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38화 (38/298)

38편

<-- 키르비르 -->

늦은 저녁시간. 나는 다시한번 중앙 도서관에 방문했다. 천정 끝까지 솟아올라있는 수백개의 거대한 책장들. 그안에 빼곡이 담겨있는 책들을 훑어보며 나는 내가 원하는 책을 찾아간다.

“수인족에 대한 책이...”

나는 저번에 수인족에 관한 정보가 담긴 백과사전이 있었던 책장을 찾아 옆에있는 다른 책들을 대충 훑어본다. 하지만 몇 십권을 뒤져봐도 수인족에 대한 만족스러운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후우...”

간만에 맡아보는 오래된 먼지와 낡은 책냄새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읽던 책을 옆에 쌓아둔다. 이 책에도 만족스러운 정보는 없었다. 아무리 고대인이라고 해도 수인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걸까. 책마다 담겨있는 정보는 일치하지 않았고 저자의 약간의 상상력이 담겼는지 어느 부분이 과장되거나 모순된 부분이 많았다.

“이 세계에서는 녀석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걸까...”

키르비르의 말대로라면 네베르족이라는 네이는 그녀와 같이온 다른 차원의 존재. 녀석에 대한 정보가 이 대륙에 남아있을리는 없었다.

“오.. 이게 누구야?”

그때 고요한 도서관 안에서 자그마한 탄성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런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작게 욕을 삼키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본다.

“너가 여기 왠일이냐?”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키르비르. 그녀는 장난끼가 가득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으며 옆구리에 책 한권을 낀채로 나에게 다가온다.

“뭐... 가끔 책 냄새좀 맡고 싶어서 왔지. 돌머리씨야 말로 여기 왠일이야? 머리에 기름칠 한다고 돌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

키득키득 웃으며 가증스럽다는 듯이 내가 읽고 쌓아둔 책을 훑어보는 키르비르. 나는 팔짱을 끼며 그녀를 바라보고 묻는다.

“너야말로 여기 왠일이지?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천하의 키르비르님께서 이렇게 낡고 삭은 도서관에 들릴 필요가 있나?”

“취미야 취미. 물론 다 이 머릿속에 있지. 이 세상 모든 지식들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낡은 책 냄새를 맡고 싶어서 말이야.”

내 비꼬는 말에 키르비르는 그저 쿡쿡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보인다. 그 사이에 나는 흘끗 그녀가 챙긴 책의 표지를 대충 확인해본다. 책 표지에 요란한 마법진이 그려진 것을 보면... 상당히 고위 마법에 관한 정보가 담긴 마법책임이 분명했다.

“어디보자. 우리 돌머리씨께서 뭐가 그리 궁금한걸까나..”

키르비르는 내 곁에 쌓아둔 책들을 향해 다가가 대충대충 책의 표지를 빠르게 훑어본다. 그리고 그중 눈에 띄는 몇 권의 책을 꺼내들어 내용을 대충 훑어본다. 그리고 키르비르가 내리는 결론.

“흐음... 너 그때 나에게 물어본 수인족에 관심이 많구나?”

“....”

예리하게 내가 도서관에 방문한 이유를 간파하는 키르비르.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침묵을 고수할 뿐이었다.

“여기있는 책들은 거의다 허황된 이야기지. 인간들이 지어낸 사실이 거의 95%야. 하지만 웃긴건 말이야..”

찌익!!

“너.. 뭐하는거야!!”

그때 키르비르는 예고없이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의 페이지를 거침없이 찢어나간다. 그런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당황하며 소리를 지르지만 키르비르는 걱정말라는 듯이 키득거리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어자피 허황된 정보는 책으로써 가치가 없어. 있으나 마나한 거지.”

찌익! 찌익!!

그리고는 계속해서 다른 책을 펼쳐 수인족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는 페이지를 찢어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모두 찢은 페이지를 한 대 모아 더욱더 잘게 찢어나가는 그녀의 행동을 나는 막지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종이 조가리들. 이미 그 안에 담겨진 정보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찢겨진 종이의 모습에 나는 작게 탄식을 흘린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란건 대단해. 아무리 대충 떄려맞춘다해도... 한 5%정도는 진실에 적중하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냐?”

