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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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비르를 홀로놔두며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탑을 내려온다. 일단 키르비르의 식사에 대한 문제는 내가 좀 힘들고 귀찮기는 하겠지만 직접 그녀의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다. 내려오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내가 가져온 음식들은 먹어주겠지.
하지만 그런 문제보다 내 머릿속은 키르비르와 네이에 대한 문제로 뒤숭숭했다. 일단 키르비르가 하는 말을 보아 네이는 키르비르에게 나를 향한 감정을 밝힌 것이다. 즉 키르비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저 모르는 척 나와 네이를 봐온 것이었다. 최소한 나와 네이의 평범치 않은 관계정도는 어림짐작했을 터. 그런 그녀가 네이가 내 몸을 부둥켜안은 모습을 보고 저렇게 큰 충격에 빠질 이유는 없었다.
“역시나... 말보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이 더 충격이 컸다는 걸까나...”
짧께 쓴웃음을 지은 나는 탑에서 내려와 나의 숙소로 향한다.
“아... 네이. 기다리고 있었던거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주 자연스럽게 내 침상위에 걸터앉은 네이가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겨준다.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설레임에 그녀의 귀가 앙증맞게 쫑긋걸니다.
“기다리라고 했었잖아.”
“그랬지. 하지만 진짜 이렇게 얌전하게 기다릴 줄은 몰랐는걸?”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에 앉는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잘 됐어?”
내가 오자마자 키르비르의 문제에 대해 물어오는 네이. 아무리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쫓아다닌 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키르비르를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뭐... 나쁘지 않게 끝났어. 키르비르는 너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더라.”
“아... 읏... 좋아하는.. 칫...”
부끄러운 듯 내 말에 뭐라 반박하려하지만 자신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는지 네이는 짧게 혀를 차며 말끝을 흐린다. 그런 네이의 반응에 피식 웃은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서... 그 다음은?”
살짝 볼을 부풀리며 나에게 내 대답에 대해 묻는 네이. 나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뭐... 이번엔 나의 감정에 대해 묻더라. 너를 좋아하냐고.”
“응. 응. 그래서?”
네이는 한껏 기대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기대에 쓴웃음을 머금은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했지.”
“...아.”
내 대답에 네이는 살짝 아쉬운이 섞인 탄성을 흘린다. 나는 그런 네이를 향한 사죄의 의미로 쓰다듬던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마춘다. 그러자 잠시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네이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나저나... 오전엔 대체 왜그랬던거야?”
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그녀가 오전에 갑작스럽게 나에게 쳐들어와 키르비르의 눈앞에서 다짜고짜 내품에 안긴 사실에 대해묻는다.
“에헤헷.. 그게 말이야.”
내 물음에 네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선 슬쩍 내 손을 감싸쥐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간다.
“타메르. 나 많이 좋아하지?”
“당연하지.”
비록 사랑한다는 말은 힘들었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왠지 부담이 없었다. 내 대답에 네이는 행복하다는 듯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은채로 자신이 감싸주니 내 손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난 엄청 행복해.”
“무슨 그런... 생뚱맞은 이야기야?”
갑작스레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고백타임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네이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의 품에 끌어당긴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어간다.
“요즘... 내 힘이 많이 줄어들었어. 눈치 챘겠지만 고양이로 변신도 안되고... 마치 뭔가에 간섭당하는 듯이 모든 힘이 예전 같지가 않아.”
“무슨... 병이라도 있는거냐?”
뭔가 가슴에 스멀 스멀차오르는 불안감에 나는 손에 힘을 줘 그녀의 손을 마주잡는다. 그러자 네이는 마주 쥐어진 자신과 내 손을 잠시 내려보다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리엔에게 검사를 부탁했어. 그 결과가...”
“그 결과가?”
마치 나를 애테우듯이 입을 다물어 뜸을 드린 네이는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자신의 몸을 기우려 내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 꽉 움켜쥐어진 내 손을 매만지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 몸속에... 타메르의 피가 흐른데.”
