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편
<-- 클론 -->
숙소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찾은 인물은 다름아닌 타이의 클론인 1호. 에페리아에 대한 증오로 조금이라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한다는 사실에 나는 예고없이 대뜸 타이의 방문을 열어젖힌다.
“1호. 할 이야기가 있어?”
“오?! 나는 대환영이야!”
침대에 홀로 누워 베게를 품에안고 뒹굴거리던 1호는 아무런 사실도 모른채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환영한다. 아무런 의심없이 내 뒤를 쫓는 1호를 데리고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온다.
“뭔데 뭔데? 중요한 이야기야? 나 마지막 밤이니까 뭔가 나에게 해줄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거야?”
혼자 들뜬 1호는 내가 꺼내준 의자에 걸터앉은채 잔뜩 기대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1호를 바라본다.
“뭔데...? 무슨 문제가 있는거지?”
내 표정을 확인한 1호는 그제서야 뒤늦게 들뜬 감정을 진정시킨다. 그런 1호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네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너... 네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1호는 타이와 싸울때 네이라는 이름을 거론했다. 타이는 그런 네이라는 이름을 네베르족 최고의 전사에게만 수여되는 칭호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네이 또한 그런 존재. 그래서 나와 타이는 1호가 거론한 네이라는 존재를 너무나도 가볍게 넘겨버렸었다.
“응. 오리지날을 무참히 뭉개버렸던 녀석이야.”
“그 녀석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
내 물음에 1호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듯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초후. 1호는 자기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간다.
“완벽하게 기억나진 않아. 내가 이성이 깨어난 것은 모든게 끝난 후니까... 하지만 확실한건 네이라는 존재는 긴 봉을 사용했어... 그리고 고양이 귀와 꼬리가 있었구... 색이 검었어.”
“긴 봉과... 귀와 꼬리...”
귀와 꼬리는 네베르족의 특징이었다. 그것으로 내가 아는 네이를 분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무기라는 봉. 그것은 분명 내가 기억하는 네이가 애용하던 무기였다.
“좀 더.. 없어? 신체적 특징같은거.”
“신체적 틍징...”
잠시 고민하던 1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한다.
“아... 차가웠어! 몸이 무지 차가워!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생명이 없다라...”
1호의 말을 종합해보면 에페리아는 네베르족의 일원중 하나를 마치 좀비처럼 되살려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언데드는 현재 타이의 힘을 가뿐하게 능가하고 있었다.
“설마... 네이는 아닐꺼야...”
애써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적었다. 네이는 분명 에페리아의 눈앞에서 혼돈의 힘을 이끌어내서 그녀의 마법공격을 막아냈었다. 그런 네이의 힘과 능력은 에페리아가 탐하기 충분했다. 만약 에페리아에게 네이를 부활시켜 수족처럼 부려먹을 힘과 능력이 있었다면... 에페리아는 그런 강력한 힘의 잠재력을 품은 네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아니길 빌었지만... 1호의 증언으로 에페리아는 분명 네이라고 불리는 네베르족 일원을 부활시켜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먹고 있었다. 네이의 시체가 사라진 지금... 부활한 네베르족 일원의 정체는 네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빠... 뭔가... 문제라도있는거야?”
무거운 내 얼굴을 바라보던 1호는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어온다. 하지만 나와 관련없는 그녀까지 괜한 걱정에 시달리게 할 수 없었던 나는 애써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냐. 내 착각이었어. 아무 일도 아니야.”
“흐음... 그래?”
“1호!!”
그때 복도에서 1호를 찾는 타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1호를 찾는 타이의 외침에 1호는 살며시 내 눈치를 살핀다.
“그게 내가 묻고 싶었던거야. 됬어.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1호에게 용건이 끝났다는 사실을 밝히자 1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뭔가 아쉬운듯한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조금있다... 놀러와도 돼?”
“응? 뭐... 난 괜찮아.”
“헤헤헤.. 그럼 조금있다가 놀러올께!”
