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편
<-- 발전 -->
달그락...
빈 케익 접시를 주방에 갔다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키르비르의 말에 따르면 차원을 초월한 어떠한 존재가 만든 수 억개의 인공생명체. 즉 호문클로스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차원계에 보냈다고했다.
“...아리엘...”
그런 내 머릿속에 퍼특 스쳐지나가는 한 여성이 떠올랐다. 차원간의 조율자라고 불렸던 아리엘. 뼈와 살을 가진 인간처럼 보인 그녀또한 차원을 초월한 존재중하나였다.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고 직감한 나는 주저없이 아리엘이 감금된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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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오랫동안 방치해둬서 그런지 묘하게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안으로 들어선 나는 입구 맞은편에 매달려있는 아리엘을 바라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맥 사이로 어수룩하게 져가는 햇빛에 간신히 아리엘이 그곳에 매달려있는 형체가 보인다.
“아직 살아있겠지?”
방안으로 들어선 나는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이곳에 아리엘이 감금되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에페리아와 네이가 싸울떄 내 곁에 있어준 리니아와 시란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아리엘에게 큰 관심이 없는 그녀들이 이 방을 찾아올 리가 없었지만 최소한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조용히 문을 잠근다.
“3일정도 지났나... 이제 슬슬 꽤나 괴로울텐데 말이야.”
방안으로 들어온 나는 한쪽에 밀어넣었던 탁자를 꺼내 아리엘 앞으로 끌고온다. 그리고 미리 가져온 차가운 물이 담긴 물컵을 그 탁자위에 보란듯이 올려둔다.
“목마르지 않아?”
“....”
발끝으로 살짝 탁자를 밀어 탁자위에 올려진 물컵이 가볍게 흔들 리가 만든다. 그러자 그안에 가득 채워져있던 물이 일렁이며 몇방울이 밖으로 튀어버린다. 벽에 고정된 사슬에 매달려있는 아리엘은 매마른 입술을 가볍게 달싹이며 그런 물컵을 바라본다.
“필요 없어.”
일말의 주저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아리엘. 그런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마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
나는 슬쩍 그녀의 오른팔을 돌아본다. 내가 힘을 주어 부러뜨렸던 그녀의 팔. 제대로 치료조차 하지않아 검푸른게 물들은 그녀의 팔의 상처는 끔찍하게 곪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엘의 얼굴 표정에는 공포나 두려움따위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젠장...”
협박도... 위협도 통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드린듯한 그녀의 태도는 내 성질을 긁어두기 충분했다. 어자피 그녀를 유혹할 수 없는 물컵을 움켜쥔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뿌려버린다.
촤악.
“....”
차가운 물이 그녀의 얼굴에 묻어있는 까무잡잡한 때를 가볍게 씻겨낸다. 그녀의 얼굴을 타고 가득 흐르는 물기. 3일동안 물 한잔 안마셨다면 극도의 갈증에 입술을 타고 흐르는 물기라도 혀로 훑어야하지만 아리엘은 아무런 행동없이 묵묵히 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감각와 감정들을 완전하게 제어한다면 저럴 수 있을까... 기본적인 생존본능, 생리욕구같은 감각과 고통, 갈증, 외로움 같은 모든 감정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젠장... 네가 원하는게 뭐야!”
“죽음.”
내 외침에 아리엘은 기다릴 것도 없이 짧고 간결하게 대답해버린다. 그런 그녀를 노려보는 내 이빨이 바득바득 갈린다. 이건 단순히 시간낭비다. 그녀로부터 얻어 낼 것도 없고 그녀를 괴롭게 만들 수도 없었다. 애시당초 생각을 잘못했었다.
콰악!
“그래... 너의 소원대로 죽여줄게.”
아리엘의 멱살을 붙잡고 그녀와 눈을 마주친다. 눈앞에서 이 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평온함을 유지할 것같이 무서울 정도로 잔잔한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뚫어질 듯이 노려보며 입을 열어간다.
“그러니까 한가지... 딱 한가지 사실만 알려줘.”
“....”
아리엘은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그녀가 유일한 실마리라는 것을 알고있는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묻는다.
“인공생명체... 너가 인공생명체를 이 세계에 흩뿌린거냐?”
“....?”
내 물음이 의외라는 듯 아리엘의 얼굴이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다.
“처음 듣는... 사실. 이해 불가.”
“거짓말 하지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작은 몸을 힘껏 벽으로 밀치며 소리친다. 하지만 아리엘은 여전히 침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차원 조율 규칙 제 1조 1항. 1급 위험상황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다른 차원에 인위적인 간섭하지 않는다.”
“뭐?”
“지켜야할 규율. 우린 다른 차원에 간섭하지않아.”
“....”
나는 벙찐 얼굴로 아리엘을 바라본다. 그녀가 아니라면 누구라는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칭 차원간의 조율자라는 아리엘조차도 모르는 사실이라니...
철컥.
그때 뭔가가 달칵거리는 이질적인 소음이 예민해진 내 귀를 자극한다. 동시에 나와 아리엘은 그 소음이 들린 곳을 바라본다. 그곳은 다름아닌 이 방으로 들어서는 방문쪽. 누군가 이방문을 열기위해 문고리를 비튼것이 분명했다.
찰칵.. 찰칵..