“.....”
잠시간의 정적.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함 속에서 그녀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침대의 이불을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려퍼질 뿐이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던 네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런 네이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한 해석을 묻는다. 그러자 네이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이. 타메르와 나의 아이야.”
“.....”
그녀의 말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힘껏 고개를 좌우로 털어 온갖 잡념을 던져낸 나는 네이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어간다.
“하지만... 너와 나는 종족이 다르잖아.”
“으음... 맞아. 원래는 아이가 생길 리가 없는데...”
내 물음에 네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서... 아무런 기대도 안했거든... 근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시. 네이는 어찌됬든 내 아이를 배에 품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쁜 듯 베시시웃으며 자신의 의문을 쿨하게 접어버린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다르게 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의 아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에 직면한 나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할지 모른채 공황상태에 빠진다.
“타메르는... 싫어?”
“아.. 아니.”
하지만 네이의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돌아온다. 나는 살짝 놀란 얼굴로 네이를 바라본다. 행복에 빠져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나는 살짝 긴장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이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는다.
“너무 놀라서 그랬어. 이런 일... 상상하지도 못했거든.”
그제서야 네이의 얼굴에 순수한 미소가 번져나간다. 그런 네이를 바라보던 나는 그녀와 비슷하게 빙그레 웃으며 감싸안은 그녀의 몸을 가볍게 토닥인다.
“나도 상상도 안했는데... 에.. 에헤헷...”
그녀는 다시금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웃음으로 무마시킨다. 하지만 살짝 웃는 그녀의 눈가에 맺혀가는 눈물방울. 그런 그녀를 토닥이던 나는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본다. 마계의 종족인 네베르족의 네이. 그리고 평범한 인간인 나 사이에 아이가 생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겨버린 아이. 이게 운명이라는 걸까.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외면하거나 버릴 수는 없었다.
“...네이.”
“으.. 으응?”
내 부름에 네이는 살짝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결혼... 할까?”
“....”
내 물음에 그녀는 무끄럼히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잠시후. 그녀의 얼굴에 갑작스레 웃음이 터져나온다.
“뭐.. 뭐야... 그 어색하고 멋없는 프로포즈는...”
“미... 미안.”
“몰라.”
네이는 나를 끌어안는다. 나또한 그런 네이를 끌어안는다. 그러자 네이는 나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그래도 나에게는 제일 멋진 프로포즈니까.”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네.”
기분좋게 미소지은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찾아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할까?”
“우리 둘의 이름을 섞는 것이 좋겠지.”
내 대답에 네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이 귀엽에 이맛살을 찡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잖아?”
“아.. 응? 그.. 그런게 있었어?”
내 물음에 네이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뭔가를 잊어버렸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두어번 헛기침한 나는 진지함이 가득한 얼굴로 네이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사.. 사... 크흠..”
“사?”
내 웅얼거림을 들은 네이는 내가 무슨말을 하려는지 직감한 듯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귀를 쫑긋이 세운다. 그리고는 내 얼굴이 비춰 보일정도로 초롱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네이.
“사... 아니야.. 아무것도...”
“뭐.. 뭐야아!”
결국 내가 그녀가 원하는 말을 못뱉고 얼버무리자 한껏 기대감에 고조되어있던 네이는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불만을 터트린다.
“나중에... 제일 중요할때에 멋지게 해줄테니까... 지금은 넘어가주면 안돼?”
“으우...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아직도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는 듯 네이는 작게 볼을 부풀린채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였던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볼살을 가볍게 꼬집는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양다리가 아니라 네이는 썸녀... 키르비르는 그저 동생같은 존재랄까?
Lizad / 으잌ㅋㅋ 그러기엔 키르비르와 네이의 관계가 쫀득함.
유운처럼 / 아이고;; 감사합니다!
BrightBiz / 울릉도 여행이 기후문제로 취소된것은 비밀.
실버링나이트 / 허허헛;;
이제 플레그는 네이쪽으로 기울고. 이대로 가버릴까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