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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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때. 우리는 우리를 막아선 정체불명의 힘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에페리아와 나 사이에 끼어드는 작고 검은 그림자. 그녀는 코앞에서 파문조차 일지않는 잠잠한 검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충격.”
콰앙!!
그녀의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갑작스런 폭발이 터져나가며 에페리아를 잡고있는 내 몸이 뒤로 튕겨져나간다. 허공에서 날렵하게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어렵지 않게 유적의 벽 위에 착지하며 나를 밀어낸 존재를 바라본다.
‘어째서...’
분명 그녀는 에페리아를 죽일듯이 싸웠던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에페리아를 보호하며 나를 향해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숨통이 틔인 에페리아는 격하게 기침을 한다. 몇초간 기침을하다 간신히 호흡을 정돈시킨 에페리아는 자신을 구해준 존재를 바라본다.
“뭐.. 뭐야. 왜 너가...”
“죽어있는 존재는 살아있는 존재를 해할 수 없어. 그건 모순.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야.”
검은 망토의 소녀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죽어있는 존재. 그것은 나를 칭하는 말일 것이다. 벌써부터 죽은 존재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두명다 상대한다.
‘가능해?’
-방법이 없다.
쟈크의 말에 동의하며 나는 내 봉을 양손으로 움켜쥔다. 그녀를 설득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나를 막는 이상. 막는 존재를 전부 물리치고 에페리아를 취해야만했다.
“위험등급 상승으로 1등급 전투태세로 상향.”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뭔가 꺼림찍한 분위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것같았다. 뭔가 이 주변이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점령되는 듯한 기이한 느낌.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불안감을 애써감추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기 위해 천천히 몸을 웅크린다.
“차원계 간섭허용. 부분적 차원 직접 조작 개시.”
파앙!
녀석의 성가신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단숨에 유적의 벽을 딛어 그녀를 향해 몸을 날린다.
“왜곡.”
‘아?’
검은 망토의 소녀가 내 손에 잡히려는 순간. 주변이 일그러지며 갑작스럽게 소녀가 내눈앞에서 사라진다. 화들짝 놀란 나는 나에게 벌어진 기현상에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려 소녀를 찾는다. 그런 내 등뒤에서 고요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중.”
쿠웅!!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동시에 내 몸에 거대한 쇳덩어리를 매단것처럼 빠른속도로 대지를 향해 추락한다. 나름대로 몸을 비틀어 지상에 착지해보지만 내 몸에 실린 정체불명의 무게 때문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못한 나는 바닥에 처박혀버린다.
‘이건 대체 뭐야?!’
-말도안돼. 마력은 느껴지지 않아!! 이건 마법이 아니야!
“무중.”
리시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녀의 입에서 또다른 단어가 튀어나온다. 동시에 몸을 일으키려던 내 몸이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게 허공에 떠오른다.
‘큿.. 도데체 무슨 일이...’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허공에서 허우적거려보지만 그것은 마치 허공에서 헤엄치는 듯한 멍청한 행동일 뿐이었다. 무형의 힘이 나를 들어올리지만 나는 그 힘에 대해 저항할 수 없었다.
“충격.”
콰앙!
곧이어 온몸을 커다란 망치로 힘껏 휘둘려 친듯한 충격과 함꼐 내 몸이 뒤로 튕겨져나간다. 공중에 떠있던 나는 그 충격에 저항조차 할 수 없었고 낙법조차 하지 못한채 무력하게 유적벽에 처박힐 뿐이었다.
‘크으...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
내 외침에 모두는 침묵을 지킨다. 그들또한 낯선힘을 체험하는 중이었다. 마치 조물주가 된 양 허공에 떠서 나를 내려보는 검은 망토의 소녀는 그저 한 단어를 뱉는 것 만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압력.”
콰지직!!
그녀의 또다른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방의 공간이 내 몸을 짓뭉개려는 듯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나는 그 힘에 저항해보려하지만 나를 압박해오는 힘의 정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말그대로 단순히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나를 짓뭉개고 있는 것이었다.
‘크으으.. 질것같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었다.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면 그만이었다. 내 몸을 짓뭉개려는 압력보다 더 큰 힘으로 저항하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나는 온몸의 힘을 짜내 나를 압박하는 힘에 저항한다.
-그만둬라.
그때 쟈크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둬라. 우린 실패했다.
‘무... 무슨 소리야?! 아직.. 아직 싸울 수 있어.’
-상대가 좋지않다.
-아마도 저 녀석은 차원의 조율자일꺼야.
