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편
<-- 발전 -->
“좀 더 빠르게.”
“알았어.”
시란의 신호에 맞춰 힘껏 대검을 휘둘러본다. 그런 내 대검의 궤적 끝에는 돌돌만 종이가 세워져있었다.
콰직!
하지만 내 대검에 궤적에 걸린 종이는 절반만 베이고 옆으로 꺽이며 구겨져버린다.
“손목에 힘을 빼. 힘을 준다고 다되는건 아니야.”
“하지만 반이 부러져도 이 대검의 무게감을 견디려면 힘을 줘야 해. 거기다 대검의 날도 그렇게 날카로운 것도 아니라고.”
“그런 방법도 있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봐. 내 말을 믿어봐.”
“....”
시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하고있자 무끄럼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티에르가 한손으로만 새로운 종이를 손으로 말아 세워준다.
“힘으로 벤다고 생각하지말고 속도로 베어.”
“알았어.”
시란의 조언에 나는 가볍게 어께를 풀어낸다. 그리고 연습삼아 크게 팔을 휘두른 뒤 대검의 손잡이를 놓치지 않게 꽉 움켜쥔다.
“후우...”
나지막하게 심호흡을 한 나는 허리를 크게 비틀며 한발을 내딛으며 온 체중을 무겁게 싣는다. 그리고 비튼 허리를 풀어내며 시란의 조언대로 손목에 힘을 푼채로 빠르게 대검을 휘두른다.
콰지직!!
“....”
옆으로 처참하게 구겨진 종이가 튕겨져나간다. 바닥에 나뒹구는 종이를 바라보며 시란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솔직히... 이런 대검으로 종이를 벤다는건 무리야.”
“무리라고 생각하지마.”
내 탄식에 시란은 몸을 굽혀 바닥에 나뒹구는 벽돌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티에르에게 손짓을 하여 종이를 하나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시란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 티에르는 종이를 말아 시란에게 건낸다.
“무기는 변명일 뿐이야.”
티에르에게 종이를 받은 시란은 가볍게 허공에 돌돌만 종이를 던진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벽돌을 움켜쥔 팔을 휘두른다.
촤악!
그녀는 벽돌의 거친 모서리로 떨어지는 종이의 허리를 부드럽게 그어버린다. 그러자 허공에서 떨어지던 종이막대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시란의 발앞에 툭 떨어진다.
“최소한 이 벽돌의 모서리가 네 대검보다 무디겠지?”
“....”
나는 예리하게 베어진 종이막대의 단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슬적 내 대검을 살펴본다. 그녀의 말대로 내 대검도 검의 하나다. 검날이 존재하기는 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해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긴 했지만 최소한 그녀가 휘두른 벽돌의 모서리보다는 충분히 예리했다.
“젠장...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투덜거리며 티에르가 세운 종이막대를 노려본다. 그리고 다시한번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어... 어디있는거야!!”
낯선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퍼진다. 나와 시란, 티에르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해보기 위해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본다.
“어?”
“뭐야... 저 녀석은...”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이었다. 검은 흑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보이도록 짧게 자른 그녀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선한 인상을 가진 녀석이었다. 하지만 우리 셋의 시선을 단숨에 끄는 것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한쌍의 검은 고양이귀와 얇은 다리사이로 흔들리는 검은 고양이 꼬리였다. 마치 내 기억속의 네이와 비슷한 귀와 꼬리를 가진 그녀의 존재에 나는 할말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본다.
“거.. 거기 당신들!! 혹시 키르비르님이 어디 계신지 알아?!”
이름모를 수인족의 여성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키르비르에 행방에 대해 묻는다.
“너는 누구냐?”
놀란 것도 잠시. 나는 침착하게 그녀의 앞에 나서며 그녀의 정체를 묻는다. 그러자 수인족의 여성은 기분이 나쁜듯 살짝 눈살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본다.
“시끄러!! 나 급하니까 키르비르님이 어디있는지나 말해!!!”
“.....”
