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25화
콰과과광-!
포탄이 떨어졌다.
“피해!”
아부 키파는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폭발한 포탄에 동료 두 명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찢겨져 사망한 상태였다.
“크윽!”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벌써 몇 명째던가?
저 빌어먹을 공습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신이시여, 신이시여!’
아부 키파는 속으로 신을 찾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젠장.”
아부 키파가 몸을 일으켰다.
반사적으로 신을 찾긴 했지만, 지금은 응답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그 시간에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니까.
몸을 일으킨 아부 키파는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들 것 가져와, 오마르!”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돌아갈 순 없다.
지금 저 무너진 건물 안 쪽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현장의 구조대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비? 정보? 동료?
모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부 키파는 용기라고 생각했다.
폭격이 떨어지는 전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요구조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아부 키파는 그런 용기가 있었다.
“후읍, 후읍!”
두려움에 숨이 막혀왔다.
그런데도 아부 키파는 망설이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쐐애액- 콰앙-!
“커흑!”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졌다.
다행히 직격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충격이 몰려왔다.
[아부 키파!]
무전기에서 오마르의 외침이 들렸다.
[괜찮으면 대답해! 아부 키……!]
“나, 난 괜찮아.”
변변찮은 장비들이었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었기에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돌아와라. 지금은 구조가 불가능해!]
현재 아부 키파가 있는 곳은 공습의 주요 목표가 설정된 곳이었다.
계속해서 포탄이 날아들었고, 쉴 새 없이 주변을 박살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있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안 돼! 그딴 소리 할 거면 무전 끊고 집으로 돌아가, 오마르!”
[하지만…….]
“그게 아니면 당장 들것 들고 뛰어오고!”
[젠장,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오마르가 신경질적으로 무전을 끊었다.
하지만 아부 키파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저렇게 매번 틱틱- 대면서도 달려올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부 키파는 잠시 바닥에 몸을 엎드린 채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벌써 10분째 공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본래도 엉망이었던 건물들이, 지금은 그냥 폐허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가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자, 아부 키파는 곧장 앞을 향해 뛰었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숨이 턱까지 들어찼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아부 키파는 울음소리가 들린 건물에 도착해 수색을 시작했다.
“아이야!”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불렀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 건가?’
지금 들어보니 너무도 어린 아이의 울음이었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다급해진 아부 키파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이동했다.
건물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는지라,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었기에, 아부 키파는 몸을 낮추고 기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함께,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고작해야 10개월이나 됐을까?
너무도 작은 아기가 돌가루에 파묻힌 채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의 옆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죽기 전까지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는지, 손톱이 모두 빠진 채 바닥을 긁은 흔적이 역력했다.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포격이 이쪽에 떨어지기 전에, 어서 안전한 장소로 대피를 해야만 했다.
“아부 키파!”
조심스럽게 돌가루를 치워내고 아이를 안아 드는데, 뒤에서 오마르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마르!”
예상했다시피, 오마르는 들것을 든 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아이가 전부다.”
오마르가 물어본 것은 요구조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부 키파의 대답에 모든 것을 알아차린 오마르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했다.
“가자. 어서 빠져나가야 해.”
“……그래.”
명복을 비는 것은 후에 해도 된다.
일단은 아이와 자신들부터 살아야 한다.
아부 키파와 오마르는 재빨리 건물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콰아앙-!
옆쪽에서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충격이 터져 나왔다.
“아악!”
오마르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고, 아부 키파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한 건물 외벽이 자신들을 향해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시여!’
본능적으로 또 신을 찾았다.
단 한 번도 응답을 해주지 않는 신을 말이다.
‘젠장…….’
아부 키파의 눈에 절망이 떠올랐다.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과 오마르는 물론, 아이까지 깔리고 말 것이다.
신을 찾던 아부 키파는 눈을 질끈 감으며 아이를 자신의 몸으로 뒤덮었다.
어쩌면 아이라도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응?’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고통뿐만 아니라 아무런 압박감도 없었다.
의아함에 눈을 뜬 아부 키파가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봤다.
쓰러지던 벽이 멈춰 있었다.
마치 누군가 붙잡은 것처럼 말이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아부 키파의 눈이 커졌다.
‘미친!’
벽의 무게는 대충 봐도 수백 킬로그램 이상이었다.
절대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랬어야만 하는데…….
누군가 팔로 쓰러지던 벽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당연하게도 그는 수혁이었다.
* * *
시리아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
그들은 전문 구조대원들이 아니다.
선생님, 빵집 사장, 정육점 주인 등등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하얀색 헬멧을 쓰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구한 요구조자의 수는 무려 6만여 명.
