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49화 (49/298)

49편

<-- Main story. 신성기사단 -->

울창한 베히모스 외곽 숲을 지나 어느정도 걸어가자 교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중심에 있는 커다란 도시가 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도시 입구에 도착했을떄. 이미 해는 지평선 넘어로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아슬아슬 하겠는걸..”

이동시간은 대충 반나절. 되돌아가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리엔을 내일 오전내로 구해내야만했다. 하지만 다시 반나절만에 베히모스에서 로터스의 영역내로 되돌아가려면 비공정이 필요했다.

“젠장... 복잡한것은 생각하지 말자.”

몇분동안 고민하던 나는 마땅한 답이 나오지않자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머리를 휘휘 젖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리엔을 구하는 일이다. 그 다음일은 우선 리엔을 구하고 생각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주머니를 뒤져 대충 천으로 얼기설기 만든 조잡한 마스크를 꺼낸다. 대충 얼굴의 절반을 가릴만한 크기. 숲에서 걸어나올때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일부를 찢어만든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왠만해서는 크루세이더들에게 한 눈에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 들어가볼까.”

밤이라서 리엔의 위치같은 중요한 정보같은 것은 얻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그녀의 재판 결과 정도는 알 수 있을것이다. 만약 진짜 신의 가호가 함께하여 리엔이 재판에 이겼다면 그녀를 구하려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키르비르를 데리고 베히모스로 복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진짜로 신의 가호가 없는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두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도시로 들어가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다행히도 교단이 있는 덕분일까. 마을 자체는 경비가 없을 정도로 치안이 좋아보였다. 실제로 정문앞을 지키는 경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음?”

별 어려움없이 도시로 들어온 나는 정문 옆에 보란듯이 세워져있는 커다란 게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런 게시판이라면 리엔에 대한 뉴스같은 것이 나와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보자..”

게시판 앞에 선 나는 게시판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여러 종이쪼가리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나간다. 대부분 흥밋거리의 뉴스나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무역품이 들어왔다는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얼마가지않아 나는 게시판 한가운데에 다른 종이들을 가리며 커다랗게 붙어있는 대자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리엔. 성스러운 자의 이름을 더럽힌 마녀. 처형날자 결정.

커다란 글씨로 적힌 제목아래 다양한 리엔의 죄목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마을에 나타난 커다란 역병, 몇 달간 지속된 가뭄, 호수물의 범람. 대부분 그녀와 상관없는 자연재해까지 다 그녀와 연관되었다고 지어낸 죄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죄목들중 유독 내 눈에 띄는 죄목이 하나 있었다.

-교단의 순결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창녀.

“.....”

빠득..

나도모르게 이가 갈린다. 란슈라는 노인네. 리엔에게 조그만 허점이라도 있으면 온갖 말도안되는 이유를 갖다붙혀 그녀를 매도하고 있었다.

“젠장..”

이제 내가 리엔을 구해준다해도 그녀는 이 지상에서 얼굴을 들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게시판에 올려진 다양한 죄목들 중 몇 개는 낯부끄럽고 처참할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사람들은 그런 죄에 큰 관심이 없을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내일 도시 중앙 정화의 성소에서 공개화형식.

바로 저 화형식일 것이다. 처형시간은 내일 오전 동이틈과 동시라고 써져있었다.

“구할 시간은 있겠군.”

내일 오전이라면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내가 그녀를 구하고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란슈라는 노인네가 신경쓰였다. 자신이 주도한 만큼 그 화형식에 그가 빠질 수 없는 일. 비록 기습이었지만 키르비르를 무력화 시킨 그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빨리.. 처리하고 튀면 되겠지.”

그래. 정면승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리엔. 그녀만 구하고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묵직한 내 대검을 등에 짊어진채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도망치기 위해서 이 주변 지리를 대충 알아놔야만했다. 소란이 일어나면 분명 정문이 막힐 것이고 정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도시를 빠져나갈 퇴로를 찾아내야만했다.

