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편
<-- 클론 -->
마계 원로회. 그들의 이름은 마계에 사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화폐란게 존재하지 않는 마계에서 재산이란 것은 무의미했다. 마계에서의 화폐는 바로 개개인이 가진 힘. 마계 원로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마계에서도 거의 최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후우... 망할 늙은이들...”
마계 원로회의 공정함을 상징하는 둥근 테이블은 피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에페리아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자신의 단화에 묻은 핏물을 탁자에 비벼 닦아낸다.
“곱게 말할 때 처 들을것이지... 말을 무시한 것도 모잘라 내 부하를 그 꼴로 보내?”
그녀가 이렇게 실력행사를 한 이유는 바로 레오떄문이었다. 그녀는 타이의 클론들을 대륙으로 내보내기위해 정상적인 대규모 차원이동 절차를 밟으려했다. 그러기 위해서 원로회에게 레오를 보냈지만... 그들의 답변은 간결했다.
에페리아에게 되돌아온것은 팔 하나가 잘려진채 돌아온 레오였다. 그런 레오를 걱정하기보다 그녀는 자신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다는 사실을 참지못하고 원로회에 직접 들이닥친 것이다.
“내가 요즘 고분고분 말좀 들어준다고... 완전 우습게 봤지?”
그녀는 탁자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한 노인의 멱살을 억지로 잡아 그를 일으킨다. 이미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끊어질듯 가느다란 숨을 흘릴뿐이었다.
“괜히 사고저지르기 싫어서야. 이렇게 조금만 실력행사를 해도 망가져버리니까.”
그런 노인에게 아무런 연민도 못느끼는지 킥킥 웃으며 에페리아는 노인을 뒤로 휙 던져버린다.
“세상에 얼마나 약하면 너희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힘조절하는게 너희들 말을 듣는것보다 더 힘들 정도야.”
에페리아는 느긋하게 원탁위를 걷는다. 원탁 위에는 그들이 찬반을 결정할때를 위해 마련된 스위치들이 있었다. 탁자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에페리아는 즐거운듯이 외친다.
“자자.. 에페리아를 위한 대규모 차원이동 허가에 대한 찬반투표를 시작해볼까요?”
다시한번 그녀는 원탁 주변을 둘러본다. 핏웅덩이에 쓰러진 원로회 임원들은 그녀의 말에 반응조차하지 못하고 가느다란 자신의 생명줄을 챙기기에 여념없었다. 그런 임원들을 한번 둘러본 에페리아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원로회 임원들의 부재로 예비 원로회인 에페리아가 진행하겠습니다. 자아.. 찬성하시는 분은 파란 스위치를 눌러주시죠.”
스스로하면서도 웃긴지 에페리아는 키득키득 웃으며 발끝으로 핏물에 젖은 푸른 스위치를 꾹 누른다.
“찬성! 찬성 1표. 반대 0표로 만장일치로 차원이동이 허가되었습니다!”
차원이동이 허가되는 순간 마계에 존재하는 대규모 차원이동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전이의 탑이 움직이는 울림이 느껴져왔다. 그런 울림에 에피리아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이 기회에 또다른 안건을 제시해봅니다.”
피가 덜묻은 원탁에 가장자리 걸터앉은 에페리아는 간신히 의식을 차린 임원 몇 명을 둘러보며 입을 연다.
“이 무능한 모든 임원들을 대신해. 에페리아를 정규 임원으로 채택하며 무능한 임원들은 모두 직무해제 처리할까요?”
그녀의 말에 간신히 의식을 차린 임원들은 그럴 수 는 없다는 듯이 사력을 다해 탁자위로 팔을 뻗는다.
그녀가 말한 제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모든 임원이 해고되며 에페리아 혼자만 임원인 원로회. 그것은 마계의 모든 시설, 모든 기관들이 에페리아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마계 원로회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이었다. 원로회의 뜻이면 마계인은 아무런 의심없이 모든 일을 처리한다. 어자피 최강자들만 모인 원로회. 그런 원로회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거절할 간 큰 마계인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페리아 혼자서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마계인들이 원로회의 뜻에 따르는 것은 원로회의 힘도 있었지만 절대적인 신뢰도 있었다. 최소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원로회는 제각각 마계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원로회에서 내려진 결정은 공명정대했다. 그 누구에게도 손해를 가하지않고 오직 공공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원로회의 결정이다.
