

“타메르... 위험...”

푸욱!!

나를 바라보며 이리엘은 힘겨운 목소리로 내 위험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녀의 경고가 무색하게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은 내 복부를 관통한다.

“우선... 네 놈부터 처리하자.”

강렬한 격통이 내 배를 꿰뚫지만 그다지 큰 의미나 영향은 없었다. 이미 고통에 익숙해진지는 오래. 나는 내 배를 관통한 괴물의 팔을 움켜쥔다.

콰드.. 콰드드득!!

“키에에에에!!”

의외로 튼튼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순수한 내 완력에 이길 수 없는지 녀석의 팔은 비참할 정도로 처참하게 짓뭉개진다. 곧이어 가볍게 손을 비틀어 뼈와 살점통째로 짓뭉개진 녀석의 팔을 끊어버린다.

“응?!”

그때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을 비틀어 녀석의 팔을 끊어버렸었다. 하지만 끊어진 녀석의 팔은 다시 재생하기 위해 서로의 세포조직이 빠른속도로 달라붙어간다.

“이건... 광혈의 저주.”

이런 경의적인 회복력을 가진 힘은 단 하나. 내가 가진 광혈의 저주였다. 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설마!!!”

쇠망치가 머리를 후려친듯한 충격에 나는 멍하니 괴물의 얼굴을 살펴본다. 기이하게 변형되었지만 변형되기 전의 얼굴의 윤곽이 언뜻 보인다.

“캬아아아!!”

나를 향해 갈라지는 목소리로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은 온몸에서 뼈로 이뤄진 날카로운 가시를 내뿜는다.

“큭!! 젠장할!!”

날카로운 뼈들이 내 몸에 파고든다. 살이 꿰뚫리는 찌릿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시들이 조금씩 깊숙이 파고들어오자 나는 있는 힘껏 괴물을 다른 곳으로 집어던진다.

쿠웅!!

“키야아아앗!!”

어마어마한 기세로 내던져진 괴물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벽을 꿰뚫어 어렵지않게 벽에 매달린채 나를 향해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뱉는다.

“이 녀석... 설마 아리엘이 변한거냐?!”

황급히 혈검을 꺼내 괴물을 겨누며 나는 이리엘에게 묻는다. 그런 내 질문에 이리엘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데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야?!”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키르비르는 괴물과 이리엘을 돌아보며 사건의 전모에 대해 묻는다.

“아리엘에게 광혈의 피를 수혈했어.”

“광혈의 피를 또 타인에게 수혈했다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런 변이는 본적이 없어.”

키르비르는 내 죄를 따지기 보다 괴물로 변한 아리엘을 관찰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광혈의 피. 그러니까 혼돈의 힘에 의한 변이는 불규칙적이고 비이상적이야. 균형없는 마구잡이식 변이는 생물체의 체내의 균형을 흩으러뜨려 결국 자멸로 이끄는게 일반적인데...”

키르비르의 설명과 달리 괴물로 변한 아리엘은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설명대로 불규칙적이지 않았다. 마치 싸우면 싸울수록 전투에 최적화될 수 있게 신체를 변이시켜나가고 있었다.

강철벽을 휴지처럼 꿰뚫을 수 있을 정도의 날카로운 발톱. 필요없는 군살은 전부 제거된 얇고 알찬 근육질의 몸과 언제라도 날카로운 칼날처럼 사용할 수 있는 뼈가시를 숨긴 몸까지. 그녀가 말한 불규칙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극단적으로 전투를 위한 구조로 변이된 모습이었다.

“언니를... 되돌려줘 타메르...”

피가 흘러나오는 자신의 종아리를 움켜쥔채 이리엘은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애원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애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리엘을 향한 혈검을 거둘 수는 없었다. 괴물은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를 내뿜어내고 있었다.

“캬아아앗!!”

나를 향해 살의를 내뿜던 괴물은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날카롭게 날이 선 10개의 손톱으로 나를 겨누며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나또한 혈검을 휘두른다.

캉!

괴물의 손톱과 내 검이 격돌하는 순간. 나는 시란에게 배운대로 그녀의 공격을 옆으로 가볍게 흘러내려했다.

“헛?!”

하지만 공격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온몸의 체중을 실은 전력의 일격이라 생각했지만 아리엘의 손톱이 내 검에 닿는 순간 아리엘은 내 혈검을 움켜쥔다.

뻐억!!

“큭!!”

그리고 그대로 팔꿈치로 내 안면을 강타한다. 예상외의 공격에 당황한 나는 검을 놓친채로 얻어맞은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선다.

“타메르!! 너 검이!!”

동시에 키르비르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얼굴에 살짝 묻은 피를 가볍게 닦아내며 나는 내 검을 뺏아든 아리엘을 노려본다. 혈검은 내 몸과 붙어있어야 검으로써의 형태를 유지했다. 내 손에서 벗어나거나 타인의 손에 쥐어지면 다시 피의 형태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뭐야...”

