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편
<-- 데이트 -->
중앙도서관. 앞서 설명했다싶이 고대인의 지식이 잠든 수많은 고서들이 가득찬 이곳은 고풍스럽다못해 신성하다는 느낌이 가득찬 곳이었다. 하지만..
“....”
“이런...”
키르비르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리니아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리엔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들의 손이 잔뜩 닿은 그곳은 이미 과거의 고풍스러움은 사라져있었다. 높게 세워진 책장안에 남아있는 책은 없었고 다시 높은 책장에 돌려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들은 한쪽에 탑처럼 쌓여있었다.
“한동안 안와봤는데... 이런식으로 변해있을 줄이야...”
네이 때문에 수인족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찾을때만해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던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하다니... 이젠 중앙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숭고함보다는 아주 평범한 도서관... 아니 동네 낡은 책방이라는 말이 걸맞는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책 좋아해?”
그때 낡은 책으로 세워진 탑을 무끄럼히 바라보던 이리엘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책을 한권 집어들며 나에게 묻는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는거야.”
자신이 집어든 책을 가볍게 허공에 털어 흙먼지를 벗겨낸 이리엘은 책의 표지를 바라본다. 책 표지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있었고 내가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멋대로 휘갈겨쓴 제목이 마법진 한가운데에 적혀있었다.
“너는 책을 좋아해? 이번 데이트도... 그 이상한 책을 보고 제안한거잖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 그저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는 수단일뿐.”
자신이 집어든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이리엘은 결국 자신이 읽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쓰레기 버리듯이 한쪽에 툭 던져버린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읽고 기억해. 필요없는 정보가 있는 책은 외면. 그냥 그런 거뿐이야.”
“흐음...”
이리엘은 책을 단순히 정보전달의 도구로 인식하고있었다. 물론 책이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지식하게 그런 용도로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뭔가 퍼뜩 생각난 나는 이리엘을 홀로 놔둔채 잔뜩 쌓인 책들 한쪽을 뒤진다. 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내가 읽고 이곳 근처에 던져뒀던것 같았다.
“아... 찾았다.”
흩으러지는 책들 사이로 낯익은 표지가 보인다. 내가 원하는 책을 찾은 나는 환히 미소지으며 그 책을 집어든다. 그 책의 정체는 다름아닌 키르비르가 나에게 권해줬던 책.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결말은 씁쓸했던 그 책이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나는 그책을 꺼내 이리엘에게 건낸다.
“읽어봐.”
“....?”
내가 낯선 책을 건내자 이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내민 책을 받아든다. 그리고 뚫어질 듯이 책 표지에 새겨진 책의 제목을 노려본다.
“왜 이 책을...”
“물론 너와 전혀 상관없는 정보들만이 가득해. 하지만... 재미있을꺼야.”
“그런 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야.”
이리엘은 표지조차도 넘겨보지 않고 나에게 되로 책을 건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책을 받아들이지않고 다시 그녀쪽으로 밀어낸다.
“나를 믿고 한번만 읽어봐줄수 있겠어?”
“.....”
내 부탁에 이리엘은 다시 책의 표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천천히 책을 펼쳐 빠르게 내 챙장을 넘겨가기 시작한다.
탁.
그리고 다시 책이 닫힌다.
“읽을 가치가 없어. 내가 필요한 내용이...”
“너의 필요나 요구를 떠나서 그냥 읽어봐. 처음부터 꼼꼼하게.”
“그런 시간낭비를 어째서?”
이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그러자 나는 그런 이리엘의 팔을 잡아 이끌어 한쪽에 마련된 나무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그런 이리엘의 맞은편에 걸터앉은 나는 또다른 책을 꺼내 펼쳐든다.
“내가 시간낭비할꺼니까. 멀뚱멀뚱 서있는 것보다 나랑 같이 책을 읽는게 어때? 단순히 서 있는 것은 진짜 시간낭비잖아.”
“....응.”
