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 성녀 리엔 -->
“저... 그... 저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어요.”
“특별한 힘?”
“그게... 단편적이지만 미래를..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요.”
“.....”
그녀의 말에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리엔은 혼자 망상에 사로잡혀 부끄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은 절대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미래를 본다는 힘. 비공정이 출발하기전. 그녀와 악수했을떄 느꼈던 기이한 감각. 그 감각의 정체가 리엔이 내 미래를 읽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쏘아본다. 하지만 둔감한 리엔은 그런 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옷자락을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말을 이어갈뿐이었다.
“타.. 타메르씨와.. 악수했을때. 봤어요. 약간이지만... 당신의 미래를...”
그녀의 말이 계속되면 될수록 점점 그녀의 목소리고 자그맣게 변해간다. 그리고 이제 붉어지다 못해 터질정도로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리엔은 지나친 부끄러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미래. 그것은...
“타메르씨와... 제가.. 한 침대에서...”
“....뭐?!”
“그.. 그니까!! 그렇게 될꺼에요! 아마도 그렇게 될꺼라구요! 제가 본 미래는 틀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리엔은 다시 얼굴을 붉게 붉히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가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저는... 마음의 준비가...”
“거절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의 말이 끝나기도전. 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그녀의 말을 끊어버린다. 그러자 이럴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리엔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너는 내 취향이 아니야. 어리버리한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와아아아아아앙!!!”
내가 단칼에 그녀의 고백을 거절해버리자 리엔은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지른다. 마치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이. 그런 그녀의 행동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의 병뚜껑을 주워 그녀의 이마로 집어 던져버린다.
따악!!
“캬햙!!”
이마에 병뚜껑이 명중하자 따끔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말고 이마를 감싸쥐고 바닥에 꿇어앉아 몸을 바들바들 떠는 리엔. 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볼뿐이었다.
“하.. 하지만!! 제가 본 미래는 틀린 적이 없다구요!!”
“그래서. 너의 말은 내가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거네?”
“그.. 그래요! 그래서.. 그래서 당신이 저에게..”
“미안하지만 아주 짤막한 오해다.”
재차 퇴짜를 내는 내 한마디에 리엔의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한다.
“아.. 아니에요! 속마음을 숨기지 말아요!! 부끄러워하지 말라구요!! 다.. 당신은...”
“마음에 없다니깐 그러네.”
“우아아아아앙!!“
결국 말로 이길 수가 없게 되자 리엔은 새빨개진 얼굴로 갑작스레 나에게 달려들어 조그마한 주먹을 나에게 휘두른다.
“잊어요! 잊어버려요!! 내가 한 말! 잊어버리라구요!!”
“야.. 야!!
나는 성가시게 내 머리를 두드리는 그녀의 자그마한 주먹질에 인상을 팍 찡그리며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그녀를 억지로 뗴어낸다. 그러자 힘으로도 이길 수 없게되자 리엔은 거의 울듯한 얼굴로 다리만 허공에서 바동거릴뿐이었다.
“망할.. 진정해라 좀!!”
결국 보다못한 나는 그녀를 가볍게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린다. 그러자 리엔은 바닥에 주저앉은채 자기가 한 말에 대한 부끄러움을 못 이겨 구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어자피 이거. 알고 있는 사람은 너와 나 밖에 없지?”
“그.. 그런데요..?”
“그럼 내가 조용히 입 닥쳐주면 되잖아. 질질 짜지 좀 말아라.”
“저.. 정말요?”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재차 되묻는 리엔을 바라보며 나는 탁자위에 나체로 누워있는 여성을 어께에 짊어지고 리엔이 끌어안고 있는 루를 일으켜세워 부축한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은 겪었기 때문일까.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아직까지 의식이없는 두 여인을 돌아본 나는 리엔을 바라본다. 그러자 리엔은 그저 어색하게 볼을 긁적거리며 말한다.
“한 반나절은... 기절해있을꺼에요.”
“반나절이라...”
그녀의 대답에 나는 흘끗 창문을 통해 배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자욱하게 깔린 구름을 뚫고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아침햇살. 벌써 날이 밝은 것이었다.
삐이이이이!!
그 순간 고막을 찢을 듯이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퍼진다. 갑작스레 울려퍼지는 날카로운 경보에 깜짝 놀란 나와 리엔은 가볍게 몸을 움츠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베히모스 상공 위에 도착했다는 거에요. 이제 시작할꺼에요!”
“뭘 말하는 거냐?”
리엔은 내 물음에 대답할 생각도 없이 허겁지겁 자신이 입고있던 외투를 벗어 내가 짊어지고 있는 여성의 몸을 따듯하게 덮어준다. 그리고 가볍게 옷을 팡팡 털어 옷매무세를 정돈한 리엔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이제 비공정이 급하강을 할꺼에요. 베히모스의 괴물들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유적에 착륙한다는 생각이에요. 충격이 좀 클테니까 대비해주세요.”
“급하강?!”
쿠웅!
내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은 리엔이 아니라 크게 요동치는 비공정이었다. 흔들리는 비공정속에서 두 여성을 짊어진 나는 간신히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리엔을 바라본다.
“5분 뒤에 급하강을 시작할꺼에요! 타메르씨도 어서 방으로 돌아가 준비하세요!”
하지만 리엔은 그말만을 남긴채 허겁지겁 식당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두명의 여성을 흘끗 돌아본 뒤 그녀들을 데리고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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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도착한 나는 내가 짊어지고 있던 두 여성을 침상에 내려둔다.
“언니...”
루는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서도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여성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녀의 손을 감싸쥔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이제 시작이군.”
뭔가를 준비하는 듯이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비공정을 느끼며 이제 제대로 싸울 수도 없는 짐이 되버린 두 여성을 돌아본다. 이제 그녀들의 운명은 보나마나 뻔했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고 싸울 힘도 잃어버린 그녀들의 결말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
나는 조용히 루를 바라본다. 얼마나 상처가 컸는지 자신의 곁에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여성을 끌어안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간다. 이대로 비공정이 베히모스에 착륙하면 무방비한 그녀들은 텐타클들의 맛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로터스의 씨받이로 죽을때까지 착취당하겠지.
“어쩔 수 없군.”
이것이... 그녀들을 위한 방법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침상에 누워있는 루와 이름모를 여성의 목을 움켜쥔다.
“이것이 너희들을 위한일이겠지.”
나지막하게 혀를 차며 나는 그녀들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준다. 그러자 아직 미세하게 의식이 남아있는 루는 눈꺼풀을 바들바들 떨며 나를 희미한 눈동자로 바라본다.
“어.. 째서..”
“.....”
그런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좀 더 손에 힘을 준다. 그러자 한동안 컥컥거리던 괴로워하던 루는 힘없이 눈을 감아간다.
“미안하다.”
고요히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는 루를 내려다보던 나는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사과를 한마디 남긴뒤 몸을 잃으킨다. 숨이 끊어진 루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침상에 누워있었다.
덜컹!!
그런 그녀들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나는 비공정이 다시한번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빠른 속도로 고도를 낮추는 비공정. 창문 아래로 베히모스의 험난한 산맥 사이에 숨어있는 유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사망!
뭔가 뒷이야기가 있는 액스트라였지만...
뒤끝남기는 건 귀찮음.
그러니 사망처리.
차암~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