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134화 (134/298)

134편

<-- Main stroy 타락 -->

“젠장.. 젠장..”

머릿속으로 네이의 모습이 떠나가질 않는다. 마치 자신의 심장을 떼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던 그녀의 모습. 슬픔에 가득찬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내 발목을 붙잡는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해.”

그녀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다급하게 갑작스레 등장한 비공정이 추락한 곳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막 추락한 직후라 자욱한 흙먼지가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추락지점까지 달려간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의외로 작은 비공정. 탑승 인원은 많아봐야 10명안팍이다. 이렇다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것을보니 추락의 충격으로 대다수의 인원이 죽은 것같았다.

“하지만..”

왠지 꺼림찍한 느낌. 고작 이런 일로 로터스가 그렇게 다급하게 경고할 리가 없었다.

부스럭..

그 순간 무너진 잔해사이로 자그마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마도 추락한 비공정의 생존자였을까. 나는 대검의 손잡이를 격하게 움켜쥔 채로 인기척이 느껴진 잔해를 바라본다.

“와아... 이거 예상보다 끔찍하군요.”

잔해를 해치고 나온것은 약간 어려보이는 나이를 가진 소년. 그는 자신의 머리에 누렇게 쌓인 나무 잔해들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당신이 그 유명한..”

녀석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오래가지않아 알아차리며 마치 친구처럼 인사를 내건내려한다. 하지만 그런 소년의 인사에 내 대답은..

“죽어라.”

그 어느때보다도 신속하고 주저없는 참격. 있는 힘껏 들어올린 대검으로 아직도 무슨 상황이 벌어진지 모른채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소년을 향해 내려꽂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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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경보.

“위치는?”

키르비르의 탑 아래에 육중한 그 크기로 묵직하게 탑을 받혀주고 있는 중앙탑.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디에그 데그안에서 이리엘은 엘의 경보를 듣는다.

-중앙탑 하층 외곽부분입니다. 느린속도로 이동중.

“방어무기는?”

로터스에게 중앙탑 방어를 위임받은 이리엘은 그동안 숙소에서 놀고먹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또한 수월한 일처리를 위해 중앙탑을 부분적으로 방어요새로 개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결과물로는 고정형 센트리건이나 지뢰, 적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크레모어등이 있었다.

-모두 이상없이 작동중. 하지만 표적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쿠웅.. 쿵!

엘의 말을 증명하듯 간간히 들려오는 지뢰와 크레모아가 터지는 폭음이 미세하게 디에그 데그를 흔든다. 방어 무기만으로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리엘은 한쪽에 오랫동안 내려두어 살짝 먼지가 끼인 가죽 벨트를 바라본다.

“타겟의 피해는?”

-전무. 이동속도나 공격에 대한 반응속도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방어무기로는 절대로 표적을 잠재울 수 없다는 엘의 말에 이리엘은 결국 가죽벨트를 집어들어 능숙하게 허리에 걸쳐맨다. 홀스터에 끼워져있는 한쌍의 리볼버를 꺼내 가볍게 조작해본 이리엘은 아직 쓸만하다 판단하여 다시 홀스터안에 끼워넣는다.

-함선의 직접적 지원은 중앙탑 붕괴위험이 있으니 불가합니다.

“알고 있어.”

식상한 엘의 경고에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한 이리엘은 한쪽에 걸쳐져있는 저격소총을 어께에 짊어진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귀걸이형 무전기를 귀에 고정시킨뒤 두어번 두드려 채널을 맞춘다.

“블랙 로즈 긴급 소집.”

-알겠습니다.

이리엘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약간의 잡음이 섞인 담담한 목소리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온다. 그런 대답을 들은 이리엘은 어께를 짓누르는 저격소총을 가볍게 고쳐매며 미리 준비된 소집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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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리엔은 바닥에 듬성듬성 떨어져있는 네이의 혈흔을 쫓아 달린다. 그녀의 예상대로 네이가 향한 곳은 키르비르의 탑.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리엔은 입술을 꽉 깨문채 멈추려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나간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봐도 네이의 뒷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바꿀 수.. 없는건가요...”

결국 네이를 뒤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허겁지겁 달려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세 바닥에 딱 붙은채 정지되어버리고 리엔은 허리를 굽힌채 터져나오는 격한 호흡을 간신히 진정시켜나간다.

“예언된 운명은...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건가요..”

리엔은 슬픈 눈으로 키르비르의 탑을 올려다본다. 자신이 본 미래를 어떻게든 바꿔보려했지만... 운명이란 잔악한 놈은 그녀에게 그런 미래를 수정할 기회조차 주지않았다. 이미 네이가 자신의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가버린것을 직감한 리엔은 흘러가는 운명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그저 조용히 슬픔을 삼켜나갈뿐이다.