덥썩.

퇴로를 찾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확인하고 있는 순간. 갑작스레 등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께를 붙잡는다.

“...!!”

이 도시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나를 잡으려는 크루세이더들. 나는 반사적으로 등에 짊어진 대검을 움켜쥐며 곧바로 휘두를 수 있는 자세로 내 어께를 붙잡은 손의 주인을 돌아본다.

“아.. 역시나.”

멈칫..

내 어께를 붙잡은 사람의 정체가 확인되자 주저없이 대검을 휘두르려던 내 손이 멈춘다. 내 어께를 붙잡은 사람은 낯선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숲속에서 만났던 여성. 티에르였다.

“너는...”

내가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전. 티에르는 다짜고짜 내팔을 잡은채 어두운 골목 깊숙한 곳을 향해 나를 이끌며 달려간다.

“야.. 야! 잠깐!”

나는 그런 그녀를 제지하려했지만 티에르는 내 말을 못들은척. 막무가내로 나를 이끌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하아.. 하아..”

인기척이 존재하지 않는 골목 깊숙한 곳에 도착한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혼자 지쳐 헐떡거리는 티에르를 내려본다. 그녀가 숨을 정돈하는 사이 나는 고개를 돌려 골목을 한번 둘러본다. 이 도시의 어두운곳. 구석지고 더러운 골목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뭐냐.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후우...”

나는 혹시나 싶어 내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나간다. 행여나 누가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면 단숨에 반격할 심정으로... 하지만 크게 심호흡을 한 티에르는 천천히 입을 열어간다.

“그.. 그게 말이죠.. 하아.. 하아..”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대화가 가능할정도는 아닌것같았다. 나는 그런 티에르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그녀의 호흡이 진정되기만 기다린다.

차앙!

그때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좁은 골목에 고요히 울려퍼진다. 그런 날카로운 소리에 반사적으로 나는 티에르로부터 한걸음 물러서며 내 대검을 움켜쥔다.

“그럼 내가 대신 말해야겠네...”

그리고 이어지는 고요한 목소리와 함께 티에르의 검집에서 샛노란 도가 자기 스스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런 검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새하얀 안개. 허공에 떠오른 안개는 마치 의지를 가진듯 허공에서 뭉쳐나가며 하나의 인영을 만들어낸다.

“어.. 어떻게..”

그렇게 도에서 빠져나온 안개가 만들어낸 형상은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시란. 그녀는 푸른 단발머리카락을 가볍게 휘날리며 매섭게 세워진 눈초리로 조용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나... 놀라는군.”

시란은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벅벅긁는다.

“시.. 시란은.. 하아.. 요검이에요..”

그런 그녀의 정체를 밝혀준것은 다름아닌 티에르였다.

“요..검?”

그러니까. 지금 시란의 모습은 유령.. 비슷한 뜻이란 걸까? 나는 그런 그녀의 존재에 큰 호기십을 가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뻗어 그녀의 팔을 만져본다. 약간 차갑게 느껴지지만 분명한 촉감이 있었다.

“이게 요검의 형상이라고? 만져지는데?!”

“하아..”

그러자 시란은 한심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 순간 선명히 보이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흐려지며 내 손에 느껴지던 촉감이 사라지고 내 손이 그녀의 몸을 통과해버린다.

챙강..!

그리고 차가운 돌바닥위로 시란이 들고있던 검이 떨어져버린다.

“개인적으로 이 상태가 좋지만 이러면 무기를 들고다닐 수 없거든.”

시란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주워든다. 그러자 그녀의 형체가 다시 선명해져버린다.

“그나저나 나를 이쪽으로 부른 이유가 뭐지?”

시란에 대한 의문이 모두 해결되자 나는 티에르와 시란을 돌아보며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묻는다.

빠악!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시란의 주먹이 내 머리에 직격한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나는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멍하니 어이없다는 듯이 시란을 바라본다. 그러자 시란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나에게 묻는다.

