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편
<-- 이리엘 -->
화악..
“후우...”
키르비르의 말대로 숙소 지하에 마련된 목용탕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본다. 그러자 나를 반겨주는 것은 습기가 가득한 악취나는 공기가 아닌 기분 좋은 온기를 품은 수증기들이었다. 가볍게 손을 휘저어 시야를 가리는 증기들을 털어낸 나는 목욕탕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역시... 마법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놀랍게도 목욕탕은 마치 새것처럼 깔끔하게 치워져있었다. 욕탕안에 더럽게 고여있던 물도. 덕지덕지 부터있던 이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물질들까지 모두 깔꿈하게 처리되어있었고 탕안에는 새하얀 김을 뿌리는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참방..
“으음...”
그런 욕탕의 물속에 손을 넣어본다. 약간 뜨겁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들어가기 무리인 온도는 아니었다.
“어이 이리엘! 빨리 들어와!”
나는 나와 같이 목욕탕에 내려온 이리엘을 부르며 먼저 욕탕안에 몸을 담근다.
촤아아악.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한 온수의 느낌을 만끽하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욕탕 속 깊숙한 곳으로 내 몸을 밀어넣는다.
“후우우...”
온몸의 피로가 녹아 흘러내리는 오묘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는 느낌을 즐기며 욕탕벽에 기댄채 기분 좋은 한숨을 흘린다.
찰랑..
그때 욕탕의 물이 가볍게 흔들리며 누군가가 욕탕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린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떠 파문이 시작된 지점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역시나 이리엘이 조심스럽게 욕탕에 들어와 내 반대편 자리를 잡고 다소곳이 앉는다.
“....?”
나는 그런 이리엘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본다. 수건으로 간단하게 허리만을 감싸맨 나와 다르게 녀석은 보기도 답답하게 가슴부터 수건으로 돌돌 말아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뭐... 그런 차림새가 녀석의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보기에 꽤나 답답해 보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뭐... 그런 것으로 하나하나 따질필요는 없겠지.”
이리엘에게 안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린 나는 욕탕에 머리를 기댄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리엘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연다.
“이봐.”
“....”
내 부름에 이렇다할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욕탕의 물이 가볍게 찰랑거리는 것으로 보아 이리엘이 내 목소리에 반응하여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넌.. 어떻게 할꺼냐?”
“...몰라.”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정말로 무책임했었다. 하긴... 녀석이 뭘 알겠는가. 광혈의 저주를 품은 나나 비 이상적으로 괴물같은 마력을 가진 키르비르를 제외하고 녀석은 이 베히모스에 발을 딛고 살아남은 최초의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일단 녀석의 존재를 영원히 숨기기란 불가능했다. 언젠간 로터스에게 발각될 일. 이렇게 된이상 계속 도망다니는 것도 무의미했다.
“비공정을 가져가지 못하는 이상... 여기에 남을 꺼라고?”
나는 다시금 녀석의 의사를 물어본다. 행여나 지금와서라도 베히모스에서 나가고 싶어한다면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는 있었다. 물론 유적지에서 벗어난다해도 베히모스의 험악한 산맥에서 객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이리엘의 운에 맡겨보는 것이다.
“방법을 찾을 떄 까지만.”
그런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만이라.. 로터스의 눈을 속이고 저 거대한 비공정을 뺴돌릴 방법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결론적으로 여기에 남겠다는 뜻이다.
“하아...”
이리엘의 처분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내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피곤한듯한 긴 한숨과 함께 모든 고민을 없에버린다. 일단 지금은... 이 편안함을 만끽하자. 그에 대한 건.. 뭐.. 나가서 생각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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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제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따듯한 물의 감촉도 질릴떄가 되자 나는 천천히 눈을 뜬다. 가볍게 하품을 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촤아아악..
그러자 내 움직임에 따라 욕탕의 물이 크게 일렁인다.
“아..”
그런 욕탕의 물의 울림에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잘 모르는 지 고개를 꾸벅거리며 달콤하게 졸고있던 이리엘이 휘둥그래진 눈으로 파문을 일으킨 주범인 나를 바라본다.
