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편
<-- 후유증 -->
“아...”
다시금 정신을 차린 나는 작게 탄성을 지른다. 그런 내앞에는 붉은 초가 녹아 만들어진 붉은 웅덩이만이 고요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정신차린건가?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짧은 로터스의 물음에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던 나는 크게 고개를 가로저어 현실을 직시한다.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마지막에 느낀 거대한 정보의 홍수. 내 몸보다 수십배는 큰 거대한 파도가 나를 감싸안은채 심해 밑바닥으로 처박아넣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었다. 어마어마한 지식에 파묻혀 내 자신이 사라질것같은 기묘한 느낌. 만약 키르비르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계속되었다면 나 또한 그 정보의 파도에 먹혀 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악몽을 겪어보니 어떤가?
“.....”
로터스의 질문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솔직히 그녀가 겪어온 유년기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달랐다. 시작부터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니 그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극단적으로 적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했어.”
그녀의 과거에서 그녀 홀로 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막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저항하기는 커녕 자신을 그런 환경에 몰아넣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극도로 의존했다. 그가 아니면 자신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상태는 사막에서 벗어난다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극도로 단편적인 기억만있지만 키르비르는 사막에서 벗어나 최초로 만난 또다른 존재인 에페리아에게 모든 것을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최초로 따듯하게 돌바준 그녀를 위해 마치 간이고 심장이고 다 내줄 것처럼 그녀의 말에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키르비르는 에페리아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그녀가 내준 과제를 밤을 세워가면서 모두 해결해낸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오히려 그녀에게 독이 되기는 했지만... 어찌됬든 키르비르는 끔찍한 아버지의 교육으로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마어마한 힘을 얻었다. 그 대가로 그녀는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키르비르가 앓고있는 정신병. 그것은 극단적인 의존증이다.
“의존증...?”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어떤 특정인물이 곁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마음의 병이지. 심지어 그 사람의 조언이나 명령이 없다면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게 될정도이다.
“어째서... 키르비르가 그런...”
-그건 그녀의 악몽을 경험한 너가 더 잘알텐데?
로터스의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기억을 체험한 나는 어느정도 그녀가 그런 정신병을 가지게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홀로 살아남기 불가능한 붉은 사막에서 그녀를 제외한 유일한 인간은 그녀의 아버지밖에 없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그의 명령을 따르고 그를 쫓아야되는 상황. 몇 년이나 지속된 그런 상황은 키르비르의 정체성을 아예 없에버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키르비르가 에페리아랑 지낼때도 의존증의 증상이 보였다. 언제나 키르비르는 에페리아와 같이있기를 바랬다.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리라고 해도 다름없을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녀와의 수업시간만을 기다리며 외부와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시킨채 도서관이나 자신의 방에서 에페리아가 만족할 수준을 얻을떄까지 연구와 자기단련을 멈추지 않은 그녀였다.
-그의 방식이 나쁘지는 않지. 덕분에 키르비르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데다 다른 마계인들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노력을 곁들여 최강의 존재가 되었다. 마계 중앙 원로회도 인정한 것이 키르비르였지. 최연소로 대마법사 칭호를 얻게된 그녀의 기록을 꺠트릴 존재는 이제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키르비르는 에페리아나 자신의 아버지가 없어도 잘 버텼어.”
로터스의 말대로라면 에페리아나 키르비르의 아버지가 없는 유적지에서 키르비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해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아주 활기차고 즐겁게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정신병이 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그녀를 처음봤을때와 지금의 그녀의 모습은 180도... 아니.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바뀌었다. 왜 그랬던것 같나?
“그게 무슨....”
-아버지와 에페리아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영향을 준 또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
로터스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문다. 그런 그의 한마디에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단 하나의 인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네이. 키르비르와 마치 친 자매처럼 지내던 네이. 그 누구보다도 키르비르가 우선적으로 챙기며 소중히 대하던 네이. 마계에서 그녀가 데려온 유일한 하수인. 모든 것이 하나의 결론에 다달은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그 존재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될까? 본적은 없지만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로터스는 7개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눈을 마주 바라보며 로터스의 말을 기다리는 나는 작게 마른침을 삼킨다.
-자아의 붕괴가 우선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새롭게 변한 키르비르의 성격은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준 존재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면 뒤늦게 세워진 그녀의 성격은 그 토대를 잃고 무너져버린다.
“그... 그럼...”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키르비르는... 무너진 성격의 잔해들은 날카로운 유리파편처럼 그녀의 기억에 박혀 아주 깊숙한 곳부터 그녀를 망가뜨릴 것이다. 키르비르의 기억속의 에페리아의 행동을 보면 어느정도 눈치챘을 텐데?
