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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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빅.. 삐빅..
어둠이 잠긴 베히모스 숙소내에서 고요함을 방해하는 낯선 소음이 낮게 울려퍼진다.
“...침입 경보.”
얼마가 낯선 경보소리가 꺼지고 어둠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침입 경보라니? 그게 무슨소리냐?
창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달빛이 그림자를 비춘다.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이리엘. 그녀는 침대 맡에 준비되어있는 자신의 가죽벨트를 허리에 둘러맨뒤 옷걸이에 옷대신 걸어둔 저격용 라이플을 어께에 짋어진다.
“누군가 침입했어. 위치는 키르비르의 탑...”
-흥. 내 감각에 잡히는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 기계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걸?”
-....
이리엘의 말에 로터스는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숙소밖으로 걸어나오는 이리엘 주변에는 몇 마리의 텐타클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젠장. 거기는 키르비르의 영역이다. 내가 멋대로 갈 수는 없다.
“내가 갈꺼야. 너가 말한.. 에페리아?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고...”
-에페리아..? 에페리아가 왔다는거냐?!
이리엘의 말에 로터스는 놀란듯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만큼 그가 이리엘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었다. 에페리아. 마계에서도 손에 꼽는 최강의 마도학자. 그런 그녀가 왔다면 로터스가 그녀를 감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로터스는 지금 자신도 감지못한 에페리아의 접근을 이리엘이 알아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엘이 말해줬어. 침입자의 정체는 검은 마녀. 에페리아라고...”
-만약.. 진짜 그녀석이면 너 혼자는 무리다.
“응. 알아. 그래서 너가 만들어준거잖아.”
로터스의 걱정어린 한마디에 이리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키르비르의 탑을 올려다본다. 그런 그녀의 등뒤로 어두운 그림자내에서 낯선 인물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이리엘님. 전투준비가 됬습니다.”
“알았어 로잔나.”
서류를 품에끌어안고있는 붉은 장발의 여성. 그녀의 정체는 다름아닌 켈레브라를 호위하던 정예맴버중에 하나. 로잔나였다. 하지만 타메르와의 전투에서 무릎이 박살난 그녀는 거무튀튀한 빛을 내뿜는 기이한 기계장치를 다리에 하고 있었다.
“지금... 전투 참여가 가능한 인원은 저랑 이누시카. 두명밖에 없습니다.”
“알았어. 다리는 어때?”
로잔나의 보고에 이리엘을 그럴줄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곁눈짓으로 로잔나의 다리에 장비되어있는 기계를 바라본다. 일단 디에그 데그의 군수공장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보조장비였다. 하지만 그런 보조장비는 무릎이 박살난 로잔나의 보행을 도와줄 뿐만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강한 각력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로잔나는 그런 기계장치가 맘에 들지 않는듯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낯섭니다. 하지만... 뭐.. 다행히 이것 덕분에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로잔나의 말을 들은 이리엘은 어둠속에 몸을 숨긴채 싸움준비를 마친 이누시카를 바라본다. 한팔을 잃어버린 이누시카. 그러나 그녀를 위해 의수를 달아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쪽에서 의수를 거부했던 것이다. 결국 이누시카는 외팔로 저격총을 사용한다 고집을 부렸고 이리엘은 엘에게 그녀에게 맞는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기이잉..
그런 이누시카의 오른팔에는 푸른빛을 흩뿌리는 기다란 총신을 가진 정체불명의 화기가 쥐어져있었다.
-젠장... 어쩔 수 없군.. 너의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쿠그그그..
로터스의 체념어린 한마디와 동시에 땅에서 진동이 일어나며 이리엘이 딛고 서있을 만한 크기의 거대한 촉수가 바닥에서 기어나온다.
-올라타라.
이리엘은 잠시 주저하지만 특별한 악의가 느껴지지 않자 결국 조심스럽게 미끌미끌한 로터스의 촉수위에 올라탄다. 그러자 이리엘이 올라탄 촉수가 힘껏 수축되기 시작한다.
-간다.
그런 촉수의 움직임이 뭘 뜻하는지 잘 알고있는 이리엘은 최대한 자세를 낮춰 촉수의 후방을 뒤덥고있는 딱딱한 갑피를 움켜쥔채로 호주머니에서 원격 통신기를 꺼내 귀에 건다.
파앙!! 모든 준비가 완료된 순간.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음과 함께 키르비르의 탑 끝을 향해 이리엘을 태운 로터스의 촉수가 쏘아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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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키르비르는 어느때처럼 자신의 잠자리를 정돈하여 침대위에 들어눕는다.
“아우... 아무리 생각해도 분하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키르비르님?”
침대에 발랑 들어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는 키르비르의 모습에 네이는 자신의 티세트를 정리하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분한듯 침대에서 바동대다가 달빛이 흘러들어오는 테이블에 걸터앉아있는 네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 녀석. 빨간머리... 짜증난단 말이야...”
