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52화 (252/298)

252편

<-- 마녀와 쓰레기 -->

“끄르르륵...”

폐까지 가득찬 용액 때문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유리관 속에 담긴 레오는 온몸을 비틀어 엄습해오는 고통에 저항해보려하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영양만 공급되는 상황에서 몸이 움직일 힘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 흐릿한 시야넘어로 보이는 것은 커다란 마녀모자를 쓰고 있는 에페리아의 검은 그림자.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괴로워하는 레오를 방관하고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근육 세포의 과도한 활성화... 좋은데?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혈관을 압박시켜 죽겠지만... 혈관을 실리콘 관으로 대체하면 버티려나?”

물론 그것이 레오를 도와주려는 행동이 아니었다. 레오와 연결된 수십개의 관을 통해 형형 색색의 약품이 주입되는 것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데... 실험 계획의 절반이나 진행시켰는데... 아직 쌩쌩하다니.”

실험 노트에 실험이 완료되었다는 표시로 가로줄을 찍 그어넣은 에페리아는 손에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유리관 속에 담겨있는 레오를 바라본다. 실험이 끝나자 그의 몸에 주입되던 약물의 흐름이 멈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자 꿈틀거리던 레오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져버렸다.

“팔팔한 뤼베크족도 이정도까지는 못견뎠는데... 삶에 대한 집착이 이렇게 쎄다니 다시봐야겠는 걸?”

입에 발린 칭찬을 툭 내뱉은 에페리아는 레오의 상태보다도 앞으로 남아있는 실험이 기대되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남은 실험 계획을 쓱 내려본다. 그리고 레오와 관으로 연결된 약물 주입기계로 다가가 새로 합성한 약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세팅해나간다.

“만약에... 진짜로 이 실험들을 견뎌내면 살려줘야하나?”

철컥.

모든 약물을 세팅한 에페리아는 작동스위치를 눈앞에 두고 슬쩍 레오를 바라본다. 마치 죽어있는 시체처럼 레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의식이 살아있는 것은 뇌파측정기로 증명되고 있었다.

“흥. 약속은 약속이니까.”

잠시 가만히 서있던 에페리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약물주입기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자 조용한 진동과 함께 세팅된 약물이 천천히 관을 통해 레오의 몸안으로 주입되어가기 시작했다.

“끄.. 끄르륵..”

또다시 레오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는 날카로운 그래프를 그려내며 레오가 느끼는 격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에페리아는 단말기를 통해 보여지는 레오의 신체변화를 살펴보며 다시 펜을 손에 쥔다.

“어자피 살려줘봤자... 얼마 못갈텐데 뭐.”

에페리아는 과거 다른 실험체들을 떠올린다. 거액의 보수에 눈이 멀어 생체실험을 자진해서 지원했던 얼간이들. 불행히도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에페리아는 실험체들의 안전따위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에페리아는 실험체들에게 끔찍한 실험들을 자행했고 대부분의 실험체들은 그런 실험의 고통을 버티지 못해 미쳐버리거나 죽는 것이 대다수였다. 개중 신체적으로 건강하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실험 일정을 끝까지 견뎌냈었다.

하지만 그런 실험체들의 결말또한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다. 실험체의 삶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들은 에페리아에게 달려들었다. 오랜시간 자신에게 고통을 준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분노였다. 그런 실험체들의 공격에 에페리아또한 순수히 당해주지 않았고... 살아남은 실험체들은 결국 전부 에페리아의 손에 그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뭐. 걱정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실험에 집중하자.”

약물이 주입되자 레오의 몸의 일부가 부풀어오른다. 일반적으로 근육의 팽창이라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과도한 팽창.

퍼억!

그런 팽창의 끝은 파열이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부풀어오른 근육이 터지면서 녹색 액체가 가득한 관안에 붉은 핏물이 번져간다. 그런 레오의 모습을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며 서류에 팬을 끄적이기 시작한다.

“아직 농도가 높나보네. 농도를 좀 낮춰서 재실험을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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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이라...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군.”

레오의 말을 들은 거한은 별 감흥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에페리아가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한다는 소문은 마치 정설처럼 마계에 퍼져있었다. 그런 사실을 레오의 입으로 들었다고해도 큰 충격이나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실험에 살아남은 너는 뭔가 변화가 생긴거냐?”

“아주 조금?”

거한의 물음에 레오는 피식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레오를 바라보던 거한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

“그래봤자 정신적으로 개조당한거겠지. 뤼베크족의 긍지는 사라지고 에페리아의 수족이 되어버리다니. 네 자신이 부끄러운줄 알아라.”