잠시 주저하던 이리엘을 고개를 끄덕여 떨떠름하다는 목소리로 수긍한다. 안그래도 나 또한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키르비르가 그 다음에 소개해준 또다른 책. 같은 작가가 만든 비슷한 스토리지만 결말은 다르다는 그 책이었다.
천천히 책을 펼치며 곁눈짓으로 이리엘을 확인해본다. 그녀는 내가 책을 펼치자 고집부리는 것은 포기했는지 무관심한 눈동자로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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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은 완결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전 작보다 좀더 화기애애하고 환한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끝이 안난 이야기는 왠지 나를 찝찝하게 하기 충분했다. 괜한 아쉬움이 책을 이리저리 돌아보던 나는 이리엘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
그녀는 예상외로 내가 건내준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뭔가 흥밋거리를 찾은걸까. 책에 쓰여진 글자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그녀가 그 책을 정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있었다.
“재미있어?”
“핫...!!”
내가 갑작스레 책에 대해 묻자 책에 푹 빠져있던 이리엘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은 나는 슬쩍 그녀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확인해본다.
아직 절반도 안넘어간 페이지. 책장을 파라락 넘겨가며 읽어버리는 키르비르와 다르게 이리엘은 예상외로 책을 읽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아마도 한글자씩 정독하는 습관때문일까...
“처음과 달리 재미있게 읽네? 맘에 들어?”
“아니... 단지 이상한 점이 보였을뿐.”
내 물음에 이리엘은 책장 몇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자신이 읽었던 곳을 다시 확인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같은 존재가... 나와 비슷한 존재를 표현한 등장인물이 이 책에 있어.”
“아아... 그 소설에 등장하는 디멘션 트루퍼?”
이리엘의 말대로 내가 권한 책에서는 디멘션 트루퍼라는 특이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차원을 넘나들며 세상의 모순이나 오류를 수정하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리엘이나 아리엘과 너무나도 비슷한 캐릭터였다.
“키르비르가 그러더라. 인간의 모든 상상은 10%이상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인간의... 상상?”
“그 책은 소설이라고 해. 너가 원하는 검증된 정보나 사실이 아닌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만들어진 이야기? 내가?”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말에 이리엘은 자기 스스로를 지칭하며 나에게 묻는다. 아마도 소설속의 캐릭터인 디멘션 트루퍼라는 녀석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던걸까.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피식 웃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이리엘은 실존하는 사람.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디멘션 트루퍼라는 녀석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야.”
“으응...”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리엘은 다시한번 책을 살펴보며 디멘션 트루퍼라는 캐릭터에 대해 읽어본다. 그녀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채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
“이 사람... 어떻게 돼?”
“디멘션 트루퍼?”
이리엘의 질문에 나는 내 머릿속을 뒤져본다. 그녀가 읽었던 소설속의 디멘션 트루퍼라는 존재. 그 캐릭터는...
“죽어.”
“.....”
“자신의 임무와 현실의 정 사이에 갈등하다가... 임무를 거부해. 그리고 죽어버려.”
내 한마디에 이리엘의 어꼐가 살짝 처진다는 느낌을 받는것은 왜일까. 내 말을 들으며 책을 바라보던 이리엘은 천천히 책을 덮는다.
“어자피 책속의 이야기. 나와 상관없어.”
“그래. 이리엘과는 상관없지...”
그녀다운 대답에 피식웃은 나는 이리엘이 읽던 책을 정리하기 위해 그 책을 받아드려했다. 하지만 이리엘은 살짝 몸을 비틀어 내가 내민 손을 피한다.
“아직... 좀더 읽고 싶어.”
“그래? 좋으실대로.”
책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리엘의 행동에 크게 만족하며 나는 환하게 웃음짓는다. 그런 내 웃음을 바라보던 이리엘은 나를 이해못하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뿐이었다.
“자... 슬슬 일어나보자.”
“응.”
나는 내가 다 읽은 책은 원래 그 자리에 던져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리엘또한 그런 나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는 내가 소개해준 책을 의외로 소중하다는 듯이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아... 타메르?”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던차에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다. 그녀쪽에서 먼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부름에 큰 관심을 보이며 이리엘을 돌아본다.
