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편
<-- 변이 -->
“그럼. 모두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어요!”
클론과 밤새도록 관계를 가진 다음날 아침. 한숨도 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때보다도 밝은 얼굴로 1호는 우리 모두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낸다.
“흐으아암...”
오히려 밤을 샌 클론대신 내 곁에 서 있는 키르비르가 피곤한 듯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 것처럼 고개를 꾸벅거리며 눈을 비비는 키르비르의 팔을 한팔로 감싸안아 그녀를 부축해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감사했어요. 타메르씨.”
떠나기전 1호는 나를 바라보며 살짝 상기된 얼굴로 가볍게 윙크를 해준다. 그런 그녀의 윙크에 괜히 어젯밤 일이 떠올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뿐이다.
“마지막으로 타이.”
“뭐야?”
1호는 타이를 부른다. 타이또한 어젯밤의 일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는지 팔짱을 단단히 낀채 잔뜩 화가난 눈으로 1호를 노려본다. 1호는 그런 타이의 매서운 시선에 오히려 풋하고 웃움을 터트리며 우리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타이의 귓가에 속삭인다.
“뭐... 뭐 뭐 그런...!!”
무슨말을 한지 모르겠지만 타이는 얼굴을 잔뜩 붉힌채 황급히 자신의 귀에 무슨 말을 속삭인 1호를 힘껏 밀어버린다. 그러자 1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하여튼. 잘 기억해두라고! 아하하핫~!”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1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가볍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울창한 베히모스 산맥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를 한번씩 돌아본다.
“그럼. 전 가볼께요.”
“괜찮겠어? 도시까지 짧은 여행은 아닐텐데...”
“걱정마세요. 이런 장거리 여행.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1호는 미리 리엔이 준비해준 간편한 음식들과 도구가 들어있는 작은 배낭을 등에 맨채 유적지를 벗어나 베히모스 산맥을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그녀와 관계가 크게 없었던 사람들은 그녀가 떠나가자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돌아간다.
“무슨 말을 한거야?”
그녀가 산맥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나와 타이. 그리고 키르비르였다. 여전히 꾸벅꾸벅 졸고있는 키르비르를 부축하며 타이에게 마지막 1호가 속삭였던 말에 대해 묻는다.
“벼... 별 것아니에요. 그냥... 조금 낯부끄러운 말이에요.”
“낯부끄럽다라...”
무슨 말을 했을지 감도 안잡히지만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클론이 뭔가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죠?”
“이상한 짓이라기보다... 으음... 일단 평범하지 않긴 했었지.”
“으우...”
거짓없는 솔직한 내 대답에 타이는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괜히 이상해지는 분위기 속에 무안하게 볼을 긁적거리던 나는 무겁게 점점 축 늘어지는 키르비르를 의식하며 주제를 돌린다.
“키르비르는... 왜 이렇게 조는거야?”
내 팔에 엉겨붙어 점점 바닥으로 늘어지는 키르비르를 다시금 억지로 부축해 일으켜세운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듯 키르비르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다시 내 팔에 엉겨붙으며 천천히 눈이 감겨가는 키르비르였다.
“그건 저도 잘...”
“일단... 이 녀석부터 침실로 옮겨야겠다.”
이대로 키르비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내 팔에 엉겨붙는 키르비르를 가뿐하게 품에 안아든다.
“우으으..”
갑자기 내가 자신을 안아들자 키르비르는 게슴치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작게 입술을 오물거린다. 하지만 이내 피로와 졸음에 굴복했는지 오물거리던 입을 다물고 그대로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애는 어젯밤에 자지않고 뭐한거야 대체...”
“그러고보니... 어젯밤 타메르씨 방 앞에 키르비르님이 계시던데요?”
“내... 방앞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채 어젯밤을 회상하던 타이는 뭔가 떠올랐는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해준다.
“그... 그러니까... 저는 뭐... 별건 아니고... 클론이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본건데...”
“아니 그건 됐고. 키르비르가 내 방 앞에 있었다고?”
“아... 예.”
내가 그녀의 말을 끊자 타이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왠지 불안했는데...”
안그래도 1호와의 관계가 불안했었다. 밤새로록 쉬지않고 서로의 몸을 탐했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목소리나 신음같은 것을 신경쓰는 것을 포기했었다. 거의 짐승처럼 서로의 몸을 탐해가는 과정속에서 음란한 교성이 문틈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일단... 이 녀석부터 옮기자.”