퍼엉!
한 임원의 손이 반대를 뜻하는 붉은 스위치에 간신히 접근한다. 임원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불행히도 그의 손은 스위치에 닿기전 허공에서 물풍선처럼 허무하게 터져버린다.
“흐흐흠~”
에페리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손끝을 매만지며 여유롭게 발로 파란 찬성스위치를 누른다.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하려는 에페리아의 모습에 임원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그럼.. 투표끝! 결과는...”
에페리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결과판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무참히 일그러진다.
“찬성1표. 반대... 1표?!”
그녀는 붉은 빛이 들어온 스위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스위치를 누른 인물을 확인하는 순간. 일그러진 에페리아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환해진다.
“오라방!!”
반대의 스위치를 누른 것은 다름아닌 마왕. 붉은 갑주를 전신에 두른 그는 하나남은 눈동자로 에페리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스위치에 닿은 손을 떼어낸다.
“이게... 무슨짓이냐.”
“우으응.. 우리 실험실에 폐기물이 많아서 버리려고 했단말이야? 근데 이 원로회사람들이 허가를 안해주잖아.”
간드러지는 콧소리를 흘리며 에페리아는 아무 죄도 없다는 듯이 붉은 갑주의 남자에게 달려와 그의 팔에 달라붙는다. 그런 에페리아의 말에 남자는 하나남은 눈동자를 굴려 바닥에 쓰러진 원로회들을 돌아본다.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알아앙. 하지만 이 녀석들. 슬금슬금 나에게 기어오르려하는걸? 가끔씩은 이렇게 본때를 보여줘야한단 말이야.”
“....”
에페리아의 말에 마왕은 아무말없이 조용히 에페리아를 바라본다. 그런 마왕의 눈빛이 익숙한듯 에페리아는 보란 듯이 베시시 미소를 지어보인다.
“대규모 차원이동은 허가하겠다. 하지만 너 혼자만의 원로회는 허가할 수 없어.”
“에이... 그거 장난인거 알잖아.”
마왕은 그말을 끝으로 더 이상 용건이 없다는 듯이 등을 돌린다. 무뚝뚝한 그의 태도에 에페리아는 잠시 볼을 부풀리지만 그런 그의 모습도 하나의 매력으로 느끼는지 살짝 얼굴을 붉힌다.
“고마워 오라방~!”
“....”
그런 마왕을 향해 힘껏 팔을 흔들어보이며 감사를 표하지만 마왕은 아무런 대답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갈뿐이다. 마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에페리아는 애교가 가득 묻어나오는 미소를 감쪽같이 지워버린다.
“쳇... 다음부터 말 잘들어. 소란떨기 싫어서 너희들이 말하는 절차라는 것을 밟아주고 있으니까. 절차를 따라주는 것 하나에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지 못할망정... 쯧.”
가볍게 혀를 찬 에페리아는 더 이상 피냄세가 감도는 이 공간에 있기 싫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에페리아님.”
그녀가 원로회의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속에서 레오가 걸어나온다. 잘려진 그의 오른팔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절단된 듯 매끄러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클론은?”
“차원이동은 성공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에페리아는 그런 상처에 관심조차 주지않고 자신이 지시한 일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자 레오는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는 결과를 그녀에게 알린다.
“...”
그제서야 에페리아의 시선이 잘려진 레오의 팔에 머문다.
“재생이 안되나봐?”
“좀... 오래 걸릴 것같습니다. 혼돈의 힘에 의한 상처라...”
레오는 뤼베크족의 일원. 생존력과 재생력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강력하다고 유명한 종족이었다. 그런 레오조차도 상처를 쉽사리 재생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원로회의 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능력하긴...”
콰악!!
그런 레오의 말에 콧방귀를 뀐 에페리아는 대뜸 잘려진 그의 팔을 움켜쥔다. 상처를 헤집고 들어오는 에페리아의 손길에 레오는 고통스러운듯 살짝 인상을 찡그리지만 비명만큼은 지르지 않는다.