“뭐야.. 내가 꺠운건가? 미안.”
나는 아직도 잠에 깨지 못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이리엘의 모습에 가볍게 사과를 던지고 욕탕에서 걸어나온다. 그리고 목욕탕 한쪽에 마련된 돌의자에 앉아 오래된 비누를 집어든다.
“이런 기회도 흔치 않으니까. 이왕이면 깔끔하게 씻어두는게 좋겠지.”
험준한 베히모스 산맥에 고립된 이 유적지에서 급수시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그럴떄에 대비해 빗물을 받을 수 있는 물탱크를 마련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도 대다수가 전부 파손되어 물을 보관할 공간은 극히 제한적일 뿐이었다.
“흐흠..”
간만에 깔끔한 샤워라... 즐거운 마음에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간신히 타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천조각을 들어올린다.
털썩.
그 순간. 내 바로 옆자리에 이리엘이 자리잡고 앉는다. 욕탕의 물이 아직 어린 녀석에겐 조금 뜨거웠던 걸까. 녀석은 붉게 달아오른 몸으로 자리잡고 앉아 나를 흘끗 훑어본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비누와 타올을 손에 집는 이리엘.
“....”
나는 그런 녀석을 조용히 바라본다. 하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에 별 의심없이 넘길 수도 있었지만 왠지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뭐해? 안씻어?”
하지만 이리엘은 양손에 비누와 타올을 들고 씻을 생각도 하지않고 나와 똑같이 나를 무끄럼히 바라볼 뿐이다.
“하아...”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것 같다고나 할까. 때떄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는 이리엘의 모습에 작게 한탄하며 나는 녀석으로부터 관심을 끊는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진 타올에 비누를 비벼 가볍게 거품을 일으킨다.
쓰슥..
“....”
그러자 이리엘도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똑같이 자신의 타올에 비누를 비벼 거품을 일으킨다.
“....”
그리고 내가 행동을 멈추자 이리엘또한 타올에 비누를 묻히는 행동을 멈추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이봐.”
내 행동을 따라하며 나를 조롱하는 듯한 이리엘의 태도에 발끈한 나는 녀석을 부른다. 그러자 되려 왜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이리엘.
“왜 날 따라하는 거냐?”
나는 돌려말하지않고 단도진입적으로 내가 기분나빠하는 녀석의 태도를 지적한다. 그러자 무끄럼히 나를 바라보던 이리엘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나를 지칭하며 입을연다.
“타메르. 당신은 베히모스의 생존자.”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자기 자신을 지칭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나. 베히모스에서 살아가야할 사람.”
“그러니까....”
한마디로 베히모스에 살아가고 있는 내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자신또한 베히모스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겠다는 뜻인가?
“미안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어이없가도 단순하며 어리버리한 이리엘의 행동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이리엘에게 내가 베히모스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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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타메르. 당신은 로터스의 하인?”
“아아... 그래. 그 대가로 이 베히모스에서 살아가는거지.”
“....”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않았다. 단순히 베히모스를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문어괴물인 로터스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으며 그에 대한 제한조건. 예를 들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던가.. 심장 근처에 알이 심어져있다던가. 그러한 이야기를 이리엘에게 해줬다. 그러자 이리엘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 나도 하인이..”
역시나 그의 대답은 나를 따라 하인이 되겠다는 대답. 하지만 나는 주저없이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안돼. 넌 떠날 사람이잖아. 한번 하인이 되면 평생동안 로터스의 밑에서 일해야한다고.”
“알아. 하지만 그것이 내 평생이 되지 않고 로터스의 평생이 될뿐이야.”
“뭐...?”
오만한 이리엘의 대답에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리엘을 바라본다. 그러자 이리엘은 확신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디에그 데그를 수리하면... 그 괴물정도야 한방에 없엘 수 있을꺼야.”
“디에그.. 데그? 아.. 그 비공정?”