“와다다다닷!! 비켜! 비켜요!!”

“에?”

그때 그녀의 등뒤로 들려오는 요란한 비명 소리. 그런 낯선 비명소리에 놀란 리엔은 휘둥그레진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자신의 등뒤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커다란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으... 으이잇!!”

그 그늘의 정체는 다름아닌 커다란 낙하산애 매달려있는 자그마한 꼬마 마녀. 낙하산의 줄을 붙잡고있던 소녀는 리엔과 자신이 충돌하려하자 이를 악문채 자신이 붙잡고 있는 줄을 가볍게 비튼다.

“꺄앗!!”

콰앙!!

그 순간 낙하산이 크게 기울며 리엔을 향해 곧두박칠 치던 소녀의 몸이 크게 휘청인다. 그와 동시에 간발의 차이로 리엔을 스쳐지나간 소녀는 요란한 등장에 걸맞게 시원스레 벽에 처박혀버린다.

“아... 괘.. 괜찮으세요?”

깜짝 놀란 리엔은 주춤주춤 벽에 부딪힌 소녀를 향해 걸어간다.

“아우우...”

벽에 시원스레 부딛혀 떨어진 소녀는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콧잔등을 비비며 눈물맺힌 눈으로 리엔을 노려본다.

“거기서 왜 멍하니 서있던거야! 위험했잖아!!”

“미.. 미안해요.”

자신보다 한참 어릴 것이 분명한 소녀였지만 갑작스레 자신을 윽박지르자 리엔은 움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녀에게 사과해버린다. 자신의 코를 문지르던 소녀는 그런 리엔에게 뭐라 몇마디 하려한 것같았지만 예상외로 순종적인 리엔의 모습에 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다.

“뭐 때문에 그렇게 멍하니 서있던거야?!”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뭔가 아쉬웠던걸까. 왜 리엔이 멍하니 서있던 이유에 대해 소녀는 질문을 던진다. 초면에 난대없는 질문이었지만 소녀의 기세에 눌린 리엔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속내를 그녀에게 말해버린다.

“예언된 운명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하지만 이유를 말하다가 리엔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정체도 모를 상대에게 자신의 속내를 순순히 말했다는 사실에 리엔은 자기 스스로를 질책하며 뒤늦게 소녀를 경계한다.

“뭐야... 별거 아닌 고민이었잖아?”

소녀의 입에서 나온 가벼운 대답에 리엔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멍청한 것일까. 리엔의 말에 별거아니라고 평한 소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주머니칼로 자신의 어꼐에 매달린 낙하산의 줄을 끊어낸다.

“당신은... 누구죠?”

자신에게 그다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용기를 낸 리엔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낙하산줄을 전부 다 끊어낸 소녀는 가볍게 몸에 묻은 실조각을 털며 대답한다.

“리니아! 이제 곧 대현자라 불릴 이 대륙 최강의 마녀야.”

“....”

너무나도 오만방자한 자신의 소개.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소개가 낯설지는 않았다. 마치 어디선가 많이 봤던 오만함과 근거없는 자신감. 리니아라는 소녀와 키르비르의 모습이 미묘하게 겹쳐보이는 리엔이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야? 비공정에 탄 맴버중에서 여자는 붉은 검사와 그 망할 마녀밖에 없었는데?”

“아.. 저는 리엔이에요. 이 곳에 살고있죠.”

“이곳에 살아?”

리엔의 대답에 리니아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륵..

하지만 그 순간 리니아의 자그마한 코에서 붉은 핏방울이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 피.”

방금전 벽에 호쾌하게 박아버린 충격 때문에 나온 코피라고 생각한 리엔은 주저없이 리니아에게 다가선다. 그런 리엔의 행동에 리니아는 살짝 놀라며 소매로 콧잔등을 닦아 핏자국을 없에보려지만 붉게 번진 그녀의 인중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줄기는 멈출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가 치료해드릴께요.”

그런 리니아를 바라보던 리엔은 주저없이 자신의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단순한 코피가나는 것을 치료하는 것은 리엔에게 별 어렵지않는 일이었다. 리니아또한 그녀의 손에 머무는 적의 없는 신성한 빛을 바라보며 아무말없이 그녀의 손을 받아드린다.

파치직..!!

“아얏...!!”

“아따따다다닷!!!”

하지만 그 순간 이변이 발생한다. 신성력이 가득머금어진 리엔의 손이 리니아의 코에 닿는 순간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리니아는 자신의 코를 부여잡고 바닥에 웅크려앉는다.

