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 성녀 리엔 -->
“이런 젠장할...”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리엔에게 달려드려는 남자의 안면을 후려갈겨 녀석을 뒤로 튕겨낸다.
“타.. 타메르씨?”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엔. 자신을 구해준 내 행동에 상당히 놀라보이는 눈빛이었다.
“망할... 이렇게 된거.. 피차 서로 편하게 조용하게 끝내자구.”
나는 왼손에 움켜쥔 술병을 병째로 들이키며 녀석들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이미 안면에 한방을 얻어맞고 날라간 녀석을 얼굴을 부여잡은채 비명조차 흘리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었고 여성을 능욕하던 남자는 바지춤도 끌어올리지 못한채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또다른 남자는 자신의 동료와 나를 돌아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우.. 우아... 커헉!!”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든 용기를 내고 달려드려는 듯 있는 힘껏 기합을 지르는 남자. 나는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녀석의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린채 신속하게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의 목을 강하게 부여잡아 녀석의 숨통을 막아버린다.
“조용하게 끝내자니까.”
뻐억!!
그런 녀석의 복부에 내 무릎이 강렬하게 박혀들어간다. 숨통이 막힌터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 남자는 그저 눈을 휘둥그레뜨고 몸을 바들바들 떨뿐이었다. 그런 녀석을 싱겁다는 듯이 바라보던 나는 그를 마룻바닥에 내팽겨쳐버린다.
“우.. 우웨에엑!!“
그러자 등을 둥굴게 만채 추잡하게 속안에 든것을 바닥에 게워내는 남자. 그런 추잡한 그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나는 아직도 웩웩 거리고 있는 녀석의 뒷덜미를 발로 밟아 녀석이 쏟아낸 토사물에 녀석의 얼굴이 처박히게 만든다.
“히.. 히익!!”
그리고 홀로남은 남자. 그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바지춤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흉측한 자신의 속옷을 내보인채 허겁지겁 여성의 복부에 꽂혀있는 단검을 뽑아 나를 경계한다. 선명한 붉은 피가 잔뜩 묻어있는 녀석의 단도와 아랫배에 검상을 입고 꿈틀거리는 여성을 돌아보던 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린채 녀석에게 다가간다.
“주.. 죽어랏!!”
마지막 용기를 짜낸듯 나에게 쓰러지듯 달려들어 힘차게 내 배에 단검을 찔러넣는 남자.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녀석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감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녀석을 내려다보며 녀석의 뒷덜미를 움켜쥐어 나에게 밀착한 녀석을 떼어낸다.
“이게 끝인가.”
내 배에 박힌 단검과 시큰둥한 내얼굴을 돌아보던 남자는 마치 괴물이라도 봤다는 듯이 몸을 바들바들 떨어간다. 그런 그를 조용히 응시하던 나는 아무말없이 왼손에 움켜쥐고 있던 술병을 들어올려 망할 놈의 정수리를 강타한다.
와장창!!
순식간에 술병이 깨어지며 바닥에 날카로운 유리파편과 독한 알콜향을 풍기는 술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에 이어서 기절한듯한 남자가 풀썩 쓰러져버린다.
“흥...”
쥐죽은 듯 단 일격에 기절한 녀석을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뀐 나는 내 복부에 박혀있는 단검을 거칠게 뽑아낸다. 단검을 빼내자 복부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져나왔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순식간에 복부의 상처가 아물어져간다. 내 피가 묻은 단검을 대충 탁자위에 꽂아 넣은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세명의 남자들을 돌아본다.
“타.. 타메르씨! 여기좀 도와주세요!”
그때 날카롭게 비명처럼 울려퍼지는 리엔의 외침. 그런 그녀의 외침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그녀를 바라본다. 안그래도 그녀에게 할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미리 준비했던 불평을 쏟아내지 못했다.
“이 출혈 좀 막아줘요! 이대로가다 죽겠어요!!”
남자들에 의해 복부에 깊은 검상을 입은 여자를 붙들고 있는 리엔. 그녀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울컥울컥 핏물이 쏟아져나오는 여성의 배를 양손으로 꽉 눌러 지혈해주고있었다.
“...이런 젠장...”
괜히 시답지않은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리엔 대신 여성의 배를 양손으로 꽉 눌러 지혈을 해준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리엔은 내가 지혈하고 있는 여성의 복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음여 조용히 눈을 감는다.
휘이잉..
그러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척봐도 신성해보이는 기운이 휘감겨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몸을 휘감아가던 신성한 기운은 천천히 그녀의 의지를 따라 그녀의 팔을 타고 내려가 여성의 복부에 머무른다.
“...음?”
그러자 그녀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는 내 손끝으로 기묘한 박동과 함께 빠른 속도로 출혈이 줄어들며 상처가 아물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 깜짝한 사이에 미세한 흉터만 남을 정도로 치료가된 여성의 복부에 나는 작게 감탄을 삼킨다.
