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196화 (196/298)

19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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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빛이 네이르와 타이를 감싼다. 밝지만 눈이 부시지 않을 정도의 광채를 내뿜던 빛의 덩어리는 어느세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져 보이는 듯한 착시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산산히 흩어져버린다.

“....”

나는 두명이 여성이 사라지고 휑해진 공터를 조용히 둘러본다. 아직도 무슨 유령이나 환각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딸이라니...”

다른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나였다. 또다른 나. 그리고 또다른 네이.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 단순히 신기한 일을 겪었다고 치부하기에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타이가 넘겨준 자신의 아버지라는 존재의 힘.

-타메르?

부러진 대검이 변한 길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내 검을 바라보던 내 귓가로 잊고 있던 시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목소리가 이제 들려?

“선명히 들려. 무슨 일이야?”

-너 도데체 뭐한거야?! 갑작스럽게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피를 마셔? 그 타이라는 녀석도 너처럼 괴물이었기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화난 듯이 언성을 잔뜩 높혀 내 머릿속에 소리치는 시란. 안그래도 머릿속이 뒤죽박죽인데 그녀의 외침까지 섞이니 두통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려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뜻을 내비친다.

-하아... 진짜...

그러자 시란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끝마친다. 이제야 머릿속이 조용해지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불행히도 시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너 도데체 무슨 일을 겪은거야? 느낌이 크게 달라졌다고. 거기다 타이의 피를 마셨을때부터...

“시끄러!!”

귀찮게 계속 꼬치꼬치 캐물어오는 시란의 목소리에 발끈한 나는 나도 모르게 바락 소리를 질러버린다. 그녀의 목소리에 머릿속이 더욱더 복잡하게 엉켜가는 것 같았다. 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내 몸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왜그래?! 난 너를 걱정해가지고 하는 말이잖아!! 그게 화를 낼 일이야?!

또다시 생각이 끊긴다. 뭘 생각하려고 한다면 머릿속에 시란의 목소리가 파고들어와 내 생각을 끊어버린다. 내 외침에 주눅 들지않고 오히려 더 시끄럽게 달려드는 시란의 목소리에 참지못한 나는 허리춤에 묶어둔 시란의 검을 거칠게 뽑아 바닥에 집어던진다.

푹.

예리한 시란의 검날이 땅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맴돌던 그녀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진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땅에 박힌 시란의 검을 바라보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어 혼란스러운 감정을 진정시킨다.

슈욱..

그러자 요도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시란의 형체를 만들어낸다. 잔뜩 화가난 듯 눈매를 날카롭게 세운 그녀는 흔들리는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땅에 박힌 자신의 검을 뽑아낸다.

“이게 무슨짓이야?”

그녀는 극도로 화를 참는 듯한 낮은 어조로 나에게 묻는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꾹꾹 짓누르며 낮은 신음을 흘린다. 그러자 시란은 기분나쁘다는 듯이 자신의 검날에 붙어있는 흙을 천천히 털어낸다.

“생각할 것이 많아. 혼자있게 해줘.”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유적 벽에 몸을 기대며 시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내 정중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시란은 나를 위해줄 마음이 없다는 듯이 화가 난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너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마.”

“뭐?”

시란의 말에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그녀를 노려본다. 그러자 여전히 내 앞에 서서 곧바로라도 휘두를 태세로 검의 손잡이를 매만지는 시란은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눈을 정면으로 노려본다.

“나도 휘말려버렸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예기치 못할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자 시란은 마치 버릇처럼 검의 손잡이를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너와 같이 휘말려버린 것 같아. 기억의 소용돌이에...”

그녀는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더 이상 내 눈을 마주할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려버린다.

“나와 같이 휘말렸다고? 설마... 내가 본것과 비슷한 기억을 본거야?”

내 물음에 시란은 아무말없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내가 본 기억들중에 딱히 부끄럽거나 그녀에게 숨길만한 기억은 없었다. 지금 저렇게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이는 시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경쓰지마. 어자피 지난 기억들이니까...”

아마도 네이의 무덤에서 시란이 나에게 한 독설을 의식해서인 걸까. 기억속에서 나는 애절하게 네이에게 매달렸었다. 그런 모습을 본 시란은 그때 나에게 한 독설에 대해서 뒤늦게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녀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단순히 기억만 본게 아니야.”