“너. 정신이 제대로 박힌거냐?”

“뭐..?!”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으며 나는 시란을 노려보며 되묻는다. 어느센가 그녀의 손 위에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건이 움켜쥐어져있었다.

“이런걸로 얼굴을 대충 가리고 변장이라고 하는거야?!”

“어자피... 얼굴 절반을 가리니.. 충분..”

“전혀. 너의 붉은 머리색. 그게 흔한줄알아?”

시란의 지적에 나는 내 머리카락을 매만져본다. 그녀의 말대로 붉은 진한 선홍빛의 머리카락. 이런 머리카락은 그다지 흔치는 않을 것이다.

“에헤헤.. 저기.. 저는 저 말고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타메르씨가 처음이에요.”

티에르가 옆에서 어리버리하게 베시시 웃으며 그녀의 말을 직접적으로 증명해준다. 하지만 시란은 그런 티에르를 날카롭게 쏘아봐 입을 다물게 한뒤에 말을 이어나간다.

“티에르의 말대로 이 도시에서 붉은 머리는 흔치 않아. 만약 크루세이더들이 우리보다 먼저 너를 발견했다면 우선 검문부터하고 봤을껄?”

“....”

그녀의 말에 가슴 한쪽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낀다. 만약 리엔을 구하기 위해 준비를 끝마치기전. 크루세이더들과 조우한다면 모든 것이 끝이기 떄문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고 시간은 하루밖에 없는 내 상황은 그만큼 절박했다.

“일단 우리를 만난 것을 네 전생의 복이라고 생각해.”

“...”

그나저나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이들이 나를 도와주는 거지? 시란은 나를 변태로 착각하고 있었고.. 티에르가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범죄자로 알려진 나를 크루세이더들에게 신고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흐음.. 궁금하나보네? 우리가 너를 도와준 이유.”

역시나 유령이라서 그런 걸까. 남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 시란은 조용히 팔짱을 끼며 나에게 묻는다.

“솔직히... 그렇지.”

나는 있는 그대로 내가 가진 의문을 그녀에게 말한다.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 나와 시란 사이에 티에르가 끼어든다. 그녀는 감사와 고마움이 가득한 갈색 눈을 초롱초롱빛내며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눈을 고쳐주셨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이봐. 완치된게 아니야.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일주일뒤면 다시 붉게 변할껄?”

“...네엣?!”

내 말에 티에르는 자신이 심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얼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 그녀의 몸안에 흘러넘치는 피중 약간을 뽑아낸 것이니.. 혈기왕성한 그녀의 몸은 사라진 피만큼 다시 피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했다.

“그런것 때문이 아니야. 어자피 티에르의 눈이 붉은 것은 이 도시에서도 유명하고.. 사람들의 대우에도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그럼 진짜 이유는 뭐냐?”

내 물음에 시란은 조용히 나를 노려보며 침묵에 잠긴다. 잠시 생각하는 듯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시란은 천천히 입을 열어 나를 도와준 이유에 대해 밝힌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야. 그냥..”

“그냥..?”

“너의 어설픈 변장이 눈꼴시려워서 말이지.”

“....”

아니다. 시란의 눈치를 보아하니 뭔가 진짜 이유를 말하다 대충 얼버무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가. 미안하게됬군.”

애써 자잘한 것을 꼬치꼬치 따져서 나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람을 떠나보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무슨 이유를 숨기는지는 몰라도 지금 이 상황. 나에게 해는 되지 않을 것같은 그녀의 태도에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녀가 말해준 이유에 대해 수긍한다.

“자자~ 타메르씨.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나와 시란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침묵을 지키자 옆에있던 티에르는 활기차게 웃으며 시란이 들고있던 두건을 낚아채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힘껏 발돋움하여 나와 얼추 키를 맞춘뒤 내가 얼굴에 매고 있던 두건을 내 머리카락을 가리도록 머리에 매준다.

“.....”

