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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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휘감는 어둠은 나를 계속해서 심연으로 가라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그런 기운에 저항했다.
“타메르...”
그가 아직 나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저 붉은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둠의 늪 위에 서서 가라앉으려는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내 욕심떄문에 키르비르를 버렸던 나와 다르게 그의 손은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림자인 그에게 사과를 한다. 하지만 그림자일뿐인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단지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네이...
그때 메아리처럼 내 이름을 부르는 타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에 가느다란 빛이 흘러들어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빛이 흘러나오는 곳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밖의 세상이 보였다.
“타메르?!”
자그마한 틈을 통해 보이는 밖의 세상에는 다름아닌 타메르가 서 있었다. 그런 그의 근처에는 상처입은 리엔과 티에르가 쓰러져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돈의 힘에 침식되어 추해진 내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비쳐보인다.
“안돼...!!”
그의 눈동자에 비쳐보이는 추한 내 모습에 나는 비명을 지른다. 그에게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절대로 보여지면 안되는 내 모습. 나는 있는힘껏 나를 휘감아가는 어둠에 저항한다.
“타메르...!!”
어둠의 늪에 빠진 팔을 간신히 빼내 가느다란 빛이 흘러들어오는 곳을 향해 내뻗는다.
촤악!!
하지만 곧이어 그 빛은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며 검은 어둠의 기운이 내가 뻗은 손을 휘감는다.
-내가 이 기회를 놓칠 듯 싶으냐.
우득.. 우드득..
“아아아악!!!”
어둠의 기운에 휩싸인 내 팔은 마치 휴짓조각처럼 구겨지며 억지로 어둠의 늪에 파묻힌다. 뼈와 살이 으깨지는 고통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내 몸은 빠른 속도로 늪속에 파묻혀가기 시작한다.
-혼돈의 어둠속에 가라앉아 영혼의 한 조각까지 나에게 흡수되어라.
“타.. 타메르...”
늪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어두운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아 시야를 뒤덮어간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속에서 나는 내 손을 붙잡고있는 붉은 그림자의 손을 바라본다. 몸은 점점 깊숙한 곳에 빠져가지만 나를 붙잡는 그의 손은 포기하지 않고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네년이 어둠속에 삼켜질때까지... 나는 내 복수를 해야겠다.
“복...수?”
어둠속에 파묻힌 나는 점점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가느다랗게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키르비르... 그 망할 년을 내 손으로 없에야겠다.
“키르비르가... 살아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에 눈을 부릎뜬다.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붉은 그림자의 손에 붙잡혀 어둠속에 파묻히지 않은 내 팔에 힘을 준다.
“아직 그녀가 살아있어...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내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붉은 그림자의 손길을 느끼며 나는 이를 악문다. 어떻게든 이 어둠에서 빠져나가야했다. 내가 저지를 죄를 만회하기 위해. 키르비르. 그리고 타메르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대로 어둠속에서 사라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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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엘의 구축함인 디에그 데그가 박혀있는 방. 자신의 함선을 보호하듯 그 앞에 선 이리엘은 이 방을 방문한 불청객을 바라본다. 마치 도플갱어처럼 그녀와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소녀. 머리카락이 흑발이란 것만 제외하면 완전히 그녀와 판박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아리엘이었다.
철컥.
그런 그녀의 방문에 이리엘의 대답은 간단했다. 켈레브라의 리볼버를 들어올려 정확히 아리엘의 미간을 겨눈다. 더 이상 다가오지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바라보며 아리엘은 별 위협을 못느끼는 듯 천천히 이리엘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는다.
타앙!!
그 순간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이리엘이 들고있는 리볼버가 불을 뿜는다. 하지만 이리엘이 발사한 총탄은 아리엘의 미간을 뚫지않고 가볍게 그녀의 볼을 스쳐지나간다. 단순한 위협이었다.
뚜벅.
하지만 아리엘은 그런 위협사격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걷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리엘의 모습에 이리엘은 입술을 잘근꺠문다. 그리고 이번엔 위협이 아니라 정확히 아리엘의 미간을 겨눈다.
우뚝.
이번엔 반드시 미간을 쏘겠다는 이리엘의 의지를 느꼈는지 아리엘의 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아리엘은 감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눈동자로 이리엘을 바라본다.
“살아있었어.”
첫마디는 감탄이나 반가움의 감정이 담긴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지금 벌어진 사실을 설명하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리엘. 다시금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려는 듯이 혼자 내뱉는 중얼거림 같은 목소리였다.
“왜 나를 겨누는거지?”
곧이어 나오는 것은 질문이었다.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리엘의 행동에 대한 질문. 아리엘과 이리엘은 같이 수많은 싸움을 뚫고온 전우였다. 몇십년의 세월동안 손발을 맞춰온 전우. 하지만 그런 이리엘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실을 아리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은 침입자이니까.”
그런 아리엘의 질문에 이리엘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아리엘을 침입자라 칭하는 이리엘의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있다. 단순히 이 베히모스 유적지에 들어온 적이라는 뜻도 있었지만 자신의 삶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적이라는 뜻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녀의 말뜻을 이해한 아리엘은 짧게 대답하며 다시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그 순간 아리엘의 미간을 겨누던 이리엘의 총구가 미묘하게 떨린다.
“다가오지마.”
“....”