네이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지만 성격은 전혀 반대였다. 무례하게 언성을 높혀가며 처음보는 나에게 대드는 그녀의 행동에 나또한 인상을 찡그린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무시하고 다짜고짜 키르비르가 들어간 숙소에 쳐들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옆으로 한걸음 움직여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뭐하는거야!!”
“네 정체가 뭔지 모르는데 멋대로 활보하게 놔둘 수 없어. 안그래도 지금 상당히 예민하거든.”
에페리아의 공격에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수인족인 이상 그녀또한 마계출신. 그녀의 정체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 멋대로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숙소로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러자 인상을 찡그린 그녀는 다짜고짜 자신이 들고있던 봉을 나에게 겨눈다.
“비키지 않으면 실력를 행사하겠어!!”
“....”
나는 흘긋 시란을 돌아본다. 그녀또한 이곳에 신세를 지고있는 사람의 입장인지 싸운다면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검을 나를 향해 살짝 흔들어보인다. 그런 시란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정체불명의 수인족을 향해 내 검을 들어보인다.
“아 나 급하다고!!!”
그러자 다짜고짜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어 봉을 있는 힘껏 내려찍는다. 나는 침착하게 대검을 들어올려 그녀의 봉을 막아낸다.
카앙!!
꽤나 재빠른 공격이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살의가 없는지 그다지 날카롭지는 않았다. 나는 가로막은 봉을 옆으로 치워내며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나왓!!”
그 틈새를 노린 수인족의 여성은 자세를 낮춰 내 품안에 파고든다. 교묘히 자세를 낮춰 미끄러지듯이 파고드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당황한다.
“어딜!!”
하지만 시란과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런 그녀의 기습적인 행동에 몸이 재빠르게 반응한다. 나는 황급히 팔을 뻗어 그녀의 몸을 붙잡으려한다.
오독!
“끼야아아아아!!!”
“....”
그런 손에 붙잡힌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꼬리였다. 다급하게 숙소로 달려드려는 그녀의 꼬리를 붙잡자 그녀의 몸이 우뚝 멈추며 숙소가 무너질정도로 날카로운 비명을 뱉어낸다. 동시에 그녀의 엉덩이부분에서 뭔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자신의 엉덩이를 움찔거린다. 그녀의 꼬리를 붙잡을때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너무 강하게 움켜쥐었던 것 같았다. 뒤에서 보고 있던 시란과 티에르도 조심스럽게 쓰러진 수인족을 향해 다가왔다.
“이거... 어떻게 하죠?”
“다친거아냐? 좀 이상한 소리가 났었는데...”
시란은 엉덩이를 움찔거리는 수인족의 소녀를 내려본다. 분명 그녀의 꼬리를 움켜쥘때 뭔가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뼈같은게 나간거 아닐까요? 안그래도 약해보이는데 그걸 움켜쥐셨다면...”
“그런가?”
내가 움켜쥔 꼬리를 꿈틀거리며 엉덩이를 움찔거리는 수인족의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근데... 꼬리가 아프면 무슨 느낌일까요?”
“뭐... 꽤나 아프겠지? 나도 꼬리같은건 달아본 적이 없어서말이야.”
“무슨 소란이야?”
우리가 쓰러진 수인족을 앞에 두고 그녀의 꼬리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때 요란한 그녀의 비명을 들었다는 듯이 숙소에서 수인족이 찾던 키르비르가 걸어나온다.
“어...?! 네이르?!”
“네이르?”
그녀는 한눈에 쓰러진 수인족의 정체를 알아본다. 쓰러져 엉덩이를 꿈틀거리는 추한 그녀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너 왜 이러고있는거야...”
“키르비르니임...”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네이르라는 수인족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그런 네이르를 내려보던 키르비르는 손을 그녀에게 내민다.
“아는 사람이야?”
“응. 우리 아버지의 수하야.”
네이르라는 수인족은 키르비르의 손을 붙잡고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아직도 엉덩이 근처가 뻐근한지 몸을 일으킨 네이르는 마치 내 얼굴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매섭게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이 키르비르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입을 연다.
