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 신성한 자 -->
단 한번의 기습적인 습격으로 인해 베히모스에 도착한 인간들중 절반이 살해를 당하거나 실종을 당했다. 모험자들의 무덤이라는 베히모스의 공포를 몸소 체험한 인간들은 더 이상의 싸움없이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며 같은 인간들의 등을 맞대 기대고 있었다.
이미 수십의 부상병들. 강력한 텐타클의 촉수에 신체 이곳 저곳이 뜯겨져나간 병사들을 한데 모아둔 리엔은 어느정도 응급처치에 능한 사람들과 같이 그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한바퀴 돌아본 나는 한시도 쉬지않고 자신의 신성력을 발휘하는 리엔을 바라본다.
“휴우... 타메르씨는 괜찮으세요?”
또다시 한 부상병의 치료를 마친 리엔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내 몸상태에 대해 묻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야 말로 괜찮은거냐? 무리하는거 아니냐?”
“괜찮아요. 신성한 자인 저는 여신의 축복과 사랑을 받아 여신님에게 꽤 많은 힘을 빌려올 수 있으니까요.”
교단사람들 사이에서는 신성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저 여신에게 힘을 빌린다는 말을 신성력 대신 사용하는 그들의 특징으로 보아 그녀의 말은 그녀가 가진 신성력은 어마어마하다는 말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래? 그것 참 좋겠군.”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신성력이라... 아마 로터스가 좋아서 발랑 뒤짚어질 것이다. 신성력도 하나의 힘. 신에 대한 진실된 믿음으로 생기는 신성력은 마나와 버금가게 텐타클을 만드는 아주 질 좋은 먹이가 되었다. 그런 신성력이 무한이라니... 그녀가 얼마나 강력한 텐타클을 출산할지는 아무도 모를 이야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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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엔의 활약으로 수 십이 되던 부상자는 순식간에 치료될 수 있었다. 그들중 용병술에 능한 몇 명이 사람들을 지휘하며 인간 무리는 이제야 조금 봐줄만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몇 명은 남의 지시를 듣는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듯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베히모스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순종적으로 만들어주게하기 충분했다.
“거기! 얼빵하게 서있지마! 대열을 지켜라!!”
어찌됬던 일단 인간들의 무리에 섞인 나는 한 여성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과거 기사라는 직책을 맡을 정도의 인물이었지만 동앗줄을 잘못타 결국 제명당했다는 기사. 이름이 아마도 레아였던가?
“너 말이야! 너 떄문에 모두를 죽게하고 싶어?! 정신차려라!”
따악!
레아는 그녀의 성질을 대변하듯 붉은 단발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신의 지시를 듣지않고 자리에 무뚝뚝하게 서있는 내 정수리를 자신의 검집으로 가격한다. 그런 거친 그녀의 행동에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레.. 레아씨. 그렇게 너무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잖아요...”
“이게 다 저희의 희망인 리엔님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리엔이 나에게 다가와 힘껏 발돋움하며 레아의 검집으로 얻어맞은 내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욱씬거리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저희는 리엔님을 지킬 마지노선입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괴물로부터 리엔님을 보호해야할 저희들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일단 내가 운이 좋았는지 나는 리엔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호하는 집단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리엔을 보호하는 일인 만큼 사람들중 리더십이 강하고 검술도 수준급인 기사였떤 레아가 지목되었다. 이 집단을 이끄는 그녀뿐만아니라 그녀를 보호하는 사람들도 한 실력을 하는지 제각각 우람한 자신의 몸과 무식한 자신의 무기를 뽐내고 있었다.
“리엔님에게 저 사악한 생체의 접근을 하나라도 허용하면 안된다! 모두 힘내는 거다. 우리는 베히모스를 해방한 영웅들로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것이다!”
“와아아!”
레아의 멋들어진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사기가 잔뜩 고무되었는지 자신의 병장기를 허공에 휘두르며 괴성을 지른다. 그런 그들은 이제 천천히 베히모스를 지배하고 있는 로터스가 존재하는 유적의 최심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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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리엔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인간 무리들은 어두운 틈 사이에서 달려드는 텐타클의 습격에 의해 수십번도 더 전멸할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발휘되는 리엔의 신성력. 그녀의 힘에 순식간에 텐타클들이 무력화되고 죽기 직전까지의 치명상을 입은 사람들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한계를 맞이해가고 있었다. 리엔이 비록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전황파악도 제대로 못한 그녀는 신성력을 발휘할 적절한 기회를 놓치기 일 수 였고 그러면 그럴 수록 사망자의 수는 차츰차츰 누적되어갔다.
“하아... 하아.. 레.. 레아님.. 아직 멀은 것입니까?”
처음에 수백이 되던 병사들이 이제는 고작 몇십명의 소규모 단위로 줄어들은 지금. 거의 반쯤 포기한 눈빛의 병사가 앞서 걸어가는 레아에게 묻는다.
