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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하인-107화 (107/298)

10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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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폭풍을 바라보던 나는 괴로워하는 키르비르의 모습을 보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폭풍속으로 들어간다.

콰과과과!!

“큿...!”

나의 접근에 키르비르를 감싸고 있던 마력폭풍은 나를 거부하듯 거세게 몰아쳐온다. 나는 그런 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자세를 낯춘채 차분히 키르비르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가기 시작한다.

‘아빠...’

“....?!”

그때 요란한 폭풍소리에 실려 내 머릿속으로 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뭐야 이거..”

순간 환청이나 싶었지만 그러기에 너무 선명한 목소리에 나는 살짝 놀라 주변을 둘러본다.

콰과과!

하지만 내 주변에 들리는 것은 오직 내 귀를 괴롭히는 요란한 폭풍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아... 빠.’

그때 다시 한번 그 목소리고 선명히 내 머릿속에 구슬프게 울려퍼진다. 약간 어린 목소리. 지금의 키르비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리..가. 오지마!’

어느 순간. 아빠를 찾던 목소리의 억양이 바뀐다.

섬찟..

그와 동시에 전방으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 나는 예상치 못한 지독한 살기에 놀라 전방을 주시한다.

“.....”

거기에는 키르비르가 서있었다. 방금전에 보이던 괴로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초점없는 눈으로 나를 직시하는 그녀. 그런 키르비르는 나를 향해 천천히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나를 겨냥한다.

“오지마..”

‘꺼져버려!’

두가지의 목소리가 머릿속과 귀로 동시에 들리며 마력폭풍이 갑작스럽게 격렬해진다. 단순한 회전만 반복하던 폭풍은 어느센가 나를 밀어내는 듯한 방향으로 거세게 몰아쳐오기 시작한다.

“크읏..! 젠장!”

이대로 밀려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등에 짊어지고 있는 묵직한 대검을 꺼내 땅에 박아넣는다. 그리고 그 대검에 몸을 지지하며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폭풍을 견뎌낸다.

“키르비르!! 정신차려!”

나는 그런 키르비르를 각성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짜내어 그녀를 향해 소리친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여긴... 위험해. 그러니까...”

‘오지마... 더 이상은 싫어..’

두가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혼동시킨다. 육성으로 들려오는 익숙한 키르비르의 목소리. 그리고 정체를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 울려퍼지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나는 소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키르비르의 목소리에만 집중한다.

“돌아가... 나에게 오지마...”

‘나를 인정해줘.. 나를 이해해줘... 나를.. 사랑해줘...’

“부탁... 이야..”

‘더 이상.. 나를 심하게 대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나를 바라보며 나를 걱정하는 그녀의 눈이 잠깐이나마 슬픔으로 물든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까지 나를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문다.

“젠장... 그렇게 말하면.. 돌아갈 수가 없잖아!”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있는 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씩 조금씩 그녀에게 전진해나간다. 키르비르와 가까워질수록 나를 거부하는 폭풍은 더욱더 거세어진다. 온몸의 살갗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걸음을 옮겨간다.

“....”

키르비르는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그런 나를 초점없는 눈으로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을뿐이었다. 그녀와 두어걸음남은 상황. 나는 마지막 사력을 짜내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민다.

“크으읏!! 키르비르!!”

쫘아악!!

거센 폭풍의 중심지. 어마어마한 폭풍이 말 그대로 내 살갗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손가락 관절을 처참하게 뒤틀어버린다. 순식간에 허공에 살점들이 휘날리며 뿜어져나오는 붉은 피보라가 내 눈을 가린다.

“크아아아아!!!”

엄청난 격통. 광혈의 저주는 찢겨져나가는 팔을 필사적으로 회복해나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재생된 살이 찢어지고 다시 맞춰진 관절이 또다시 뒤틀려버리는 고통을 생생히 느끼는 내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크아앗! 젠장할!!!”

이대로 물러설수 없다. 마지막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고 팔에서 느껴지는 모든 통증을 외면한다. 그리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키르비르쪽으로 몸을 내던진다.

콰악!