“에페리아가?”
로터스의 말에 나는 다시금 키르비르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마력폭주가 일어나기전 키르비르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은 단 두명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적발의 남자와 그녀를 가르쳐주던 에페리아. 단 둘. 그 외의 다른 인물은 크게 그녀의 기억속에 각인되지 못했다.
어린시절 키르비르는 몰랐겠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녀의 과거를 봤었던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바로 에페리아. 그녀의 방해가 있었다. 애시당초 에페리아는 그녀가 버거워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과제를 내줬을 뿐만아니라 키르비르가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하면 귀신같이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가버렸다.
키르비르는 에페리아가 만들어낸 새장속에서 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새였다. 에페리아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그녀가 원할떄마다 그녀만을 위해 지저귀어줬다.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던 새장속의 삶의 마지막은 그녀의 배신으로 인해 끝이나버린다. 에페리아의 배신으로 인해 받은 키르비르의 충격은 말로표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때까지 새로운 그녀를 유지하고 있던 인물이 죽는다면... 지금의 키르비르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해도 다름없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그렇다면... 그녀를 도울 방법은 없는건가?!”
나는 황급히 로터스에게 키르비르를 도와줄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로터스의 눈동자는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너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크르르르..
잠시 말을 멈췄던 로터스가 웃음을 터트렸는지 다시금 방이 고요히 진동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그의 사념이 들려온다.
-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것이다.
“뭐?”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탄성을 지른다. 로터스는 그런 내 의문을 해결해주고자 말을 이어나간다.
-요번 전투에서 수인족 녀석이 하나 죽었더군. 불안정한 키르비르의 정신파를 보니 요번에 그녀가 의존한 사람은 바로 그 수인족이군.
로터스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듯이 현재 사실을 설명해나간다. 그런 그의 설명에 반박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한다.
-그녀가 의존했던 에페리아, 아버지도 없는 이곳. 아직까지 키르비르가 재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 수인족대신해 의존할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되잖아.”
로터스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의존할 사람이라면... 리엔정도?”
그러고보니 리엔과 키르비르의 사이또한 친밀했다. 비록 네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절친한 친구처럼 잘 붙어지내는 그녀들이었다. 실제로 리엔이 신성기사단에 의해 끌려갔을때 키르비르는 자진해서 리엔을 구하러 돕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아니다. 리엔은 결단력이 없다. 그리고 현실에 대해 순종적인 그녀의 태도에 키르비르는 그녀에게 의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너다. 타메르.
또다른 사람을 지명해보려하지만 로터스는 내 말을 끊고 나를 지목한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얼빠진 얼굴로 로터스의 샛노란 눈동자를 마주 바라본다. 하지만 곧이어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지으며 그의 말에 반박한다.
“미안하지만... 너의 말은 말이 되지가 않아. 너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직 키르비르는 그렇게 약해지지 않았어.”
마지막 키르비르의 모습을 상기하며 나는 애써 로터스의 말을 반박한다.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숨기며 자신을 위로하려했던 나를 내 쫓아버렸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의지할 생각이 있었다면 나를 내쫓았을 리가 만무했다.
-뭐... 그건 두고보면 알겠지.
로터스는 자신의 의견에 애써 고집을 부리지않고 그저 여유롭게 흘려넘길뿐이었다. 나는 나를 응시하는 7개의 눈동자를 조용히 바라본다. 아무런 동요없이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듯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내 가슴속으로 차츰차츰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가봐야겠어.”
그런 불안감을 외면못한 나는 키르비르를 만나보기 위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긴다. 그때 로터스의 사념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만약 내 말이 맞다면. 이 사실 하나만은 기억해둬라.
그의 사념에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를 돌아본다. 곧이어 한없이 진지한 그의 사념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 그 마음은 단순히 의지라는 단어가 포함한 뜻보다도 더 큰 뜻을 내포한다. 의지하는 존재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한없이 불안해 떨것이며 그의 말이나 부탁, 혹은 명령이라면 뭐든지 해보려 노력할 것이다. 심지어 그의 명령이라면... 자신의 성격조차도 바꿀 정도로.
“.....”
그의 말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이때까지 키르비르가 의존했던 것은 네이였다. 실제로 그녀는 네이가 눈앞에 없어지자 비이상적으로 불안해했던 적이 있었다. 거기다 지금 본 키르비르가 자신이 기억한 키르비르의 성격과 전혀 반대였다는 그의 말대로라면 키르비르는 네이의 요청으로 자신의 성격조차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 그런 네이가 죽었다.