“키르비르님!! 제 언니가... 타이언니가 위험해요!!”
“타이가? 그 녀석이 왜 위험한데?”
“이 쪽.. 이 쪽이에요!!!”
“아... 으응!”
다급하게 네이르가 키르비르의 팔을 잡아당기자 키르비르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끌려간다. 그런 그녀들의 뒷모습을 무끄럼히 바라보던 나는 슬쩍 시란을 돌아본다.
“따라가야지. 보디가드 아저씨? 위험할 수도 있다구.”
그러자 시란은 피식 웃으면서 눈짓으로 달려가는 키르비르의 뒷모습을 가리킨다.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키르비르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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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기에요!!”
네이르가 우리를 이끈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유적지 외곽에 존재하는 꽃밭이였다. 네이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도착하자 키르비르의 안색에 눈에 띄게 나빠진다.
“여기에 독이 퍼져있다고해요!”
“독?”
꽃밭에 도착한 키르비르는 네이르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뜨며 꽃밭을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저 평범한 꽃밭이었다. 독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콜록... 콜록...”
꽃밭에 도착한 우리들은 황급히 네이르가 말한 그녀의 언니. 타이라는 여성을 찾아 주변을 둘러본다. 작은 기침소리와 함께 꽃밭 한쪽에서 꽃가루가 허공으로 치솟아오른다. 그곳에 우리가 찾는 타이라는 여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했다.
“윽...”
하지만 꽃밭앞에서 내 걸음이 멈춘다. 날이 따듯해서 그런지 수많은 꽃이 피어있었고 눈에 훤히 보일정도로 자욱한 꽃가루가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나에게는 이런 곳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고통이었다.
“아우... 타메르! 어떻게좀 해봐!! 꽃가루 때문에 숨쉬기도 힘드네!!”
키르비르는 눈앞을 가리는 꽃가루에 투덜거리며 손을 휘두른다. 그녀는 나와달리 꽃가루 알레르기는 없었지만 숨쉬는데 걸리적거리는 꽃가루 자체가 싫은지 인상을 찡그린채 들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젠장...”
그런 그녀에게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나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천천히 꽃밭속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자 내 발이 꽃을 몇 개 짓밟자 자욱한 꽃가루가 치솟아오르며 내 코와 입을 따끔하게 자극해오기 시작한다.
“크으으...”
그래도 네이의 무덤에 오면서 어느정도 꽃가루에 적응이 되었던 나는 고통에 당황하지않고 숨을 참은채 기침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콜록.. 콜록!!”
그곳에는 붉은 적발의 여성이 노란 꽃가루에 파묻힌채 쓰러져있었다. 그녀는 괴로운듯 자신의 가슴과 목을 움켜진채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이봐!!”
나는 쓰러진 그녀를 구해주기 위해 팔을 뻗는다. 그러자 내 부름소리에 응답하듯 그녀는 눈물이 잔뜩 머금어진 눈을 힘겹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일어나!!”
눈물이 가득차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내민손을 천천히 내려본다. 그리고...
“흐아아앙!!!”
“우.. 우와아악!!”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켜 내 몸을 끌어안는다. 마치 나를 놓치않겠다는 듯이 꽉 움켜쥔채 내 가슴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깜짝놀란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채 황급히 뒷걸음질친다.
“흐아아아아... 타이.. 타이 많이 아파!!”
“어.. 어?! 그.. 그래 그래...”
어린애 같은 말투에 놀란 것도 잠시.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꽃밭에서 벗어난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타이는 내 품에 얼굴을 비비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타이. 눈과 목이 따끔따끔해...”
“그... 그래? 내가 살펴볼테니까... 기다려봐.”
“으.. 으응!”
간신히 꽃밭에서 벗어난 나는 나이에 맞지않게 애처럼 울먹거리는 타이를 진정시킨다. 그러자 타이는 힘차게 대답하며 마치 고통을 참으려는 듯이 입을 꾹다물고 양 주먹을 꽉 말아쥔다.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정도로 어려보이는 타이의 행동에 의아해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본다.