쟈크의 말에 부가설명을 더하듯 리시아가 말을 받아 이어간다.
-그녀는 차원계 자체를 지배할 수 있어. 우리 마계나 차원의 틈이 아니면 녀석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어째서?!’
-그녀에겐 지금 이 세상 자체가 자신의 무기일테니까. 그녀를 여기서 이기려면 최소한 이 차원 전체를 날려버릴 힘을 가지고 있어야해.
‘......’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이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 진짜 신이 아니고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은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공간이 마치 나를 죽이려는 듯이 사방에서 옥죄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쟈크는 더 나쁜소식을 나에게 알려준다.
-거기다 이 이상은 너의 영혼이 위험해. 이미 너의 영혼은 한계에 가까워져있다.
이해못할 쟈크의 말에 나는 녀석에게 소리친다.
‘싸울 수 있다니까!! 내 몸은.. 내가 더 잘알...’
그 순간. 내 감각이 전부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빠른 속도로 어두워진다.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초점이 흐릿해진다.
‘큿!!’
하지만 순간적으로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짧게 신음을 삼킨다. 그리고 고개를 힘껏 좌우로 털어 방금전에 벌어진 일을 부정한다.
-봐라. 너의 영혼은 한계에 가까워져있다. 이 이상 싸움을 계속한다면 너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신경쓰지마! 어자피 사후세계따윈 믿지않아.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든. 힘껏 저항하다 너희들에게 영혼을 먹히든.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으로 그들의 의견에 부정하듯 악에 받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 그들의 침묵에 이를 악문 나는 다시금 내 몸을 옥죄이는 압력에 저항한다.
-안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대로 우리에게 먹힌다면... 너의 영혼은 혼돈에 먹혀버리게 된다.
‘그래봤자지.’
쟈크의 말에 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뀐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혼돈에 먹힌 영혼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소멸조차 되지 않으며 윤회의 축복에서 벗어나버린다. 그런 영혼들이 어떻게될까?
‘.....’
-이 세계가 아닌 차원의 틈세에 버려지게 된다. 그리고 영겁의 고통과 절망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끝없이 고통을 받게 된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차원의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말이지.
‘그런거.. 상관없어.’
-겪어보지않는한 모른다. 왜 혼돈에 먹힌 영혼들이 살아있는 생물을 무한히 증오하는 줄아는가? 그들이 빼앗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살아있다는 생물들이다. 혼돈에 먹힌 영혼들은 끔찍한 틈새속에서 살아있는 그들을 부러워할 뿐이지. 너 또한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다.
쟈크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옥죄이는 압력에 저항하는 힘을 풀지는 않는다.
-너도 그렇게 될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증오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며 너가 사랑하는 저 남자까지 증오하게 될것이다.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있던 나는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검은 망토의 소녀를 노려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보호를 받고있는 에페리아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문다.
‘혼돈에 먹힌 나는 타메르를 증오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지금의 나는... 그를 지켜야만하니까. 아무리 그를 증오해도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을 후회하진 않을꺼야.’
콰드득!!
순간 내 의지에 따라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동시에 당황한 리시아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이건... 공간왜곡?
바로 리시아가 에페리아를 붙잡을 때 썼던 힘이었다. 내 몸을 빌려 그런 힘을 사용한 만큼 그때의 감각이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그런 감각을 떠올리며 다시금 내 몸의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킨다.
-그만둬!! 더 이상 우리의 힘을 사용했다간...
‘시끄러. 내 몸이야. 내 의지야. 내 마음대로 할꺼야. 그의 행복을 지킬꺼야!!’
-이 멍청이!!
쟈크의 욕설을 들으며 나는 억지로 그들의 힘을 끌어모은다. 동시에 다시금 의식이 흐릿해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다시금 이를 콱 깨물어 정신을 차린 나는 흔들리는 시야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에페리아를 노려본다.
‘에페리아... 죽인다. 반드시!!’
콰앙!
많고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내 의지를 최대한 간략화하여 내 몸의 힘을 이끌어낸다. 곧이어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다시금 유적의 벽을 밟고 그녀를 향해 도약한다. 그런 에페리아 앞에는 검은 망토의 소녀가 나를 막아서고있었다. 그녀는 여유롭게 팔을 들어올려 손끝으로 나를 지목한다.
“가중.”
동시에 다시금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무게감. 에페리아를 향해 힘껏 도약한 내몸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한다.
‘크읏...’
