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편
<-- 키르비르, 네이 -->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따듯한 분위기의 아침식탁. 어느센가부터 식탁 자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다지 크지 않는 식탁주변에는 나와 이리엘, 네이, 그리고 리엔이 자리잡고 앉는다. 식탁 위에는 더 이상 한 접시도 음식을 놓치 못할 정도로 음식이 가득 차있었다.
“응.”
리엔의 질문에 네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포크로 콕 찝은 고기를 입에 물고 오물거린다. 저렇게 밝고 행복해하는 미소. 전에도 본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키르비르와 같이 있을때조차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밝은 미소를 내 앞에서 보여준다는 사실에 가슴 한켠으로는 왠지모를 이상한 기분이 감돈다.
쿠웅..
그때 단란한 식사를 방해하는 작은 소음이 들려온다. 이리엘은 바짝 긴장하지만 소음의 진원지로부터 이렇다할 살기나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내가...”
“좀 쉬어. 밤에 고생했잖아.”
나는 내 대신 몸을 일으켜 소음의 원인을 확인해보려는 네이의 어께를 눌러 억지로 그녀를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소음의 발생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뭔가 커다란게 떨어졌는지 적지않은 흙먼지가 일어나는 복도. 나는 가볍게 팔을 휘휘 저어 내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를 걷어낸다.
“...음?”
천천히 흩어져가는 흙먼지 사이로 조그만 그림자가 보인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 듯 마치 좀비처럼 좌우로 비틀거리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 나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춰 반격할 준비를한다.
“온다...!”
상대쪽에서도 나를 포착했는지 느릿느릿 걷던 발걸음이 급격하게 빨라진다. 짧게 마른침을 삼킨나는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그림자를 노려본다.
“타메... 앗..?!”
흙먼지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의 정체. 그것은 다름아닌 키르비르였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너무 늦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가 나에게 뻗은 팔을 낚아채 어께에 짊어진 후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단숨에 바닥에 내팽겨친다.
쿠우웅!!
처음보다 더 커다란 소음. 하지만 안심하기는 커녕 나는 더욱더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뒤어걸음 뒤로 물러선다.
“내.. 내가 무슨짓을...”
상대는 키르비르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상대로 장난을 치려고 한 것처럼보였지만...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여 전력으로 그녀를 바닥에 매쳐버린 것이다. 그에 합당한 보복은... 상상도하기 싫었다.
“....?”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바닥에 호쾌하게 매쳐진 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를 바라보며 욕을 하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야수처럼 달려들던가.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주춤주춤 그녀가 쓰러진 곳을 향해 다가간다.
“콜록... 콜록..”
살짝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키르비르는 몸을 둥글게 말고 괴로운 기침을 내뱉는다. 순간 나를 끌어들이러는 연극처럼 보였지만 진짜로 고통스러운지 그녀의 눈가에 맺혀있는 작은 눈물방울. 아무리 연기라해도 그녀가 눈물까지 보이면서 나를 유인할 리는 없었다.
“괘.. 괜찮아?”
나는 뒤늦게 그녀를 걱정한다. 그러자 격하게 기침하던 키르비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바라본다.
“너... 왜이래?!”
그런 그녀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었다. 얼마나 피로한지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고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네이가... 없어졌어...”
“그걸 밤새도록 찾아다닌거야?!”
그녀의 행동이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순간 나는 허겁지겁 바닥에 웅크린채로 괴로워하는 키르비르의 몸을 부축한다. 그러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도 힘든지 키르비르는 내 옷자락을 꽉 움켜쥔채로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나간다.
“무슨 일이에요?”
그때 계속되는 소음속에서 걱정이 지워지지 않았는지 리엔과 이리엘 그리고 네이가 복도에 모습을 들어낸다.
“네이...?”
피곤과 피로에 절어있는 상황에서도 네이의 모습은 잊지않았는지 키르비르는 두눈을 부릎뜨고 복도로 걸어나온 네이를 바라본다.
“키.. 키르비르님?!”
“네이!!!”
그녀를 발견한순간 마지막 젓먹던 힘까지 짜낸 걸까. 그녀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네이쪽으로 걸어간다. 그녀가 네이를 붙잡는 순간 네이는 아무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에 대한 어마어마한 불호령을 걱정했지만...
“어디갔었어...”
내 예상과 다르게 네이에게 비틀비틀 다가간 키르비르는 네이의 품에 안긴다. 그런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네이또한 쓴 웃음을 지은채 자신의 품에 안긴 키르비르를 가볍게 토닥여준다.
“일단... 들어가죠. 키르비르님도 잠시 자리에 앉아야겠네요.”
그런 상황을 돌아보던 리엔은 자신이 앞서 키르비르와 네이를 데리고 식당안으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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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식사에 참가한 키르비르. 그녀덕분에 앉을 자리를 잃은 나는 자리에 일어서서 내 몫의 음식이 담긴 그릇을 손에 쥐고 키르비르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들기 일보직전인듯 게슴치레 눈을 뜨고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었다.
“네이.. 이거..”
잠시 두어번 고개를 꾸벅거리던 키르비르는 뭔가를 생각해낸 듯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꺼내는 낯선 물건. 그것은 이 세계것이 아닌 듯 푸른 빛을 머금은 신기한 풀이었다.
“아... 이건...”
그 풀을 발견한 네이는 안타깝다는 듯 짧게 신음을 흘린다.
“어제까지 였었잖아...”