괜히 부끄러워진 나는 타이에게 말할 틈도 주지않고 허둥지둥거리며 키르비르를 안은채 황급히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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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것 같은 부끄러움에 숙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빨라진다. 안그래도 꽤나 요란했던 성관계였다. 내가 들어도 얼굴이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야한 말과 교성이 사방으로 울려퍼졌을 것이다.
그제서야 아침에 모두의 어색한 침묵이 어느정도 이해는 갈 수 있었다. 몇몇은 서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관계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밤새도록 그런 요란한 소란을 떨어놓고 아침에 얼굴빛 하나 안바뀌고 모두와 대면하다니...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후우우우...”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괜히 이런 어색한 부끄러움이 몇일은 지속될 것같은 불안감에 몸서리친다. 키르비르를 품에 안은채 그녀의 방안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금 내가 처한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무슨 약에 당했다고 거짓말을 칠까? 예전에 만들어둔 약이 잘못되어서... 갑자기 성욕이 폭주했다던가...
머릿속에 다양한 변명거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얼마가지않아 잔뜩 얼굴을 붉힌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무리 좋은 변명이라해도 내 스스로가 느끼는 수치심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젠장... 될대로 되라지.”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나는 내 품에 안긴 키르비르를 그녀의 침상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둔다.
“우으으...”
밤새 차갑게 식은 침상이 자신의 몸을 감싸안자 한기를 느낀 키르비르는 몸을 움츠리며 내 팔을 꼭 감싸안는다.
“추워어어...”
“이불덮으면 괜찮아질거야.”
나는 키르비르가 감싸안은 내팔을 조심스럽게 그녀의 품안에서 빼내려고한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피로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도와준 보답이... 고작 이거야?”
“도와주다니? 너가 뭘?”
“으우우...”
키르비르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이 나에게 손짓한다. 그런 키르비르를 무끄럼히 바라보던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침상 옆에 걸터앉는다.
“빨리이... 나 추우니까...”
하지만 그걸로 만족 못했는지 키르비르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계속 나를 재촉한다. 그런 그녀의 재촉에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침상에 같이 누워 추워서 몸을 오들오들 떠는 키르비르의 몸을 감싸안아준다.
“헤에... 따듯해. 타메르는... 역시 따듯하네...”
“아.. 네에 네에. 그나저나 도데체 날 도와준게 뭡니까요?”
내 품에 끌어안긴 키르비르는 더 따듯한 온기를 찾아 내 품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온다. 그런 키르비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나는 키르비르가 깊은 잠에 빠지기를 기다린다.
“으우.. 으.. 방음... 마법... 너희 둘... 요란하니까... 하암..”
잠에 빠져들면서 키르비르는 조용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웅얼거림을 놓치지 않고 확실히 들은 내 눈이 천천히 휘둥그레진다.
“방음 마법...?!”
분명 타이가 밤늦게까지 키르비르가 내 방 앞에 있었다는 것을 봤다고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키르비르가 방음 마법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방 앞에 키르비르가 있단 사실보다 그 요란한 성교소리가 머릿속에 더 크게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정말... 진짜!!!”
나와 타이의 요란한 성관계를 아무도 눈치채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키르비르의 방음 마법덕분에 그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고요한 밤에 숙면을 취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보물덩어리!!”
결국 기쁨을 이기지 못한 나는 키르비르가 잠들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그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어 버린다. 자신의 머리가 마구잡이로 헝클어지자 키르비르는 힘겹게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잡에 취해 몽롱한 그녀의 눈동자는 예전처럼 매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나를 위해 해준 일들 덕분에 더욱 그녀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나는 다짜고짜 키르비르를 꽉 끌어안아버린다.
“우으... 졸리니까... 방해하지마아...”
“그래그래. 푹 자. 아주 푹 주무셔주세요!”
과도한 내 애정표현에 키르비르는 마지막으로 한번더 나를 쏘아봐준다. 하지만 곧이어 지독한 수마의 유혹에 못이겼는지 내 품안에 끌어안긴채 또다시 잠이 들어버린다. 그런 키르비르의 등을 기특하다는 듯이 토닥여준 나는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들 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줬다.
========== 작품 후기 ==========
거의 18개월동안 글을 쓰지 않은데다 노트북까지 바뀌어서 기록해둔 배경자료나 설정집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서 어떻게든 쓰고있는지라 설정에 빈틈이 많아질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지네요.
하지만 어떻게든 끝을 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