나는 날 수 없었다. 내 몸에 가해진 정체불명의 무게감에 저항할 수 없었던 나는 에페리아를 향해 닿을 수 없는 손을 허우적거린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 에페리아가 보인다.
“킥. 역시 차원의 조율자.”
평정심을 되찾은듯 에페리아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나온다. 그녀는 어느새 선명한 푸른빛을 가득 머금은 손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검은 망토의 소녀를 겨눈다.
“하지만 이제 충분해.”
콰앙!!
곧이어 근거리에서 터지는 화염마법의 충격에 그녀를 보호하고 있던 검은 망토의 소녀가 지상을 향해 빠르게 추락한다. 하지만 허공에서 날렵하게 몸의 자세를 바로잡은 검은 망토의 소녀는 사뿐하게 유적지 위에 착지한다.
에페리아의 마법에 직격했지만 이미 그녀의 배반따윈 예상했다는 듯 검은 망토의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에페리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에페리아의 마법에 아무런 흠집도 없는 자신의 망토를 크게 흔들어 묻어있는 검은 재같은 것을 털어낸다.
“이제 내가 마무리하겠어!!”
에페리아의 배신과 동시에 내 몸에 가해진 정체불명의 무게감또한 사라진다. 하지만 이미 에페리아를 향해 뛰어오른 추진력은 거의다 사라진 후였다. 날수 없었던 나는 그저 에페리아의 눈앞에서 천천히 지상으로 추락해나갈 뿐이었다. 그런 나를 비웃으며 에페리아는 자신이 끌어모은 마나를 손에 뭉쳐 번쩍 들어올린다.
“내가 빚을 지면 몇십배로 갚아버리는 통이 큰 성격이거든.”
그런 그녀의 손 위에는 거대한 화염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그 정체는 다름아닌 화염석. 그 크기로보아 나 뿐만아니라 이 유적지 전체를 증발시켜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담은 마법이었다.
“이 유적지와... 너가 지키려는 사람들과 모두 같이 사라져버려라!!”
그리고 일말의 주저없이 에페리아는 그런 거대한 화염석을 나를 향해 던진다. 거대한 크기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위압감으로 유적지 전채를 짓누르며 화염석이 천천히 떨어져내린다.
‘막아야해.’
-무리다. 저런 걸 아무런 피해없이 막을 수는 없어.
‘막아야해!!!’
쟈크의 말에 나는 고집을 부리듯이 소리친다.
‘어떻게든 막아야해. 저게 떨어지면... 타메르가. 아니.. 이 유적지 전체가...!!’
-....
내 외침에 쟈크는 침묵을 지킨다. 나는 내 위에서 이글거리며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화염석을 바라보며 힘없이 지상을 향해 추락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지켜야한단 말이야... 나와 약속해줬잖아! 내 영혼을 먹는 대신 타메르만은 지켜주기로!!’
-모두들 어떻게 생각해?
-대규모 차원 균열로 틈새로 날려버리는 방법이 있지만...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
-나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규모의 마법으로 카운터를 날려 허공에서 붕괴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마력을 모으기 시간이 부족하다.
-저는 전투요원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모두들 부정적 의견들 밖에 없었다.
쿠웅..
그 사이에 지상에 추락한 내 몸이 가볍게 떨린다. 화염석에 넋을 놓고있는 터라 아무런 낙법도 하지 못했던 덕분이다. 하지만 다크 에테르에 감싸진 덕분에 아무런 충격이나 타격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화염석을 바라본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줘. 제발... 부탁이야.’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염석의 모습에 나 또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검은 존재들에게 도움을 청할뿐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목소리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내가할게.
그때. 처음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둬! 너가 움직이면...
‘하윽...!!’
또다른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등장함과 동시에 내 의식이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느껴진다. 마치 내 몸이 거대한 회오리에 휘말린 것처럼 격한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의식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좀만 참아.
-그만둬!! 이대로면 녀석의 영혼이...
-이미 자신의 영혼이 혼돈에 먹힐 준비가 되었다고 하잖아. 그런 각오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지러움속에서 나는 신체를 바로세우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니 쓰러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신체는 단단히 땅을 딛인채 서있었다. 곧이어 또다른 존재에 의해 지배되는 내 몸은 크게 무릎을 굽힌후 떨어져내리는 화염석을 향해 뛰어오른다.
-천지가르기.
짧은 한마디와 함께 내 몸의 기운이 봉 끝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곧이어 화염석을 향해 뛰어오른 내 몸은 자신의 봉을 힘껏 가로로 크게 휘두른다.
촤악!