내가 허락하자 그녀는 환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주저없이 방문을 열고 자신을 찾는 타이에게 달려간다.
“후우..”
1호가 떠나가자 나는 애써 웃고있었던 얼굴의 표정을 풀어버린다. 그리고 벽에 몸을 기댄채 다시금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1호의 말대로 네이가 에페리아의 손에 의해 부활되서 그녀의 명을 따른다... 1호의 말대로라면 부활한 네이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과거의 네이의 몸과 힘을 빌린 텅빈 인형과도 같은 존재. 네이를 그런식으로까지 이용하는 에페리아를 나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이야기했어?”
“으.. 우왓?!”
내가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대뜸 창문에서 얼굴을 내밀은 리니아가 활기찬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예고없는 리니아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창문턱에 매달려있는 리니아를 바라본다.
“아하하핫! 그 표정 웃겨 오라방!”
나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트리던 리니아는 나를 향해 양손을 뻗는다.
“들어올려줘 오라방! 혼자 올라오기 버거워!”
“멀쩡한 문 놔두고... 창문에서 대체 뭐하는거냐?”
그런 리니아의 행동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살짝 리니아의 겨드랑이를 붙잡고 그녀를 번쩍 들어올린다. 좋다고 웃음을 터트리는 리니아를 방안에 들여놓으며 나는 살짝 흩으러진 그녀의 옷매무세를 가볍게 정돈해준다.
“무섭지 않았어?”
어린 리니아가 걱정되었던 나는 도서관에 숨어있었던 순간에 대해 물어본다. 그러자 리니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걱정마 오라방! 옛날과 달리 나도 내 몸 보호할 힘정도는 있다구!”
철컥.
그리고 보란듯이 자신의 손목아래 숨겨진 작은 소형 석궁을 꺼내보인다. 크기는 작았지만 팽팽히 당겨진 시위는 급소만 노린다면 생명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싸울 동료가 있다는거... 의외로 든든하더라.”
“키르비르같은 사람?”
“키르비르는 빼고.”
괜히 키르비르를 거론하자 리니아는 혀를 쭉 내밀며 부정을 표한다. 여전히 리니아는 키르비르가 싫었던 걸까... 그래도 처음처럼 격렬한 거부반응이 없는게 조금씩이라도 키르비르를 받아들이는 눈치가 보였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 한거야?”
“궁금해?”
내 물음에 리니아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위로 올라와 걸터앉으며 대답한다.
“응!”
“으음.. 뭐... 궁금하다면야...”
나는 부드럽게 리니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작은 머리에 턱을 괸다. 약간 무거운 감각을 느끼는 것같지만 리니아는 큰 불평없이 조용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안좋은 소식을 들어서 그래... 에페리아가 내 친한 친구를 노예로 부려먹고있다는.. 그런 안좋은 이야기.”
“에페리아가?!”
내 말에 리니아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내 말에 공감해주는 리니아의 반응에 나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응. 그래서 1호에게 확인해본거야.”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됬어?”
“아마도 그 소식이 틀리지는 않은 것같아.”
“우으으...”
내 말에 리니아는 자신의 일인냥 볼을 부풀리며 분해한다. 그런 리니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괜찮아. 내가 처리할 문제니까. 너까지 괜히 화내줄 필요는 없어.”
“그래도 그건 용서하지 못해. 타인의 의지를 지배하다니... 그건 너무 야비하잖아?”
“그래. 그렇지. 그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야. 에페리아는... 분명 벌을 받게 될꺼고.”
“내가... 도와줄일은 없을까?”
리니아가 도와줄 일이라... 나는 내 품안에 안겨있는 자그마한 리니아를 내려다본다. 그녀도 나름대로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키르비르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마법 말고도 석궁이나 여러 가지 자신이 발명해낸 특이한 무기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리엘의 기술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리엔이나 티에르처럼 강력한 육체적 능력도 가진 것도 아니고... 리니아가 활약할 곳은 없어보였다.
