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편
<-- 이리엘, 네이 -->
“아우.. 이 녀석은 어디간거야...”
해가 지고 푸른 달빛이 낡은 베히모스 유적지를 영롱하게 비추는 어두운 밤. 키르비르는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베히모스 상공을 비행한다. 그런 그녀의 손 안에는 이 세계에 자라지 않는 낯선 풀이 한줌 쥐어져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텐데... 이 중요할때에 대체 어디간거지?”
이미 두세번은 베히모스를 전부 돌아다닌 듯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듯 키르비르는 다시금 베히모스 창공을 선회하기 시작한다.
“기척도 숨기고... 무슨 일이 있나?”
사방을 돌아다니던 키르비르는 유적지 사이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건물인 숙소에 조용히 다가가 창문틈을 통해 그 안을 확인해본다. 하지만 숙소 안에서도 그녀가 찾는 인물은 없었다. 결국 안절부절하던 키르비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스텝의 머리를 자신의 탑을 향하게 한다.
“돌아올수도 있으니까... 방에서 기달려보자..”
작은 희망을 품은듯한 중얼거림과 함께 키르비르는 허공에 정체모를 푸른 빛 감도는 풀의 자그마한 잎사귀 하나만을 남기고 빠른 속도로 자신의 탑을 향해 쏘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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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게 돌아오셨네요.”
이리엘과 숙소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것은 매일 깔끔히 관리해서 새하얀 앞치마를 두른 리엔이었다. 다행히도 적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화력이 중앙탑에 집중된 덕분에 외곽에 있던 숙소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아아.. 좀 일이 있어서...”
비록 숙소 지하에 있는 목욕탕을 들렸지만 아직 이리엘의 처분에 대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리엔을 만나지 않았었다. 나는 내 뒤에 몸을 반쯤 숨긴 이리엘의 등을 살짝 밀어 리엔에게 그녀를 보여준다.
“아~ 누구에요?”
“그게.. 말하지면 긴데.. 간단히 표현하자면 동료야.”
내 말에 리엔은 싱긋이 웃으며 살짝 자세를 낮춰 이리엘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건 알고 있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 리엘.”
친근하게 다가오는 리엔의 태도에 움찔하던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내 바지자락을 꽉 움켜쥐고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예쁜 이름이네요. 저는 리엔. 잘부탁드려요.”
리엔은 서슴없이 이리엘을 향해 자신의 손을 내민다. 나와 리엔을 번갈아 돌아보던 이리엘은 잠시 주저하다 조심스럽게 리엔이 뻗은 손을 마주잡는다. 그러자 리엔의 입에 걸린 온화한 미소가 짙어진다.
“들어가요. 좀 늦었지만... 저녁밥을 차려놨으니까요.”
자신을 이끄는 리엔의 손길에 이리엘은 당혹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리엔에게 끌려간 이리엘은 식당을 향해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겨나갈뿐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던 나 또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들의 뒤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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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살짝 데친 야채. 그리고 약간의 고기. 적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로 차려진 저녁식탁앞에 나와 리엔. 그리고 이리엘이 둘러앉아있었다. 그다지 식욕이 없었던 나는 고기를 입에 넣어 쫄깃한 식감을 즐기며 이리엘을 바라본다.
“....”
양손에 포크와 수저를 들고 쉴세없이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이리엘. 나름 음식의 맛에 반해 허겁지겁 먹고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자그마한 입으로 수용할 음식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열심히 자신의 작은 입을 놀리고 있었지만 줄어드는 양은 미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상외의 맛에 취해 열심히 먹고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사랑스러워보일 정도였다.
“맛있어요?”
그런 이리엘의 모습이 보기좋았는지 리엔은 평소에 보지못할 진한 미소를 입에 걸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있는 이리엘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 리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한 이리엘은 다시금 고기 한점을 포크로 찍어 입가로 가져가 오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동료란것은 어떻게 안거야?”
나는 또다른 고기 한점을 입에 털어넣으며 리엔에게 묻는다. 그러자 리엔은 조용히 야채를 한조각 입에 가져가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봤으니까요.”
“...내 미래?”
내 물음에 리엔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는 의미모를 눈빛으로 이리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그녀는... 타메르씨에게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될꺼에요.”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다시금 이리엘을 돌아본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모르는 지 그녀는 적당히 데쳐진 야채를 한조각을 입가로 가져가 아삭거린다. 저런 이리엘이 든든한 동료라니...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 말이었다.
“그런데... 이리엘씨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으..으응?”
“뭐... 평범한 방법으로 이리엘이 저희 동료가 될리는 없잖아요?”
