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편
<-- 키르비르 -->
철컹..
모든 실험이 끝나고 잠금장치가 풀리며 굳건히 닫혀있던 강철문이 부드럽게 옆으로 열린다. 나는 약간의 굽이 세워진 키르비르의 단화를 신고 익숙하지 않은 짧은 보폭으로 조심스러 기계 밖으로 걸어나온다.
“크으.. 이게 대체 뭐야..”
밖으로 나와보니 예상대로 타메르. 그러니까 지금 키르비르의 의식을 담고있는 내몸이 먼저 밖으로 나오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있었다.
“타.. 타메르. 괜찮아?”
그때 아직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플루토는 기계장치를 조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단말기에서 뛰어내려 억지로 실험에 참가하게된 내 쪽으로 다가간다.
빠직..
타메르. 그러니까.. 지금은 키르비르의 의식이 담긴 내 몸의 이마에 작은 힘줄이 돋아난다. 아마도 주인인 자신보다 타메르를 먼저 챙기는 플루토의 모습에 상당히 불만이 많은 것같았다. 거기다 실험의 대실패로 기분조차 언짢은 상황. 그런 플루토가 달가워보일 리가 없었다.
“타메르?”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타메르에게 접근하는 플루토. 그런 플루토를 노려보단 타메르는 다짜고짜 자신의 오른발을 살짝 들어올린다.
“자.. 잠깐!!”
그런 타메르의 행동에 내 머릿속에 날카로운 경보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다짜고짜 황급히 몸을 날려 타메르 앞에 영문도 모르고 멀뚱멀뚱 서있는 플루토를 감싸안는다.
빠악!
“커헉!!”
말로 형용못할 강렬한 통증이 옆구리를 강타한다. 내가 플루토의 몸을 감싼 덕분에 타메르의 발길질이 내 옆구리에 작렬해버린다. 힘조절이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힘에 나는 플루토를 감싸안은채 튕겨져나가 바닥을 두어번 구른뒤에야 간신히 멈춰선다.
“키... 키르비르님!!”
지금 이 상황을 이해못하고 있는 플루토는 내 품에 안긴채 기겁하며 나를 바라본다.
“커.. 커흑..”
엄청난 고통 때문에 말하기는 커녕 숨조차도 쉬기힘들었다. 거기다 목안에서 비릿하게 올라오는 생혈을 억지로 삼키며 나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어간다. 어느정도 고통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약해진 키르비르의 몸 떄문일까. 강렬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눈에 눈물이 고여간다.
“....!!”
언뜻 내 눈가에 눈물이 스미는 것을 발견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타메르쪽이었다. 녀석은 딱딱히 얼굴을 굳히며 나에게 다가와 내 품안에 안겨있는 플루토를 빼내 옆으로 밀어놓으며 내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울지마. 울어버리면 너 진짜..”
“제.. 젠장할.. 안 울어.. 이런 망할..”
눈물을 흘리기 싫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쪽팔리게 눈물을 흘릴 수 없지않는가. 나는 이를 악물어 통증을 억지로 진정시켜나간다.
“크흡..!!”
그리고 크게 심호흡하여 흘러내려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낸다. 그리고 아무런 충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기운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보려하지만..
욱씬..!
“아읏..”
여전히 옆구리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날카로운 통증. 방금전 일격으로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것 같았다. 그런 나를 무덤덤하게 내려보던 타메르는 이를 악문채 조용히 내 뒷덜미를 붙잡아 억지로 내 몸을 일으켜준다.
“저.. 저기.. 이건 대체...”
그런 나와 타메를 번갈아 돌아보는 플루토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 표정을 짓는다.
“타.. 타메르?”
우리를 돌아보던 플루토는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른다.
“뭐야?”
“왜?”
하지만 대답한 것은 두명.
“....”
“....”
꽈악..
타메르는 씰룩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플루토 몰래 내 옆구리를 강하게 꼬집는다. 날카로운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왔지만 그런 비명을 간신히 삼킨 나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맺힌 눈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히.. 힘조절 하라고..!!”
“미안...”
내 말에 타메르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내 옆구리를 꼬집던 손을 떼어낸다. 키르비르는 아직 내 몸에 익숙하지 않았는지 자신보다 수십배는 강한 내 무지막한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덕분에 녀석의 주먹에는 손속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니 몸이라고... 흉터나거나 멍들면 고생하는 건 너야.”
다시한번 우리 둘의 상황을 녀석에게 인지시켜준 나는 눈가를 비벼 살짝 맺힌 눈물을 남몰래 닦아낸다.
