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65화 (65/298)

65편

<-- 네이 -->

“크으...”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끊겨버린 의식. 몽롱한 의식속 온몸에 엄습해오는 고통속에서 나는 간신히 의식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일어났다.”

의식을 차린 순간. 흐릿한 시야속에서 내 곁에 앉아있는 그림자로부터 익숙한 여성의 탄성이 흘러들어온다. 흐릿한 시야덕분에 제대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서 턱에 팔을 괴고 앉아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네..이?”

목소리를 더듬어 지금 내 곁에있는 여성의 정체를 어림짐작해본다. 얼마가지않아 흐릿했던 눈의 초점이 천천히 잡혀지며 내 곁에 앉아있는 실루엣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그러자 실루엣의 주인은 역시나 네이. 그녀는 자신의 턱에 팔을 괸채로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이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정신차린 것을 확인하자 내 이마에 올려져 미지근해진 수건으로 대충 내 얼굴을 훔쳐내려준다.

“대체.. 어떻게 된거.. 큿..”

내 말이 끝나기도전 강렬한 통증이 온몸에 엄습해온다.

“아직.. 무리하지마.”

네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약간의 피로 얼룩진 수건을 물이 담긴 대야에 집어넣어 수건에 묻은 핏물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얼마나.. 누워있었지?”

“으음.. 대충 3시간?”

“....”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대충 내 몸의 상태를 점검해본다.

“큿..”

온몸 구석구석이 욱씬거렸다. 머리에서 시작하여 발끝까지 어디하나 성한데가 없었다. 꼼꼼한 키르비르는 내몸에서 정상적으로보이는 모든 부위를 망가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리엔이 곁에있는 이상 분명 리엔이 치료해주고 광혈의 저주의 힘으로 빠르게 회복되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리엔은... 먼저 실신했어.”

“....”

내 머릿속의 고민을 아는듯 간단한 대답으로 내 의문을 해결해주는 네이.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성녀라고해도 신성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리엔은?”

“키르비르님이 데려갔어.”

그럼... 키르비르에게 얻어맞아 실신한 나를 데려온것은 리엔이 아니라 네이라는 건가?

“그냥... 놔두기가 불쌍해서...”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가볍게 얼굴을 붉힌다. 그게 그렇게 얼굴을 붉힐만큼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인가?

“고마워.. 여러 모로 신세를 많이지네.”

“뭘... 내가 해야할 일을 한건데...”

“....?”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반적으로 네이가 동정심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해야만 할 일이 될 정도로 필수적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그.. 그럼 이만.”

“자.. 잠깐!!”

그녀또한 자기 스스로의 말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붉혀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뒤돌아서서 방을 달려나간다.

“뭐야.. 대체..”

나는 갑작스런 네이의 반응에 적응하지 못하고 뒷머리를 긁으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크읏.”

그 순간 온몸을 옥죄이는 짜릿한 통증이 내 몸이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것을 나에게 어필해온다. 그러나 이대로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3일동안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내 위장이 음식물을 원하고 있었다.

“응..?”

반쯤 몸을 일으키자 탁자위에 올려놓여져 있는 커다란 대야와 그 옆에 뚜껑이 반쯤 열려있는 작은 통이 있었다.

“이건... 약같은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통을 들어올려 겉에 쓰여진 포장지를 확인해 약의 정체를 알아보려했지만 이리저리 물에 묻어 번져진 잉크 때문에 도저히 무슨 글이 써져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파스.. 같은건가?”

열려진 통안에서 풍겨나오는 자극적인 민트향. 근육통이나 관절에 무리가 갔을때 종종 바르고 다녔던 약과 비슷한 향에 나는 이 약의 용도를 어림짐작해본다. 일단 약이 놓여진 위치로 보아 분명 네이가 나를 위해 가져온 약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통안에 들어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약의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대충... 몸에 바르면 되는 거려나..”

나는 조심스럽게 통에 손을 집어넣어 마치 젤같이 물컹거리는 약을 손가락으로 떠서 꺼낸다. 약통안에는 젤같이 진한 점성을 가진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었다.

“젠장.. 끈적거리는 것은 질색인데.”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나는 젤같은 투명한 약을 욱씬거리는 부분에 조심스럽게 발라나가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바르는 그 순간은 끈적함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얼마가지않아 자연스럽게 약이 말라가며 끈적거림 없이 아주 깔끔하게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가 근육통을 완화시켜준다.

“후우... 나쁘지 않은데?”