그녀는 애꿎은 야채와 고기를 포크로 콕콕 질러 꼬치로 꿰어내며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괜히 가슴이 뜨끔한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뭐... 그다지 이상한 일은 없었어. 약간의... 문제만 약간 있었을 뿐이지.”
“약간의 문제라구요? 흐음...”
리엔은 입에 포크를 물고 조용히 이리엘을 바라본다. 이리엘은 여전히 리엔이 차려준 음식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그 맛에 취해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요... 저런 어린 아이를 어떻게 하진 않았겠죠.”
다행히도 리엔은 얼마가지 않아 별 의심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믿어준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속으로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좀 살살해주세요. 저래뵈도 꽤나 여린 아이니까요.”
“크흡..!! 뭐.. 뭔소리야?”
그녀의 난감한 발언에 나는 입에 씹던 음식을 뱉어내며 그녀에게 되려 소리를 치지만 리엔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동요없이 자신의 읍식을 입에 가져가면서 말한다.
“뭐... 보였어요. 살짝 악수할 때.”
“어째서 그런 기억들만 보는거야?”
단편적이나마 상대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리엔의 능력.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살짝 망각하고 있던 나는 간신히 흥분한 감정을 진정시키며 그녀에게 차분히 질문을 던진다.
“강렬한 기억이 가장 우선적으로 보이니까요.”
“...”
나는 아무말 없이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일단 리엔의 예언이 100%확실한 것인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자신만만한 태도로 보아 왼만하면 대부분 그녀의 예언이 맞는듯 싶었다. 피곤한듯 얼굴을 문지른 나는 슬쩍 이리엘을 바라본다.
“후아...”
드디어 식사를 마친걸까. 이리엘은 입안 가득히 오물거리고 있던 음식들을 단숨에 삼키며 만족스러운 한슴을 흘린다. 그리고는 아직 반 이상 남아있는 자신의 몫의 음식들을 아깝다는 눈으로 돌아본다.
저렇게 어리버리하고 맹한 어린 꼬맹이를 내가 어떻게 하다니... 물론 이리엘과 비슷하게 키르비르도 어리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녀와 다르게 이리엘은 정신적으로도 아직 미숙해보였다.
“하여튼 뭐... 그게 쩝... 틀릴 수도 있겠지...”
“무슨..?”
그제서야 뒤늦게 우리들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리엘의 얼빵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나와버린다.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리엘을 바라보며 나는 내 앞에 남아있는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하여튼.. 리엔. 이리엘 방이나 좀 안내해줘. 나는 말이야...”
말을 마친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몇 분전부터 창가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키르비르가 있었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요~”
리엔또한 알고있었는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이리엘의 손을 가볍게 말아쥔다. 그러자 이리엘은 움찔 놀라며 리엔을 경계하지만 리엔은 그녀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은채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이끈다. 그러자 이리엘또한 그런 리엔의 손길을 거부하지않고 얌전히 그녀의 손에 이끌려 걸어간다.
“후우... 그나저나 무슨 일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까지 몰랐다는 듯이 넌스레를 떨며 키르비르가 서 있는 창가를 향해 다가간다. 그 순간...
빠악!!
“크헛!!!”
“기다렸잖아!!!”
앙칼진 키르비르의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불이 번쩍인다. 뭔가 보복이 올거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면해보니 눈앞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타격이었다.
“뭐야 대체?! 알고 있으면서 뭐하고 있던거야?!” “아니 뭐.. 식사중이었잖아. 안그래도 이리엘이 잘먹는 것같...”
“시끄럽고. 혹시 네이 보지 못했어?”
키르비르는 날카로운 작두처럼 내말을 싹뚝 끊어먹고 자신의 자신이 찾아온 목적부터 말한다. 하지만 나는 뚱한 얼굴로 그녀에게 얻어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딴청을 피운다. 그러자 발끈한듯 다시금 스텝을 강하게 움켜쥐는 키르비르. 하지만 난 그런 그녀의 앞에 자그마한 접시 하나를 건낸다.
“저녁도 안먹었다고 하더라. 끼니는 꼭 챙겨먹어.”
“....”
그것은 리엔이 키르비르의 몫으로 남겨둔 간단한 치킨 셀러드. 거기다 구하기 힘든 꿀을 사용해 허니 드레싱까지 뿌려 달콤하고 고소하면서 야채의 상큼한 맛까지 일품인 그녀의 수제품이었다.
“자. 아.”
유혹이 먹혀들었던 걸까. 키르비르는 잔뜩 힘을 주고 움켜쥔 스텝을 휘두르지 못하고 주저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나는 야채와 함께 달콤한 드레싱이 뿌려진 치킨 한조각을 포크로 찝어 그녀의 입가로 가저간다.
“뭐.. 뭐야!! 내가 애인줄 알아?!”