“어.. 얼래?!”

리엔또한 처음보는 낯선 상황에 당황한 눈으로 리니아의 코에 닿았던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마치 뜨거운 불덩어리를 만진건 처럼 붉은 화상을 입은 그녀의 손. 아직도 찌르르하게 통증이 남아있는 손가락을 매만지며 리엔은 리니아를 살펴본다.

“아야야얏...”

리니아는 커다란 눈망울에 곧바로 흘러내릴 듯이 눈물을 가득 담은채 자신의 코를 매만지고 있었다.

“미.. 미안해요.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라...”

리엔이 사과를 하지만 찡그려진 리니아의 얼굴은 펴질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 리니아에게 리엔이 손을 내밀자 움찔 놀란 리니아는 뒤로 두어걸음 물러선다.

“당신이... 설마 성자 리엔이야?!”

“에...? 네... 일단 그렇게 불렸었죠.”

리엔의 대답에 리니아의 얼굴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니까 그렇지!!”

곧이어 마치 리엔을 야단치듯 바락 소리를 지르는 리니아. 그녀는 아직도 진하게 욱씬거리는 자신의 코를 매만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그 교단과 상성이 잘 안맞는단 말이야. 평범한 신관들의 치료도 따끔따끔해 죽겠는데... 성자라 불리는 사람이 손댔으니..”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 리니아의 대답에 리엔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몇 년동안 교단에 있었지만 교단의 신성력과 상성이 안맞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었다.

“모르는 눈치네.”

그런 리엔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한 리니아는 피식 미소짓는다. 그리고 마치 남일 처럼 아주 태연하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왜냐면 그 교단에서는 이런 비이상적인 현상에 대해 조사나 연구하려하지 않고 이단으로 몰아붙였으니까.”

“이단...”

그 순간 리엔의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사실이 하나있었다. 그녀가 속한 교단은 마녀사냥에 심하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녀를 사냥하기 위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크루세이더라는 조직까지 만들정도로.

“그래서 내가 먼저 밝혔잖아. 나 마녀라고.”

“....”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금 리니아의 눈앞에 서있는 교단 소속의 리엔은 리니아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인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리니아의 태도에서 리엔을 향한 적의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고로 난 너희 교단에서 사람들에게 세뇌한 것처럼 사악한 마녀가 아니야. 가축을 병들게하거나 가뭄같은 거 일으키지 않는다고... 애시당초 일으키는 법도 모르고.”

정작 리니아는 자신을 마녀라고 매도하는 교단에게는 별 악감정이 없는지 아주 태연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끝에가서는 자신의 마스코트처럼 보이는 커다란 마녀모자를 고쳐매며 씨익 웃는다.

“난 현자가 되고싶을 뿐이야. 아주 많은 지식을 알고싶어하는 것 뿐이라구.”

그런 리니아를 바라보며 리엔은 그녀가 키르비르와 너무나도 많이 닮았다는 것을 속으로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며 점점 통증이 사그러들어가는 자신의 손을 매만진다.

“그럼... 당신또한 이 유적지의 중앙도서관에 용무가 있는건가요?”

유적지 중앙에 존재하는 도서관. 거기에는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지식이 잠들어있었다. 실제다로 이 유적지를 인간들이 점령했을때 그들이 가장 탐내하고 귀중한 자원이라 생각한 지식들이다. 리니아처럼 학구열이 높은 사람이 그런 도서관을 그냥 스쳐지나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리니아의 대답은 리엔의 예상밖이었다.

“아니. 사람을 찾고 있어.”

“사람...이요?”

“응.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 이름은 잘 생각이 안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남자를 만나야해.”

리니아의 말에 리엔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찾는 사람이 타메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내색하지않고 리엔은 태연하게 그녀에게 질문한다.

“그 분을 만나서 뭘 어떻게하려는 거죠?”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수 없었다. 일단 그 사실부터 판단해야한다는 사실에 리엔은 리니아에게 타메르를 찾는 용무에 대해 묻는다. 그런 리엔의 질문에 리니아는 마치 추억에 잠기는 듯한 얼굴로 대답한다.

“소중한 사람... 응. 무지 소중한 사람. 날... 지켜줬던 사람이거든..”

“....!!”

리니아의 말을 듣는 순간. 리엔은 마치 커다란 전류에 직격맞은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그것은 그녀가 봤던 타메르의 과거였다. 타메르와 같이 있었던 검은 마녀모자의 소녀. 그녀가 만남으로써 타메르의 운명이 갈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선이 두 개로 갈라진 것이다.