손에 키르비르의 어께가 잡힌다. 그녀를 붙잡았다는 사실에 나는 힘껏 그녀의 몸을 내품으로 끌어당긴다. 그 순간 내 품에 안긴 키르비르의 동공이 크게 확장된다.

“아빠...?”

‘아빠...?’

머릿속과 귓속으로 들리는 두가지의 목소리. 하지만 그 두 개의 목소리는 동시에 같은 한 단어를 말한다. 그와 동시에 키르비르를 휘감던 미친 폭풍이 거짓말처럼 정지된다.

“서.. 성공한건가?”

바로전만해도 미친 마력폭풍의 굉음에 요란스럽던 방안이 말도안되게 고요해져있었다. 폭풍이 사라진후 엉망이 된 방을 찬찬히 둘러본다. 얼마나 강력한 폭풍이었는지 그 끔찍한 참상을 증명하듯 방안은 말그대로 뒤집어져있었다.

욱씬.

믿을 수 없이 고요해진 방을 둘러보던 나는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녀를 향해 내뻗었던 오른팔을 바라본다. 살갗이 처참히 찢겨사라진 내 오른팔은 섬뜩하리만큼 붉은 근육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상처로부터 울컥울컥 베어나오기 시작하는 진득한 핏물은 끌어안고있는 키르비르의 몸을 붉게 젹셔가는 것도 모자라 바닥에 떨어져 웅덩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

그때 귀와 머릿속으로 동시에 두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전처럼 서로 다른말을 따로따로 뱉어내는게 아니라 이번에는 그 말들이 서로 이어졌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으며 내 품에 안겨있는 키르비르의 얼굴을 바라본다. 여전히 초점이 없는 공허한 눈동자였지만 그녀는 정확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뭐.. 일단은...”

나는 처참하게 작살난 내 오른팔을 그녀가 보지못하도도록 숨기며 그녀의 물음에 답해준다.

“어째서...”

‘나에게 다가온거야?’

“너가 죽는 것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어.”

그녀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답한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혀온 키르비르였지만... 5년이라는 세월동안은 그런 미운정도 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거짓말.”

‘아직도...’

“내가 필요한거잖아.”

“....?”

하지만 키르비르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그녀가 필요하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나를 자신의 아빠로 착각하는 그녀의 상태로 보아 그녀의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 같았다.

“키르비르..”

나는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른다. 나는 그녀의 아빠에 대해 모른다. 그러니까 무슨대답이 정답인지 알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머리아프게 골을 굴리기보다 솔직담백하게 내 뜻을 그녀에게 밝힌다.

“나는 단지... 진심으로 너가 죽지 않길 바랄뿐이야.”

“....”

‘....’

내 한마디에 두 가지의 목소리가 동시에 침묵을 지킨다.

“나는... 너가 살아주기를 바래.”

차갑게 식어있는 그녀의 몸을 따듯하게 꽉 끌어안으며 다시금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담아 말해준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여전히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내품에 조용히 안겨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철옹성같이 굳게 닫혀있던 키르비르의 입술이 조그맣게 달싹거린다.

“꿈이구나...”

‘아빠가...’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으니까...”

그녀의 중얼거림에 정곡을 찔린 나는 흠칫 놀란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는척 내 감정을 숨기며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지 바들바들 떨리던 키르비르의 팔이 힘겹게 올라온다. 그리고는 부드러우면서도 애처롭게 내 몸을 끌어안는다.

“아빠...”

‘정말....’

마지막 소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치 연결이 끊기는 듯이 흐릿해지는 목소리 끝은 자그마한 노이즈로 끝을 맺는다.

콰아아아!!

그 순간. 흩어졌던 마력의 잔재들이 빠른속도로 그녀의 몸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그 또한 적지않는 폭풍을 일으켜왔지만 더 이상 그런 마력의 폭풍은 나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다시 흘러들어오는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지만 꿈속에서라도 만난 자상한 아빠라는 존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애처롭게 나를 끌어안은 팔은 풀지않는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모두.. 끝난건가..”

폭풍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진것을 확인한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키르비르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이미 그녀의 잠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마치 송장처럼 몸이 차가웠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행복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거참...”