이미 수인족에 관한 정보가 담긴 페이지를 잘게 찢어낸 키르비르의 행동에 나는 살짝 눈꼬리를 세우고 그녀를 노려본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여유롭게 어께를 으쓱거리고 표지가 두꺼운 책 하나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온다.

“즉. 그들이 상상한 허황된 정보 중 진실을 맞춘 것을 한데 모으면... 제대로된 정보가 만들어진다 이거지.”

탁탁탁!

키르비르는 자신의 손에 움켜쥐고있던 종이 조가리들을 두꺼운 책의 표지위에 하나하나 나열해나간다. 그러자 그녀가 찢어낸 종이 조가리들이 하나의 단어를. 하나의 문장을. 이어서 하나의 커다란 글을 만들어낸다.

“이건...”

“자. 이게 너가 찾던 네베르족에 대한 정보야.”

그녀는 각기 다른 책에 담긴 문장들을 잘게 찢어 다시 이어붙인 글을 나에게 보여준다.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책 위에 올려진 종이 조가리들이 날라가지 않도록 숨조차 참으며 조심스럽게 그 글을 읽어나간다.

-종족 수인족(묘족)

-선천적으로 뛰어남. 순발력. 강한 힘보단 유연한 몸놀림. 그러나 마력으로 힘을 끌어올려 사용. 의외로 강한 힘. 인간의 외모와 흡사하다. 고양이 귀와 꼬리가 특징.

“.....”

문장 하나하나를 억지로 연결한 것이라 문법적인 오류는 심각했지만 그렇다고 글을 못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다지 호전적. 않다. 하지만 도전은 피하지 않음. 강한 힘을 숭배한다.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복종. 하지는 않음. 강한 힘은 권리로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가진다. 실제로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우선권을 가짐. 생에 단 한번의 인연을 가짐. 인연이 닿은 대상에게 복종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것으로 키르비르가 만들어준 글은 끝이난다. 확실하지않은 단편적인 정보들 뿐이었지만... 키르비르가 만들어준 정보인 만큼 그 신뢰성은 이 도서관에 꽂혀있는 다른 책들보다도 확실할 것이다.

“이제 좀 만족해?”

키르비르는 나를 거만한 자세로 바라보며 묻는다.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꼬리를 내린다라..”

하지만 나는 그런 키르비르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네베르족에 대한 사실을 다시한번 읊어본다. 재정신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네이를 이겼었다.

“뭐야... 설마 네베르족을 이길거라는 헛된 꿈을 꾸는건 아니곘지? 너가 녀석들의 몸에 손끝하나라도 닿게하려면 아직 10년은 멀었을껄?”

내 웅얼거림을 들은 키르비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나를 도발한다. 그러나 지금 키르비르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네이. 그러니까 그녀의 종인 플루토를 이겼었다.

“네 멋대로 생각해. 내가 알고 싶은것은 그 네베르족이라는 수인족의 정보였을 뿐이니까.”

나는 키르비르가 만들어준 네베르족에 대한 정보를 다시한번 읽어 머릿속에 각인시킨 뒤 종이조가리들을 훌훌 털어낸다.

“오호라... 그러세요? 하긴 몸을 써도 안되니까 돌 같은 머리라도 써서 뭘 어떻게 하려나본데... 미안하지만 헛된 짓이야. 돌머리는 돌머리답게 몸으로 떼워보라고.”

나를 놀리며 킥킥 웃음을 터트리는 키르비르. 하지만 그런 그녀의 놀림에도 나는 화가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그런 그녀를 비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믿고있는 그녀의 충실한 종인 플루토. 그녀가 이렇게 나를 놀릴 수 있는 것은 나를 상대로 플루토가 지지 않을 거라는 확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루토는 나에게 졌다. 그런 믿음이 깨어진 키르비르의 놀림은 더 이상 나를 자극할 수가 없었다.

“뭐. 하여튼 나를 도와준건 고맙군.”

나를 놀리는 키르비르를 향해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준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세운다.

“...흥! 확실히 구분하라고 멍청아. 무식한 너를 도와준게 아니야. 동정한 것 뿐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내가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흥미를 잃은 듯 키르비르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냉담하게 자신의 등을 돌린다. 마법서를 옆구리에 낀채 도서관 밖으로 걸어나가는 키르비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나를 놀리려는 그녀의 비뚤어진 성격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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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휘양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른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따듯한 아침햇살을 만끽하며 평소와 달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침대맡에 걸터앉아 오랜만에 정성스럽게 내 대검을 손질해나간다.

