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편
<-- 후유증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붕괴되어 있는 거대한 키르비르의 탑의 파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에페리아의 힘에 의해 벌어진 참상. 하지만 무너진 탑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바늘이 박힌듯이 따끔거린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 잡념을 털어낸 나는 조용히 타메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 네이. 금방 돌아왔네?”
방안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은 반쯤 부러진 대검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는 타메르였다.
“산책은 즐거웠어?”
그런 타메르의 곁에서 그의 침상에 자리잡고 앉아있던 키르비르는 자신이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묻는다.
“아... 네.”
그들의 질문에 나는 어색하게 대답한다. 키르비르와 타메르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직은 불편했다. 나는 그녀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줬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솔직히 사과를 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내 가슴속에 가득히 쌓여진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탑이 무너졌으니까. 너희 둘다 지낼 방을 마련하는게 좋겠네.”
내가 돌아오자 타메르는 되돌릴 방법이 없는 자신의 대검을 한쪽에 기대놓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의 말대로 탑이 부숴진 이상 나와 키르비르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 숙소에 신세를 져야만했다.
“숙소의 방은 너의 방처럼 넓지는 않으니까... 한사람당 방 하나씩해야할꺼야. 괜찮지?”
잠시 숙소의 구조를 생각하듯 살짝 고민한 타메르는 넌지시 키르비르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기던 키르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아서 해.”
그리고는 다시 자신이 내려놓았던 책을 들어올리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그런 키르비르를 흘끗 내려본 타메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키르비르가 읽고 있던 책을 뺴앗아든다.
“야!!”
그러자 자신의 독서를 방해받은 키르비르는 바락 소리를 질러버린다. 그런 그녀의 팔목에는 더 이상의 마력억제 팔찌가 없었다. 이미 그녀의 힘을 되찾은 상황. 타메르의 행동은 만용을 넘어서 자살행위라 불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너도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지나말고 나가자. 같이 산책할래?”
타메르는 키르비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싱긋이 웃으며 그녀에게 산책을 제안한다. 에페리아의 공격이 있었던 직후. 그 둘의 사이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가까워졌다. 아마도 서로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맺어진 동질감일까... 의외로 사이좋아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씁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칫... 뭐... 지뿌둥하기도 했으니까. 그러지뭐.”
침상에서 일어난 키르비르는 탁하고 타메르가 뺏어든 자신의 책을 낚아챈다. 그리고 그 책을 고이접어 품안에 집어넣으며 침상에 앉아있느라 구겨진 자신의 옷매무세를 정돈한다. 아마도 나를 피하는 걸까. 내가 오자마자 둘이 산책을 빌미로 나간다는 것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불평불만은 표할 수 없었다.
내가 악당이었으니까.
내 이기심에 키르비르를 죽이고 타메르를 독차지 하려고 했으니까. 당연히 그 죄값을 받는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들 모르게 조용히 슬픔을 삼킬뿐이었다.
“뭐해 네이?”
그때 키르비르가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부른다.
“언제까지 멍하니 서있을꺼야? 나갈준비 안해?”
“아.. 저도?”
내 중얼거림에 키르비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당연하지. 나는 언제나 너와 같이였잖아?”
키르비르의 천연덕스러운 한마디에 나는 조심스럽게 타메르를 돌아본다. 키르비르가 찬성하더라도 타메르가 반대하면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나의 배신. 그것은 그에게 결코 적지 않은 충격임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바라보며 그저 조용히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타메르는 옆에 기대어뒀던 자신의 대검을 들어 어색하게 자신의 등에 짊어맨다. 부러진 검의 무게가 익숙치 않은지 슬쩍 뒤를 돌아본 타메르는 이내 잡념을 털어버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가자. 네이.”
“아.. 응!”
그제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용서 받은걸까? 이런 나를 용서해준걸까?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메르는 웃으며 내 손을 이끌었다. 가식이나 거짓이 담기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런 그의 손에 이끌린채 키르비르와 같이 아름다운 햇살이 부숴져내리는 밖으로 걸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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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메르가 나와 키르비르를 이끌고 나온 곳은 다름아닌 유적지 한쪽에 존재하는 넓은 공터였다. 이렇다할 아름다운 풍경이나 비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탁 트인 공터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주기 충분했다.