“다... 당신 설마...”

리엔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리니아를 바라보며 떠듬떠듬 입을 연다.

콰아앙!!

하지만 리엔이 뭐라 말을 하려는 사이. 커다란 굉음이 지축을 뒤흔든다.

“우아아앗...! 쫓아온건가?! 그.. 그럼 난 이만!!”

그런 굉음에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던 리니아는 리엔에게 말할기회조차 주지않은채 후다닥 어디론가를 향해 달아난다. 그런 리니아를 붙잡으려고 리엔이 발걸음을 옮기려하지만...

콰아앙!!

재차 터져나온 굉음은 그리 먼곳이 아니었다. 그녀의 바로앞. 단단한 벽돌로 만들어진 석벽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며 검게 변색된 팔이 튀어나온다.

“느껴져... 느껴진다... 그리 멀지않아...”

콰드득.. 콰드득!!

괴기스럽게 벽에서 튀어나온 검은 팔은 거칠게 좌우로 휘저어지며 벽을 천천히 무너뜨려나간다. 그리고 무너진 석벽사이에서 걸어나오는 한 남자. 팔과 다리가 괴기스럽게 뒤틀린채 검게 변색된 몸을 가진 남자는 억지스럽게 숨을 내쉬며 백색으로 탈색된 눈동자를 굴린다.

“흐.. 흐읏..?!”

그런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리엔은 자신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다는 감각을 느낀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 죽은 시신의 눈동자보다도 차가운 눈빛으로 마치 리엔을 꿰뚫으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본다.

우득.. 우드득..

남자의 입가 근처에서 사후경직으로 딱딱히 굳어버린 피부가 뒤틀리는 괴이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죽어버린 살점들이 억지로 들어올려지며 기괴한 미소를 짓는 남자. 그런 남자의 딱딱한 혀가 뚜둑거리며 움직인다.

“찾... 았다.”

굳어버린 성대에서 나오는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 그런 목소리에 리엔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 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속에서 몸을 바들바들 떠는 리엔.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기스러운 상황이 그녀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겨주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물체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바닥을 긁으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선다.

“오... 오빠?”

“히.. 힘을... 내가 살아갈.. 힘을!!!”

리엔이 오빠라고 부르는 그 괴물체는 마치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주저앉아 있는 리엔에게 다각선다. 그리고 뒤틀린 손으로 리엔을 붙잡으려는 순간...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괴물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아..”

리엔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존재를 바라본다. 하늘을 덮을 듯이 커다란 몸집. 그 어떤 갑옷보다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 그리고 수없이 격하고 험난한 전투를 겪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흉터들. 과거 그녀가 교단 소속일때 수없이 바라봐왔던 크루세이더들의 등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며 최전선에서 교단을 위해 싸워주던 수호자. 그런 존재를 지금 이곳에서 발견한 리엔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리엔.”

그리고 그런 리엔의 귓가로 낯익지만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라.. 란슈님?!”

바로 그녀를 화형대앞까지 끌고간 장본인. 통칭 철권이라 불리우는 이단자들의 응징자. 바로 란슈였다.

“말해라 리엔. 무엇이 신의 뜻인가.”

리엔을 대신해 괴물체를 마주하며 란슈는 리엔에게 묻는다. 흘끗 자신을 돌아보는 란슈의 눈에는 깊은 회한과 수많은 갈등이 내비쳤다.

“난 혼란스럽다. 비록 정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한때 성자라고 불린 너라면 알아낼 수 있을것이다.”

쿠웅..

그는 리엔을 보호하기 위한 자신의 싸움을 알리 듯이 양 주먹에 끼어진 건틀릿을 허공에 마주친다. 그와 동시에 붉은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혼란스러운 리엔의 정신을 바로잡아준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냐... 진정한 성자는 너냐? 아니면...”

잠시 입을 다문 란슈는 힘겹게 다음 말을 이어나간다.

“저... 괴물이냐.”

“크아아아아!!”

그 순간 자신의 식사를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괴물체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란슈에게 달려든다. 그런 괴물을 노려보며 란슈는 익숙한 파이트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란슈또한 괴물에 괴성에 버금가는 악에 받힌 목소리로 외친다.

“대답해라 리엔!! 나의 신념은... 누구를 향해야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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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이.”

키르비르는 자신의 방을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네이의 존재를 반긴다. 지금 지상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소란을 키르비르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가장 높은 탑 꼭대기에 있는 그녀의 방이라 그런지 지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진동에 상당히 민감했기 때문이다.

“키르비르.”