“이제 거의 다온것같다. 걸어온 거리를 봐서.. 이제 조금앞이 바로 유적의 최중심부야.”
그녀또한 많이 지쳤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베히모스를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적을 이겨낼 자신감마저 잃은 것인걸까. 그녀의 검이 쉼없이 떨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지친것은 리엔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신성력이 무한하다고는 하지만 신성력을 발휘할때마다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안그래도 경험이 부족해 불안불안했던 리엔이 심적으로 지쳐가자 병사들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었다.
“리엔님... 부탁드립니다.”
“으.. 으응..”
레아의 부탁에 리엔은 자신의 손에 신성력을 모아간다. 그러자 새하얀 빛으로 이뤄진 빛의 창이 만들어진다. 그런 빛의 창을 확인한 레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눈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석문 발로 걷어찬다.
콰앙!!
거대한 석문이 바닥에 쓰러지며 자욱한 먼지와 함께 요란한 굉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수십마리의 텐타클들. 어둠속에서 샛노란 눈을 빛내며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소름이 끼친다고해도 충분했다.
“리엔님!!”
이런 상황을 예상해 미리 리엔에게 신성력을 준비해두라고 말해준 레아는 리엔이 적을 확인할 수 있게 살짝 몸을 옆으로 비튼다.
“서.. 성창이여..!!”
그러자 손에 쥐어진 빛의 창을 힘껏 던져보는 리엔.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리엔은 성창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정확히 텐타클의 무리가 아닌 살짝 옆으로 빗겨나가는 성창.
파앙!
어두운 방안에 밝은 빛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텐타클 전부가 아닌 일부만이 빛의 창날에 꿰뚤린다.
“이런... 젠장할...!!”
그들을 인식하고 달려드는 수 십마리의 텐타클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사람들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텐타클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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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하아... 하아..”
격해진 숨을 내뱉는 레아. 그녀는 자신의 발밑에 검에 꿰뚤린채 바르르 몸을 떠는 텐타클을 노려보다 이내 검을 비틀어 녀석을 절명시켜버린다.
“남은 사람은...?”
“두 명. 하지만..”
서걱!
나는 얼굴에 텐타클을 붙힌채 바둥거리는 남자의 얼굴을 텐타클과 같이 베어버린다.
“이제 한 명이다.”
“....”
내 말에 레아는 피로와 절망감으로 점칠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미 리엔은 반쯤 의식을 잃은채 나에게 기대어있었다. 싸울 수 있는 것은 이제 나와 레아뿐.
“끝인가...”
레아는 더 이상 전의를 가질 수 없는지 자신의 검을 힘없이 늘어뜨린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눈짓으로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을 가리킨다.
“포기할텐가?”
“......”
내 물음에 입을 꾹 다무는 레아. 아마도 자존심이 강한 기사였던 그녀의 입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나올 리가 없었다.
“가겠어.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베히모스를 이꼴로 만든 녀석의 안면은 보고싶다.”
다시금 자신의 검을 들어올린 레아는 비틀거리지만 다부진 걸음걸이로 다음 문을 향해 다가선다. 이미 그녀에게는 삶에 대한 미련은 존재하지않았다. 거침없이 문으로 다가선 그녀는 주저없이 석문을 걷어차 거대한 석문을 쓰러뜨린다.
쿠웅...!
거대한 석문이 쓰러지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솟아오르는 자욱한 먼지. 그리고 들어나는 방안의 풍경. 거대한 기둥이 한가운데에 세워진 거대한 공동의 모습에 레아는 할말을 잃는다.
“흐음.. 중심이군.”
리엔을 옆에 부축하며 걸어온 나는 그녀의 곁에 서서 공동 한 가운데를 지지하고있는 거대한 기둥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런 내말에 수긍하는듯 레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이 가득한 눈으로 공동 한가운데를 떠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둥을 노려본다.
콰드득..
그 순간 거대한 기둥 한가운데에 가로로 갈라진 군열 사이에서 날카로운 7개의 눈동자가 빛을 내며 우리들을 돌아본다.
“네 놈이 바로 베히모스 유적지를 이꼴로 만든 범인이구나!!”
상대를 확인한 레아는 드디어 베히모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괴물을 찾아냈다는 생각에 로터스를 향해 검을 들어올리며 호기롭게 외친다. 아마도 그녀는 수백명의 병사들과 함께 괴물들이 득실득실한 곳을 뚫고 드디어 진정한 괴물들의 주인을 찾아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쁠것이다.
이미 그녀는 이 괴물을 상대로 이길 가망성은 없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죽은 그녀의 시체와 그녀가 사용했던 병기들은 그녀가 인간들 최초로 이 베히모스의 최중심부까지 도달한 존재라는 것을 역사서에 각인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 작품 후기 ==========
이라지만 다음화에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