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 성녀 리엔 -->
방에서 걸어나온 나는 복도를 따라 걸으며 어렵지 않게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수십명이 지나간지 엉망이 된 복도를 통해 밖으로 걸어나온 나는 비공정 바로 앞에서 와글거리는 인간들을 돌아본다.
-돌아왔는가...
그러자 머릿속으로 그동안 느껴지지 않았던 로터스의 사념이 들려온다. 간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그의 목소리에 피식 웃은 나는 주변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인간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저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일 수록 별 볼일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애써 강한척을하며 더욱더 요란하게 떠듬으로써 자신의 편을 늘리려는 수작. 실제로 두 개로 나눠진 무리들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물건이 하나 들어왔더군.
“휴가 선물이다. 안 그래도 비공정안에서 녀석을 지키려고 고생좀했다고...”
-크크큭.. 그것참 고맙군.
역시나 로터스는 리엔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긴. 로터스나 되는 괴물같은 놈이 주변에 신성력을 흘리며 존재감을 풀풀 날리는 리엔을 못 알아채는 것이 더 이상한 이야기였다.
“모... 모두들! 집중해주세요!”
그때 내가 나온 출구와 그리 멀지 않는 다른 출구에서 리엔이 긴장된 얼굴로 걸어나온다. 그녀는 두 무리로 나눠진 인간무리들의 관심을 끓기 위해 소리쳐보지만 지금 고래고래 떠드는 인간들의 목소리에 비하면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한낯 모기소리에 불과했다.
“어? 리엔님이다!”
그 순간. 눈에 잘띄는 새하얀 신관복을 입고있는 리엔을 알아본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두 무리가 눈을 붉게 띄며 그녀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히.. 히익...”
그런 그들의 강렬한 시선에 리엔은 자신이 하려던 말조차 잊어버리고 무서운 듯 가볍게 헛바람을 삼킨다. 그런 한심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저 힘없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리엔님! 저희쪽으로 오십쇼! 목숨이 다할 그 순간까지 리엔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리엔님 이쪽입니다! 저런 약골들과 같이 가실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중 가장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엔. 두 개로 나눠진 무리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소심한 리엔은 그러 두려운 눈으로 광기에 휩싸여가는 두 무리를 바라볼뿐이었다.
“이.. 이게 아닌데.. 모두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싸워야해요.”
리더십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리엔으로써 이 인간 무리들을 컨트롤 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그녀는 어떻게든 인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용기있게 몇마디를 내뱉어보지만 이미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에게 그녀의 조그만 중얼거림이 들릴 일은 없었다.
“리엔님!”
“이리로 오십쇼!!”
결국 참다못한 인간들이 물리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일단 강제적으로라도 그녀를 자신의 무리로 끌고가려는지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달려드는 몇 명의 인간들. 그런 인간들의 공격적인 행동에 갸날프게 비명을 삼킨 리엔은 무력하게 몸을 웅크린다.
빠악!
“이 자식이!!”
“애송이 새끼가!!”
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두 무리사이의 싸움으로 번져간다. 시작은 주먹질과 발길질이었지만 점점 싸움이 격해지며 자신의 병장기까지에 손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모두들 그만들 하세요!!”
결국 피를 볼것같은 두 무리의 싸움에 참다못한 리엔은 두눈을 질끈 감고 요란하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싸우던 무리는 서로간의 무의미한 싸움을 멈추고 리엔을 돌아본다.
“콜록.. 콜록 콜록!”
차가운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한 침묵속에서 리엔이 무리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갸날픈 기침소리가 조용히 메아리친다.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더 이상의 소란없이 자신의 말에 집중해주자 리엔은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간다.
“베히모스를 점령하고 있는 괴물은 강력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그 괴물을 몰아낼때에요. 이렇게 서로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
“...”
하지만 불행히도 리엔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리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나지막하게 욕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상대 무리가 자신의 영광과 보물들을 빼앗아갈 라이벌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아... 젠장...”
나는 답답한 이 상황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욕을 짓걸인다. 다행히 그런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살짝 인상이 험악한 평범한 검사로 보이는 나는 지금 신성한 자라는 리엔에 비해 그 중요도가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메르씨...”
그러나 리엔은 살짝 나를 흘겨보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어께를 으쓱이는 걸로 알아서 처리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뒤 천천히 출구에서 걸어나와 유적지에 발을 내딛는다.
“네 놈은 어디에 속할꺼냐?”
내가 내려서자마자 별 볼일 없이 근육만 우람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내가 속할 무리에 대해 묻는다. 그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과시하며 무언의 협박을 내비치지만 그런 그가 그저 물만 가득 들은 풍선으로 보이는 나는 조용히 콧방귀를 뀌며 착륙한 비공정에 몸을 기댄채 조용히 팔짱을 낄뿐이었다.
“야! 무시하는거...”
“시끄러.”
빡!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양팔을 쫙 벌린채 나를 덮치려는 듯 다가오는 남자의 안면에 가볍게 주먹을 박아넣어준다. 그러자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이빨조각.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나는 리엔이 속한 곳으로 가겠다.”