믿기지 않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 숫자는 많은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2백 명에 가까운 하얀 헬멧들이 구조 도중 목숨을 잃었다.
공습에 휘말려서, 건물이 붕괴돼서.
오늘 하루만 해도 두 명의 하얀 헬멧이 죽지 않았던가?
수혁은 쓰러지는 벽을 팔로 지탱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부 키파를 쳐다보았다.
‘영웅이라고?’
사람들은 수혁, 자신을 영웅으로 부르며 칭송한다.
많은 사람을 구하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구조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업적만 보자면 영웅이라 불려도 하등의 문제가 없겠지만…….
‘진짜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해 가며 어린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의 위협을 받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수혁과 같은 능력이 없음에도,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평범한 사람들.
영웅이란 칭호는 자신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받아야 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지.’
수혁은 팔에 힘을 줘 벽을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쿠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벽이 넘어졌다.
아부 키파와 오마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FILO의 구조대장 김수혁입니다.”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다행히 영어 선생이었던 아부 키파는 수혁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FILO?”
수혁의 이름까지는 몰라도, FILO는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아부 키파의 표정이 환해졌다.
FILO의 대원이 이곳에 있다는 건 자신들을 지원해 준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본 수혁의 불가사의한 힘은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원을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하얀 헬멧에서는 전 세계에 셀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오는 것은 약간의 물자가 전부였다.
너무도 위험한 곳이기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멀리 떨어진 곳에 의료센터를 만들어준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FILO에서 마침내 대원들을 지원해 주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아부 키파는 눈물을 흘리며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이라도 와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웠다.
“일단 이동합시다.”
수혁의 말에 아부 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공습 장소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
“어?”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던 아부 키파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늘 위를 쳐다봤다.
언젠가부터 폭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떨어지던 포탄도, 폭발도 없었다.
평화로운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아부 키파가 의아해하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당분간 공습은 없을 겁니다.”
수혁은 확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혁에게 은혜를 입은 수많은 국가가, 시리아에 경고한 덕분이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만약 공습으로 인해 수혁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까지 가세해서 경고를 했으니, 그들은 FILO의 로고가 보이는 곳엔 절대 싸움을 벌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전이고 뭐고 모조리 박살이 날 게 뻔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내전을 멈춘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아부 키파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본부로 돌아갔다가 다시 구조를 시작합시다.”
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았다.
이제는 팀장이 아닌, 대장이 된 수혁은 휘하 열 개의 구조팀과 즉각적으로 현장에 투입될 준비를 끝마쳤다.
“저희도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기껏해야 1개월 정도. 하지만 그사이에 많은 것을 해드리겠습니다.”
기본적인 구조 교육부터 장비 사용방법까지.
그리고 수많은 구조 장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거기다 FILO의 깃발을 세워 무분별한 공습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까지 할 계획이었으니…….
내전을 완전히 종식시키진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많은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부 키파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수혁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이게 대체…….’
언제 설치를 한 것일까?
FILO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대형 텐트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물자가 쌓여 있었고, 의료진과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부 키파와 오마르로선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설마 시리아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수혁은 아부 키파에게 아이를 받아 들고는,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부상자가 이미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아, 아저씨!”
먼지로 뒤범벅이 된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수혁을 보며 달려왔다.
“여기 요구조자.”
너무 어린아이의 모습을 본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이를 건네받았다.
“저는 바로 치료하러 가볼게요. 좀 이따 봐요, 아저씨.”
“수고해요, 수진 씨.”
수혁은 아이를 안아 든 채 빠르게 달려가는 박수진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신일역 붕괴사고 이후, 의사가 되어 봉사활동을 하겠다던 그녀가 어느새 FILO에 입사해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저…….”
뒤에서 아부 키파가 조심스럽게 수혁을 불렀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묻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굽니까?”
구조대장이라고 들은 것도 같은데…….
대체 누구인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아부 키파의 질문을 받은 수혁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소방관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수혁은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었다.
-fin-
후기.
안녕하세요.
레스큐 시스템을 쓴 구유입니다.
길었던 레스큐 시스템이 마침내 완결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단순히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소방관님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크게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소방관.
글을 시작할 때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쓰면 쓸수록, 소방관에 대한 조사를 하면 할수록,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방관의 사망률, 트라우마, 질병 등.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시민을 위해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제 부족한 글 실력으로는 그분들의 노고를 전부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작품은 쓰면서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건강도 악화되고,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도 겪을 정도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400편이 넘는 회차를 쓰며 완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지금까지 레스큐 시스템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과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고생하고 계실 소방관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레스큐 시스템은 이렇게 완결을 맺지만, 다음에는 더욱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