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편
<-- 리엔 -->
짧막한 식사시간이 끝났다. 키르비르는 자신의 몫으로 마련된 스테이크를 절반이나 남긴 후 플루토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녀들이 떠난 식탁에서 잔반과 빈 그릇을 치우던 나는 흘긋 유적지 한 가운데에 세워진 거대한 탑을 바라본다.
일명 마법사의 탑. 키르비르가 지어낸 이름이었다. 로터스가 지내는 거대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키르비르가 지내는 곳은 그 탑 최상층에 마련된 커다란 방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저렇게 높은 곳을 선호하는 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취향에 대해 뭐라 할 마음은 없었다.
“그나저나... 최음제 효과는 언제쯤 나타날려나.”
대충 식기를 정리한 나는 키르비르가 사라진 탑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 약의 힘이 상당히 강력했다고는 했지만 그 약의 효과가 언제 발효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정신나간 성욕을 해소할 방법은 이성과의 성관계. 이 베히모스에 존재하는 남성이란 존재는 나. 혹은 로터스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겠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한 나는 피식 웃으며 아무런 걱정없이 식기를 잔뜩 들고 주방으로 걸어들어간 나는 그들이 먹고 남은 식기를 대충 씻어내기 시작한다. 흘러내려오는 물에 다시 새하얗게 씻겨지는 식기를 바라보던 내 머릿속으로 한 가지 사실이 퍼뜩 떠오른다.
“리엔..!”
한쪽에 리엔의 몫으로 마련된 스테이크를 챙긴 나는 기절한 리엔을 눕혀뒀던 방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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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나?”
그녀의 방에 도착했을때 딱 타이밍좋게 이제 막 잠에 깬듯 리엔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금전 거친 성관계에 의해 그녀가 입고있던 신관복은 거의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덮고있는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린채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어간다.
“아.. 타메르..씨..”
나를 발견하자마자 제대로 눈도 못마추고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떨구는 리엔. 그런 그녀의 행동의 이유를 대충 짐작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의 옆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앉는다. 그리고는 내가 가져온 스테이크를 탁자에다 올려둔다.
“그건.. 식사인가요?”
“깊은 잠에 빠져있어서 깨울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저녁시간은 지났지만 네 몫으로 남겨놨어.”
“아아..”
내 말에 리엔은 탁자에 마련된 내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탄성을 내지른다. 그녀는 내가 마련해준 음식을 먹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보려하지만 얼마가지않아 자신의 아랫배를 감싸쥐고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몸은 괜찮은거냐?”
“아.. 에.. 조금.. 아프네요.”
자신의 하복부를 쓰다듬으며 씁쓸히 말하는 리엔의 모습에 나는 작게 침음성을 삼킨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낯설었다. 인간의 침입을 거부하는 이 베히모스 유적지에 나와 키르비르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인간이라니. 그것도 로터스에 의해 씨받이가 된 것이 아닌 정상적인 여성이...
“하지만 오래가진 않을꺼에요. 금방... 나아지겠죠?”
리엔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생긋이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듯한 그녀의 미소앞에서 오히려 내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나는 무안함에 머리를 두어번 긁으며 시선을 피한다.
“그런데...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내가 말한대로 약에 당했다. 독약같은게 아닌... 지독하게 약효가 강한 최음제였지.”
“...아...”
내 말을 들은 리엔은 작게 탄성을 내지른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간 듯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 이 모든 게...”
“고의는 아니었다. 사고... 그래.. 사고였을뿐이야..”
평소와 달리 죄책감에 섞인 내 목소리를 들은 리엔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리엔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뻗어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쥔다. 그런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퍼뜩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리엔을 바라본다.
“저는 괜찮아요. 진짜루요.”
“하지만 너는... 신성한 자잖아.”
그녀의 직위는 신성한 자. 즉 교단에서 모든 교원들의 모범이 되며 아무리 털어도 한줌의 티끌조차도 나오면 안되는 인물이었다. 내 말에 리엔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젖는다.
“저희 교단은 순결을 그렇게 강요하지 않아요. 이유야 어떻든... 늦장부린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벌이라 생각하면 돼죠.”
“......”
모든 것을 용서하는 듯한 리엔의 말에 나는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이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아니 이런 경우가 벌어질 가능성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어자피 저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렇게 될것이었고.. 그리고.. 솔직히... 소문과 다르게 기분도 좋았었으니까요.”