나는 짧게 혀를 차면서도 키르비르의 미소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슬쩍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편히 쉬게하고자 나는 키르비르가 꺠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엉망이된 그녀의 침대로 다가간다.

“우.. 으읏..”

그 순간 자그마한 신음소리와 함께 힘없이 감겨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키르비르의 눈이 떠진다.

“...이런.”

그리고 몽롱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간신히 초점을 맞춰나간 키르비르의 눈에 내 얼굴이 포착된다.

“타... 메르..?”

“아아... 좋은 아침.”

나는 그런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으며 떄에 맞지않는 인사를 건낸다.

빠직..

그러자 그녀의 이마에 혈관마크가 큼지막하게 새겨지며 그녀의 눈매가 사납게 날카로워진다.

“왜... 너가 여기있는거야?”

“아.. 그게 약간의 일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걸까. 나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방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네이에게 어떻게 하냐는 눈짓을 보낸다. 그러자 네이는 크게 자신의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있어서 말이야...”

“무슨 일인데?”

“그.. 그게 말이지...”

나는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려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기위해 사방을 탐색한다. 엉망이 되어버린 키르비르의 방안. 진실을 알리지않는 이상 발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간다.

“그.. 그냥... 너의 얼굴이 보고싶어버려서.”

우왕좌왕하다... 얼떨결에 실언을 해버렸다. 평범한 소녀나 여자아이같은 경우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할만한 명대사였지만..

“오호라...”

역시나 키르비르는 달랐다. 흥미롭다는 듯이 작게 휫파람을 분 키르비르의 눈이 가늘어지며 입가에 비웃음을 걸며 나를 바라본다.

“뭐.. 별로 기분은 나쁘지않지만..”

콰악!!

그녀는 갑작스레 내 멱살을 거세게 움켜쥔다.

“악몽을 꿔버린 것같은데? 너 때문에 말이지...”

“...읏..”

이제 나를 습격해올 고통에 대비하며 눈을 꽉 감은채 이를 깨문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내가 예상하던 큰 충격은 오지않았다. 아무런 충격이 느껴지지 않자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따악

그 순간. 키르비르는 가볍게 손을 튕긴다. 그리고 이마에서 느껴지는 작은 따끔함과 화끈함. 갑작스러운 통증에 몸을 크게 움찔거렸지만 그다지 아프다고 할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다.

“흥. 그 정도로 용서해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나를 바라보는 키르비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키르비르는 자신의 조건을 밝힌다.

“이대로... 조금만 있어줄래?”

“....”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제안. 나는 그녀를 품에 안은채로 몸을 딱딱히 굳힌다.

“오해는 하지마... 그냥 옷이 좀 젖어서.. 추운것 뿐이야.”

“아... 아아.. 응.”

“그러니까... 조금.. 몸이 따듯해질때까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내려 내 품에 안겨있는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어느새 그녀는 내 품안에서 몸을 둥글게 웅크린채 작은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다.

“키르비르?”

그녀를 불러보지만 묵묵부담. 잠이들어버린걸까... 그런 그녀를 꺠우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편안히 잠들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깨우는 것 자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그녀를 눕힐 침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은 나는 내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있는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런건.. 적응이 안되는데..”

조용히 중얼거린 나는 천천히 키르비르로부터 시선을 떼고 정면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키르비르의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는 더 이상 몸을 숨길 이유가 없었던 네이가 나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

그녀는 키르비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듯 작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마치 키르비르의 휴식에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발걸음 소리도 안들릴 정도로 유령처럼 몸을 돌린다. 그렇게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가는 네이.

“...”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꼬리와 귀는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 작품 후기 ==========

Solar Eclpse / 어잌ㅋㅋㅋ;; 90일이나 결제하신만큼 저는 노예처럼 90일동안 연재하겠슴돠!

Lizad / 아니겠죠...? 네. 아니죠.

유운처럼 / 헐... 전 해피해피해보이는데... 지금도 충분히..?

로나프 / 앜ㅋㅋ 그건아니죠! 그건아니에요!!

읔...

어제 연재못했으니.. 오늘이라두...

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으니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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