서걱.

“윽...”

하지만 사람이 하지 않던 짓을 하면 화를 자초하는 짓이라 그런걸까. 대검의 검날을 천으로 닦아내던 나는 실수로 날카로운 검날에 내 손끝을 베어버린다.

“젠장...”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내 손끝을 바라본다. 통증은 그저 한 순간뿐. 핏방울이 맺혀 떨어지기도 전. 괴몰같은 광혈의 피가 흐르는 내 몸은 칼에 베인 상처를 순식간에 재생시켜버린다.

“가끔씩 이런 내 몸을 보고 있으면... 내가 로터스와 별 다를 것 없는 괴물이라고 생각이 들더라..”

순식간에 흉터없이 말끔하게 치료된 손가락을 비비며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순간..

싸아아악..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내 본능이 갑작스레 다가오는 생명의 위협에 반응하여 나에게 도망치라고 경고를 내보이고 있었다.

“뭐... 뭐야...”

하지만 본능의 경고보다 지금 나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위협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이성이 이겨버린다. 나는 본능이 외치는대로 이 방에서 도망치지 않고 경직된 얼굴로 내 방문을 바라본다.

“타메르!!”

콰아아앙!!

거친 폭발음과 함께 내 방의 방문이 조각조각으로 갈라져 분해되어버리며 사방으로 비산해버린다. 그리고 방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역시 있었구나!!”

키르비르가 양손을 허리에 얹은채로 나를 노려보고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어께위에는 플루토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냐?”

나는 키르비르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알수없는 압박감에 짓눌려 평소와 다르게 말까지 더듬으며 그녀가 내 방까지 찾아온 용무에 대해 물었다.

“닥치고 따라와!”

키르비르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내 손목을 붙잡고 나를 잡아이끈다. 비록 그녀가 가진 힘은 미약했지만 그녀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끌려가며 그녀에게 묻는다.

“자.. 잠깐!! 우선 이유부터 설명하는게 순서아니야?!”

“시끄러! 일단 오면 알게되니까... 그냥 따라와!!”

역시나 키르비르는 자신이 나를 끌고가는 이유를 설명하기커녕 되려 나를 윽박지르며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가기 싲가한다. 솔직히 내 힘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지않았다. 하지만 뒤이어질 무지막지한 보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힘없이 끌려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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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야!”

키르비르가 나를 억지로 이끌고 도착한 곳. 그곳은 중앙도서관의 아래층. 나도 몰랐던 비밀스러운 지하공간이었다.

“여긴...”

5년동안 이 유적지에 지내면서도 내가 모르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에 살짝 긴장하며 한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어두운 공간을 경계한다. 목소리가 넓게 울려퍼지고 메아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예상외로 상당한 거대한 공간. 지하라 그런지 빛이 한줌도 들어오지않아 그 공간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여기로 날 끌고온 이유가 뭐야?”

내 물음에 키르비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벽한쪽에 마련되어있는 자그마한 스위치를 누른다.

파앙!

그러자 천장위에 붙어있던 커다란 마나석이 밝게 빛이나며 방안에 가득 채워져있던 어둠을 밀어내버린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공동을 절반이나 채우고 있는 거대한 쇳덩어리였다.

“이게.. 대체 뭐냐?”

난생 처음 보는 쇳덩어리. 말로만 듯던 기계장치로 보이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쉬지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쇳덩어리 좌우에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추정되는 문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이름하여! 공간이동장치!”

“...공간이동?”

나는 키르비르의 자신있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한 마디로 두가지 물체를 한순간에 그 위치를 바꿔버린다는 거지.”

“아아...”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고위마법사들이 자주쓰는 텔레포트나 블링크.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먼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아주 편리하고도 성가신 기술이라고 알고 있었다.

“왜이리 반응이 밍밍해? 두가지 물체를 동시에 이동시키는게 쉬워보여?!”

자기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나에게 소개를 해줬지만 내가 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키르비르는 날카롭게 눈고리를 세우며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내가 관심없고 그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을 보고 어찌할텐가. 놀라고 싶어도 아는게 있어야 놀라는 거지.