“....”

거한의 말에 레오는 입을 꾹 다문다. 그 말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는 레오였다. 뤼베크족의 긍지를 버린 것도 사실이고 에페리아의 수족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누가 잘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해주겠지.”

레오가 하고싶은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레오의 의미심장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한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내 거한은 얼굴을 험학하게 구기며 레오를 노려본다.

“뭐야... 에페리아의 밑에 있었다고 너도 좀 똑똑해진 척 하는거냐? 너도 에페리아처럼 잘난것같아?”

콰앙!!

거한은 한손에 쥐어지는 레오의 머리를 움켜쥔채 그대로 땅에 처박아버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이 차지않았는지 땅에 처박힌 레오의 머리를 발로 짓밟으며 자신의 발에 밟히는 레오를 비웃는다.

“넌 뤼베크족 답지 않게 야비한데다가 비겁한 놈이었지. 뭐라 그랬더라... 평화주의? 어이없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거한의 말에 주변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있떤 부하들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린다. 자신의 말에 동조해주는 사람이 있자 더 의기양양해진 거한은 다시한번 다리에 힘을 주어 레오의 머리를 짓밟은다.

콰드득!!

레오의 머리는 땅에 더욱 깊숙이 쳐박힌다. 하지만 거한은 레오를 죽일맘은 없었는지 그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발에 살짝 힘을 뺀다.

“평화주의다 뭐다 떠들며 혼자 고상한척하는 네 녀석의 모습은 언제나 꼴보기 싫었어. 자. 어디한번 보여줘봐. 에페리아의 밑에 있었다면 뭔가 대단한 필살기 같은거 하나 배웠을꺼아냐?”

“....”

거한의 도발에 레오는 침묵을 지킨다. 그러자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거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 또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아무것도 안했겠지. 그러니까 네놈이 버림받은 거야. 몸도 약해... 정신도 약해. 도데체 네가 할 수 있는게 뭐냐?”

“내가 할 수 있는거?”

거한의 말에 레오는 땅에 처박힌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살짝 웃으며 말을 한다.

“조금이라도... 가치있게 노력한거... 두 번다시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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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도데체 이게... 아오썅!!”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에페리아는 우선 네이가 엉망으로 만든 실험실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네이에게 맡겨볼 생각도했지만... 단지 옷을 찾는 것으로 실험실을 초토화시킨 그녀가 이번엔 또다시 무슨 사고를 칠지 상상도 안되었기에 그 지시는 포기하기로 한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없어!!”

일단 커다란 잔해를 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의 마력으로 덩어리들을 들어올리고 한데 모아서 압축시킨다. 그리고 외부로 순간이동시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자잘한 물건들을 치우는데부터 문제가 생긴다.

“이건 도데체 어디있던거야?!”

에페리아는 손에 들고있던 달걀모양의 팬던트를 뒤로 확 집어던지며 투덜거린다. 뭔가 장식같은데 어디에 있던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다양한 잡동사니. 심지어 실험 데이터가 있는 서류들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인 물건들의 위치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걸... 대체 내가 어떻게 정리하고 산거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정리하던 에페리아는 정리를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은채 인상을 찡그리며 옛날생각을 한다. 그러자 떠오르는 것은 단 한명의 인물.

“레오...”

레오였다. 자신이 대충 던져놓은 서류들.. 화장실에서 일보면서 읽은 잡지나 서적들까지. 그녀 스스로 정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용건이 끝나면 마치 쓰레기 버리듯이 등뒤로 휙 던져버리는 에페리아였다. 그리고 나서 그 책이나 서류가 다시 필요할때는 언제나 그 서류나 책이 있던 자리에 깔끔히 정리되어있었던 것이다.

왕궁이나 다른 마계인들이 잘보이려고 자신에게 선물한 물건들. 그런것들또한 레오가 책임지고 처리하거나 방 이곳저곳에 아기자기 장식해놓았던 것이다.

“아오씨...”

왠지 버리기 아쉬웠고 그렇다고 정리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데 쌓인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마녀모자를 벗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은 에페리아는 다시 마녀모자를 푹 눌러쓴다.

“그냥... 전부다 없에버릴까...”

짜증이 치솟아오른다. 이 연구실을 전부 날려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살짝 떠오르는 에페리아였다. 지금까지 연구하고 실험한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겠지만... 이미 중요한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후였다.

“....후우...”