“젠장...”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짧게 욕을 내뱉으며 황급히 걸음을 옮겨나간다. 로터스는 그런 나를 막지 않는다. 그의 방을 빠져나가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부정한다.
모든 정황을 봤을때 에페리아 다음으로 그녀가 의존한 것은 다름아닌 네이였다. 지금 그런 네이가 죽었다. 키르비르의 성격까지 바꿔주게할 영향력을 발휘했던 그녀가 죽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존재를 유지해주던 버팀목이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강해...”
하지만 키르비르는 강했다. 진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됬던 정도의 상대는 키르비르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정신병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부정하며 나는 지상으로 향한다.
어느세 빠른걸음으로 걷던 내 걸음을 뜀박질로 바뀌어져있었다. 황급히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멀지않는 곳에 보이는 숙소를 바라본다. 머릿속에 맴도는 키르비르의 과거의 잔재로부터 도망치듯이 나는 숙소를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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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에 존재하는 에페리아의 지하 연구실. 그런 연구실의 한쪽에 마련된 마법진이 붉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마법진이 눈부실정도로 환한빛이 뿜어지자 마법진 위에는 피곤한 얼굴로 서 있는 에페리아가 나타난다.
“에.. 에페리아님.. 아무런 일 없었습니까?”
“아슬아슬 했어.”
그녀를 반겨주는 레오의 물음에 에페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피식 웃는다. 흐느적흐느적 마법진에서 걸어나온 에페리아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책상에 비벼닦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 너가 걱정하는 그런일은 없었어.”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감은 에페리아는 자신의 푹신한 의자에 온몸을 파묻는다. 그런 그녀를 초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레오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그런 레오의 행동에 에페리아는 감았던 눈을 슬쩍 뜨고 그를 바라본다.
“검은 발톱을 두려워하는 거야?”
“아?! 네.. 넷!!”
기습적인 에페리아의 질문에 화들짝 놀란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솔직히 에페리아의 질문에 대답한다. 그런 레오의 대답에 에페리아는 한심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따돌렸어. 이중도약으로 위치좌표를 일그러뜨려놨거든.”
“이미... 예상하신 것이었습니까? 마왕님의 행동을요?!”
“뭐... 어느 정도. 내가 직접 나설때부터 각오해놨어.”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검은 발톱은 마왕의 직속부대였다. 과거부터 그림자속에서 마왕을 보좌했던 부대였으며 잔인하고 철저하기로 유명했던 ‘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암살자가 속했던 부대다.
“그 분과 대항하실 생각이십니까?”
레오는 조심스럽게 에페리아의 뜻에 대해 묻는다.
“아니. 그를 지키려는 거야.”
하지만 레오의 말에 에페리아는 일말의 주저없이 부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감싸안아가는 피곤함을 애써 밀어내려는지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는 믿지않아... 자신의 딸이 자신을 위협하게 될거라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왕이 검은 발톱을 움직였다는 것은 결코 좋지않은 의미입니다. 에페리아님을 적대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구요!!”
마왕이 자신을 적대한다는 말에 조용히 눈을 감고있던 에페리아의 귀가 움찔거린다. 곧이어 에페리아는 의자에 푹 파묻었던 자신의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그녀를 바라보던 레오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는지 움찔거리며 반걸음 뒤로 물러선다.
“상관없어. 어찌됬든 나는 내 목적만 달성하면 되니까. 난 마녀야. 아주 이기적이고 사악한 마녀라고...”
에페리아는 씁쓸한 눈으로 수많은 서류들로 엉망인 자신의 책상을 내려다본다. 알수없는 언어가 잔뜩 휘갈겨진 수십장의 서류들은 그녀가 얼마나 큰 노력과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를 지키는게 내 목적이야. 그의 의견따윈 상관없어. 그의 개인적인 사정도 상관없어. 난 그냥 그를 지킬 뿐이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거면 된거야.”
“에페리아님...”
레오는 그녀의 말에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웅얼거릴 뿐이었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레오의 시선을 받으며 에페리아는 조용히 서류를 뒤적인다. 그런 그녀의 손에 한 장의 서류가 걸린다. 그것은 바로 키르비르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가득히 담겨있는 서류였다.
“이제 거의 다 됬어. 각성의 축 하나을 부러뜨렸어. 악한 자를 꺽었다고... 이제... 키르비르만 없으면 돼. 악한 자와 선한 자가 사라진 혼돈의 피는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꺼야. 중심을 잃은 혼돈의 피는 허무하게 흩어지겠지.”