“내 함선... 가보지 않을래?”
“너의 함선?”
이리엘의 말에 나는 중앙탑에 박혀있는 거대한 전함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이리엘이 온 이후로 그녀의 전함에 가본 기억이 없었다. 이리엘쪽에서 먼저 전함에 초대할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뭐... 나야 좋지.”
그녀의 마음을 거절할수도 없었고 그녀의 전함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내가 시원스럽게 그녀의 제안을 수락해버리자 이리엘은 아무말없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마치 안내하듯 앞서걸어가기 시작한다.
“.....”
하지만 누군가를 안내해본다는 것은 처음이었을까. 이리엘은 몇걸음 걷다가 내가 잘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이 뒤를 돌아보며 나를 확인한다. 그럴때마다 잘 쫓아가고있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준 나는 나를 안내하는 자그마한 이리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재미있는 이 상황을 즐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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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리엘님.
“아... 응. 엄청 잔것같은데?”
디에그 데그의 함장실. 주인인 이리엘이 외출해있는 함장실 안에는 이리엘이 앉아있어야할 자리에 또다른 이리엘이 앉아있었다. 약간은 차갑고 매서운 눈빛을 가지고 있는 약간 어린 이리엘. 그녀는 시큰둥한 눈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번뜩이는 붉은 렌즈의 카메라를 바라본다.
“근데... 지금 내 머릿속에 떠도는 낯선 정보들은 대체 뭔데?”
-전 함장님의 기록입니다.
“미친년..”
엘의 대답을 들은 이리엘은 눈을 감고 자신의 기억들을 살펴본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튀어나온다. 곧이어 턱을 괸채로 조용히 정면을 주시하던 이리엘은 손을 뻗어 허공을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함선의 상태를 알려주는 다양한 홀로그렘 화면들이 떠오른다.
-함체의 수리율은 약 86%. 차원내 사용 가능한 주력무장은 전부 수리완료되었습니다.
“이 쓰레기같은 차원속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 떠나자. 언니가 기다리니까.”
함선의 상태를 살펴보던 이리엘은 홀로그렘 한쪽에 작은 빨간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한다. 그 빨간불의 정체는 함내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등이었다.
“쓰레기같은 전 함장에게 함선 제어권이 남아있는거야?”
-아직 인수인계절차가...
“그딴 거 없어. 저런 쓰레기에게 받을 인수인계따위. 전 함장에 대한 모든 함선의 제어권을...”
하지만 말을 하려던 이리엘은 갑작스레 입을 다문다.
-전 함장에 대한 모든 함선의 제어권을 말소할까요?
“아니.”
감시카메라 영상이 몇 개 떠오르며 이제 함선에 들어온 이리엘의 모습을 비쳐준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들어오는 타메르의 모습도. 그런 영상을 확인한 이리엘의 입에 작은 미소가 그려진다.
“가기전에 약간의 여흥을 즐겨볼까? 이 차원계에 남을 내 추잡한 흔적도 제거할겸.”
-하지만... 차원계의 간섭은 엄격히 금지가 되어있습니다.
“차원계의 간섭이 아니야. 이 차원에 남아있는 내 과거 흔적을 지울뿐이지.”
타메르와 또다른 이리엘의 모습을 바라보든 이리엘의 입에 잔인한 미소가 서린다.
========== 작품 후기 ==========
밤길을 걷는자 / 하지만 고환이 두개라도... 고통은 반이 되지 않더군요. 슬픕니다.
유운처럼 / 으으으.. 죄송합니다... 짧아서.. 으아아앙!
실버링나이트 / 저는 오늘 데이트나가죠. 오늘! 으히히히힛
마스터칼솔럼 / 흐음... 또 인가요?
火炎無 / 때버리면... 몸보다 제 마음이 더 아플듯싶네요.
뜬금없이 인터넷이 두절.
수리하느라 이틀 소모
으아아앙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