하지만 시란은 무겁게 입술을 열어간다. 단순히 기억만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더욱 예민하게 귀를 귀울였다.

“이런 건 처음인데... 자세한 이유는 몰라. 하지만...”

그녀는 괴로운듯 살며시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갔다.

“감정...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이... 전해져왔어.”

“시...란?”

어느세 그녀의 눈가에 자그마한 눈물이 맺혀가기 시작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녀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에 놀란 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느낀적 없는 감정... 느낄 이유도 없는 감정인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왔어.”

자기 스스로도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시란. 하지만 그런 그녀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꿈속에서 어린 타이와 네이르를 처음 봤었다. 하지만 처음본것이 분명하며 기억에도 없는 그녀들이 분명했었는데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아버지로써의 강한 애정을 느꼈었다. 아마 시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후우..”

시란은 뒤엉킨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그녀의 볼을타고 방울져 떨어져내린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눈물방울은 그 형체를 잃고 허공에서 산산히 흩어져버린다.

“미안... 나도 꽤나 혼란스러워서... 네 생각을 못했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난후 간신히 흔들리던 감정이 진정됬는지 시란은 나에게 폭언을 한 사실을 솔직히 사과한다. 그리고 그녀는 피곤한 듯 눈가를 문지르며 내곁으로 다가와 내가 기대고 있는 벽에 자신의 상체를 기댄다.

“내가 느낀 감정 전부를... 너도 느꼈다고?”

“전부라고는 할수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

나는 고개를 돌려 내 곁에 서 있는 시란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대답한다.

“타이를 물어뜯은 너를 제지하기 위해 너의 몸에 빙의하려 했는데. 그 순간... 휘말려버린 것 같아.”

“...”

시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색하면서도 무거운 침묵이 우리 둘 사이를 감싸안는다. 나는 흘끗 곁눈짓으로 시란의 얼굴을 바라본다. 시란의 얼굴에는 전에 보지못했던 슬픔이 잔잔하게 감돌고 있었다. 조용히 땅을 바라보던 시란은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사과할게. 그때 심한 말을 한걸.”

“뭐... 틀린말도 아니었잖아.”

뒤늦은 그녀의 사과에 나는 피식 실소를 머금는다. 그러자 시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슬픔이 이 정도일줄은 몰랐거든.”

“처음이라서 그래. 누구든 처음 겪는 감정은 강렬하게 기억되거야.”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나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가벼운 말투로 그녀의 말을 받아친다. 그리고 벽에서 기댔던 몸을 바로세운 나는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그러면서 홀로 남게될 시란에게 한마디를 남기는 것은 잊지않는다.

“내가 겪은 기억이고 추억이야. 그런 것 떄문에 너가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 혼자서 조금 쉬면 금방 괜찮아질거야.”

“응... 그렇겠지.”

내 말에 시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한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자신의 발앞의 땅을 내려볼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던 나는 이내 작은 한숨만을 남기며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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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의 눈밖으로 벗어난 나는 찝찝함에 머리를 긁적인다. 어찌된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한순간이지만 시란은 나와 같은 기억과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는 뜻이된다. 꽤나 무겁게 가라앉은 시란의 분위기를 보니까 거짓말이나 연극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뭐... 별 상관 없겠지...”

하지만 이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내 인생 전체를 같이 공유한 것도 아니고 네이를 잃었던 슬픔의 순간만을 같이 공유했던 것 뿐이다. 시란은 이런 시시한걸로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은 아니었다. 조금 무거워진 시란의 감정이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극복해야할 문제였다.

“일단... 지금은 내 문제부터 처리하자.”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린다. 지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바로 타이와 네이르의 존재. 다른 세상의 나의 딸들인 그녀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나를 위한 상담을 해줄 존재를 알고 있었다.

“키르비르...”

어린 타이와 네이르를 보살펴준 마왕의 친딸이며 마계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올랐던 키르비르. 거기다가 마계의 모든 정보가 기록된 고대도서관과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그녀라면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유운처럼 / 네. 비싸죠. 1만 5천원이나 줬단 말입니다 ;ㅅ;

밤길을걷는자 / 덜렁이는 정신없는 작가의 어이없는 실수죠 ;ㅅ;

으으으... 금요일 연재 못한건 토요일날 땝방!

으히히힛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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