“마왕님과 대적하면서까지 키르비르를 노리셔야하신 것입니까... 이미 축은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이 이상으로 간섭할 필요가...”
“말했잖아. 난 이기적인 마녀라고. 키르비르의 죽음은 내가 원하던거야.”
콰직.
에페리아는 자신의 증오를 표현하듯 손에 쥐고있던 키르비르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구겨버린다. 그런 에페리아의 얼굴에는 분노와 질투, 그리고 시기와도 같은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다.
“누가 왕가의 피가 아니랄까봐 지 애미와 쏙 빼닮았어. 짜증날 정도로... 외모는 물론이고 그 재능과 실력까지... 완전 판박이라니까...”
서류를 우그러뜨린 그녀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런 에페리아를 자극했던 레오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조용히 꼬리를 숨긴채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어. 언제나 절대적인 우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마치 나를 동정하듯 웃어줬던 그 재수없는 얼굴이 겹쳐보인단 말이야. 한동안 그 녀석을 가르치며 짧게나마 우월감에 취했었는데... 그게 실수야.”
콰앙!!!
신경질이 가득하게 책상을 후려친 에페리아의 행동에 레오는 움찔 놀란다. 얼마나 세게 쳤으면 튼튼한 나무로 된 책상에 살짝 금이 가있었다. 조심스럽게 갈라진 책상과 에페리아의 얼굴을 돌아보던 레오는 마른침을 삼킨다.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을 흡수했어. 거기다가 그 저주받은 재능으로 그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내가 알려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자기 혼자서 말이지.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바르르 떨며 분노를 삼키던 에페리아는 힘없이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자신이 움켜쥐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야. 모두 끝이라고...”
“끝... 이라뇨?”
조용히 눈치를 살피고 있던 레오는 조심스럽게 에페리아에게 묻는다. 그러자 에페리아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서린다.
“최종병기. 키르비르를 정면으로 상대하여 없엘 수 있는 무기를 발견했어.”
“무슨 뜻입니까?!”
그 순간 날카로운 레오의 감각이 그에게 날카로운 경보를 울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본능은 자신의 주인인 에페리아의 이상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경보를 무시못한 레오는 용기를 내어 에페리아에게 물었다.
“생각해봤는데... 우리를 파멸시킨다는 그 혼돈의 힘을 말이야... 먼저 발현시키면 어떻게 될까?”
“예언에 있는... 마계를 파멸시킬 혼돈의 힘 말입니까?!”
“그래. 그 힘. 완벽한 내 제어하에 그 혼돈의 힘을 만들어내면... 키르비르따윈 별것아니겠지?”
그녀의 말을 들은 레오는 온몸의 핏물이 쭉 빠져나가는 싸늘함을 느낀다. 에페리아는 절대로 헛소리를 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그가 혼돈의 힘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 방법이 그녀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 안됍니다 에페리아님!! 마계를 파멸시킬 힘을... 우리가 컨트롤할 가능성이 있으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니야. 나지.”
기겁한 레오를 바라보며 에페리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탁자에 팔을 괸채 레오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이미 돌일킬 수 없어.”
“에페리아님!!!”
결국 참지못한 레오는 자신의 본분을 잃고 에페리아에게 소리를 질러버린다. 그런 레오의 반응정도야 알고있었다는 듯이 에페리아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모든 거대한 사건은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되지. 저번에 키르비르가 마력폭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것도 하나의 우연덕분이야. 하지만 이번에 내 쪽에서 우연이 발생해버렸네?”
“그게... 도데체 무슨 뜻입니까!! 도데체 무슨 일을 벌여버리신겁니까!!”
“말했지? 악한 자를 꺽었다고. 그것은 너가 아주 잘아는 네이야. 이번에 다시 돌아갔던 것도 그 네이라는 녀석 때문이지.”
“네이가... 무슨 문제라도...”
레오의 물음에 에페리아는 그의 애를 태우듯이 서류가 흩어진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며 팬을 꺼낸다. 그리고 가볍게 팬대를 돌리던 그녀는 서류하나를 찾아 자신의 앞으로 끌어온다.
“이번의 혼돈의 피가 마지막 한조각이야. 서로 다른 차원에서 고농도로 응축된 혼돈의 힘이 피의 형태로 변하지. 그것이 마계로 모여 하나로 뭉쳐 폭주하여 마계를 내부로부터 파멸로 몰아갈 것이라는게 그 예언의 전부야. 하지만 이번에 네이를 상대하면서 그녀의 몸에 흐르는 혼돈의 피를 발견할 수 있었어.”