육언으로 오지말라는 경고를 내비치지만 그것으로 아리엘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리엘은 입술을 꽉 깨문채 아리엘을 향한 총구의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매마른 총성이 울려퍼진다. 하지만 이리엘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서 아리엘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
방심한 것이다. 이리엘은 그녀도 모르게 과거의 감정에 휘둘렸었다. 싸움을 같이하던 전우인 아리엘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은 그녀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주저하는 찰나의 순간. 아리엘은 기습적으로 자세를 낮춰 그녀에게 달려든다.
“읏!!”
이리엘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리엘을 향해 반격하려한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아리엘은 이리엘의 코앞까지 접근해있었고 당황한 그녀의 몸이 반응하기 남은 시간은 많지않았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돌아올 대가에 긴장하며 이리엘은 눈을 질끈감는다.
스윽..
“아...”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아리엘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달려든 아리엘은 이리엘을 공격하기보다 아무말없이 조용히 그녀의 몸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건... 무슨...”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이리엘은 당황한다. 냉혈의 아리엘. 그녀에겐 감정이란 없었다. 그저 효율적인 싸움과 전투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폐쇄돈 공간에서 혹독한 훈련만을 받아온 아리엘이었다. 실제로 그녀와 수많은 전투를 같이하면서 아리엘이 작은 생물이나 어린 인간에게 정을 주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못했던 이리엘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아리엘의 행동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
잠시 몇초동안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아리엘은 천천히 그녀의 몸을 감싸안은 자신의 팔을 풀어낸다. 그리고 한걸음 물러선 아리엘은 여전히 무표정한 감정이 없는 인형같은 얼굴로 이리엘을 바라보고있었다.
“인도자에겐 보고하지 않을꺼야.”
“어...째서?”
아리엘은 더 이상 그녀에게 용건이 없다는 듯이 등을 돌린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리엘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감출수 없었다.
“어째서!!”
난생처음 그녀는 목소리를 높혀 소리를 지른다. 그런 그녀의 외침에 돌아가던 아리엘의 발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이리엘을 바라본다.
“나를 데릴러 온거 아니야? 다시 같이 싸우기 위해서...”
“강요하지는 않아. 너는 그냥 너가 원하는 세계에 살면 돼.”
잠시 뜸을 들인 아리엘은 몇초동안 이리엘의 눈을 바라본다. 그제서야 이리엘은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 색은 검은 색과 갈색으로 서로 달랐지만 눈동자만은 같은 갈색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너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니까,”
아리엘은 그말 한마디만을 남긴채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굉음이 들려오는 지상을 향해 내려간다. 이리엘은 아무말도 없이 그런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매만진다.
아리엘이 자신을 끌어안은 순간. 언제나 기계처럼 차갑고 딱딱하게만 느껴젔던 아리엘로부터 따듯한 온기를 느꼈던 이리엘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한번 느끼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느낌이었다.
-레즈?
빡!
조용히 이리엘을 바라보던 켈레브라는 눈치없이 참견하는 한마디를 던진다. 그런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리엘은 그의 리볼버를 힘껏 바닥에 후려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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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이 알려주는 네이의 기운을 추적하면서 시란을 통해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아니 믿기 싫지만 네이의 배신. 그녀는 위기에 빠진 키르비르를 구하지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입술을 꽉 깨물며 나는 애써 그녀의 말을 부정한다. 비록 키르비르와 네이 사이에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튼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어떻게 할꺼야? 죽일꺼야?
시란의 섬뜩한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자초지종을 물어볼꺼야. 네이도 그녀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섣불리 행동할 녀석이 아니야.”
-하지만 녀석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야. 게다가 위험하기도 한다고. 괜히 손속을 봐줬다간... 당하는 것은 오히려 너가 될 수도 있어.
“어자피 당하는 것은 익숙해. 언제나 얻어맞고 다니는 난데... 그정도야 그동안 네이에게 저지를 잘못에 대한 벌로 생각해면 돼.”
-멍청이. 조심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시란의 말에 나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커다란 바위가 떨어진 듯 온통 폐허가 된 유적지,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키르비르의 탑을 바라본다.
“여기는...”
다른 곳이 아니라 키르비르의 탑이 무너진 파편들이 떨어진 곳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부숴진 유적파편들 사이로 키르비르의 방에 있던 가구들의 조각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콰득.
그런 잔해더미들을 짓밟고 그 위에 서 있는 네이를 발견한다. 무언가를 찾는듯 두리번 거리던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섬뜩한 이빨을 들어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데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를 노려보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들어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짧게 신음을 삼키며 대검을 들어올린다. 잠시 심호흡을 한 나는 붉은 대검을 움켜쥐고 잔해 위에 서있는 네이를 향해 달려간다. 그런 나를 향해 네이또한 거무튀튀한 빛을 내뿜는 자신의 봉을 들어올린다.
========== 작품 후기 ==========
요즘 큰일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너무 지칠정도로 큰 일이 있어서 글쓰기가 힘드네요.
실버링나이트 / 죽지 않죠. 히로인인데..
유운처럼 / 그게 제일 좋은거지만.. 요즘 힘들어서 그것도 힘들듯싶네요 ;ㅅ;
Solar Eclipse / 으허허헛;; 그래도 그만하신다면 뭔가 허전해질것같은 느낌일까나...
모두들 즐거운 설이 되셨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 열심히하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