“이게 신성한 자의 힘인가...”
처음에 그녀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저항인 상태에서 자비없이 그녀의 배를 헤집은 검. 거기다 치명적인 출혈까지. 나는 내심 그녀를 포기하고 있었지만 리엔은 보란듯이 그녀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해냈다.
“큰 상처는 치유했어요.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제가 손델 방법이 없네요.”
리엔은 아직도 약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는 여성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 탁자에 쓰러진채 실신 직전인 루에게 다가간다.
“한 숨 자고 일어나. 그러면 모두 괜찮아질꺼야.”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간 리엔은 부드럽게 리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상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던 루의 눈이 천천히 감겨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편안한듯한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루를 확인한 리엔은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루의 양팔과 다리를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풀어낸다.
“도데체 어떻게 된거냐. 너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급한 상황이 일단락 되자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리엔에게 지금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자칫 잘못했으면 루와 이름모를 여성에 이어서 이 세남자에게 겁탈까지 당할 수 있었던 위기 상황이었다.
“그.. 그게...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리엔은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는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양팔과 다리가 자유가 된 루를 자신의 품안에 끌어안은채 의자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채 깊은 잠에 빠져있는 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아랫배를 문질러준다. 다시한번 신성한 기운에 휩싸인 그녀의 팔이 아마도 루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타메르씨는 왜 여기있었던 거에요. 그것도 꽤... 오랜시간 말이죠.”
“....”
예리한 리엔의 한마디에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본다. 하지만 그런 내 시선을 아는지. 아니면 그저 외면하고 있는지 시선을 루에게 고정한 리엔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간다.
“이 아이와.. 저 아가씨께서 이곳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심한 일을 당한 것같은데.. 타메르씨도 보셨죠?”
“....”
마치 그 순간 이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완벽한 추리를 해내는 리엔의 말에 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내가 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자리를 고수했던 이유. 그것은 그저 보잘것없는 동정심 때문이다. 요란한 소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루를 도와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모든 일이 끝나고 루를 따듯한 침대로 데려가줄 용의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의 일이 끝날때까지 조용히 문 밖에서 기척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었던것 뿐이다.
“어째서에요?”
대답을 재촉하는 리엔의 질문. 그런 그녀의 질문에 어설픈 변명이나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유를 설명한다.
“괜한 일에 얽매이기 싫었다.”
“......”
이번엔 리엔쪽이 입을 다문다. 설마 이런 뻔뻔한 이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그저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하.. 하지만!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도와주신거죠?!”
하지만 이번엔 자기 일을 들먹이며 나에게 재차 질문을 던지는 리엔. 나는 아무말없이 조용히 그녀를 응시한다.
내가 그녀를 도와준 이유? 그것은 그다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이 세 남자는 스스로 삶의 막바지에 온 녀석들. 그런 그들이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질러도 전혀 이상할 것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그들의 손길이 리엔에게 뻗혀 리엔이 치명상을 입거나 죽기라도하면 내 입장이 상당히 곤란하다는 것이다.
리엔은 최상등품 중에서도 최상등품이다. 이때까지 베히모스에 이런 거물이 온적은 없을 것이다. 로터스또한 그 예리한 감각으로 리엔이 오고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보물덩어리 리엔이 저런 추잡한 놈들에게 멋대로 범해져 폐인이 되는 것을 놔둘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오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하는 리엔.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간다.
“너는... 소중하니까.”
그래. 소중하다. 여러의미로. 모든 사실을 말해줄 수 없었던 나는 최대한 간략하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버린다. 하지만 리엔의 반응은 간결했다.
“아.. 에..? 에??”
말을 뱉을때는 몰랐지만 말을 뱉고나서 내가 한말을 곱씹어보니 뒤늦게 내 말이 뭔가 강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 나는 아차한 마음에 신음을 삼킨다. 그리고 뒤늦게 지금의 일을 수습하려 뭐라 변명을 해보려하지만...
“아.. 저.. 저는.. 마음의 준비가 아직... 그..”
오히려 잘익은 문어처럼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채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떠듬떠듬 뭐라 말을 웅얼거리는 리엔. 보는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한심한 모습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같은데...”
“아.. 아니에요!! 만약 타메르씨가 진심이라면... 저도 어느정도 받아드릴 용의는 있는데..”
“...뭐?”
점점 말이 이상한곳으로 흘러간다. 아니... 우리가 서로 언제 봤다고 벌써부터 얼굴을 붉히며 조아라하고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리엔은 우물쭈물거리며 애꿎은 자신의 옷자락을 쪼물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간다.
========== 작품 후기 ==========
명절에도 연재는 쉬지 않을껍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