“아... 타메르요?”
“응. 타메르.”
키르비르의 투정에 싱긋 웃은 네이는 조심스럽게 찻주전자를 기울여 두잔의 찻잔에 찻물을 받아낸다. 그리고 심플한 장식의 쟁반에 담아 키르비르가 걸터앉아있는 침대를 향해 가져갔다.
“그 남자가 싫으세요?”
“응. 무지무지. 처음 만날때부터 싫었어. 어리버리하고 무식하고 거기다 무진장 약하고... 맨날 괴물에 보호만 받으니까 그꼴이지..”
입을 삐쭉 내민 키르비르는 네이가 다가오자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맡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네이가 건내주는 뜨거운 찻잔을 받아서 입으로 후후 불어간다.
“하지만... 키르비르님. 키르비르님은 싫어하는 사람은 입에 담지도 않잖아요.”
“...응?”
그런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그녀의 맞은편에 걸터앚은 네이는 자신의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말한다.
“키르비르님이 진짜 싫어하시면... 아예 무시했었어요.”
“응? 그런가?”
키르비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투로 말한다. 그런 키르비르를 네이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거 있잖아. 진짜 진짜 싫으면... 입으로라도 씹고 싶은것. 그만큼이야. 녀석을 욕하지 않으면... 왠지모르게 입이 답답하다고나 할까?”
“그건... 관심의 증거 아닐까요?”
“아하하하핫.. 뭐야 네이. 농담하지마.”
네이의 말에 키르비르는 결국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하지만 네이는 웃지않는다. 그저 조용히 찻잔을 기울여 뜨거운 찻물을 식히지도 않고 조용히 마셔나갈 뿐이었다.
“나 그 녀석 싫어. 진짜로. 같은 곳에 있는 것자체가 짜증난단 말이야.”
네이가 자신의 말에 웃지않자 키르비르또한 진지한 얼굴로 네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그러자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던 네이는 그런 키르비르의 말에 그제서야 작은 미소를 띄운다.
“솔직히 이 곳 생활. 네이도 좀 지루하잖아. 이곳의 중앙 도서관이라 해봤자 거의다 봤던 책이거나 몇 세대 뒤떨어진 지식밖에 없으니...”
“그렇긴... 하죠.”
키르비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네이. 그녀또한 이곳의 생활이 언제나 활력있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폐쇄된 공간. 즐길거리는 하나없고 지루함으로 도색된 곳이 바로 이 베히모스 유적지였다.
“그나마 그 녀석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거야. 솔직히 어이없지만 좀 흥미는 있잖아? 그녀석이 무슨짓을 꾸미는지. 또 어떤 얼빵한 짓을 하는지. 그거 구경하는 맛에 살지. 가끔씩 녀석의 장난에 손발을 맞춰주는 것도 재미있고...”
그 말에 키르비르는 참지못하고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 키르비르를 바라보던 네이의 눈이 한없이 진지해진다. 조용히 키르비르를 바라보던 네이는 천천히 자신의 빈 찻잔을 내려두며 입을 열어간다.
“그럼... 키르비르님.”
“응? 왜?”
진지한 네이의 목소리에 키르비르는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채 그녀를 바라본다. 잠시 키르비르를 바라보던 네이는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떼어나간다.
“만약에... 타메르에게 여자가 생긴다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자?”
네이의 질문에 키르비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가볍게 콧방귀를 뀐다. 그리고 슬쩍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 대답한다.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어리버리하고 나약한 겁쟁이에게.”
하지만 그런 키르비르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초조하고 불안한 빛을 띄우는 그녀의 눈동자. 감이 날카로운 네이가 그런 그녀의 이상을 놓칠 리가 없었다.
“뭐... 뭔가가 있데?”
잠시 애꿎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키르비르는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조심스레 네이에게 타메르의 연인에 대해 묻는다. 그 순간. 네이의 얼굴에 숨김없이 어두운 그늘이 지어진다.
“키르비르.”
그리고 네이의 입에서 나오는 키르비르의 이름에는 더 이상 존칭이 쓰여지지 않는다.
“으.. 으응?”
그런 네이의 갑작스런 변화에 키르비르는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무슨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몸을 움찔거리며 조심스럽게 응답한다.
“솔직하게 말해줘.”
“아.. 으응.. 솔직히... 말할게..”
네이의 단호한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기세가 팍 죽어버리는 키르비르. 어느센가 키르비르는 네이의 앞에서 바른자세를 취하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뭔가 불안한듯 시선을 내리깔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에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어린아이처럼 나약하고 소심한 모습이었다.
“키르비르는 타메르를 어떻게 생각해?”
“....”