“생각도 해보지 못했지...”

하지만 그녀의 자랑에 어느정도 장단을 맞춰줘야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감탄을 터트리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제서야 키르비르는 만족했는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왜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거야? 저걸 자랑하려고?”

“당연히 실.험.을 위해서지.”

키르비르는 쾌활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전혀 쾌활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를 그저 1회용으로 사용되는 실험용 쥐로 취급한다는 뜻이잖아..

“사양하겠어.”

나는 주저없이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한 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심보로 거침없이 등을 돌려 나가는 계단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나간다.

“실험 당할래? 아니면 고자가 될래?”

뚜둑..

키르비르는 여전히 쾌활한 웃음을 얼굴 한가득 머금은채로 섬뜩한 말을 서슴없이 뱉어낸다. 가볍게 손을 풀고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 그녀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 나는 출구를 향하던 걸음을 멈춘다.

“당연히... 실험을 당하겠습니다.”

결국 나는 그녀의 협박에 꼬리를 내린다. 어쩔 수 없었다. 어자피 나는 약자의 입장이니.

“그래그래. 말 잘들어야지.”

키르비르는 싱글싱글 웃으며 내 등을 토닥여준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 우선 저기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알겠어...”

나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키르비르의 지시에 대답하며 키르비르가 가리킨 오른쪽 문을 향해 다가간다.

기이잉.

그러자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꼐 강철문이 옆으로 미끌어지듯 움직여 열려버린다. 자그마한 마나석에 의존해 희미한 빛에 감싸이고 있는 기계 내부공간에 작게 마른침을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위이이잉..

쇳덩어리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기계음이 바로 귀옆에서 선명하게 들려온다.

“젠장...”

그런 불안한 기계음속에서 나는 떨려오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기 위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조금씩 심해지는 몸의 떨림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걱정마! 내가 있으니까! 최소한 끔찍한 사고는 면하게 해줄테니까!”

기계장치의 틈새사이에서 키르비르의 유쾌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외부가 아닌 반대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으로보아 키르비르또한 반대편 문으로 이 기계속으로 들어온것같았다.

“끔찍한 사고의 예는?”

“으음.. 아마도 신체부위 하나만 달랑 변환되는것? 그정도면 상상만해도 끔찍한걸?”

“하아...”

그건이미 끔찍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 하지만 그런 것을 단순한 장난을 치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키르비르의 목소리는 그다지 큰 믿음감을 줄 수 없었다.

“걱정마~ 나도 너의 팔같은 것은 붙이고 다니기는 싫으니까.”

“....?”

나는 잠시동안 키르비르가 한 말을 해석해본다. 한마디로... 만약 이 실험에 실패한다면 내 몸의 일부와 키르비르의 몸의 일부가 바뀐다는 이야기. 그 말인 즉슨 지금 하는 실험은 키르비르의 위치와 지금 나의 위치를 바꾼다는 뜻이었다.

“자... 잠깐!!”

나는 다급하게 키르비르의 행동을 저지하려했지만...

“자자.. 플루토! 시작해!”

쿠웅!

일방적으로 플루토에게 내리는 시작신호와 함께 밖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가 튼튼한 강철문에 의해 굳건히 닫혀버리게된다.

“크읏..!!”

나는 낭패감에 신음을 흘리지만 기계장치 건너편에서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키르비르의 활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마~! 여러번 실험을 걸쳤으니까. 그리고 실험때마다 성공했다고! 그 증거로 내가 이렇게 같이 실험에 참여해주는 거잖아.”

그러고보니... 그녀의 말대로 진짜 위험한 실험이었다면 그녀 스스로가 발벗고 나설 리가 없었다. 최소한 자신의 하인인 플루토를 내보낼 것이지... 아마도 뭔가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키르비르가 직접적으로 이 실험에 참여한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불안감으로 떨려왔던 몸이 차츰차츰 진정되어가기 시작한다.

“후우... 그래?”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나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가 들어와있는 이 커다란 기곘덩어리 내부를 관심있게 둘러보기 시작한다. 미약한 마나석의 빛으로 기계내부가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였지만 주변 사물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충분한 빛이었다. 그렇게 기계내부를 관찰하기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가. 이제 곧 기계가 작동하려는지 요란한 울림이 절정에 달할 무렾..

