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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22화 (422/425)

레스큐 시스템 422화

“힘들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말은?”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다리는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만, 왼쪽은…….”

의사는 차마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어 말끝을 흐렸다.

짐 머레이는 딱딱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수혁은 이전에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완쾌된 적이 있네.”

“저도 그 기록을 보았습니다.”

화상 흉터도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피부 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흔적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회복했다.

심지어 일부 조직에 괴사가 일어났음에도 말이다.

경이롭다는 것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저도 그래서 완전한 희망을 놓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화상으로 인해 손상되었던 신경조직들도 회복됐다.

그러니 끊어진 신경들도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낙관적인 판단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계속 지켜보긴 해야겠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과로는…….”

좋지 않다.

회복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

같은 기적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의사의 입속에는 이런 말들만 맴돌았다.

“괜찮아요.”

그때, 최은송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달리, 전혀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남편이 한쪽 다리를 영원히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말이다.

의사는 그것이 의아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까지 설명드리지 않았습니까? 김수혁 환자의 상태는…….”

“괜찮을 거예요.”

수혁이 말했다.

자신은 괜찮다고.

금방 나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서 최은송은 수혁이 나을 거라 확신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말이다.

최은송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의 굳어졌던 표정도 점차 풀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수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존재다.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이들을 구하고, 살리지 못할 사람들을 살렸다.

본인 스스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완쾌되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수혁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꿀 것이다.

최은송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믿었다.

“허…….”

의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신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저들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면서 수혁의 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

자신의 지식도 그렇고, 그간 쌓아온 수백 건의 케이스를 봐도 그렇다.

‘불가능해.’

보호자에게는 어렵다고 얘기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을 얘기해 줘도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

‘뭐,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자신은 의무를 다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저들이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도 저들이고.

의사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흠흠.”

헛기침하며 차트를 덮은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봐야 바뀌는 것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 * *

“그래요?”

수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최은송을 통해 의사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게 상식적이긴 하지.’

수혁도 ‘회복Ⅱ’ 스킬이 없었다면, 지금쯤 좌절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수혁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이 완전히 회복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최은송이 배시시- 미소 지었다.

“수혁 씨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저 안심하라고 한 말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신의 말을 의심 하나 하지 않고 저렇게 철석같이 믿어주니, 고마웠다.

“금방 나을 거예요.”

예전 화상을 입었을 때보단 빠를 것이다.

지금의 상세가 그때보다 낫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회복 속도만 보자면 지금이 훨씬 빨랐다.

부러진 뼈는 순조롭게 붙고 있었고, 망가진 장기들도 수술한 덕분에 나쁘지 않았다.

남은 건 손상된 척추신경인데…….

이것 역시 회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그런데 오늘 면회는 어땠어요?”

최은송을 포함한 보호자 몇 명이 의사에게 설명을 들으러 간 사이, 면회가 진행되었다.

오늘 온 사람들은 바로 신일서 선배들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들을 본 덕분에 수혁의 표정은 밝았다.

“좋았어요.”

면회 시간은 고작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마디 나누진 못했지만, 수혁은 그들의 얼굴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10분이면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엔 충분했으니까.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중국까지 올 수 있었던 명분은, 바로 수혁을 구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수혁은 구조가 됐고, 무사하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더는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짐이 얘기해 줬어요. 돌아가는 비행기도 FILO에서 지원해 준대요.”

그뿐만이 아니라 도움을 준 대가도 톡톡히 치르기로 했단다.

“물론 법 때문에 직접적으로 뭔가를 해줄 순 없어서, 신일서에 기부 형식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짐 머레이라면 알아서 잘해줄 것이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씩 다녀갔겠네요.”

FILO 구조 1팀과 신일서, 그리고 시애와 몇몇 유가족까지.

볼 만한 사람들은 모두 봤다.

물론 아직까지 줄을 선 이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들을 굳이 볼 생각이 없었다.

대부분은 수혁과의 인터뷰를 원하는 언론사였고, 심지어 한국과 미국에서 날아온 정치인들도 있었다.