그의 카드는 바로 그가 끌고온 은빛 비공정 디에그 데그. 척봐도 범상치 않아보이는 비공정이었지만... 글쎄. 그걸로 로터스를 잡을 수 있을까? 아직 이리엘 녀석이 로터스를 대면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녀석은 로터스가 얼마나 거대하고 괴상한 생물인지 잘 모르는 것같았다.
“시끄러. 괜한 헛짓거리하려하지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해볼테니까.”
무식에서 오는 만용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물론 그녀가 로터스를 이길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로터스의 방이 키르비르의 탑 아래에 있는 이상. 저 거대한 비공정으로 로터스를 공격하면 자신의 탑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키르비르또한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볍게 이리엘을 구박하며 조용히 비누를 묻힌 타올로 내몸을 쓱쓱 닦아간다. 그러자 내 구박을 들은 이리엘또한 내 행동을 따라 타올로 자신의 몸을 쓱쓱 문질러가며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뭐... 조그만 동정심일 뿐이야. 우리 베히모스에 너처럼 어린 소년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거든.”
솔직히 이리엘과 비슷한 소년 소녀가 들어온적은 많았다. 일명 천재라던가? 신동이라던가. 뭐 그런분류의 꼬맹이들이었지만... 대부분 그런 녀석들은 가장 빨리 죽임을 당한다. 어리고 미숙한 만큼 저항이 거칠었고 살짝만 건들어도 금방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엘의 케이스는 좀 달랐다. 저항조차 하지않았고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순순히 내 말을 잘 들었던 녀석은 용케도 지금까지 잘 살아있을 수 있던 것이었다.
“남자? 하지만 난..”
조용히 내 말을 듣던 이리엘은 뭔가 의문이 생겼는지 뭐라 말을 하려한다. 하지만 난 녀석의 말을 짜르며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마저 끝낸다.
“아아.. 그래그래. 만약 너가 여자였다면 그 말로가 끔찍했겠지. 꼬마라도 여자는 로터스가 아주 유용하게 써먹거든. 원래 로터스의 방침대로라면 남자들은 전부 죽여야하지만.. 너는 좀 달라. 마음에 들었거든.”
“....”
“그나저나 뭐라고 말하려했나?”
“아.. 아니... 아무것도..”
내 물음에 이리엘은 황급히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지만 이내 관심을 끊고 내 몸을 닦아가는데 열중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몸을 닦아가자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로 혼자는 수행할 수 없는 한계가 다가온다.
“등은... 어떻게 닦지.”
그러고보니 평소에도 대충 물로 씻는데... 덕분에 슬슬 가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다고 키르비르나 네이에게 닦아달라 할 수도 없고... 혼자있을떄는 벽에 문대거나 비비는 등 좀 추한 모습을 보해가며 닦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봐 이리엘!”
내 부름에 이리엘은 자신의 몸을 타올로 닦아가다 나를 흘끗 바라본다. 그런 이리엘에게 내가 쓰던 타올을 던져주며 녀석을 향해 등을 돌린다.
“....?”
그러자 이리엘은 자신의 손에 들린 타올과 내 등을 번갈아 돌아보며 이해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이리엘의 손에 들린 타올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 타올로 내 등좀 밀어줘.”
“...응.”
내 지시에 이리엘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잠시 주저하다 이내 조심스럽게 타올을 집은 자신의 손을 내 등위에 올려둔다.
“우엇?!”
그리고는 힘차게 내 등을 말 그대로 밀어버린다.
“으허엇?!”
갑작스레 내 등을 미는 예상치 못한 이리엘의 행동에 나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추하게 앞으로 고꾸라져버린다.
“이리엘!!!”
난데없는 봉변에 나는 감정 서린 목소리로 이리엘을 부르지만 이리엘은 되려 아무 잘못없다는 눈으로 무끄럼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밀.었.어. 타메르. 너의 등을.”
자신에게 잘못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밀었다는 단어를 강조한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리엘이 행한 행동은 단순한 밀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등을 미는 것이 아닌 내 등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하아...”