“네이의 몸에... 혼돈의 피라뇨?”
“아주 일부지만... 그녀의 몸에도 혼돈의 피가 흐르고 있었어. 그래서 그녀의 시체를 가져왔지.”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몸을 바들바들떤다. 평소에 에페리아가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수많은 연구를 해온것을 알고있던 레오였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지인이 실험대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 시체에 오라방의 몸에서 채취한 혼돈의 피를 집어넣었어. 그러자 네이의 몸에 흐르던 마지막 한조각이던 혼돈의 피가 새로 집어넣은 혼돈의 피에 맞춰져 완벽에 가까워졌지.”
“그게... 마계를 파괴시킬 혼돈의 힘의 집결체입니까?”
두려움이 가득한 레오의 질문에 에페리아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불행히도 아니야. 아주 일부일 뿐이야. 마계를 파괴되려면 그 혼돈의 피가 전부모여야지. 하지만 아주 일부지만 그 결과는 아주 섬뜩하던걸?”
“섬뜩하...”
그 순간 레오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정지버튼을 누른 기계처럼 딱딱히 굳어버린다. 잔뜩 경진된 레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좀 전까지도 느껴지지 않았던 인기척이 자신의 등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흐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펄쩍 뛰어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최대한 멀리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크게 숨을 헐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이 있던 곳을 바라본다.
“소개할게. 완벽해진 혼돈의 피의 일부를 가진 불사신. 네이야.”
“네... 네이?!”
마치 어둠과 하나가 된듯이 자리에 목석처럼 서있는 존재. 그녀는 다름아닌 네이였다. 이미 죽은 듯이 텅빈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는 절대로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인형이야. 영혼은 이미 자리를 떠난지 오래고 그저 지금은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고기인형일 뿐이야.”
“인형이요?! 확실한 것입니까?! 저런 힘을 가지고 제어를 벗어난다면... 마계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어둠을 지배하는 뤼베크족인 레오는 느낄 수 있었다. 네이의 몸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힘을... 그 어떤 뤼베크족이나 네베르족이 가지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어둠이었다. 보기만해도 그대로 꼬리를 말고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에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떤다.
“테스트 해볼래?”
“그게 무슨...”
에페리아는 싱긋이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연다.
“네이. 지금 이 레오라는 녀석을 공격해. 죽기 직전까지만...”
“그게 무...”
레오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어마어마한 어둠. 살기조차 없었다. 단순히 레오자신을 뒤삼켜 없에버릴 정도로 거대한 어둠이 자신을 덮어오기 시작했다.
“으...”
콰앙!!
비명조차 지를 틈이 없었다. 가만히 서있다고만 생각했던 네이를 돌아본 레오의 뇌가 기억하는 것은 의식을 잃기 직전 네이가 자신의 얼굴을 붙잡았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와우...”
에페리아조차도 네이가 움직였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확인한 것인 자신의 명령과 동시에 묵묵히 서있던 네이가 사라졌다는 것과 곧이어 네이가 레오의 머리를 땅속에 처박았다는 것이다.
네이의 손에 의해 땅속에 머리를 처박힌 레오는 두어번 몸을 움찔움찔떨다 이내 축 늘어져버린다. 어마어마한 맷집과 체력, 재생력을 가진 뤼베크족의 레오가 저렇게 쉽사리 쓰러질거라고 생각못했던 에페리아는 예상 이상의 네이의 힘에 싱긋 웃는다.
“완벽해.”
그녀의 입에서 짧막한 감상평이 흘러나온다. 네이는 더 이상 레오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레오의 머리를 처박은 팔을 회수한다. 그리고 다시 인형처럼 차렷 자세로 돌아와 에페리아의 명령만을 기다리며 허공을 응시할뿐이었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ㅎㄷㄷㄷ? 실험실 장면이요? 아... 그거요.. 으하하핫;; 무슨 영화에서 본것같았는데... 아마도 쏘우려나? 그걸 가져온거에요 ;ㅅ;
abcbbq / 약을 좀 많이헀죠. 우루사라던가.. 비타민제라던가.. 그래서 저런 설정이 터져나온듯 ;ㅅ;
유운처럼 / 감사합니다!!
네이는 부활. 하지만 그저 인형일뿐. 그러나 에페리아의 생각과다르게 네이의 영혼은 아직남아있죠. 떡밥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