“됐어.”
몇 초동안 그의 상처를 헤집던 에페리아는 레오의 핏물이 잔뜩 묻은 자신의 손을 허공에 털어낸다. 그러자 깔끔하게 잘려져있던 그의 팔이 조금씩 회복되어가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약간은 거친 에페리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감동한듯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콧방귀를 뀌며 그로부터 등을 돌린다.
“감사하면 감사한만큼 더 열심히 일해.”
에페리아는 퉁명스러운 한마디를 남긴 후 그 자리에서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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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균열...”
독방에 홀로갇혀있는 아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중얼거린다. 자신이 가진 모든 기기류들은 작동이 정지했있었지만 이때까지 수많은 차원 균열을 수정해온 아리엘은 특별한 감지장치 없이도 감각으로 차원균열을 느낄 수 있었다.
철컹.
그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린다. 아리엘은 눈부신 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예고없이 방문한 방문객을 바라본다.
“언니..”
방문객의 정체는 다름아닌 이리엘. 그녀는 독방으로 들어오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는다.
“오지마. 괜히 또... 오해받아.”
일전에 이리엘이 심한 짓을 당하는 것을 자신의 눈앞에서 바라만 봐야했던 아리엘은 씁쓸한 목소리로 이리엘에게 이곳을 떠날 것을 권한다. 하지만 그런 아리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리엘은 천천히 아리엘에게 다가온다.
“언니. 도와줘. 이건 위험해.”
이리엘이 아리엘을 찾아온 것은 그녀의 도움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이리엘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일. 이 일은 어마어마한 위험을 끌고온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안돼.”
하지만 아리엘은 무정하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나는 차원간의 조율자. 차원계의 일에 간섭하는건..”
“이미 차원계의 일이 아니야. 마계가 개입했잖아.”
“....”
이리엘의 말대로였다. 지금 벌어지는 대규모 차원균열 현상은 마계에서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또다른 내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리엘은 그 사실을 알고도 나서려하지않는다. 이미 자신을 대체한 또다른 아리엘이 차원 전투순양함 디에스 이레에 있었다. 그녀도 이 대규모 차원이동을 포착했을 것이다. 이제곧 이 차원이동에 의해 벌어질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언니는 내 편이 아니야 언니.”
“....”
“난... 나를 도와줄 언니가 필요해.”
이리엘의 간곡한 요청에 아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과거 같았으면 동요조차도 하지 않을 아리엘이었다. 하지만 이 곳에 감금되어있는 동안. 함선에 갇혀살았던 과거와 다르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리엘이라는 존재.
함선에서 벗어나 자유가 된 이리엘은 아리엘에게 적지않은 변화를 주기 충분했다. 그동안 임무라는 이유아래 억눌렸던 그녀의 모성애가 깨어나며 매말랐던 그녀의 감정까지도 되살리기 충분했다.
“알았어...”
결국 마지못해 아리엘은 이리엘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모든게 끝나면... 난 죽을꺼야.”
그러나 죽음을 향한 그녀의 결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의 뼛속에 각인된 임무. 새로운 아리엘이 존재하는 이상 과거의 아리엘은 사라져야한다.
“언니가 날 도와준 만큼.. 나도 언니를 도울꺼야. 쉽게 언니가 죽게 놔두진 않아.”
이리엘의 각오에 아리엘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솔직히 그녀 스스로 자결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전장에 나선 이상... 이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타난 현재의 아리엘과의 대면은 필연적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현재의 아리엘은 자신을 죽이려들겠지. 그것을 이리엘이 막는다?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알았어. 부탁할게.”
하지만 이리엘의 눈앞에서 그녀를 실망시키기 싫었던 아리엘은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매마른 목소리로 그녀에게 부탁을 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앨릭시 / 이... 이제 벗어날 것입니다... 아마도?
빨간달팽이 / ㅇㅂㅇ;;;;
dgfdgzvc / 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하겠습니다~
후우... 열심히한다고는 하는데... 아아... 열심히해야죠.
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