어이없기는하지만 전혀 지적할 것이 없는 이리엘의 대답에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왠지 뭔가 미묘하게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는 이리엘이었다. 하지만 나는 화내기보다 내가 원하는 밀기라는 것에 대해 조용히 녀석에게 설명해준다.
“아... 미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하는 이리엘.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솔직히 나에게 사과를 한다. 녀석의 솔직담백한 사과를 들은 나는 다시금 그를 향해 등을 돌린다.
“그럼... 제대로 부탁한다.”
잠시 주저하던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내 등에 손을 올려두고 타올로 천천히 내 등을 문질러나간다.
쓰슥..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손길이었기 때문에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준다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끝.”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느리고 조심스러웅미 가득했지만 내 손이 닿지않는 등을 꼼꼼히 닦아준 이리엘은 다시 나에게 내 타올을 돌려준다.
“아아.. 고마워.”
아쉬운감이 남았지만 나는 이리엘에게 감사를 표하며 녀석이 건내주는 내 타올을 받는다. 그리고...
“너도 닦아야겠지?”
“...어?”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며 멍청한 탄성을 지르는 이리엘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는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리엘의 손목을 붙잡고 녀석이 손에 들고있는 타올을 뺏아든다.
“아.. 나는 사양..”
이리엘은 당황하며 손을 비틀어 내 손을 떨쳐내려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어께를 꽉 눌러서 못도망치게 그의 몸을 붙잡는다.
“사양할 것 없어. 이왕 씻는거 깔끔하게 씻는게 좋잖아?”
그리고는 이리엘을 등돌리게 앉히게 한 뒤 등을 닦는데 방해가 되는 녀석이 돌돌 매고 있는 타올을 벗겨낸다.
“우읏...”
그러자 이리엘은 황급히 몸을 앞으로 숙이고 웅크리며 자신의 양팔을 가슴주변으로 교차시킨다.
“뭐야..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너무 과민한 이리엘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강제로 벗긴 이리엘의 타올을 녀석의 허벅지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녀석의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손으로 그녀의 어께를 붙잡은채로 천천히 이리엘의 등을 타올로 문질러간다.
“우웃...!”
예상외로 조금 아팠는지 이리엘의 인상의 살짝 찌푸려진다. 하지만 그런 고통속에서도 이리엘은 도망치려고하지 않고 꿋꿋하게 참아나간다.
“흐음...”
예상외로 부드러운 피부. 아직 어린 나이라서 그런걸까. 소년이라기보다 소녀라고 하기에 걸맞은 새하얀 피부에 속으로 감탄하며 나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힘조절을 해나간다.
“자자.. 끝!”
자그마한 이리엘의 등을 대신 닦아주는데 오랜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깔끔하게 이리엘의 등을 다 닦아준 나는 가볍게 녀석의 등을 두드리며 허벅지에 올려뒀던 이리엘의 타올을 손수 그의 허리를 감아 묶어준다.
“마지막으로 물로 행구면 끝이다.”
여전히 자신의 가슴을 양팔로 가리고 있는 이리엘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금 따듯한 욕탕에 몸을 뉘인다. 그러자 이리엘은 잠시 주저하다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욕탕으로 걸어들어온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다 내 반대편 자리잡고 앉는다.
“.....”
특별히 할 것도 없었던 나는 욕탕에 몸을 기댄채 내 반대편 자리에 앉아있는 이리엘을 관찰한다. 왠지 타올을 벗겨서 하반신만 가리게 한 뒤로 녀석의 행동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졌다. 거기다가 그의 양팔을 자신의 가슴을 가린채로 교차되어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
“.....”
처음엔 단순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유지하니 보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리엘. 너.. 뭐 숨기는거라도 있냐?”
결국 내 생각이 닿는 것은 뭔가 남이나 나에게 보이기 싫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아.. 아니!! 어.. 없어..”
내 질문에 이리엘은 온몸을 움찔거리며 황급히 부정을 표한다. 하지만 녀석도 꼭 누구처럼 거짓말이 상당히 서툴르다.