“여기가 좋겠네!”
하늘에서 내리쬐는 눈부신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위에 손을 들고있던 키르비르는 공터 한 중앙에 세월에 풍화되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둥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구조물이었지만 그 옆에는 따가운 햇살을 막아줄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키르비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찬성을 표한 타메르는 그늘에 걸어가 잔디를 매만져본다. 바닥에 깔린 잔디는 누워서 자도 충분할 정도로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후... 그럼 이쯤에서 자리를 잡아볼까?”
조금 먼거리를 걸어온터라 지친 우리들을 배려해서 조금은 쉬어갈 요량으로 타메르는 잔디를 두드려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맘편히 잔디위에 걸터앉으며 조금 쉬려는 듯 머리에 깍지를 끼고 누우려한다.
타악.
“응?”
하지만 누우려고 반쯤 기울어진 타메르의 몸이 우뚝 멈춰버린다.
“마땅히 기댈곳이 없으니까 받침대 역할 좀 해줘.”
키르비르는 품안에 갈무리 넣어뒀던 책을 꺼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등에 기대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타메르가 자신의 등을 짓누르고 있자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노려본다.
“쳇. 젠장. 늦었군.”
작게 투덜거린 타메르는 천천히 기울였던 자신의 몸을 바로잡는다. 그제서야 편히 그의 등에 등을 기댈 수 있었던 키르비르는 다시금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멀뚱멀뚱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뭐해 네이? 맘 편히 쉬라고. 조금 쉬다가 돌아가자. 햇살도 따듯하고 좋잖아?”
타메르는 태연하게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나를 부른다. 그런 그의 행동에 나는 조심스레 키르비르의 안색을 살펴본다. 그녀는 별 관심없다는 듯이 조용히 자신의 책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조심스럽게 타메르의 곁에 앉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어께에 내 머리를 기대어갔다.
“....”
타메르는 아무말없이 자신의 어께에서 느껴지는 내 머리의 무게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흘러가는 구름을 맘 편히 바라볼 뿐이었다.
“으음...”
너무나도 평화로운 하루.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듯한 햇살. 포근한 잔디. 그리고..
두근.
부드럽게 느껴지는 그의 고요한 심장고동 소리.
모든게 기분좋았다.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며 그동안 나를 괴롭게 짓눌러왔던 죄책감과 후회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달콤한 감각이 내 몸을 휘감는다.
“네이. 졸리냐?”
타메르는 슬쩍 고개를 들어 가볍게 눈꺼풀이 감겨있는 나를 보고 조용히 물어온다.
“아.. 으응. 좀 지쳤나봐.”
“하긴. 우리 꽤 멀리까지 왔지?”
내가 지쳤다는 말에 타메르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어께에 기대고 있던 내 머리를 가볍게 한손으로 받혀준다. 그리고..
“아..”
천천히 내 몸을 눕혀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편히 눕게 해준다.
“느긋하게 한숨 자. 아마도 키르비르가 저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움직일 것 같지 않으니까.”
“아... 으응..”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가기 시작한다.
“...”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따듯한 그의 손길에 내 입가에 기분좋은 미소가 서려간다. 그리고 그는 나를 위해 다른 한손을 들어 내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을 막아준다.
“저기... 타메르.”
“응?”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그러자 그는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채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나를 위해 햇볕을 가려주는 그의 손을 감싸쥔다. 그의 손으로부터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온다.
“타메르...”
그런 체온에 용기를 얻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금 그를 부른다.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문채 참을 성 있게 내 말을 기다려준다.
“사...”
하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꽉 감은채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사... 랑해..”
하지만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 그가 들을 수 있을 지도 의심될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
다행히 그는 내 조그만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아...”