그러자 내가 가져온 두건은 간신히 내 붉은 머리카락을 가려준채로 단단히 매어진다. 손으로 두어번 두건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평가를 원하는 눈빛으로 시란을 돌아본다.

“뭐... 그게 더 좋겠네.”

여전히 못마땅한 걸까. 시란은 팔짱을 낀채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선뜻 손을 뻗지 못하는 것이 지금 이 상황 이상으로 더 좋은 변장은 없다고 판단한 것같았다.

“완전 도적이네요!”

하지만 곁에있는 티에르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아주 해맑게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도적이라 표현하는 티에르.

꽈악..

그런 티에르의 곁에 서있던 시란이 아무말없이 그녀의 옆구리를 힘껏 꼬집는다. 그러자 티에르는 비명조차 지르지못하고 입을 틀어막고 바들바들떨며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한다.

“즈응말.. 자.. 잘 어울려요..”

이걸 수긍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왠지 미묘하게 쿵짝이 잘맞아보이는 이 두 아가씨의 존재에 나는 작게 한숨을 뱉는다.

“그나저나 타메르. 너는 왜 교단에게 쫓기는거지? 크루세이더들 앞에서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이라도 한거야?”

나를 바라보던 시란은 뒤늦게 내가 교단에 쫓기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애써 큰일이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다행히도 시란은 그 이상으로 세세하게 캐물어오지 않았다.

“아.. 타메르씨. 그 팔.”

나와 시란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이난채로 눈치를 살피던 티에르는 나와 시란의 대화가 끊기는 순간. 절묘하게 내 오른팔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응?”

그녀의 말에 나는 흘끗 내 오른팔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분명 나는 내 팔에 붕대를 감은 기억이 없었다. 애시당초 나무파편은 팔 내부에 박혀있던 거라 외부에 붕대를 한다해도 별 효력이 없었기 떄문이다.

“이건 대체..”

붕대가 효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는 붕대가 너무 얼기설기 어설프게 묶여져있다는 것. 아마도 붕대를 처음 사용한 사람의 작품같았다. 하지만 얼기설기 묶인 붕대에는 어떻게든 내 통증을 완화시켜주려는 듯 여기저기 꼼꼼하게 묶은 정성이 잔뜩 묻어있었다.

“도데체 누가 이렇게 묶은거지?”

나는 뒤늦게 발견한 붕대의 존재에 적잖게 당황하며 내 팔에 묶인 붕대를 고쳐묶어나가기 시작했다.

“저.. 그 누구더라..?”

“변종 고양이.”

“아.. 아니야! 변종 고양이가 아니라 이쁜 이름이 있었단 말이야..”

붕대를 고치면서 그 둘의 대화를 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한명밖에 없었다.

“혹시.. 네이를 말하는거냐?”

“아~ 맞아요! 그 네이라는 아가씨. 그 사람에게 붕대를 건내줬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내 오른팔에 묶여져있는 붕대는 바로 네이가 묶어줬다는 뜻인가. 붕대가 묶인 모습은 매우 어설펐지만... 그런 붕대에 담겨있는 마음은 절대로 어설프지 않았다.

“이거.. 의외로 녀석에게 많이 신세를 지는군.”

비록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나를 걱정해주며 어떻게든 내 팔에 붕대를 감아주려는 녀석의 모습이 훤히 떠올랐던 나는 살짝 실소를 머금는다.

“그나저나.. 너 잘곳은 있는거야?”

붕대를 고쳐나가는 나를 바라보던 시란은 뜬금없이 내 잠자리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질문에 별 고민없이 곧바로 대답한다.

“없지만.. 상관없어. 오늘은 편히 잘 마음은 없으니까.”

지금 나에게 수면은 사치였다. 이미 시간은 부족했다.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든 도주로나 도주계획을 단단히 세워놔야했다.

“흐음... 그러셔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게 뭐라 할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한 시란은 나에게 등을 돌린다.

“그래. 그러면 밤이 늦었으니 우리들은 이만..”