수혁의 병문안을 했다는 기사 한 줄만 나와도, 그들의 지지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정도였으니…….

계속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제 면회는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럴까요?”

최은송 역시 수혁의 말에 찬성했다.

친한 지인들도 아니고, 괜히 신경만 쓰이는 이들까지 만나줄 필요는 없었다.

면회사절을 알리면 그들이 언짢아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언론사와 정치인들의 권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수혁의 뒤를 받쳐 주는 사람들 역시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짐 머레이는 물론이고, 최문식 역시 대한민국의 장관이다.

그뿐이랴?

수혁에게 은근히 신경을 써주고 있는 이들 중에는, 독일의 총리와 미국 대통령도 있었다.

그러니 빽으로만 따지면, 수혁은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

“그럼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올게요. 앞으로는 면회를 안 하겠다고.”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물어는 봐달라고 해줘요.”

동료들이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럴게요.”

최은송이 눈웃음을 지으며 병실을 나섰다.

수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음…….”

왼발에 힘을 줘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발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 * *

“명줄도 길군.”

강현성은 혀를 차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껐다.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혁이 구조되질 않나, 심지어 회복도 순조롭게 되고 있다질 않나.

게다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기사도 나가질 않고 있었다.

갑자기 줄을 대고 있던 기자들과 연락이 모조리 끊어져 버린 것이다.

강현성은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목이 졸려오는 듯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강현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책상을 두드렸다.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까?’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를 해놔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쯤 되면 자신이 계획한 일을, 수혁 쪽에서 알아차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놈 뒤에도 만만찮은 놈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독일 총리나 미국 대통령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짐 머레이나 최문식만으로도 자신이 상대하기엔 충분히 커다란 적이었으니까.

일개 청장이 장관과 세계적인 자산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쯧, 그래서 알아차리기 전에 뒤엎으려고 한 것이었는데.’

수혁이 중국에서 매몰되며 타이밍을 놓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대로 묻어둬도 상관없었다.

수혁을 시궁창까지 끌어내리지는 못했지만, 더 진행했다간 자신이 떨어질 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강현성은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수혁에게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던 강현성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혁을 망가뜨리기엔, 자신이 갖고 있는 게 너무도 많았다.

“접을 수밖에 없겠군.”

기회는 지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작긴 하지만, 수혁에 대한 의혹을 뿌려놨으니 언제든 그것을 부풀릴 수 있었다.

수혁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을 때, 다시 시도하면 된다.

“새로운 기자들도 알아봐야 할 테고.”

연락이 두절된 이들 말고, 새로운 말들을 구해야 했다.

자신의 부탁이라면 사족을 못 쓰도록 기름칠도 해야 했고.

강현성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당황한 표정의 비서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강현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의 없이 자신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온 비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비서는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처, 청장님. 지금 전화가……!”

강현성은 그제야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강현성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들었다.

“누구신가?”

[아, 저는 대전지방검찰청 소속 김지호입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검사가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셨는지?”

강현성이 애써 담담하게 묻자,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강현성 소방청장 맞으시죠?]

“그렇소만.”

[당신에 대한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김지호의 말에 강현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고발이라니?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인사 비리와 뇌물수수, 그리고 공금횡령 및 유용에 대한 고발입니다.]

강현성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러니 출석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사해야 할 게 많아요.]

김지호의 웃음기 섞인 말이 강현성의 귓가에 박혀들었다.

그리고 강현성은 더 이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짓지 못했다.

가면이 벗겨진 강현성의 얼굴은, 추악한 욕심만이 가득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저희가 찾아뵙기 전에 직접 오시는 게 보기도 좋고, 편하실 겁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현성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김지호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누구긴 누구야. 쓰레기 새끼지.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김수혁을 건드려?]

강현성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넌 이제 끝났어, 이 새끼야.]

김지호가 욕설과 함께 전화를 끊자, 강현성은 허무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내가… 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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