예상외로 강한 약효에 살짝 감탄한 나는 욱씬거렸던 팔을 한번 크게 휘둘러본다. 이미 팔에서 느껴졌던 근육통은 눈깜한 사이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놀라운 약효에 감탄하며 나는 약통에 들어있는 약을 탈탈 털어 욱씬거리는 몸 구석구석에 펴바른다. 그러자 얼마가지않아 나는 방금전까지 침상에 누워 골골거리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자리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까지 해낼 수 있었다.

“자... 가 볼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움직이기 편할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뱃속에서 울려퍼지는 꼬로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말의 주저없이 식당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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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간만에 들어보는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균열이 가고 낡은 나무문이 열린다. 그리고 다른방들보다 약간 넓은 식당 내부가 내 시야안에 들어온다.

“아...”

식당 한가운데에 마련된 커다란 식탁. 그런 식탁위에는 이제 막 차린 듯한 음식들과 함께 네이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음식을 다른데로 옮기려는 듯 커다란 쟁반위에 가지런히 음식접시들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던 네이는 내가 등장하자 당황한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 잠깐만..”

그녀는 내가 무슨 말도 하지않았는데도 당황하며 재빨리 자신이 쟁반위에 올려뒀던 음식접시들을 다시꺼내 식탁위에 보기좋게 정렬해나간다.

“뭐야..”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그녀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한다. 그러자 네이는 아무말없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소매를 잡아 이끈다.

“식사.. 하려고 온것 맞지?”

“그건 맞는데?”

내 대답을 들은 네이는 나를 자신이 음식을 가지런히 준비해둔 자리에 끌고와 앉혀버린다.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내 눈앞에 깔끔하게 차려진 식탁을 바라본다. 비록 그렇게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짧은 시간내에 간단하게 만들어진 음식들이 보기좋게 접시 위에 담겨져있었다.

타악.

마지막으로 네이는 내가 손이 닿기 편한곳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정리해 내려놓는다. 나는 눈을 꿈벅이며 이게 뭐냐는 듯이 네이를 바라본다. 그러자 네이는 아무말없이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식기를 간단히 정리하며 입을 연다.

“제대로 된 음식... 못 먹었잖아. 맛은 보장 못하지만... 먹어둬.”

“.....”

나는 아무말없이 그녀가 차려준 음식들을 바라본다. 리엔처럼 화려한 스테이크나 푸짐한 셀러드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고 초라한 네이의 음식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꼼꼼한 정성이 묻어나오는 음식들이었다.

먹기 좋게 한입크게로 하나하나 잘게 찢어 무슨 양넘같은 것으로 버무린 무침. 짧은 시간내에 급하게 자른 덕분에 크기가 제각각인 양배추 셀러드. 나를 위해 짧은 시간내에 차린 음식들이기에 그 모양은 좀 그렇다고는 하지만 육류와 야채, 그리고 과일까지 그녀가 나를 생각해 준비해준 그녀의 정성이 느껴져왔다.

“왜... 이렇게 나를 챙겨주는거지?”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없이 자신의 식기를 움직여 식사를 시작하는 네이. 나는 그런 네이를 바라보며 그녀가 준비해준 수저와 젓가락을 움직여나가며 흘러지나가는 말투로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자 그녀의 움직임이 우뚝 정지된다.

“그렇게.. 하라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들릴듯 말듯한 조용한 목소리로 웅얼거린 네이는 다시금 식기를 움직여나간다.

“....?”

그녀가 배웠다는 것? 무엇을?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는 것? 그랬다면 그녀가 키르비르와 같이 이 베히모스에 왔을때부터 차려줬어야 정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네이가 그저 인간 세상에 떨어졌을때 자신과 키르비르를 도와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도데체.. 뭘.”

“그.. 그냥 그런거야!! 그.. 그럼 나는 이만.”

타앙!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전. 네이는 갑작스레 바락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몫의 밥을 입안으로 구겨넣는다. 그리고 탕소리가 나도록 자신의 식기를 식탁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등을 돌린다.

“어이! 야! 잠깐!!”

나는 그녀를 붙잡으려 소리를 질러보지만 네이는 아무소리도 못들은 듯한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식당에서 빠져나가버린다.

“...쳇.”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찬 나는 다시금 자리에 앉아 그녀가 차려준 음식들을 입안으로 가져가기 시작한다. 비록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음식들이었지만 그녀가 차려준 정성도 있거니와 배가 심하게 고픈 나로써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Lizad / 으엌ㅋㅋㅋ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음. 키르비르가 너무 빨리 넘어오면 재미 없으니까 차근차근. 어자피 메인 히로인은 키르비르니까요. 엌?!

실버링 나이트 / 원래부터 우주급 스펙타클이었습니드아.... 헐ㅋ

이번 편과 다음펴는 네이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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