하지만 에페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왠지 이 연구실을 전부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럴 힘은 있었지만 왠지모르게 의욕이 나지 않는 에페리아였다. 잠시 엉망이된 연구실을 크게 둘러보던 에페리아는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는 코트를 벗어내며 간편한 복장으로 먼지 투성이의 침대로 쓰러진다.

“콜록.. 콜록..젠장할...”

입과 코로 들어오는 먼지에 가볍게 기침을 한 에페리아의 짧은 욕설이 그녀의 침실에 고요히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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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모든 실험은 끝난다. 실험 결과로 만들어진 데이터로 빼곡이 찬 서류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슬쩍 시선을 들어올려 유리관속에 담겨진 레오를 바라본다.

“살았네.”

그녀의 말대로 레오는 살아있었다. 모든 실험이 끝나자 조금은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있었지만 그런 레오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에페리아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눈으로 유리관의 개방스위치를 누른다. 그러자 유리관속에 담겨진 노란액체가 빠른속도로 빠져나간다.

“콜록... 콜록!!”

몇 개월동안이나 담겨져 익숙해진 액체가 빠져나가자 유리관 속에 쓰러진 레오는 괴로운 듯한 기침을 해내며 폐속에 가득차있던 액체를 게워낸다. 그런 레오를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조용히 자신의 한손에 마력을 뭉쳐나간다.

“콜록... 크흑..”

쓰러져있던 레오가 천천히 의식을 차려간다. 아직은 힘겨웠지만 조금씩 몸을 일으킨 레오는 유리관 넘어의 에페리아를 바라본다.

“굿모닝.”

그런 레오를 향해 에페리아는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런 그녀의 미소와는 다르게 그녀의 손에는 이미 순식간에 사람하나를 날려버릴 만큼 강렬한 마력이 뭉쳐있었다.

“에페리아...”

레오의 입에서 처음으로 에페리아의 이름이 불려진다. 괴로운 실험을 모두 끝마친 레오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경험으로 결고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 예상한 에페리아는 만일의 대비를 마친뒤 유리관 개방 스위치를 누른다.

“어때 몸상태는?”

감정이 담기지않은 형식상의 질문. 그런 에페리아의 질문에 레오는 입을 뻥긋거리며 힘겹게 대답한다.

“심장쪽이... 아프지만... 괜찮습니다.”

“심장쪽이?”

마지막 실험은 심근과 관련된 실험이었다. 심장과 관련된 실험은 실험체의 생명을 좌우하기에 가장 마지막에 행해진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서 레오를 실험 실패라는 변명아래 그냥 죽이려고 했던 에페리아는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주입했지만 레오는 그 약물을 견뎌내고 오히려 에페리아가 마음을 바꿀정도로 대만족스러운 실험결과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실험은 심장쪽과 관련된 거야. 약간의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어.”

어자피 레오에게 숨길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에페리아는 서슴없이 자신이 행한 일을 그에게 밝힌다. 자신을 이용해 실험을 했다는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유리관 벽면을 짚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에페리아님...”

몸을 일으킨 레오를 바라보며 에페리아는 조금이라도 레오가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대로 날려버리려는 마음을 숨긴채 빙긋이 웃어보인다. 그런 에페리아의 심중을 모르는 간신히 초점을 맞춘 눈으로 에페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더... 하실 실험은 없으십니까?”

“....응?”

예상치못한 레오의 대답에 에페리아는 벙찐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더 할 실험이라니? 아직도 더 실험을 받고 싶다는 뜻인가? 에페리아는 여러방면으로 생각하지만 지금 레오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레오가 받은 실험은 평범한 생물체가 견뎌낼만한 만만한 실험이 아니었다. 생체 조직이 뒤틀리고 유전자가 변형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자연이 정한 신진대사를 무시하고 인위적인 힘으로 신체 조직을 조종한 에페리아의 실험은 정신이 분열될 정도의 끔찍한 고통을 동반해버린다.

“아직... 계획된건 없는데...”

에페리아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애시당초 에페리아가 설립한 실험 계획은 실험도중 레오가 죽을 경우. 정확히 말해 강렬한 고통을 못견뎌 뇌사상태에 빠질경우까지 대비해 꼼꼼히 짜낸 알뜰한 실험 계획이었다. 그 모든 실험 계획을 이행하고도 이렇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레오가 살아남을 줄은 에페리아조차도 예상못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레오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러자 유리관에 몸을 기댄체 불안하게 서있던 레오의 신체가 무너져내려버린다.

“.....”

그런 레오를 에페리아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기회에 에페리아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보자.

그리고 저번 연재빵꾸에 대한 보상으로 2연속 연재입니다.

으앙... 늦지않도록 노력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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