직설적인 네이의 질문에 키르비르의 어께가 살짝 떨린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려 네이의 눈치를 살피던 키르비르는 손가락으로 머쓱하게 자신의 볼을 긁으며 쑥스러운 듯 천천히 입을 벌린다.
“좋아.”
“....”
그런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발언에 네이의 얼굴이 더더욱 딱딱히 굳어진다.
“마치... 아빠와 같은 체취가 나... 그래서 좋아. 아빠 같아서... 나.. 아빠 많이 보고싶거
든... 꽤 많이 떨어져있었어... 외로웠어.”
마치 어린아이같은 말투와 자신의 한 말의 뜻도 제대로 모른채 베시시 웃음을 터트리는 키르비르. 하지만 오히려 지금 그녀의 말투와 외모가 마치 본모습인 것처럼 더욱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런 키르비르를 바라보는 네이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도 딱딱히 경직되어있었다.
“왜 그래 네이? 왜... 화났어?”
“아.. 아니... 아니야..”
어느세 네이는 키르비르를 향해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키르비르의 한마디에 깜짝놀라며 허겁지겁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네이.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문질러 딱딱히 경직된 표정을 풀고 애써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키르비르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혹시... 네이. 타메르 좋아해?”
“....!!”
말투와 태도가 어려졌다지만... 그녀의 예리한 감각과 눈치는 어디가지 않았다. 단숨에 네이의 이상을 눈치채고 되려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는 키르비르. 네이는 아무말없이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숨겨진 에페리아가 건내준 검은 구슬을 손으로 움켜쥐어간다.
“괜찮아. 네이. 타메르랑 엮여도 좋아!”
“...응?”
예상치 못한 키르비르의 말에 네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난 타메르를 좋아해.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상관없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키르비르의 모습에 네이는 쇠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저런 말이 튀어나올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녀였다. 만약 키르비르가 타메르를 좋아한다면 주저없이 그녀를 제거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키르비르가 양보라는 카드를 들고나올줄은 몰랐던 네이였다.
“나... 네이도 많이 좋아. 그리고 타메르도 좋아! 그래서... 둘이 잘됬으면 좋겠어..”
“...키르비르님..”
네이는 흘긋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은 구슬을 바라본다. 한순간이나마 키르비르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독차지하려고 했던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그녀였다.
“그런데... 네이. 그거... 왜 들고 있어?”
“아...”
하지만 키르비르는 네이가 손에 들고있는 검은 구슬의 존재를 눈치채버린다. 검은 구슬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네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가진 키르비르. 거기다 마계의 고대도서관에서 정보를 직접 읽어올 수 있는 키르비르가 그런 검은 구슬을 정체를 한눈에 파악해 버린다.
“그건... 영혼 공명석이야.. 그거 깨트리면.. 나 죽어.”
영혼 공명석. 마계에서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합성물이다. 타인의 영혼에 반응하여 공명하도록 설게된 것이 영혼 공명석. 일반적으로 이런 영혼 공명석을 깨트린다면 공명석 안에 내재된 파동이 주변에 퍼져버린다. 이런 파장은 주변 생물체의 영혼에 작은 충격을 주지만 말 그대로 작은 충격일뿐. 대상을 제거할 정도의 살상력은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영혼을 가진 대상에 한정되는 이야기. 현재의 키르비르에게는 그런 작은 충격마저도 큰 생명의 위협이 되었다.
키르비르는 죽음의 두려움에 떨리는 눈동자로 네이를 바라본다. 그러자 네이는 허둥지둥 그런 검은 구슬을 자신의 손안에 숨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구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 아니에요. 이거.. 읏!!”
결국 변명을 할 수 없었던 네이는 냅다 창밖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은 구슬을 집어던져버린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키르비르. 네이는 조심스럽게 침대 맡에 앉아 죽음의 공포로 눈에 눈물까지 머금고있는 키르비르를 끌어안는다.
“죄송해요. 키르비르님.”
“아니야. 네이. 괜찮아.”
네이의 품안에서 키르비르는 모든 오해가 풀렸다는 사실에 기쁜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 키르비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네이또한 자신이 한순간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후회한다.
타악!
하지만 그 순간. 키르비르는 기습적으로 네이의 가슴을 밀어 그녀를 밀쳐낸다.
“키르비르...?”
그런 키르비르의 행동에 네이는 눈을 휘둥그레뜨고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이미 키르비르의 오른손에는 네이를 향한 적의가 가득한 푸른 마나의 기운이 가득 머금어져있었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어이쿠;; 기다려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유운처럼 / 설마요~
믹시아 / 엌ㅋㅋㅋ 그러면 안돼죠;;
Lizad / 그래서 세상살이는 재미난거죠. 주종의 붕괴. 아쥬 죠소
실버링나이트 / ;;;;
로나프 / 으잌ㅋㅋ 한방이죠. 한국세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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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 간단 요약.
키르비르 : 훼이크다 요뇬아!
네이 : 응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