“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엘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자 이리엘또한 화들짝 놀라 몸을 튕기듯이 일으켜세우며 나를 경계하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타악!
“읏!!”
단숨에 녀석의 손목을 낚아챈 나는 이리엘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쪽으로 잡아끈다. 그러자 이리엘은 몸을 아래로 숙이며 어떻게든 내 손에서 손목을 빼내기 위해 이리저리 비틀어보지만 녀석이 내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혹시 가슴에 흉터나 상처같은게 있는거냐?”
“어.. 없어. 그런거!”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이리엘은 되려 자유로운 한 팔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다. 괜히 고집을 부리는 이리엘의 모습에 호기심만 더욱 가증된 나는 다른 한손마저 이리엘을 향해 뻗는다.
“그럼 가릴 필요가 없잖아?”
“으읏!!”
내 손이 이리엘의 손목을 잡는 순간. 이리엘은 전에 없던 격한 반항을 보인다. 어떻게든 나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위해 온몸을 비틀며 뒤로 뒷걸음질 치는 이리엘. 이정도로 격한 저항을 예상치 못했던 나는 얼떨결에 이리엘의 손목을 놓쳐버린다.
“위험해!”
하지만 그 순간 욕탕의 가장자리에 있던 이리엘이 뒤로 물러서려하자 그의 다리가 욕탕 벽에 걸려버린다. 뒤로 기울어지는 이리엘의 몸. 딱딱한 돌로 되어있는 목욕탕 바닥에 넘어졌다가는 적지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큿!!”
나는 반사적으로 이리엘의 몸을 붙잡기 위해 녀석에게 달려든다. 그러자 이리엘은 되려 기겁하며 나를 밀어내려하지만 나는 억지로 기울어지는 이리엘의 몸을 끌어안는다.
콰앙!!
하지만 쓰러지는 이리엘의 몸을 붙잡을 수 없었다. 격하게 저항하는 이리엘을 감싸안고 나와 이리엘은 호쾌하게 바닥에 넘어져버린다.
“크으읏..”
다행히 이리엘이 자그마한 뒤통수가 호쾌하게 바닥에 충돌하기전. 나는 이리엘의 머리를 내 팔로 감싸 안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 팔이 좀 욱씬거리기는 하지만 이리엘의 머리가 으깨지는 참상은 막을 수 있었다.
“괜찮냐?”
조금 통증이 가시자 나는 뒤늦게 이리엘의 상태에 대해 묻는다. 녀석또한 깜짝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리엘의 양 손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안고있는 내 팔을 붙잡고있었다.
“....”
“....”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녀석이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던 녀석의 가슴을 향해 움직인다. 그런 내 시선에 이리엘은 움찔 놀라지만 내 몸에 눌려 옴짤달싹 못하자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되어 그저 눈을 꼭 감고 바르르 떨뿐이다.
“뭐야... 별 이상 없잖아?”
흉터하나 없는 뽀얀피부. 남자답지 않게 부드러운 살결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가슴이었다.
“괜히 소란피웠네.”
이리엘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던 이유를 찾지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쯧.. 미안하다.”
괜히 이리엘을 괴롭혔다는 사실에 녀석에게 사과한 나는 녀석을 일으켜세워주기 위해 이리엘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러자 멀뚱멀뚱 나와 자신의 가슴을 번갈아 돌아보던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내가 건낸 내 손을 마주잡는다.
“읏차..”
이리엘이 내 손을 붙잡자 나는 단숨에 녀석의 몸을 일으켜 세워준다.
스르륵..
“...응?”
그 순간. 넘어지는 충격때문이었을까. 단단히 묶어놨던 이리엘의 타올이 스르륵 풀려 녀석의 허벅지를 타고 바닥에 떨어져내린다.
“.....”
“.....”
뭔가 흘러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내 시야는 이리엘의 허리 근처로 옮겨진다. 그리고 나는 몸을 딱딱히 굳힌채 조용히 이리엘의 허리를 바라볼뿐이었다.