하지만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리엘의 손에 움켜쥐어진 혈검은 녹아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뺴앗긴 그 모습 그 형태를 유지한채로 아리엘의 손에 움켜쥐어져있었다.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계속되는 비이상적인 상황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린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혈의 저주에 의한 기형적인 변화에 이어서 혈검의 형태유지까지.

“키키킥...”

기분나쁘게 웃음을 흘린 아리엘의 손안에서 혈검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렇게 녹아내린 혈검은 아리엘의 손을 통해 그녀의 몸안으로 스며들어가기 시작한다.

“말도안돼...”

아리엘이 광혈의 저주를 완벽히 지배한 것일까? 네베르족인 네이도 저정도로 광혈의 저주를 지배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아리엘이 광혈의 저주를 저정도로 제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리엘!! 이능력 제어장을 풀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한 키르비르는 이리엘을 간호하던 몸을 일으키며 괴물이 된 아리엘을 노려본다.

“하지만...”

“죽이지 않을꺼야!! 아리엘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내 힘이 필요해!”

“알았어. 제어장 해제해. 엘.”

키르비르의 윽박지름에 이리엘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명령을 이행한다. 이리엘이 엘에게 지시를 내리자 마력이 되돌아오는 듯 키르비르를 중심으로 자그마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키잇?”

갑작스런 키르비르의 변화에 본능적인 위협을 감지한 아리엘은 키르비르를 노려본다. 하지만 이미 키르비르의 양손에는 숨막힐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빠르고... 간결하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키르비르는 양손을 모아 어마어마한 마력을 한곳에 응축한다. 뒤늦게 위기를 직감한 아리엘은 그런 키르비르를 향해 달려든다.

“마나 캐논!!”

하지만 키르비르의 마법 발현. 그러니까 단순히 응축시킨 마력을 정면으로 방출하는 행동이 더 빨랐다.

콰아아앙!!

키르비르의 양손에 맺힌 마력이 한데 모여 커다란 충격파가 정면으로 방출된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동시에 그런 충격파를 근거리에서 직격당한 괴물은 튼튼한 디에그 데그의 강철벽을 두어개나 찌그러뜨리며 다른 방을 향해 튕겨져나가버린다.

-함내 손상감지. 함내 손상 감지.

함선에 손상이 가해지자 엘은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리며 우리에게 경고를 해준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그런 경고따위는 관심없다는 듯이 한손을 앞으로 힘껏 내뻗는다.

“도망치게두지 않아!!”

그리고 허공을 움켜쥔채 무언가를 잡아당기듯 힘껏 뒤로 팔을 당긴다.

콰드득!!

그러자 찌그러진 벽이 뒤틀리며 피투성이가된 괴물이 이끌려나온다.

“어... 언니!!”

곧바로 죽어도 이상이 없을 것처럼 처참하게 망가진 아리엘의 모습에 이리엘은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다르게 광혈의 저주를 몸에 품은 아리엘의 몸은 빠른속도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부족해. 완전히 끝내버려야해...”

“하지만 키르비르! 이 상태로 또다시 그런 마법을 사용하면...”

“되돌릴 방법은 없어!!!”

넝마가 된 아리엘을 마력으로 허공에 띄운채 키르비르를 또다시 양손에 마력을 뭉처나간다.

“뼛속까지 광혈의 저주에 오염되었어... 저건 회복 불가능해. 이미 죽은 몸이라고!”

“하... 하지만... 언니를 구할 수 있다고...”

“거짓말이야.”

이리엘의 애원에 키르비르는 매정하게 한마디를 남긴다. 그리고 양손을 모아 아리엘을 단숨에 조각내버릴 만한 마력을 또 한번 뭉쳐나간다.

“엘!! 제어장 작동시켜!!”

아리엘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이리엘은 황급히 엘에게 이능력 제어장을 재작동시키라고 명령을 내린다. 함선내에 흘러들어왔던 마력은 또다시 감쪽같이 사라지지만...

“미안하지만... 이미 모은 마력까지 없엘 수는 없을꺼야.”

이미 키르비르의 양손 안에는 아리엘을 조각내버릴 만한 마력이 모아져있었다. 그녀는 이리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조용히 그녀에게 눈인사를 보낸다.

“안돼... 안돼!!”

이리엘은 피가 흐르는 다리를 질질 끌며 키르비르를 막기 위해 그녀에게 기어간다. 그런 이리엘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던 키르비르는 그녀를 외면한채 괴물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 작품 후기 ==========

문탐 /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이렇게 반겨주시다니 감사할뿐입니다.

임대가르시아 /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0세계0 / 우와... 엄청 오래됬네요. 초3이셨다니... 그땐 제가 고3이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