“아... 아니에요 키르비르님. 오늘 밤까지였어요.”
“....?”
서로 무슨대화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둘이서 뭔가 의견차이가 있다는 것. 하지만 극도로 피곤한 키르비르는 꼬치꼬치 따지기보다 그녀의 손에 조심스럽게 자신이 가져온 풀을 올려둔다.
쿠웅..
“...새근..”
그리고 그대로 식탁에 머리를 처박고 편안하다는 듯한 작은 숨소리를 흘린다.
“이게... 도데체 무슨 일이야?”
나는 밤새도록 네이를 찾아다니며 결국에 가서야 그녀에게 그 풀을 전해주고나서 잠이든 키르비르의 행동을 이해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러자 네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있는 키르비르의 몸을 가볍게 안아든다.
“우선... 키르비르님부터 편하게 눕혀드릴께.”
키르비르를 품에 안고 침대가 존재하는 숙소방으로 걸어가는 네이.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그녀를 쫓아 걸음을 옮긴다. 숙소로 들어선 네이는 품에 안은 키르비르가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둔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작게 몸을 뒤척이며 머리를 베라고 놔둔 베게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은채 깊은 잠에 빠진다.
“일단... 약간의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네이의 손에 쥐어져있는 키르비르가 가져온 푸른색 풀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자 네이는 무끄럼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푸른색 풀을 보다 이내 창문밖으로 손을 내밀어 풀과 함께 자신의 손을 털어버린다.
“너.. 뭐하는거야!”
“이제 필요없으니까.”
가볍게 손을 탁탁 털은 네이는 키르비르가 자고있는 침대맡에 걸터앉는다. 나는 조용히 팔짱을 낀채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의 눈빛으로 그녀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자 네이는 조심스럽게 키르비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상황을 설명해나간다.
“아까 본 풀은... 마계에만 존재하는 풀이야. 이름은 애미로안 풀.”
“일종의 치료제... 비슷한건가? 키르비르가 그렇게 걱정하면서까지 가져올 정도라면..”
“뭐 비슷해. 일종의 진정제 역할을 하는거야.”
“뭘 진정시키는데?”
“....”
내 물음에 네이는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키르비르를 내려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야수의 본성.”
“뭐?”
“우리 네베르족에게 짊겨진 저주야. 그냥... 발작 비슷한거야. 일정기간 애미로안 풀을 섭취하지 않으면 이성이 흐릿해지고 뭐가 옳고 그른건지 분간하지 못해. 타메르. 넌 더 잘 알것같은데...”
“....”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문다. 어젯밤 그녀가 보였던 이상한 모습. 평소의 네이라면 볼거라 전혀 상상도 못했던 그 모습이 내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네이는 가볍게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 타메르 덕분에 홀가분해졌으니까. 다음 주기까지는 괜찮을꺼야.”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키르비르가 이렇게 자기 몸을 망칠 정도로 널 찾아다니다니...”
“....”
내 물음이 정곡을 찌른건지 네이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여유롭게 키르비르의 머리를 쓰다듬고있었다. 짧게 고민하던 네이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아마도... 그런걸꺼야. 소중한 애완동물. 사실 키르비르님이 어른스러운척 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할 나이잖아?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을꺼야.”
“....”
뭔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다하게 콕 찝어내어 반박히지 못했던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모두 좋으니까. 네이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키르비르가 심하게 다친것도 아니었다. 괜히 꼬치꼬치 따져서 일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 모두 좋게 끝난 것이다. 그러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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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끝나긴 개뿔이.”
“미안하다니깐...”
내 앞에서 단단히 팔짱을 끼고 날카롭게 세워진 눈꼬리로 나를 노려보는 키르비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쓴웃음을 흘린다.
“도데체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한거지?”
“실수라니깐... 흙먼지가 자욱해서 안보였어.”
나는 지금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아마도 이리엘이 당했던 느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키르비르는 어디서 구해온지 모를 단단한 쇠줄로 내 양 발목을 묶은뒤 쓰러질 듯 기울어진 유적 구조물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아놨다. 덕분에 바람이 몰아칠대마다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아주 어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유야 어찌됬든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너가 나를 아~주 호쾌하게 바닥에 매쳤다는거지. 그 사실은 변함없고 너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해.”
아주 지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독불장군. 독재자다. 하지만 힘이 약한 내가 반박할 수가 있나. 그저 내 억울함을 호소하듯 길게 한숨을 쉬며 축 늘어지는 수밖에.
“하여튼. 거기에 매달려서 반성하고 있어!!”
결국 키르비르는 그 말 한마디만을 남긴뒤 자신의 탑으로 돌아가버린다. 홀로 허공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나는 내 몸을 좌우로 흔드는 망할 바람을 만끽하며 다시금 긴 한숨을 흘릴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Solar Eclipse / 아이고..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저는 행복합니다요!
로나프 / 헤에... 그건 저도 잘. 아직 거기까지 기획이 안되서. 그때 상황봐서 돌아오거나 안돌아오거나...
유운처럼 / 응앜ㅋㅋㅋ 저리가 커플 저리가! 으아아아아!!
타카요 / 얍~! 아주 죠소!
Lizad / 내 소설엔 3P란 읍써 ;ㅅ;
후우... 오늘은 결혼식.
아옼ㅋㅋ 더러워.
나도 결혼하고픈데.
이쁘고 맘착하고 말잘듣고 가사잘하고 돈많이 벌어오고 아이 잘키우는 여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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