타악!!
“어.. 자.. 잠깐!!”
그때 이리엘은 사납게 내 손을 떨쳐낸다. 그리고 바닥에 흘러내린 자신의 타올을 집어 자신의 허리를 가리는 이리엘. 하지만 이미 나는 녀석의 비밀을 알아버린 후였다.
“너... 설마 여자...”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 이리엘은 예고없이 몸을 돌려 욕탕밖으로 도주를 시도한다.
“이.. 이봐!!”
나는 그러 이리엘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며 이리엘을 잡기 위해 그녀를 뒤쫓는다. 하지만 영악한 이리엘은 그냥 도망치기보다 아직 선반에 올려져있는 비눗물을 머금은 타올을 바닥에 집어던진다.
촤아아악!!
“우.. 우와아아앗!!”
콰아앙!!
그런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보기좋게 비눗물을 머금은 타올을 밟아버리고 그대로 화려하게 미끌어져 요란하게 바닥에 나자빠져버린다.
“크으으.. 젠장할!!!”
욱씬거리는 뒷통수. 얼마나 세게 박았으면 뒷통수를 문지르는 내 손 한가득히 붉은 혈흔이 묻어나왔다. 그런 핏물을 노려보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욕을 내뱉으며 이리엘이 도망친 탈의실을 노려본다.
“이 꼬맹이가..”
녀석도 최소한 알몸으로 도망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의 옷을 걸치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녀가 멀리 도망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욱씬거리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그녀를 쫓아 탈의실로 걸어들어간다.
“뭐야 이건..”
탈의실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바닥에 옷가지를 담아두는 바구니들이 널려있었고 거기에는 내옷과 이리엘의 옷으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옷들이 한데 뒤엉켜 늘어져있었다.
“급하긴 어지간히 급했나보군.”
일단 이리엘을 추적하기 위해 나 또한 내 옷가지들을 찾아간다. 다행히 이리엘의 옷보다 비교적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내 옷은 찾기 쉬웠다. 하지만 바지를 끌어올리고 보니 뒤늦게 내 상의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그리고 널려져 있는 옷가지들 중에서 유일한 상의는 바로 미칠듯이 자그마한 와이셔츠.
“내 것이.. 아닌데?”
당황한 나는 다시금 바닥에 뒤엉켜있는 옷가지들을 뒤져본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찾아낸 조그만 옷쪼가리.
“뭐야... 이 팬티는..”
아기자기한 조그만 토끼얼굴이 그려진 삼각팬티. 절대로 내 물건이 아니었다. 토끼란 동물에 대한 취향도 없을뿐더러 이런 조그만 팬티는 내 다리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러면..
“이리엘 것인가..”
보기보다는 귀여운 취향을 가진 그녀의 성격에 살짝 놀라며 바닥에 수놓아진 물자국을 바라본다. 얼마나 급했는지 속옷까지도 제대로 차려입지못하고 도망간 그녀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타메르. 침입자다. 아마도 혼란중에 숨어있던 녀석같군.
젠장. 결국 걸렸군.
“하아.. 알았어..”
운좋게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존재가 로터스에게 발각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리엘을 보호해줄 방법은 사라진다. 로터스에게 발각된 이상. 녀석을 제거하거나 생포해서 로터스에게 갔다 바쳐야만 했기에..
“망할..”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은 나는 남아 있는 내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걸어나온다. 이리엘이 텐타클에게 잡히는 것보다 내 손으로 잡아야만 했다. 그래야 어떻게든.. 작게나마 방법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테니까.
========== 작품 후기 ==========
연재 못한적이 많으니 오늘은 좀 양많게....
유운처럼 / 엌ㅋㅋㅋ 그건 디그다와 닥트리오가 같이 있을때!
실버링나이트 / 마왕...?
Lizad / 으컥;;; 디에그 데그... 이건 사실 무슨 뜻을 가진 단언데... 어디 단언지는 모르겠고 그 뜻이 '시작과 끝'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