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 Main story. 신성기사단 -->
“후우...”
어수룩하게 지평선 넘어로 새벽햇살이 대지를 밝혀나가고 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골목벽에 몸을 기댄채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성벽을 밝혀나가는 새벽햇살을 노려본다.
“이제... 시작인가.”
이미 이 도시내부구조는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행중 다행일까. 이 도시 외곽쪽에는 비공정 선착장이 있었다. 리엔을 구하고 최우선목표는 그녀를 데리고 비공정 선착장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투두둑..
다시금 계획을 되새긴 나는 네이가 정성스럽게 묶어준 내 오른팔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그녀의 정성은 소중했지만 중요한 일을 치러야하는 만큼 모든 변수들은 확실히 처리해놔야했다. 오른팔을 단단히 묶고있던 붕대를 떼어냈지만 그런 붕대를 그냥 버려버릴 수는없었다.
“....”
잠시 붕대를 내려보던 나는 대검의 손잡이를 왼손으로 붙잡은채 손과 같이 대검의 손잡이를 붕대로 칭칭감아간다. 지금 오른팔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상당히 낯선 왼팔을 사용하는 순간. 이 어색함 때문에 실수라도 대검을 놓치면 안되었다.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대검이 왼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붕대로 단단히 고정하며 화형대를 노려본다.
“이제 얼마 안남았나..”
새벽 햇살이 화형대를 비추기도전. 이미 화형식을 기대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화형대 주변 보기 좋은 자리를 잡아두고 있었고 몇몇 교단소속의 인물들은 땔감위로 올라가 밤새 땔감들이 축축히 젖지 않았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후우..”
간만에 느껴보는 숨막힐 듯한 긴장감속에서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심호흡을 하며 인내심있게 화형대 뒤편으로 보이는 교단의 정문을 노려본다. 리엔은 아마 저기서 나올 것이다.
“와아아아아!!”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도시를 떠나갈듯한 우레같은 환호소리와 함께 교단의 정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허공에 손을 흔들며 천천히 걸어나온다. 그 인영을 발견하는 순간. 내 얼굴이 무참히 구겨진다.
“란슈...”
그 인영의 정체는 다름아닌 란슈. 그는 행사용으로 보이는 효용성없이 화려하기만 한 갑옷을 입고 가식이 가득한 미소를 지은채 도시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답하면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중앙까지 걸어나온 그가 화형식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한번 크게 둘러보고 하늘높이 손을 들어올리져 우레같은 환호성이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그런 시민들의 반응에 만족한듯 얼굴 한가득 미소지은 란슈는 자신이 나온 입구를 향해 손짓을 한다. 그러자 그가 나온 입구에서 수십명의 크루세이더들이 위엄있게 천천히 걸어나온다.
“...찾았다.”
그 순간. 내 눈이 번뜩인다. 대열을 지키며 천천히 장엄하게 걸어나오는 크루세이더들. 그런 그들 한가운데에 리엔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지은 수많은 죄를 대변하듯 그녀의 여린 손목에는 여러개의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그녀의 핏물이 가득맺힌 발목에는 커다란 추가달린 족쇠게 두어개가 채워져있었다.
“리엔...”
몇일만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리엔의 모습. 이미 그녀의 눈은 희망을 잃은 듯 색이 바랜지 오래였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듯 리엔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크루세이더들에게 이끌려 천천히 광장 한가운데에 마련된 화형대로 걸어간다.
“죽어라!!”
“이 더러운 년!!”
리엔이 등장하자마자 흥분한 몇몇 관중들이 손에 들고있던 쓰레기나 음식들을 리엔에게 집어던진다. 크루세이더들은 그런 관중의 행동을 막지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고귀하고 귀품있는 갑옷에 행여나 오물이 묻을까봐 리엔으로부터 거리를 벌려버린다.
빠악!
허공에서 날아온 돌이 리엔의 이마를 강타한다. 하지만 리엔은 아무런 비명없이 고개를 푹 숙힌채 걸음을 옮겨나갈뿐이었다.
까드득..
이미 바닥은 꺠진 유리조각이나 집어던져 뭉개진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리엔에게는 그런 것을 피해 걸을 권리조차도 없었다. 시커멓게 때가묻은 상처투성이의 발로 그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리엔. 나는 입술을 악문채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와아아아!!”
그녀가 걸어온길에는 상처입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의 길이 그려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리엔의 모습을 동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함성을 지르며 더욱더 사납게 흥분할뿐이었다. 이미 그들의 눈에는 리엔은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구경거리와 스트레스 해소용 인형일 뿐이었다.
“망할 놈들...”
나는 작게 욕설을 삼키며 팔짱을 낀채 조용히 리엔을 바라볼뿐이었다. 아직 때가 아니다.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한다는 사실이 괴롭지만...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금은 참아야할 때이다.