“개 같은 놈...”
내 대답에 그는 살벌하게 눈을 부라리며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는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아주 야비하고 비열한 기회주의자로 보일 것이다. 리엔이 속하는 무리는 분명히 생존률이 높아진다. 뒤늦게 나와서 그런 무리에 속하겠다는 말을 내뱉은 내 모습이 그들에게 결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흥...!”
나를 욕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팔장을 낀채로 묵묵히 리엔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서로 싸우려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뭐라뭐라 쫑알거리며 그들을 회유시키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수록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세 개미 발자국 소리만큼 조그맣게 변해있었다.
“움직이기 시작해군.”
리엔을 회유하려는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을 진정시키는 리엔의 말소리를 듣고 있던 내 귀로 낯익은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뭔가 끈적한 물체가 바닥을 스치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소리. 텐타클들이다.
“어...? 이거 뭐야?”
조용히 리엔을 노려보고 있던 무리들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일어난다. 그리고...
콰앙!!
“으... 으아아!!”
땅이 꺼지며 몇몇 모험가들은 싸워볼 틈도 없이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고 몇몇은 마치 뱀처럼 빠르게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온 텐타클의 강력한 촉수에 의해 목이 반즘 뜯겨져나간채 쓰러져버린다.
“괴.. 괴물이다!!”
갑작스런 텐타클들의 습격. 그런 습격에 인간 무리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뒤늦게 자신의 병장기를 꺼내 자신에게 달라붙는 텐타클들을 베어내려했지만 그들의 재정신을 차렸을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헛된 죽음을 맞이한 후였다.
“으아.. 으아아!!”
한 남자가 얼굴에 텐타클을 붙인채 비명을 지른다. 그는 양손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붙은 텐타클을 떼어내보려하지만 강력한 흡착력을 가지고 있는 빨판을 가진 텐타클들이 손십게 떨어져나갈일은 없었다.
서걱!!
하지만 그에게 텐타클을 떼어낸 것은 그와 같이있던 동료였다. 이미 공포로 질색이 된 얼굴의 그는 주저없이 검을 휘둘러 텐타클과 함께 그 남자의 얼굴을 동시에 베어버린다.
“모.. 모두정신차려라! 이 문어새끼들은 얼굴과 목만 노려! 상체를 보호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든 자신이 개발한 파해법을 주변에 퍼뜨리는 남자. 하지만 불행히도 텐타클은 그렇게 무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검을 들어올려 그가 얼굴과 상체를 보호하자 날렵한 텐타클은 그의 다리를 타고올라가 사타구니쪽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쫘악!
“커.. 커헉...”
엄청난 힘을 가진 촉수로 그의 사타구니에서 자라나는 소시지를 부여잡은 텐타클은 그대로 그 소세지를 주인으로부터 분리시켜버린다. 그러자 남자는 비명조차 지를 수도 없이 강렬한 고통 속에서 눈깔을 뒤짚은채 바닥에 쓰러진다.
“이런 이런...”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찬다. 텐타클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작은 물량으로 큰 효과를 추구하는 로터스는 아주 극소수의 텐타클만 보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텐타클에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한채 우왕좌왕 거리며 하나둘씩 빠른속도로 쓰러져나갈 뿐이었다.
“성창이여!!”
그때 혼란이 가득찬 난장판속에서 울려퍼지는 부드러운 외침. 그리고 환한 빛을 흩뿌리며 하늘 높이 쏘아진 날카로운 빛의 창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파앙!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빛의 창은 강한 빛을 발함과 동시에 수백개의 날카로운 창날로 변해 아수라장이된 대지에 내려꽂힌다. 인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창날에 기겁하며 자신의 몸을 가리지만 빛으로 이뤄진 창날들은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관통하며 오직 텐타클들만 꿰뚫어 땅에 박아버린다.
“휘유...”
예상외의 강력한 힘에 나는 가볍게 휫파람을 분다. 이떄까지 베히모스를 침범해온 인간들중 저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비록 수십마리밖에 안된다고 하지만 단 일격으로 그 모든 텐타클을 제거해낸 리엔의 힘에 나는 작게 감탄을 삼킨다.
“모두 부상자를 한곳에 옮겨주세요! 그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주변을 경계해줘요!”
강력한 신성력을 발휘해놓고 휠틈도 없이 비공정 계단에서 뛰어내려온 리엔은 허겁지겁 인간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이곳저곳에 널부러져있는 부상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단 한번의 텐타클의 습격으로 정신을 차린 인간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그녀의 말대로 부상병을 수습하고 또 다른 습격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제법인데...”
그런 그녀의 행동에 작게 감탄을 삼킨 나는 비공정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고 천천히 부상병들 무리 사이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최근 문피아의 연참대전을 마무리하느라 이 소설을 쓸 틈이없었네요.
연참대전이 마무리됬으므로 정상적으로 연재를 재개시합니다.
아... 그동안 연재를 빵꾸낸 사죄의 의미로 수,목,금 연속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