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편
<-- Main story. 신성기사단 -->
나는 가녀리게 떨리는 리엔의 눈을 마주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아직.. 너를 필요로하는 사람은 있어. 예를 들면 나나.. 키르비르나.”
“....”
내 말에 리엔은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 아하하..”
갑작스레 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아하하.. 타메르..”
“....”
그녀의 말에서 나를 향한 존칭은 사라졌다. 그 사실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리엔을 바라보며 그녀의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힘없는 웃음을 흘리던 리엔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너도.. 똑같아..”
“뭐..?”
이해 못할 그녀의 말에 나는 되물어보지만 리엔은 갑작스레 웃음을 멈추고 나를 노려본다.
“너도 똑같아. 모두.. 전부 다..”
“....”
이해못할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리엔은 별 관심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전부.. 나는 생각해주지 않아..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나를 찾아다니지.. 란슈님도.. 교단사람들도.. 모든 사람들이...”
“아..”
그제서야 나는 뒤늦게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았어. 나를 위해 웃어주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 잠깐..!”
나는 황급히 그녀의 말을 막으려했지만 리엔은 싱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타메르도 똑같을꺼야.. 나중가면.. 저 사람들처럼 나를 버리곘지.”
“아니다! 절대로.. 나는 너를 버리지...”
내 말이 끝마치기도 전. 리엔은 힘겹게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가로막아 내 말을 막아버린다.
“당신의 미래. 당신의 미래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았어.”
“....”
그 한마디에 나는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그녀가 읽은 내 미래의 기억에서 그녀의 존재가 없다는 뜻은...
“미안해.. 나를 위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게 만든 것.. 하지만..”
그녀는 마치 쓰러지듯이 나에게 다가와 힘겹게 내 목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입을 막고있던 손가락을 내리고 조용히 자신의 입술을 내 입에 입맞춘다.
“....”
짧은 키스가 끝나고 힘겹게 내 몸을 밀어낸 리엔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네..”
그녀의 키스 후..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통증가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욱씬거리던 오른팔이 이제 자유롭게 움지여진다.
“이건..”
“내 삶에 마지막 축복이랄까.. 아하하..”
그녀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조용히 내 몸에서 떨어져 십자가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조심히... 돌아가기를 기도할게..”
“....”
이제는.. 돌일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그녀는 자기 스스로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아마도 방금전까지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나를 만나고 진정된 것이었을까.. 그때.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뭐야?!”
나는 갑작스럽게 세상이 어두워진 이유를 찾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자랑스럽게 그려진 커다란 비공정이 하늘에 떠 있었다.
“교단 전용 비공정이다!!”
관중들 중 한명이 비공정의 정체를 알아보고 소리를 지른다.
“크읏.. 이제 너희들도 끝이군.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뒤에서 키르비르와 대치중인 란슈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과연 그럴까나?”
그런 란슈와 대치중인 키르비르는 자신의 주변에 그녀의 주특기인 대포급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수십발의 매직미사일을 띄워둔채 팔짱을 끼고 란슈를 노려보고 있었다.
“흥! 이미 우리 크루세이더들의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수백명의 크루세이더는 상대할 수 없을터. 너의 패배다!!”
“흐음~ 마음대로 생각해?”
키르비르는 란슈의 말에 그저 싱긋이 미소지으며 손을 가볍게 까딱거린다. 그러자 그녀의 몸 주변에 띄워져있는 수 십발의 매직미사일 중 몇 개가 란슈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듯 그를 향해 쏘아져나간다. 하지만 란슈는 민첩하게 몸을 좌우로 비틀어 키르비르의 매직 미사일을 가뿐하게 피해낸다. 그러나 피하는게 고작일뿐 대담하게 그녀의 주변에 떠있는 매직 미사일 사이로 파고들 능력은 없었는지 그저 그녀의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뿐이었다.
“....”
그런 키르비르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평소의 키르비르의 성격 같았다면 고급마법을 펑펑 터트리며 이 도시를 초토화 시켰을 텐데. 아마도 그녀도 리엔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우웅..
그때 부유석의 낮은 공명음과 함께 광장 위에 떠있던 거대한 교단의 비공정이 천천히 고도를 낮춰가기 시작한다. 비공정이 최대한 낮은 높이만큼 고도를 낮추자 란슈의 입에 걸린 미소가 더욱더 짙어진다.
“끝이군.”
그는 키르비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을 포위한 경계만을 강화하며 이제곧 그들을 위해 내려올 크루세이더의 지원군만을 기다리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촤르륵..!
일정고도까지 고도를 낮춘 비공정에서 내려온 것은 크루세이더들이 아니었다. 광장에 있는 화형대 근처를 목표로 내려오는 하나의 끈사다리.
“좋아!!”
끈 사다리가 내려온 것을 확인한 키르비르는 지금 상황을 이해못한채 멀뚱멀뚱 끈사다리만을 바라보고 있는 란슈를 향해 기운차게 자신의 중지를 들어올려보인다.
“꼴 좋다! 멍청이!”