자신을 반기는 키르비르의 환영에 네이는 아무말없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른다. 그런 네이의 부름에 키르비르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별 의심없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타메르에게 들었어... 몸 안에 광혈의 저주가 걸린 피가 흐른다면서?”

“....”

키르비르의 말에 그녀를 향해 다가가던 네이의 몸이 우뚝 멈춘다.

“약은 챙겨먹은거야?”

그녀의 물음에 네이는 마치 녹이 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자신의 약을 잘 챙겨먹었다는 사실에 아주 환하게 웃는 키르비르. 그런 그녀의 미소가 싸늘한 비수가 되어 네이의 심장을 후벼파다못해 난도질해나가기 시작한다.

우둑... 우드득..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살기가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살기에 반응하듯 네이의 몸에 천천히 변화가 생겨가기 시작한다. 가볍게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함께 네이의 손에서 돌출되는 날카로운 발톱. 하지만 그런 변화를 모르는지 키르비르는 천천히 네이에게 다가선다.

“네이? 왜그래? 안색이 안좋아보여...”

“모든게... 모든게... 너 때문이야..”

“으..응? 무.. 무슨 소리야 네이?”

그제서야 키르비르는 뒤늦게 네이의 이상을 깨닫는다. 걸음을 우뚝 멈춘 키르비르는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네이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너를 도와줬는데... 너는 나를 배신했어...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네이.. 왜그래?”

네이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선다. 네이가 다가올수록 키르비르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치지만 네이는 어렵지않게 키르비르를 따라잡아버린다. 키르비르의 앞에선 네이는 주저없이 서슬퍼런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올린다.

“이... 이러지마... 네이. 제발...”

키르비르의 애원에 번쩍 들어올려진 네이의 팔이 잠시 우뚝 멈춘다. 자신의 앞에서 저항하거나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채 두려움에 애처롭게 몸을 떨고있는 키르비르.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네이는 입술을 잘근 씹는다.

네이또한 키르비르가 고의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순간적인 분노로 이성을 잃어 여기까지 왔지만 두려움에 떨고있는 키르비르의 모습을 보니 네이의 머릿속이 천천히 진정되어짐을 느낀다.

-뭐야... 포기하는거야?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너도 잘 알잖아. 그 녀석은 나중에 너에게 큰 걸림돌이 될거라고... 너도 봤을텐데? 타메르와 녀석과의 관계를...

그 목소리의 정체는 다른 누구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 스스로의 목소리였다. 타메르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마지막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든다.

“.....”

잠시 입을 다물고있던 네이는 오들오들떨고있는 키르비르를 내려본다. 수십가지의 갈등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 그녀의 눈에 키르비르의 팔목에 걸린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마력을 억제하는 팔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오늘만 지나면 키르비르는 자신의 마력을 되찾는다. 그렇게되면... 네이는 절대로 키르비르를 위협하거나 제거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네이의 주저없이 결단을 내린다.

“야야!! 동작그만!! 너 후회할 짓은 하지마.”

그 순간. 네이의 등 뒤에서 요란한 외침이 터져나온다. 낯선 목소리에 네이는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난 자신의 팔을 천천히 내리며 등뒤를 바라본다.

“하아.. 하아.. 여기 무지 높네요...”

거기에는 벽에 몸을 기댄채 거칠게 숨을 가다듬는 티에르. 그리고 그녀의 곁에 서있는 시란이 날카로운 눈으로 네이를 노려보고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 네 친구아니야?! 그런 녀석에게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너희들이...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시란의 외침에 네이는 등을 돌려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일말의 대화도 필요없다는 듯이 자신의 꼬리 끝에 매달고 다니던 방울을 움켜쥐어 그녀가 애용하는 기다란 강철봉으로 모습을 바뀌게 만든다.

“일단... 너 좀 맞자.”

퉁명스러운 네이의 대답에 뒤틀린 미소를 지은 시란은 티에르가 매고 있는 자신의 검을 천천히 뽑아낸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으잌ㅋㅋ 요번 스토리에선 리니아는 액스트라... 으흙..

실버링나이트 / ....!!

로나프 / 그렇죠. 이리엘이 애들 불렀으니.. 눈물의 대면식.. 이라해봤자 세뇌당했자나?

이러저러한폐인 / 으윽... 그런듯...이힛;;

Lizad / 엌ㅋㅋㅋ 걸렸다. 으잌ㅋㅋ

일단 대표적인 싸움은 4개.

타메르-늑대소년

이리엘-켈레브라

리엔-리아

시란-네이

스토리전개는

리엔전-타메르전-이리엘전-시란전으로 진행됩니당.

우왕... 오래걸릴듯. 하지만 금방금방 진행시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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