리엔이 관중들의 돌팔매지를 받으며 광장중앙에 도착하자 두명의 크루세이더들은 리엔을 억지로 이끌어 화형대 한가운데에 세워진 십자가로 끌고간다. 그리고 그녀의 양팔을 벌려 십자가 양끝에다가 묶어나간다.
“실수로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이 불쌍한 어린양을..”
리엔이 십자가에 묶여나가는 것을 확인하자 란슈는 단상위에 올라서 짐짓 근엄한 얼굴로 미리 준비해둔 기도문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리엔은 그런 그의 기도문을 듣기는 커녕 얼굴을 들어올릴 힘도없는지 십자가에 양팔이 묶여 인형처럼 축 늘어져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타락한 어린양을 주님의 품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따듯한 주님의 품안에서 그녀의 영혼이 깨끗이 정화될 것을 기원하며..”
란슈의 기도문이 거의 끝나가자 크루세이더들은 신속히 땔감위에 기름을 부워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육신을 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문이 끝남과 동시에 란슈는 옆에있던 크루세이더가 준비해온 횃불을 받아든다. 그러자 관중들의 시선이 란슈가 들과있는 휏불에 집중된다. 이글이글 불타는 휏불. 저 불이 땔감에 떨어지는 순간 그들만의 더럽고 추잡한 축제가 펼쳐질 것이다.
“...”
란슈가 휏불을 드는 순간. 리엔은 작게 고개를 들어 란슈가 들고있는 휏불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이미 그녀에게는 자신의 생사따위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것이다. 교단의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한 리엔. 그녀에게 남아있는 미련따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엔이 죽음을 원한다해도 나는 그녀를 구해야만했다. 최소한... 내 눈앞에서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것은 볼 수 없었다.
“흐읍..!!”
짧게 심호흡한 나는 내 앞을 가로막는 관줄들을 밀치거나 짓밟으며 화형대를 향해 돌진한다. 갑작스런 소란에 몇몇 크루세이더들이 나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주저없이 힘껏 도약한다.
“네 놈은..?!”
내가 관중들 사이에서 뛰어오르자 한눈에 나를 알아본 란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는 그런 란슈를 향해 주저없이 내 대검을 내려찍어버린다.
콰아아앙!
내 체중과 무지막지한 대검의 무게가 실린 일격. 하지만 란슈는 보기보다 날렵하게 대검이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순간 절묘하게 뒤로 몸을 날려 내 일격을 피해낸다. 결국 내가 베어낸 것은 녀석이 들고있는 휏불뿐.
콰직..
나는 바닥에 떨어져 불타오르는 휏불을 발로 짓밟아 억지로 꺼버리며 란슈를 돌아본다.
“호오... 당신. 살아있었군요.”
가볍게 몸을 털며 란슈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런 란슈의 주변에 있던 수십명의 크루세이더들이 나를 포위해나간다.
“역시나... 이 여자를 구하러 온것입니까?”
란슈는 흘끗 화형대에 매어진 리엔을 바라보며 묻는다. 나는 그런 그의 질문에 아무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대답한다. 그리고는 내 대검을 들어 덤비라는 듯 란슈를 향해 겨눈다.
“더 이상 너의 무례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내 행동에 발끈한 크루세이더들이 란슈와 내 앞에 끼어들려하지만.. 란슈는 아무말없이 팔을 들어올려 그런 그들을 제지한다.
“모두 물러가시죠. 저 사람은 나에게 용무가 있는 것 같군요.”
그의 말에 크루세이더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 나를 감싼 포위를 풀어나간다. 그런 란슈의 행동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긴장을 풀지않고 나는 날카롭게 란슈를 노려본다.
“당신 혼자서 리엔을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
녀석은 여유롭게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그리고 마치 주변에 눈을 의식하는 듯 자신의 등뒤에 매어둔 거대한 십자가를 천천히 꺼내든다.
“...찬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는 커다란 빈틈이 있었다. 비록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욕할 지모르지만 나에게 상대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콰앙!!
나는 녀석이 자신의 거병을 느긋하게 꺼내려는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예기치않게 란슈에게 달려들어 그가 꺼내가던 무기를 대검으로 강하게 후려친다.
“큿?!”
그러자 란슈또한 나의 기습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느긋하게 꺼내가던 거병을 놓쳐버린다.
쿠웅!!
내 대검의 힘을 견뎌내지 못해 반쯤 갈라진채 허공에 튕겨나가는 란슈의 거병. 녀석의 십자가는 허공에서 몇바귀 돌다 그의 등뒤에 요란한 굉음과 함꼐 떨어져내버린다. 단숨에 무장해제가 된 란슈. 나는 주저없이 그의 숨통을 끊기위해 그를 향해 대검을 겨눈다.