“어라..?”

순간적으로 당황한 키르비르의 탄성이 기계의 소음사이에서 선명히 들려온다.

“뭐야?! 설마 뭐가 잘못된거야?!”

가슴 한쪽 이 섬찟해지는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키르비르에게 기계상태에 묻는다.

“마나 유동이... 이상해..”

혹시나 싶은 불안은 결국 현실로 다가와버린다. 평소에 느낄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섞여있는 키르비르의 목소리에 나 또한 온몸을 감싸안아가는 끈적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시.. 심각한거냐?! 설마 잘못되면...”

“거.. 걱정마!! 내가...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키르비르조차도 심각하게 동요한 듯 말을 떠듬는다. 저 건너편에서 키르비르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이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젠장...!”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삼키며 고막을 찢을정도로 커져가는 기계 소음에 이를 악문다.

키이이이잉!!

그리고 그런 기계의 소음이 절정에 이를 무렾. 주변 사물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눈앞에 환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비벼 재정신을 차려보려했지만 모든 행동은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린다.

“이.. 이런!! 아직 마나 유동을 안정시키지 못...”

그말을 끝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오감이 억지로 절단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한 공간속. 오직 눈을 멀게할 정도로 밝은 섬광만이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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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씬...

“크으...”

죽지 않은건가... 어느 순간. 머리가 갈라질 듯한 강렬한 두통과 함께 나는 천천히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작은 마나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강철의 천장. 아마도 아직 기계안에 있는 것같았다.

욱씬..

“큿...!”

나는 주기적으로 두통이 느껴지는 이마를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벽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본다. 다행히도 별 무리없이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지는 멀정한 것 같았다.

“...?”

하지만 이상한 것을 깨달은 것은 몸을 전부 일으킨 뒤였다.

“시야가... 낮아?”

예상외로 상당히 낮아진 시야. 천정에 붙어있는 푸른 마나석이 너무 높게 보일정도로 낮아진 시야였다. 마치 키가 작아진 듯한 느낌. 왠지모를 불안감에 나는 뒤늦게 내 몸을 내려다본다.

“.....”

활동성을 중시했지만 그래도 장식이라고 아기자기한 레이스가 달린 간편한 옷. 그리고 내가 움직일 떄마다 허벅지를 절반정도만 가리는 짧은 치마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What.. the..."

내가 이딴 옷을 입을 리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황급히 내 몸을 살펴본다. 썩은 나무고목처럼 흉터가 잔뜩 새겨진 투박한 손 대신 마치 아기의 피부처럼 보드러운 살결을 자랑하는 자그만 손. 수많은 단련과 생사를 뛰어넘는 전투를 통해 단련된 튼튼한 몸대신 부드럽고 가벼운 몸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살짝 시야를 가리며 흘러내려오는 내 머리카락.

“이건..”

그것은 나에게 익숙했던 섬찟한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희미하게 내리쬐는 마나석의 빛을 아름답게 반사시키는 밝은 은색의 머리카락. 베히모스에서 이런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단 한명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 이.. 이거 뭐야!!”

그리고 지금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우렁찬 비명소리. 그것은 묵직한 내 목소리로 지르는 한없이 여성스러운 비명소리였다.

“젠장.. 이건 대체 또 무슨 해괴한 일이야..”

마지막으로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것은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부드러운 목소리의 정체는 근 3년동안 나를 괴롭혀온 키르비르의 목소리였다.

========== 작품 후기 ==========

Lizad / 올ㅋ... 그건 모순이군요. 아이고.. 생각이 짧았었네요. 그냥 대충 소설적 허용이라고 변명을 해봅니다 ;ㅅ;

abcbbq / 으앜ㅋㅋㅋㅋㅋㅋ 아이젠.. 으앜ㅋ 아이젠!!! 으허허헛;; 이런 세상에나... 그리운 이름이군요. 으흨ㅋㅋ

유이버 / 키르비르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조치 않군요!

무희소녀 / 그렇죠? 역시 그렇죠? 그래서 나도 네이가 좋더라.

블러드 헬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놈의 독감이 떨어질 생각을 안하네요. 모두 감기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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