마지막까지 란슈를 도발하며. 끈사다리를 붙잡은 키르비르는 힘차게 자신의 손을 위에서 아래로 휘젓는다. 그러자 사방에 떠있던 매직 미사일들이 일제히 지상에 내려박히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콰아앙!
그러자 우렁찬 폭음과 함께 산산히 박살난 돌바닥으로부터 자욱한 흙먼지가 치솟아오른다. 키르비르는 그런 흙먼지를 연막으로 란슈와 크루세이더들의 시야를 가리며 날렵하게 끈사다리에 올라탄다.
“타메르! 빨리 리엔을!!”
“아..!”
그제서야 뒤늦게 키르비르의 계획을 눈치챈 나는 재빨리 키르비르를 쫓아서 끈사다리를 붙잡는다.
“불을 붙여!!”
그 순간 연막사이로 란슈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붉은 불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날라온다.
쿠웅..!!
“이런 망할..!!”
횃불이 아니라 화로였다. 망할 근육덩어리 크루세이더들이 횃불을 던질 틈이 없자 그냥 화로 자체를 이쪽으로 집어 던져버린 것이다.
화악!!
내가 미처 불을 끌 틈도 없이 화로에서 흘러내린 불꽃은 순식간에 기름에 젖은 장작더미를 휘감아버린다.
“크읏..!!”
뜨거운 화기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내가 붙잡은 끈사다리가 이어진 비공정이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불길의 영향에서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다.
“타메르! 리.. 리엔은?!”
내 바로 위에서 끈사다리에 매달려있는 키르비르는 아무것도 들고있지 않은 빈손으로 끈사다리에 매달린 내 모습을 뒤늦게 확인하고 리엔의 행방에 대해 묻는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아무말없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장작더미를 내려다본다.
“.....”
천천히 화마에 잡아먹히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서 우뚝 솟아오른 투박한 나무십자가에 몸을 기댄채 리엔은 양손을 모아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불길을 그런 그녀를 잡아먹을듯 주변에서 넘실거리며 그녀를 향한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리.. 리엔!!”
키르비르는 당황한 눈으로 불타고있는 장작더미를 바라본다. 잠시 이를 악문 키르비르는 리엔을 구하려는 듯 다시한번 광장으로 뛰어내리려한다.
“...아..”
하지만 그 순간. 고요히 기도를 올리고 있던 리엔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와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화마앞에서 리엔은..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뜨거운 불길을 참지 못한듯 그녀의 눈가에는 투명한 눈물이 맺혀있지만.. 그녀의 얼굴 가득히 억지가 아닌 순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치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쳇.”
그런 리엔의 얼굴을 본 키르비르를 가볍게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녀의 마지막을 봐줄 수 없다는 걸까.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키르비르의 어께가 가볍게 들썩인다. 그런 그녀와 달리 나는 묵묵히 불타오르는 장작더미를 바라본다.
“....”
잔혹한 화마의 기운이 그녀의 몸 주변을 돌다가 이내 천천히 그녀를 삼켜나가기 시작한다. 장작더미에서 불타오르는 불길은 그녀의 옷자락에 옮겨붙어가기 시작하고 커다란 나무십자가에 몸을 기대고 있는 그녀의 몸을 감싸안아 천천히 그녀의 몸을 갉아먹어가기 시작한다.
“리엔...”
자신의 몸이 뜨거운 고온 속에서 천천히 불타오르고 녺아내리는 고통. 얼마나 괴로울까. 나조차 상상하지 못할 그런 끔찍한 지옥속에서 리엔은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않아 그 통증을 참을 수 없는 것일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떨궈 다시 양손을 모아쥐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화악..
하지만 얼마가지않아 잔혹한 불길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삼켜버린다. 언제나 부드러운 윤기에 찰랑거리던 그녀의 생머리카락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던 그녀의 미소도.. 그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화마에 먹혀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뭐.. 뭐야..”
“....”
끔찍한 비명소리도.. 억울하다는 외침도 없었다. 장작타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기록에도 없을 정도로 아주 고요한 화형식. 마녀를 처단하기보다 마치 성자가 순직하는 듯한 고요한 분위기 속에 한가득 기대를 품고 화형식을 구경나온 광중들도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자신들 앞에서 고요히 타들어가며 그 크기가 줄어들어가는 장작더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리엔은 억울한 누명을 쓴채로..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한채로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
========== 작품 후기 ==========
abcbbq / 으헉.. 말이 씨가 됬군요. 시험겸 교수님 논문제출 연구 지원때문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요번 주말은 달립시다
Solar Eclipse / 이제 슬슬 리엔이 죽을 시간이 된거지요.
Lizad / 응앜ㅋㅋㅋ 주금.
실버링나이트 / 왜냐면 이렇게 죽어버리거든요. 저언부 다! 으하하하하핫!!
끄응.. 시험기간입니다. 으아아아앙.. 바쁘네요. 하지만 연재는 왠만해서 멈추지 않으려했는데.. 교수님의 최종논문 제출때문에 도와드리느라 1주일동안 돌아오지 못했었습니다.
간만에 얻은 달콤한 주말인만큼 2연타로 달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