“뭐야.. 이건...”
살짝 충혈된 눈. 붉게 달아오른채 훌쩍거리는 코. 이건 전형적인 알레르기 증상이었다. 내가 심하게 격어본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기다려봐.”
나는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그런 내 손에 잡혀 나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손수건.
“....”
그 손수건의 정체가 다른 누구가 아닌 네이의 것이라는 걸 기억해낸 내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그녀도 꽃가루에 괴로워하는 나를 위해 이 손수건으로 자기가 손수 내 코를 풀어주던 기억이 떠올라버린다.
“자. 팽하고 풀어.”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나는 꺼내 든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타이의 눈물과 콧물을 가볍게 닦아준 뒤 그녀의 코를 잡아준다. 그러자 타이는 힘껏 코를 풀어버린다. 축축히 젖어버린 손수건을 흘끗 본 나는 그런 손수건을 주머니에 구겨넣는다.
“자... 조금은 괜찮냐?”
“응... 타이 많이 괜찮아졌...”
코끝을 움찔거리던 타이는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천천히 얼굴을 굳혀간다.
“재정신 차린것같네.”
꽃가루에 의해 괴로웠던 시간이 지나자 이성을 되찾은듯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휘둥그레진다. 타이는 얼마나 그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하는지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를 황급히 밀친다.
“푸하하하하핫!!”
그 순간 요란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이르. 타이를 달래주느라 잠시 잊고있던 네이르와 키르비르는 나와 타이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어린아이같은 타이의 모습을 목격한 네이르는 더 이상 참지못하고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이.. 잊고있었다! 언니가 꽃가루 알레르기라는 것을!! 푸하하하핫!!!”
마구잡이로 웃어젖히던 네이르는 그만 바닥에 넘어져 떄굴때굴 구르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타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참지못한 타이는 슬쩍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여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네이르를 혼내주려는 듯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서지만...
“으헤헤헤헷!! 꽃가루 어택!”
그러자 네이르는 꽃밭에 피어있는 꽃을 여러개 움켜쥔뒤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이를 향해 던진다. 하지만 처음처럼 타이는 당황하지 않고 숨을 참으며 그런 꽃가루를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웃고있는 네이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세우며 날카롭게 그녀의 머리에 묵직하고 강한 꿀밤을 먹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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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요란한 소란이 지나고 타이와 네이르와 같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꽃가루 알레르기에 고생했던 타이를 위해 따듯한 차 한잔을 만들어 건내준다.
“그나저나... 왜 이곳에 온거야?”
키르비르는 자신의 몫으로 내가 만들어온 탄산수에 설탕과 과일즙을 섞은 음료를 홀짝이며 그들에게 묻는다. 그러자 탄산수의 기포의 올라감에 푹빠진 네이르를 대신해 타이가 따듯한 차를 홀짝이며 대답한다.
“마왕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에페리아의 행동에 의한 피해를 정찰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타이의 대답에 나는 슬쩍 그녀를 살펴본다. 꽃밭에서 봤던 어리숙한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 첫인상을 이상하게 받은 나에게 그런 타이의 모습은 낯설기가 그지없었다. 타이는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을 삼키려는 듯이 다시금 찻잔을 기울인다.
“역시... 에페리아 언니가...”
“마왕님은 에페리아가 키르비르님을 노리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정찰은... 키르비르님의 안위를 확인해보라는 뜻 같았습니다.”
타이는 자신이 받은 임무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하지만 그런 타이의 말에 키르비르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냐... 그럴 일은 없을꺼야. 아빠가 날 걱정하다니... 말도 안되지.”
“자식을 걱정안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신을 자책하는 키르비르의 말에 타이는 가당치 앖다는 듯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르비르의 입가에 서린 씁쓸한 미소는 지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무끄럼히 키르비르를 바라보던 타이는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이 차 맛이 좋은데요? 직접 끓이신거에요?”
“뭐... 차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서... 받아먹다만보니 얼떨결에 배운거야.”