“...하핫..”
베시시 웃으며 부끄럽다는 듯이 하는 리엔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엔이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꺼낸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죄책감이 눈녹듯이 사라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한다.
“고마워.”
“에..? 제가 무슨.. 감사받을 일이 있다고..”
내 말에 당황한 리엔은 자신의 손을 가로젓는다. 하지만 조금은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 나는 리엔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갔다.
“하여금.. 오늘 일은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준 너에게 정말 감사하고..”
“타메르씨... 정말 그런게 아니라니깐.. 아하핫..”
애써 손을 흔들며 내 감사를 부정하는 리엔의 행동에 피식 웃은 나는 한쪽에 가져온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그녀의 앞에 내민다.
“일단 그렇게 알아두고... 배나 채워. 많이 허기졌을테니까.”
“에.. 그럼 잘먹겠습니다!”
자신의 앞에 놓아준 스테이크 접시를 바라본 리엔은 마치 즐거운듯한 목소리로 잘먹겠다고 한뒤 포크와 나이프를 능숙하게 이용해 스테이크 한점을 썰어 입안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맛이.. 없네요.”
“...미안..”
너무나도 솔직한 그녀의 한마디였지만 왠지모르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사과할 일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하지만 리엔은 겉으로는 맛없다고는 하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이란 것을 알고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안에 든 고기를 꼭꼭 씹으며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스테이크를 비워나간다.
“아. 그러고보니 타메르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요.”
그때 무언가 퍼뜩 생각난 듯 잠시 포크를 내려두고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리엔. 만일 평범한 사람이 나에게 요구한 것이라면 아예 상대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리엔. 그녀에게 작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그녀에게 부탁할 일을 말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 이거요.”
그러자 리엔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입었다기보다는 그저 걸치고 있다는 표현이 걸맞을 것 같은 자신의 신관복 옷자락을 나에게 흔들어보인다.
“아아...”
그제서야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나는 작은 탄식을 흘린다. 그녀와 내가 관계를 맺으면서 약간 그녀를 거칠게 대했었다. 그 과정에서 리엔의 옷은 무참히 찢어졌고... 불행히 그녀의 속옷의 상태도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일단.. 구해보도록 하지.”
나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창문넘어로 보이는 거대한 탑을 바라본다. 이 베히모스에서 유일하게 여성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키르비르.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키르비르에게 옷을 얻어내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할까.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그녀.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별 요구조건 없이 리엔이 입을 만한 옷을 나에게 건내준다는 것은... 내 꿈속의 이야기일까나..
“하아...”
결국 숨길 수 없는 한숨을 내쉰 나는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작게 쓴웃음을 짓고 있는 리엔. 그런 그녀를 돌아본 나는 걱정말라는 듯이 그저 씨익 웃어보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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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엔의 식사가 끝날때까지 기다려준 나는 조용히 빈 접시를 가지고 그녀가 편히 쉴수 있도록 방밖으로 걸어나온다. 다행히 리엔은 기특하게도 내가 만들어준 맛없는 스테이크를 전부 먹어주었다. 오늘 하루 여러모로 리엔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날이었다.
“그럼... 그 보답을 해야겠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보란듯이 유적지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첨탑을 바라본다. 내가 찢어낸 만큼 그녀가 입을 만한 옷은 내가 구해야만했다. 바로 저 망할 소악마인 키르비르에게로부터.
달그락..
그 생각이 행동에 옮겨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로하지 않았다. 오래 시간을 끌어봤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매도 빨리 맞는게 났다고 이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맘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빈 그릇들을 설거지를 위한 싱크대에 올려둔뒤 가볍게 몸을 풀며 키르비르가 있는 거대한 첨탑 내부의 계단을 통해 첨탑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내부에 뭐가 들어있는지 의문인 거대한 기둥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방식으로 세워진 계단. 그런 계단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빙글빙글 도는 원의 지름이 점점 좁아지는 형태를 가졌다. 최하층은 로터스가 지내는 기둥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돔처럼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첨탑 끝부분에 가서는 고작 내가 지내는 방의 두배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않았다.
그런 길고 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서 지루함을 느낀 나는 로터스에게 리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로터스. 리엔이라는 녀석... 어떻게 생각하냐?”
-여러모로 성가신 존재이지. 실제로 신성력을 가진 암컷을 범할때는 조금이지만 저항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리엔 같은 경우 그 저항력이 너무나도 강해 범접자체를 못하겠군.