이 문이 잠긴것을 꺠달은 정체불명의 인물은 잠긴 문고리를 풀려는 지 문고리를 이리저리 비튼다. 곧이어..
철컥.
무슨 짓을 한지는 몰라도 문의 잠금이 풀린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문. 나는 움켜쥐고 있던 아리엘의 멱살을 풀며 이젠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날카로운 검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내가 방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방안에 들어서는 한 인물.
“언니. 식...”
그녀는 다름아닌 이리엘. 쟁반 한가득 작은 빵과 셀러드 우유가 담긴 컵을 가져온 그녀는 뒤늦게 방안에 서 있는 내 존재를 알아차린다.
챙그랑...!!
내가 방안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이리엘. 그런 그녀가 들고있던 쟁반이 그녀의 손에서 미끌어지며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일으킨다.
“그건... 뭐냐?”
나는 바닥에 떨어져 엉망이된 음식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이리엘에게 묻는다. 그러자 당황한 듯 이리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내가 명령을 내렸어.”
그때 벽에 구속된 아리엘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리엘을 노려본다.
“이리엘은 내 명령을 들어. 그녀는 내가 내린 지시를 따른것뿐이야.”
“지금 나보고 멍청하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 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내 차가운 한마디에 아리엘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다는 듯 작게 입술을 깨문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처음으로 감정이 표현된 그녀의 얼굴 모습에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리엘을 감싸주는구만... 이리엘. 이게 어떻게 된거냐?”
아리엘을 비웃으며 나는 다시 이리엘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를 압박하듯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선다.
“아... 이.. 이건...”
당황한듯 이리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생각해야한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마땅한 변명이 생각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콰직..
어느세 내 발아래 그녀가 가져온 음식들이 짓밟힌다. 이리엘의 코앞까지 다가온 나는 내 앞에서 작게 몸을 떠는 이리엘을 매섭게 내려본다.
“너가 아리엘이랑 자매관계인건 알고 있었어. 혈육이라서 그녀를 챙겨주는거냐?”
“그만둬!”
처음으로 아리엘은 언성을 높혀 나에게 소리친다. 그런 그녀의 외침에 슬쩍 고개를 돌려 아리엘을 바라본다. 구속된 아리엘은 이를 악물며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가 저 놈의 약점인 것 같은데.”
콰악!
다짜고짜 이리엘의 손목을 움켜쥔 나는 방문을 열고 억지로 이리엘을 잡아끌어 아리엘의 시야가 닿지않는 복도로 걸어나간다.
콰앙!
그리고 있는 힘껏 아리엘이 있는 방문을 닫아버린다. 내 손에 의해 억지로 복도로 이끌려 나온 이리엘은 큰 죄를 저지렀다는 듯이 움츠린 자세로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핀다.
“후우..”
짤막하게 한숨을 내쉰 나는 움켜쥐고 있던 이리엘의 손목을 놓아준다. 그러자 이리엘은 내 손자국이 남은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겁먹지마. 화난 척을 한 것 뿐이니까.”
살짝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이리엘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지어보인다. 하지만 이리엘은 그런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여전히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리엘과 꽤나 친한가봐?”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킬겸 아리엘과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우물쭈물 거리던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간다.
“많이 친해... 기억에 남아있어. 같이 싸운 동료로...”
“동료라...”
이리엘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면 이리엘이 아리엘을 생각하는 만큼... 아리엘또한 이리엘을 생각해준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혈육이며 같이 오랫동안 전장을 해쳐온 전우... 그런 그 둘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할 건지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화났...어?”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내 감정에 대해 물어온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조용히 볼을 긁적인 나는 마지못해 말해준다는 듯이 답한다.
“아주 약간?”
화가난다?
솔직히 이리엘이 아리엘의 식사를 가져온것을 목격했을때 몰래 아리엘을 챙겨준다는 생각에 화가났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를 빠르게 진정시켜준 것은 바로 당황하는 아리엘의 얼굴. 언제나 차가운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있던 것이 부서져버린 것이다.
“미안...”
내가 화가 났다고 말하자 이리엘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에게 사과를 한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리엘의 모습이 괜히 측은 했던 나는 가볍게 그녀의 어께를 토닥여준다.
“앞으로 아리엘을 돕고 싶으면... 나에게 말해. 너와 내가 그렇게 가벼운 사이도 아닌데... 매정하게 거절하진 않을 테니까.”
아리엘은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단식이나 단수. 그런 단순한 육체적인 고통으로 그녀를 괴롭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또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진...짜로?”
그것은 바로 이리엘. 바로 그녀였다. 아리엘을 도와줘도 된다는 말에 이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작은 동물처럼 나를 바라보는 이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내 뜻을 밝힌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 작품 후기 ==========
마스터칼솔럼 / ㅋㅋㅋㅋ 캡틴 플래닛이라닠ㅋㅋ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abcbbq / 블러드이블?! 그건 뭐죠? 처음들어보는데;;;
유운처럼 / 냅. 아청아청. 아청은 제 트레이드 마크죠 ;ㅅ;
레리꿀 /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 그것이 제 소설의 철칙이죠.
간만에 H씬을 써봅시당
담편은 오랜만에 등장하는 이리엘.
넵 이리엘.
이리엘도 먹을떄가 됬잖아요?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