차 맛이 좋다는 이야기는 처음들어본 나는 기쁜마음을 숨김없이 내보이며 대답한다. 그러자 탄산수에 집중하고있던 네이르가 귀를 쫑긋거리며 곁에있는 타이를 바라본다. 곧이어 씨익 미소지은 네이르는 타이의 옆구리를 콕콕찌르며 노골적으로 나보고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한다.
“에이... 언니! 저 남자에게 관심있는거야?”
“시끄러.”
“자매끼리 숨기지 말고~ 꽃밭에서 엉겨붙는 모습이 범상치 않더니만... 저런 남자가 취향인...”
뻐억!!
조잘조잘 떠드는 네이르의 입을 막기위해 타이는 어쩔 수 없이 무력을 행사해버린다. 주먹을 움켜쥔 그녀는 콕콕찌르는 네이르와 다르게 있는 힘껏 그녀의 옆구리를 강타해버린다. 숨조차 쉬기 힘든듯 네이르는 고개를 탁자에 처박은채 몸을 움찔움찔 떨며 컥컥거릴뿐이었다.
“오해입니다.”
“그래. 나도 알레르기를 겪어봐서 알아. 그렇게 꽃가루가 자욱한 곳에서 재정신 유지하기 힘들지.”
그런 타이와 네이르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린 나는 내 몫으로 탄 차가 들어있는 찻잔을 기울이며 말한다. 하지만 말로는 오해라고 해도 그때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듯 타이의 얼굴의 홍조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여튼... 너희들은 이제 돌아갈꺼야?”
“네. 키르비르님이 괜찮으시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여기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죠.”
“에이... 햇살좀 더 쬐고 싶었는데... 마계엔 해가 없단 말이야... 꽃도 없구...”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있던 네이르는 금세 회복됬는지 고개를 들어 볼을 부풀리며 작게 투정을 부린다. 타이는 그런 그녀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볼 뿐이었다. 그리고 호주머니를 뒤져 무언가 자그마한 기계를 꺼내 매만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조그만 기계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오며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씨가 허공에 떠오른다. 그런 글씨를 조용히 읽은 타이는 입을연다.
“오늘 밤에 떠날 생각입니다. 그때쯤이면 디바이스에 귀환할 마력이 충분히 모일것같습니다.”
“아싸! 그럼 밤까지 나 자유롭게 있어도 돼?!”
타이의 말을 들은 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런 철없는 네이르의 행동에 타이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지만 네이르는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지 그저 밝은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괜히 소란만 일으키지마.”
“아싸!!”
타이의 허락을 들은 네이르는 잠시라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듯이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간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타이는 조용히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저... 초면에 실례지만 부탁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뭐... 이상한것만 아니면 돼.”
내 시원스런 대답에 타이는 슬쩍 눈을 돌려 내 곁에 앉아서 아무말없이 자신의 컵안에 담긴 탄산수를 내려보는 키르비르의 눈치를 살핀다.
“키르비르님?”
“아... 어? 왜?”
키르비르가 넋을 잃고있자 타이는 그녀를 부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키르비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무슨 일이냐는 듯 타이를 바라본다.
“이 남자분의 도움을 받아도 될까요?”
“아.. 으응. 뭐... 괜찮아?”
키르비르의 허락을 맡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듯 티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타준 차가 아직 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아까운듯 남은 차를 입안에 훌훌 털어넣는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아.. 그래.”
나는 다시 멍하니 자신의 음료수를 바라보는 키르비르를 돌아본 뒤 타이를 쫓아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신주쿠 / 놀랍게도... 소설 스토리상 습격사건이 있은 후 이틀밖에 안지났답니다. 어허허헝 ;ㅅ;
abcbbq / 네이의 고질병? 그런게 있었나요...?!
sereson / 잊고있던 알레르기 반응이었습니다...
유운처럼 / 어허허허헝 논다지만 저는 열심히 과제중..
Solar Eclipse / 그녀들입니다. 그녀들... 조금중요한 그녀들.
떡밥 떡밥!
떡밥 촥촥촥!
늦어서 죄송합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