왠지 미소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나마 그를 향한 고백을 했더니 가슴속에 맺혀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것같았다. 나는 여전히 따듯한 그의 손을 움켜쥔채 천천히 눈을 감는다.
“피곤하니 조금만... 잘게.”
고백에 의한 긴장감이 사라지자 또다시 피로가 해일처럼 몰려온다. 나는 그의 허벅지를 벤체로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한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의 따듯한 손길.. 그리고 오른손에 잡힌 그의 따듯한 손의 촉감뿐이었다.
“미안해. 먼저말해주지 못해서.”
그런 내 귓가에 타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랑해. 네이.”
그 한마디에 내 입에는 행복에 겨운 미소가 서린다. 드디어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한 그의 감정을. 그동안 듣고 싶어했던 그 단어.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드디어 들었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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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젠장... 젠장!!”
마녀의 지배에서 해방된지 얼마되지않아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비틀비틀 네이를 향해 걸어간다.
“젠장할!! 네이!!!”
나는 쓰러져있는 네이의 곁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한다. 꿰뚫렸던 가슴에서 다시금 출혈이 시작되고 있었다. 거기다 검은 기운에 휘감긴 상태에서 받았던 충격은 고스란히 그녀의 몸에 남아있었다. 온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상처들. 거기다 뒤틀린 이곳저곳의 뼈가 그녀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는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제... 젠장...”
바닥에 주저앉은 내 옷에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옷 핏물이 진득히 베어가기 시작한다. 피부가 찢어지고 근육이 훤히 보이는 상처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끊임없이 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걸 대체 어떻게...”
엄청난 출혈.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을 도저히 막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우선적으로 출혈을 막아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리니아!!”
급한 마음에 나는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리니아를 부른다. 이미 그녀는 내 곁에서 허겁지겁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이런 상처는... 무리야! 도저히 약으로 처리가 안된다고...”
리니아또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태산같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울먹이고 있었다.
“코.. 콜록..”
그때. 네이의 입이 작게 벌어지며 괴로움이 가득한 그녀의 작은 기침소리가 터져나온다.
“네.. 네이! 정신차려!!”
그녀의 의식이 아직 살아있었다. 거의 기적적인 상황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그녀가 숨쉬기 편하게 그녀의 머리를 내 허벅지 위에 올려둔다.
“하.. 하아... 타... 메르?”
그녀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같은 가느다란 숨결을 힘겹게 들이키며 내 이름을 부른다.
“젠장!! 말하지마!! 체력을 아껴!!”
나는 지혈을 해주기 위해 상의를 벗었다. 하지만...
“제.. 젠장.. 리엔은 어디있는거야!!”
어디서부터 지혈해줘야할지 판단이 서지않았다. 이미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새하얀 피부는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터져나온 붉은 핏물은 그녀의 몸 전체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살려야한다는 일념아래 심장과 가까운 왼쪽 가슴부위를 내 옷으로 짓눌러 출혈을 막기 시작했다.
“타... 메르...”
그녀는 나를 찾는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팔을 힘겹게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움직이지마!! 가만이 있어줘.. 젠장할...”
나는 그녀를 윽박질러보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녀는 나를 찾아 손을 허우적거린다. 그런 그녀를 보다못한 나는 황급히 그녀가 들어올린 오른손을 붙잡아준다.
“걱정마 네이... 리엔이 오면... 다 괜찮아 질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타메르...”
내가 손을 붙잡아주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꺠달았는지 네이는 힘겹게 얼굴을 돌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달싹거린다.
“그래... 젠장. 나 여기있어. 너의 곁에... 그러니까 안심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나는 네이가 안심할 수 있게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네이의 입가에 힘없는 미소가 서린다. 그리고 그녀는 바싹 마른 입술을 달이며 또다시 입을 열려고한다.
“말하지마!! 젠장..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네이는 내 외침을 무시한채 조그마한 입술을 가녀리게 떨며 힘겹게 움직여 무슨 단어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사... 콜록!!”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고 피가 섞인 기침과 함께 허공에 흩어질뿐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가슴이 크게 들썩이며 그녀의 몸위에 올려진 내 옷이 선홍빛 핏물로 진하게 적셔져나가기 시작한다.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는 지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입술을 달싹인다.