“저기...”
그 사이 플루토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며 묻는다.
“타메르?”
“아.. 아니..”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릴뻔했다. 하지만 플루토는 내 어정쩡한 대답을 듣고 아마도 환신을 한 것같았다.
“설마... 몸이 뒤바뀐거에요?”
그리고 타메르쪽을 바라보며 과거 키르비르를 대했던 것처럼 공손한 존댓말로 물어온다.
“하아... 어쩌다 보니까.”
결국 타메르또한 이 사실을 계속 숨길 수 없다는 사실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
그리고 플루토는 나와 타메르를 다시한번 번갈아 돌아보며 침묵.
“타메르?”
“뭐야?”
다시한번 나를 부르는 녀석의 질문에 나는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해준다. 그러자 이번엔 타메르쪽을 바라보며 묻는다.
“키르비르님?”
“장난하지마라.”
타메르또한 플루토의 질문에 짜증이 한껏 났는지 팔짱을 낀채 신경질이 가득 들어있는 목소리로 답한다.
“캬아아아아아!!”
그러자 갑작스레 플루토는 자신이 당황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트린다.
“크으.. 얌마!! 시끄러!!”
타메르는 플루토의 고음의 비명에 짜증났는지 귀를 틀어막으며 플루토를 윽박질러보지만..
“캬아아아앗!!”
자신의 비명소리에 타메르의 외침은 너무나도 쉽게 파묻혀버린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채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와 타메르를 노려보며 비명을 지르는 플루토.
“한동안 계속될 것 같으니 자리를 피하지.”
“동감..”
내 말에 타메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다. 그런 타메르와 함께 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플루토를 피해 지하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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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이건 대체.”
중앙도서관 지하에서 나온 우리들은 갈 곳을 찾다가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내 숙소에 도착해서 서로를 마주보며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내 몸으로 그런 천박한 욕 따위는 하지마.”
“너야 말로 내 몸으로 그렇게 다리를 꼬고 앉지 마라. 보기 역겨워.”
문제없다는 말은 취소. 나와 키르비르는 서로를 노려보며 불평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상대의 몸에 해꼬지를 하거나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우리들은 이런 불평불만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해결책을 강구해나간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된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물체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영혼을 제외한 신체부분만 이동된것 같아.”
“테스트는 많이 했다면서?”
“테스트는 많이 해봤지. 이성을 가진 지성체가 아니라 무생물이나 이성이 없는 텐타클이나 식물같은 것으로만.. 덕분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랐어. 내 불찰이야...”
타메르. 그러니까 지금 내 몸을 가진 키르비르는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던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서... 해결책은 있는거야?”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저 기계를 움직이는거지. 하지만...”
타메르는 예상외로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해결책을 어렵지 않게 뱉어낸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져온다.
“너. 내 몸에 담긴 마나를 운용할 수 있어?”
잠시 나를 못미덥게 바라보던 타메르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리.”
마나를 움직인다라...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은 자신의 몸에 보관해둔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부린다. 실제로 키르비르의 몸 안에는 내 몸이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내 몸이 가진 묵직한 육체적인 근력이나 완력과 전혀다른...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왠지 무시 못할정도의 어마어마한 힘. 하지만 그 힘은 이 몸의 주인이 된 나의 의지에 따르지 않아주고 있었다.
“하아... 그러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잖아.”
“...”
한심하다는 타메르의 한숨에 나는 그저 볼을 긁적거릴 뿐이었다. 타메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다 이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좀 나가줄래?”
거만하게 나에게 손짓하며 나가라는 말을 내뱉는 타메르. 나는 그런 녀석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한다.
“여기는 내 방인데?”
그렇다. 지금 이방은 바로 내가 사용하는 방. 내가 주인인 방이었다. 하지만..
빠득..
타메르의 입안에서 날카롭게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할... 더 이상 녀석을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그래 알았어.”
결국 꼬리를 내린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나 조용히 내 방에서 물러난다.
========== 작품 후기 ==========
abcbbq / 으엌ㅋㅋㅋ 댓글 수보고 깜놀! 오메.. 제가 쓴 글이라는 글은 거의 다본듯 싶네요.. 으허허헛;; 저도 기억나지 않는 글들이라니.. 로.하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두개의 소설이 대체 뭘까요:
성미카엘 / 하하핫.. 이제 회복기입니다. 다행이죠..
유이버 / 이제 영원히 키르비르가 나올거에요. 몸이 바뀌었으니까요. 으하하하핫..
실버링나이트 / 그러게말이에요. 갑자기 TS물이 되어버렸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