검은 기운이 잔뜩 서린 봉끝이 화염석에 부딪힌다. 그러자 마치 순두부를 가르듯이 단단한 화염석의 표면이 갈라지며 봉은 시원스레 화염석을 가로지른다.
파앙!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봉이 화염석을 가르는 순간 무형의 충격파가 화염석을 꿰뚫고 지나간다. 그러자 봉이 가로지른 균열에 따라 화염석 전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다.
‘이건...’
특별한 마법이나 과학 기술이 아니었다. 순수한 체술 하나뿐. 그것도 나에게 아주 익숙한 네베르족 체술과 유사했다. 그런 힘으로 만들어낸 파괴력을 실감하며 나는 눈앞에서 천천히 좌우로 쪼개지는 화염석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런...
‘아...’
하지만 쪼개지는 화염석을 확인한 나는 작은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내 몸을 조종하던 정체불명의 여성또한 낭패라는 듯 작게 탄성을 지른다.
-속았어.
-이 비겁한 마녀자식!!!
반으로 쪼개지는 화염석 안은 텅비어 있었다. 애시당초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속빈 강정과도 같은 마법이었다. 천천히 갈라지는 화염석 넘어로 우리를 조롱하듯 웃음짓고있는 에페리아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 그녀의 몸은 분해되듯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언제나 단순 무식하네. 그러니까 넌 언제나 패배하는거야. 네이.”
나를 조롱하는 듯한 한마디를 남기며 에페리아는 있었던 자취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를 감춰버린다. 그녀가 이 세계에서 사라져 마계로 돌아갔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끝이야.
하지만 조용히 들려오는 한마디와 함께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목적이었던 에페리아가 사라진 나는 더 이상 정신력을 유지하지 못한다. 급격히 초점이 흩으러지며 멀어져가는 시야. 푸르른 창공이 칙칙한 회색빛으로 감싸지는 것을 보며 내 몸은 빠른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져내린다.
쿠웅..
곧이어 지상과 충돌한 내 몸이 가볍게 들썩이며 입가에서 끈적이는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이미 죽어버린 신체라 이렇다할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
‘....’
그것이 가까워져오고 있다.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니 애써 눌러뒀던 공포심이 갑작스럽게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곧이어 엄청난 피로감이 거대한 바위처럼 내 몸을 짓눌러가기 시작한다. 피로감에 파묻혀 사라질 것같은 몽롱함 속에서 쟈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으로 만족하는가?
‘...응.’
시야속에서 색이 사라지며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해버린다. 그런 기묘한 세상를 보기 싫었던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쟈크의 말에 대답한다.
-그녀에게 남자를 빼앗겨도 말인가?
‘어쩔 수 없잖아. 죽어가면서까지 그에게 남은 미련으로 끝까지 집요하게 엉겨붙고 싶지는 않아. 다같이 시궁창에 빠져 괴로워할 필요는 없잖아? 그와 그녀를 지켜줬으면 된거야. 그들은 행복할테니까. 그래. 그거면 충분해.’
-흐음...
‘난 패배자야. 단순한 패배자. 그러니 깔끔하게 빠져주면 되는거야.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그래... 그런거였군. 크크큭..
내 말을 들은 쟈크의 목소리가 바뀐다. 기계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던 그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수고했다. 네이. 정말 멋졌어.
그는 진심으로 나를 칭찬한다. 그런 칭찬에 나는 나도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내가 할 말이야. 마지막에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아쉽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군. 잘자라. 고통스럽진 않을꺼야.
‘...응.’
진짜 죽음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죽음. 그런 죽음을 직감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미련... 미련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미련을 억지로 끌어안으채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기는 싫었다. 그를 지켰다. 그리고 그의 행복을 지켰다. 내 빈자리는 키르비르가 채워줄 것이다. 내가 지켜준 그녀가. 그래 그거면 된것이다. 거기까지만 생각하자.
생각을 마치자 묵직한 피로감 속에서 내 몸이 천천히 분해되며 흩어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영혼이 사라진다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기서 내 의식은 끊어져버린다.
========== 작품 후기 ==========
봉식이의대출노트 / 네이 ;ㅅ;
geranium1 /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olar Eclipse / 하지만 슈퍼먼치킨 앞에서는 무력했다.
유운처럼 / 으아아아앙!! 그.. 그것만은 야메떼!!
실버링나이트 / ...넵 쥬금 ;ㅅ;?!
후. 한 3화정도면 이 스토리도 마무리 될 것같네요.
네.. 될것같아요.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