“끝이다!!”
이 녀석만을 제거하면 나를 막을 실력자는 없었다. 절호의 기회를 붙잡은 나는 단숨에 란슈를 제거할 목적으로 녀석의 심장을 목표로 대검을 거세게 찔러들어간다. 하지만..
꽈앙!!
하지만 그 순간. 머리를 울리는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내 몸이 뒤로 튕겨져나간다. 난데없는 갑작스런 충격에 뒤로 튕겨져나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그런 하늘을 유영하는 새하얀 뭉개구름뿐이었다.
“...뭐지..?”
뒤늦게 내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뒤로 밀려 넘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허겁지겁 자리에 일어서 란슈를 노려본다.
“후우.. 이거 오랜만에 사용해서 익숙치가 않는군요.”
그는 자신의 무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손목을 허공에 빙글빙글 돌리며 근육을 풀어나간다. 나는 나를 강타한 그 정체불명의 충격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를 찬찬히 살펴보지만 지금 그에게 무기라고 추정할만한 도구는 가지고 있지않았다.
“그러면.. 계속해볼까요?”
녀석은 내가 놀란얼굴로 자신을 훑어보자 기분나쁘게 빙글빙글 웃으며 아무런 무기가 없는 맨손으로 나를 겨눈다.
“설마.. 격투가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녀석이 끼고있는 강철장갑은 단순한 보호용 장갑이라 하기에 너무나도 두꺼웠다. 녀석이 등뒤에 짊어지고 다니는 거대한 거병은 단순한 장식이나 폼. 녀석의 진정한 실력은 바로 맨주먹을 이용한 격투술이었던 것이다.
타닥.
란슈는 늙은 몸에 걸맞지 않게 아주 사뿐한 스텝을 밟는다. 그저 제자리에서 가볍게 뜀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크읏..!!”
어느센가 녀석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마치 뱀처럼 바닥을 미끌어지며 내 품으로 파고들어온다. 나는 그런 녀석의 기습적인 접근에 당황하며 황급히 내 대검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내려찍는다.
“후욱..!!”
내 대검이 녀석의 몸을 짓뭉개려는 순간. 가벼운 기합과 함께 란슈의 몸이 우측으로 기울어진다. 그러자 녀석의 몸은 나에게 접근해오는 속도를 잃지않고 마치 귀신처럼 내 오른쪽 방향으로 미끌어진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내 안면을 목표로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자신의 주먹을 힘껏 뒤로 당긴다. 녀석의 행동을 발견한나는 황급히 내 오른팔을 들어 녀석의 주먹을 막으려했다. 하지만..
욱씬..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 그런 통증에 내 몸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고. 그런 움찔거림은 아주 작지만 치명적인 틈을 만들어버린다.
“큿..!!”
결국 나는 란슈의 주먹을 막기보다 황급히 뒤로 몸을 던져 그의 주먹을 피해내는 방향으로 결정을 바꾼다. 다급히 발을 놀려 간신히 뒤로 몸을 뺴내자 내 콧날을 스치며 란슈의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주먹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이 자식..!!”
간발의 차이로 란슈의 공격을 피해낸 나는 다시금 녀석에게 반격하기 위해 녀석을 목표로 내 대검을 크게 횡으로 휘두른다.
“흥..!”
하지만 란슈는 그런 내 행동이 가소롭다는 듯이 가벼운 콧방귀와 함께 교묘하게 발을 놀려 순식간에 내 대검의 사정범위 밖으로 몸을 빼낸다.
“젠장..”
상당히 낯선 스타일의 전투방법이었다. 실제로 내가 상대했던 사람들 대다수는 기사나 검사들뿐. 저런 격투가 타입은 웬만해서 보기 드문경우였다. 실제로 베히모스에서 기사나 검사들에 비해 격투가들은 텐타클에게 제대로 대처하지못해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 내가 나설필요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abcbbq / 어흐흐흑. 불행하게도 투표율이.. 이렇게 된이상 과거 전개로 간다!
Solar Eclipse / 싸우는거죠. 피터지도록?
유이버 / 덧글에 연연하지 마세요~ 읽어 주시기만해도 감사합니다!
실버링나이트 / 리엔이라.. 죽기를바라세요?
투표율이 70%를 못넘겼네요. 그래도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둡시다요.
그나저나 노블레스 연재하면서 궁금한건데...
이왕 올리면 쿨하게 한번에 올릴 것이지 6kb씩 짤라서 올리는 작가들은 뭐래? 조회수라도 올리기 위해서인가...
사람이 돈에 연연하면 폐물이 되던데..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