그러니까 녀석의 말로는 신성력이 바로 로터스의 최약점이라는 뜻인가?
-뭐... 신관들을 범할때는 그 짜릿짜릿한 저항력떄문에 즐거워서 기대했는데. 이건 뭐 건들지를 못하니 기분만 잡쳤군.
불행하게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로터스는 오히려 신성력에 의한 저항력을 즐기고 있었다. 녀석에게 신성력따위는 단순한 장난일뿐 위협적인 무기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상한 점?”
-그건 바로 그녀가 신성한 자라는 뜻이지.
로터스의 말에 나는 쉬지않고 계단을 밟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리엔이 신성한 자가 이상하다니.
-리엔은 신성한 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뭐... 유별나게 신성력이 강하거나 믿음이 강하면 신성한 자가 되는게 아닌가?”
-안타깝게도... 교단을 모시는 신이 조금 변태라서... 신성한 자는 오직 남자만이 그 계시를 받게 되지.
“...뭐?”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느낌에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러니까. 신성한 자는 오직 남자만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리엔은 신성하 자이다. 그러니 결론은 리엔이.. 남자다?
“마.. 말도 안돼.. 내가 순간 미쳤었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내 관자놀이를 주무른다. 최음제에 미쳐서 앞뒤구분을 못했던 것인가?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도 구분 못했던 걸까? 그럼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지?!
-어이. 정신차려라. 말은 끝까지 들어.
“로터스?”
혼란속의 나를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로터스였다. 그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나를 질책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 이어나간다.
-씨받이가 된 녀석들의 기억을 몇 개 뒤져봤다. 리엔. 그녀는 인간 세상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녀석이군.
마치 기억을 뒤적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잠시 뜸을 들인 로터스는 리엔에 대한 설명을 완성한다.
-아. 그 녀석.. 쌍둥이었군. 원래 진짜 신성한 자와 같이 태어난 쌍둥이.
“쌍둥이?!”
-그렇더군. 쌍둥이로 태어난 그녀와 그녀의 친오빠. 그 두 명에게는 둘 다 신성한 자임을 증명하는 각인이 새겨졌지. 하지만... 흐음.. 이건...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로터스는 작게 침음성을 삼킨다. 그런 그의 행동에 나또한 걸음조차 멈추고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죽였군. 친오빠를 죽였어. 신성한 자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그런 무슨 말도안되는...!!”
믿을 수 없었다. 리엔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이다니. 그녀는 살인과 상당히 걸이가 멀어보이는 녀석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엔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이고... 원래 그에게 가야할 신성한 자라는 칭호를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만들었지. 신성한 자라는 칭호는 한 세기에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은 원래 예고된 운명이었군.
“거기서 죽은 것은... 그녀의 오빠쪽이라는 뜻이지.”
로터스의 말을 들은 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리엔과 격한 관계를 맺은 후. 잠시 의식을 잃었던 순간. 내 눈에 보였던 것은 머리가 짓뭉개진 남자의 시체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돌덩어리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소녀였다. 그 소녀의 정체가 과거의 리엔이었다면...
“그녀의 과거를 내가 본건가...”
믿을 수가 없었지만 로터스의 말과 내가 본 광경을 비교할 때 이것말고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리엔의 말로는 자기는 미래를 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 말이었다.
“크으... 골이 아파오는군..”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자 고민하는 거 자체가 귀찮고 성가시게 변해간다. 잠시 두어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낸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과 생각들을 털어버린다.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그녀의 과거가 그렇든.. 내 미래가 어찌되든. 지금은 지금의 현실에 집중하는게 중요했다.
“그래.. 리엔이 입을 옷.”
그렇다. 리엔이 입을 옷을 구해야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소제목따위 짓는것도 귀찮아... 그냥 그 화에 중심이 된 인물의 이름이나 써야지.
Solar Eclipse / 엉엉엉 ;ㅅ; 엄청난 쿠폰이다. 이러면 왠지 연참을 해야할 것 같아.. 그리고.. 약효 오래가죠. 아주 오래가죠. 쿠폰의 영향력도 오래갈꺼에요.
타락한 마법사 / 올 ㅋ
Lizad / 주종덮밥! 듣기만해도 후끈해지는 용어군요. 하지만..
성미카엘 / Let's 능욕!! 이라지만.. 키르비르는 만만치 않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