“그냥 넌 내 곁에 있어주면 돼. 난 그것만으로 만족해.”
말 그대로 리니아는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잃어버린 마음의 한조각을 되찾은 느낌. 그런 느낌과 같이 리니아는 나에게 적지 않은 안도감을 쥐어주고 있었다.
“우우.. 오라방도 날 믿지 못한다는 거지?”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리니아는 그런 대답을 원치 않았는지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분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나도 강해질거니까... 키르비르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꺼니까! 걱정말라구!”
“그래그래..”
리니아의 투정섞인 대답을 별생각없이 들으며 나는 그저 조용히 웃음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하지만 여전히 뚱한 리니아의 표정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탁!
결국 기분나쁘다는 듯이 내 손을 쳐낸 리니아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내 품안에서 빠져나간다.
“두고봐. 강해질테니까. 나도 강해질꺼라고!!”
곧이어 빽하고 소리지른 리니아는 화가난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방안에서 빠져나간다. 나는 리니아의 손에 맞은 손목을 문지르며 그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볼뿐이다.
----------------------
“씨이... 뭐야... 결국 말만 그렇게하고.. 나는 도움이 안된다는 거잖아.”
타메르의 방에서 빠져나온 리니아는 씩씩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사실 리니아도 속으로 강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조차 섞기 싫을 정도로 짜증나는 키르비르는 그녀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사기적인 마법과 마력을 가졌다.
티에르와 시란은 현란한 검술로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 리엔의 선천적인 신성력을 통한 월등한 치료능력은 그녀의 마법과 기술로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녀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마법과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특별한 도구들. 하지만 이 조차도 이리엘의 순수한 과학기술앞에는 그저 흥미로운 장난감일 뿐이었다.
“배워야해... 모든 것을 전부다.”
유적지에 들어오기전. 그녀는 자신만큼 이 세상에서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부했다. 실제로 그녀는 아무도 도전해보지 않은 과학과 마법의 접목을 시도해봤고 그 시도는 성공적인 결과를 내보였다.
그녀가 만든 소형 석궁과 특수한 약품이나 마법적 처리한 볼트 앞에 수많은 강적들이 쓰러졌다. 마법사 협회와 교단에게 배척당하지만 않았다면 한 왕국의 높은 자리까지 오를만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게 리니아였다.
그런 그녀의 자존심이 이 유적지에 와서 무참히 무너져내려버렸고 에페리아라는 강적의 등장은 타메르를 지키겠다는 자기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조차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화났나봐?”
그때. 리니아의 귓가로 제일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복도를 성큼성큼 걷고있던 리니아의 눈앞에는 따듯한 차가 담긴 듯한 머그컵을 한손에 쥐고 있는 키르비르가 서있었다.
“신경쓰지마!!”
리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죄없는 키르비르에게 빽하고 소리를 질러버린다. 하지만 그런 리니아의 외침에도 키르비르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저 느긋하게 머그컵을 기울여 그안에 담긴 차를 한모금 마신다.
“내 조언. 잊지 않았지?”
“조언...?”
키르비르의 말에 리니아는 키르비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이리엘의 도움을 받으라는 그녀의 말.
“너가 가장 빠르게 강해질 방법이니까.”
키르비르는 그 말 한마디만 남긴채 다시금 차를 한모금 마시며 그녀를 스쳐지나간다. 리니아는 몸을 돌려 그런 키르비르의 뒷모습을 바라보지만 키르비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복도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갈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하얀범 / 클론은... 다음화입니다!
akdldkssm / 아직도 리엔이 귀엽다는 분이 있으시다니... 다행!
유운처럼 / 훔..;;
빨간달팽이 / 언제나 캄사합니다!
abcbbq / 으잉...?! 번지수가 틀린건가요?!
봉식이의 대출노트 / 응원 감사합니다... ㅠㅠ
다크체리 / 다음화쯤...입니다.
담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당!
기간은 1주일.
어...ㅇ ㅡ어어어어어엉 으아르ㅏ으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