“사... 랑해.”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 집중하지 않았으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젠장... 헛소리하지말고 제발 가만히 있어!! 그러다 진짜 죽는다고...”
나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꽉 붙잡은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온 나로써 그녀의 곁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손길이 아주 선명히 느껴져왔다.
“나... 피곤하니까... 그러니깐..”
그녀는 나를 바라보던 눈을 천천히 감아간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쉰 뒤 힘겹게 말을 이어나간다.
“조금만... 잘.. 께.”
“자면 안돼!! 젠장.. 네이!!”
나는 황급히 조용히 눈을 감은 그녀의 볼을 가볍게 쳤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하지만 그녀는 작은 가슴을 살짝 들썩이며 한 숨을 크게 들이킨다. 그리고 여전히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은채 움직임을 멈췄다. 들이킨 숨은 빠져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힘이 빠진 그녀의 손은 잔뜩 머금어진 핏물에 미끌어져 내 손을 빠져나와 핏물이 웅덩이진 바닥에 찰팍거리며 떨어져버린다.
“...네이?”
나는 힘없이 축늘어진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를 부른다.
“야.. 장난치지마. 네이!”
그녀의 볼을 툭툭 건들며 그녀를 흔들어보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감긴 그녀의 눈은 두 번다시 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생기있게 쫑긋거리던 그녀의 귀도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노.. 농담하지마. 내가 말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삐진거지? 응? 네이. 말해도 돼. 말해도 된다고!! 더 주절거려도 돼. 뭐라고 말 좀 해봐!!”
나는 그녀가 깨어나길 바라며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이것이 그녀가 자신을 괴롭힌 나에 대한 장난이나 놀림같았으면 좋겠다는 말도안되는 희망을 머릿속에 가뜩 품은채 그녀의 몸을 흔든다.
“나.. 나.. 방금 전 말 못들었거든? 다시 한번만 말해봐.. 제발.. 중요한 말이었잖아.”
그녀의 몸을 계속 흔들던 내 시야가 점점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부정하고 그녀의 죽음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한다.
네이는 죽었다.
그녀는 죽었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으아아아아!!!”
나는 괴성을 지르며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는다. 말로표현 못할 절망감과 상실감에 그녀를 끌어안은채 절규한다.
오직 나만을 바라봐준 네이.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상처입히고 수많은 오해속에서 그녀를 끔찍하게 괴롭혀왔을뿐. 심지어 사랑한다고 내가 먼저 말해주기로 한 약속.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네이.. 먼저 말해주지 못해서..”
그녀를 끌어안은채 후회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는 수없이 중얼거린다.
“사랑해... 사랑했다고... 진짜로.. 사랑했다고...”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듯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귓가로 수없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모두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미 죽은 그녀는 내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으흐으윽..”
그녀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무력함.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해줬다는 죄책감. 그녀와 했던 추억들이 지금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꽂히는 듯한 괴로움에 나는 오열한다. 이 끔찍한 절망감과 괴로움을 분출할 배출구가 필요했다.
“이... 개자식!!”
피눈물이 맺혀 붉은 눈동자로 나는 멀지않는 곳에 서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다름아닌 아리엘. 그녀만 아니었으면 네이는 살수가 있었다. 그녀의 방해가 없었으면 네이는 에페리아를 죽이고 내앞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으아아!!”
나는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않고 괴성을 내지르며 아리엘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다. 그녀가 가진 기이하면서도 절대적인 힘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찬 생각은 네이를 죽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아리엘이란 놈을 붙잡는 것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기리비스 / 고생하셨습니돠 ;ㅅ; 감사합니다.
Solar Eclipse / ...후다닥
abcbbq / 원작은... 으히히힛;;
유운처럼 / 이제 네이는 읍써요.
실버링나이트 / 올ㅋ
네이는 쥬금. 네 쥬금.
으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