찰칵.

시란은 자신의 검을 티에르의 검집에 꽂아넣는다. 그러자 시란의 형체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시란의 눈과 마주쳐버린다.

“아. 내일 화형식 너도 보러 올꺼지? 그 변종 괭이자식과 함께.”

“....”

그녀의 말에 나는 나도모르게 반사적으로 살기서린 눈으로 그녀를 노려봐버린다. 그러자 내 살기에 반응한듯 검집에 들어간 검이 살짝 빠져나오며 흐릿해진 시란의 형체가 다시 실체화가 되어버린다.

“뭐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이거 간담이 서늘해져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있나.”

“흣..”

시란은 그런 내눈을 아주 여유롭게 받아넘기지만.. 그녀의 곁에있는 티에르는 달랐다. 날카로운 살기가 담긴 내 눈과 마주하자 그녀는 새파랗게 변한 얼굴로 겁에 질린듯 짧은 신음을 삼킨다.

“오랜만에 열리는 공개화형식인데.. 마음 편하게 관람하자고.”

시란은 마치 나를 도발하듯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지지않고 노려보며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어본다.

“화형당하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이 씌워졌다고 생각안하나?”

“흐음...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쪽으로는 멍청해서말이야. 누명이 씌워지면 어떻고 안씌워지면 어때. 화끈한 화형식만 보면 그만이거든.”

빠득..

“아~ 그러고보니 요번에 화형을 당하는 여자. 리엔이라고 했나? 정말 추잡하게 살아왔...”

철컥!!

시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 갑작스레 그녀의 형채가 안개처럼 허공에서 흩어져버린다. 갑작스런 시란의 소멸에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티에르를 바라본다.

“죄.. 죄송해요. 시란은 성격이 약간 뒤틀려있어서요.”

그녀는 마치 자신을 봐서라도 시란을 용서해달라는 듯이 베시시 웃으며 그녀의 손에 의해 억지로 검집에 들어가있는 사린의 검을 보여준다. 나는 아무말없이 검집안에 담겨 바르르 떨고있는 검을 바라보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다.

“타메르씨. 리엔이라는 분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거 맞으시죠?”

“....”

겉보기엔 어리버리해 보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예리한 눈치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답한다. 더 이상 용건이 없는 그들로부터 등을 돌린 나는 골목을 나가기 위한 길목을 걸으면서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내일.. 화형식은 볼 수 없을꺼야. 절대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께요. 몸조심하세요.”

티에르또한 그런 나를 막지 않으려는 듯 작게 손을 흔들며 나를 떠나보낸다. 나를 걱정해준다 해도 티에르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타인. 나와 같이있다 사건에 휘말려들기는 싫을 것이다. 나와 정 반대편으로 걸어가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본 나는 골목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온다.

“....”

넓은 광장. 이 도시 내부구조가 어떻게 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기가 정화의 성소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내일 화형식을 치르기 위한 수많은 땔감들이 광장 중앙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땔감 한가운데로 리엔이 묶이기 위한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단단히 박혀있었다.

“절대로... 화형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일 아침 리엔이 설 화형대를 훑어본 나는 다시한번 내 굳은 결심을 다진다. 그 시란 놈이 좋아하는 꼴을 보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화형식은 일어나면 안된다. 이를 악문 나는 다시금 대검을 고정하고 있는 가죽끈을 강하게 동여맨뒤 이 도시의 구조를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도시를 배회해나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선거일이군요. 모두 투표합시다. 친구 동생데리고 투표합시다.

abcbbq / 흐허허헛;; 이거 너무 과분한 영광같은데요;;

Lizad / 그래야죠. 돌려주는 것은 몇배로 돌려줘야 인지상정이거든요.

실버링나이트 / 으허허허헝.. 저도 부럽죠. 그래서 주인공은 까야제맛.

만약 투표율이 70%가 넘긴다면...!!

....

제가 할 수 있는것은 추가 연재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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