타악!
하지만 그냥 받아먹어 줄 리가 없는 키르비르였다. 그녀는 날카롭게 나를 쨰려보며 내 손에 쥐어진 포크를 낚아챈다. 조금은 애교가 있었으면 상당히 귀여울 녀석인데... 역시나 성게처럼 까칠하고 가까이 가기 힘든 녀석이다.
“하튼. 네이 못봤어?”
퉁명스럽게 네이의 행방을 물으며 포크에 찝어진 야채 셀러드를 입안으로 가져가는 키르비르. 입안에 야채샐러드가 들어가자 잔뜩 화가 나있던 키르비르의 얼굴이 한순간 환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르비르는 간신히 다시 눈꼬리를 세워 나를 노려본다.
“네이. 못봤어?!”
“흐음... 본적은 없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녀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한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못믿겠다는 눈으로 나를 지그시 노려보지만 이내 치킨 셀러드 하나를 입안에 가져가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리고 횅하니 등을 돌려 걸어가는 키르비르. 냉담하게 어둠속으로 걸어 살아지면서까지 샐러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야채를 씹는 아삭거리는 소리를 남기는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네이가 없어졌다라...”
네이. 그녀는 키르비르의 직속 하인. 로터스와 나와 비슷한 관계다. 하지만 나와 달리 네이는 키르비르를 향한 충성심으로 무장된 충실한 하인이었다. 그런 네이가 키르비르에게 아무런 말 없이 사라져버리다니... 고작 몸종인 네이를 찾기 위해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키르비르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지금 네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흐음...”
비록 베히모스 유적지가 넓다고는 하지만 네이가 자주 갈만한 곳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키르비르가 있는 키르비르의 탑. 지하의 거대한 중앙 도서관, 그리고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이 숙소. 나에 비해 마법을 통한 기동력이 월등히 빠른 키르비르는 그 모든 장소를 다 찾아보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찾아온 것이 확실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뭔가 찝찝하기는 했지만... 키르비르가 찾지못한 이상 내가 도움이 될 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네이의 실력또한 만만치 않았다. 텐타클들은 위협이 되지 않았고 최악의 상황. 위기의 순간이 온다해도 작은 고양이로 변할 수 있는 네이는 별 어려움없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음이 분명했다.
“뭐... 그 녀석 정도면 별 일이야 있겠어?”
네이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며 나 또한 오늘 밤을 보내기 위해 내 방의 문을 열어간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몸은 딱딱히 경직될 수 밖에 없었다.
“...네이?”
키르비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네이가 다름 아닌 바로 내 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조용히 앉아있던 그녀는 내가 등장하자 살짝 놀란듯 몸을 움찔 떨며 나를 바라본다.
“아... 타메르.”
“여기서 뭐하는거야? 키르비르가 지금 널 얼마나 찾아다니는지 알고는 있는거야?”
내 방에 있는 네이의 존재에 살짝 당황하며 키르비르에게 한마디 연락없이 내 방에 숨어있는 그녀를 질책한다. 하지만 네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데체 무슨 일이야? 키르비르랑 싸우기라도 한거야?”
“그런건 상관 없잖아.”
“...뭐?”
대뜸 튀어나오는 네이의 한마디에 나는 순간 벙찐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자신의 주인이자 충실히 모셔야할 키르비르가 상관없다는 네이의 발언. 평소의 그녀의 태도로보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발언이었다.
“너... 뭔가 이상해.”
“알아.”
내 말에 짧게 대답한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는 듯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자신보다 살짝 키가 큰 나를 조용히 올려버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인다.
“나도 내가 이상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도데체 무슨 뜻이냐.”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나는 살짝 그녀를 경계한다. 하지만 그런 내 태도에 상관없다는 듯 네이는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온다.
“알고싶어서 그래.”
“무엇을..?”
내 코앞까지 다가온 네이는 그제서야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자 콧가를 간질이는 네이의 체취. 약간의 땀내음과 평소에 느껴지지 않았던 은은한 향의 향수. 그리고 옅은 비누냄새가 밤바람에 실려 내 콧가를 간질인다.
“내 몸의 뜻인지.. 아니면 내 마음의 뜻인지.”
그런 한마디를 내뱉는 네이의 얼굴에는 희미한 달빛을 받아 분간하기 어려운 미묘한 홍조가 띄워져있었다.
========== 작품 후기 ==========
로나프 / 다 반전코드~ 반전코드~
유운처럼 / 으잌 노력해보곘습니다~ 그래도 처음은 목석같이 시작해야죠. 요부같은 캐릭터는.. 낯설지만 일단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Lizad / 응...?!
여기는 오리지날에 없었던...
네이와의 오봇한...
...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