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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21화 (421/425)

레스큐 시스템 421화

시애는 VIP병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 많네.”

시애의 안전과 일정을 위해 동행한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수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이분들은 다 누굴까요?”

간호사에게 듣기로 수혁의 면회는 제한적으로 허가된다고 했다.

당연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을 제외하면 허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혁을 만나는 게 그리 힘들진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사람이 수혁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 씨가 구조한 분들이거나, 그 가족들이라고 하네.”

“아…….”

그러고 보니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모인 것 같았다.

병원 측에서는 그것을 모두 불허하고 있기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시애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다 눈을 크게 떴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던 것이다.

“아저씨!”

매니저가 말릴 틈도 없이, 시애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설마 여기서 저들을 볼 줄이야!

“어, 시애 씨?”

“버블걸스 시애?”

그들 역시 시애를 알아봤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니, 다들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아! 아저씨들도 지원 나온 거예요?”

시애가 알아본 사람들은 당연히 신일서 대원들이었다.

수혁에 비해 큰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함께 예능 촬영을 해본 적도 있지 않던가?

그러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박상태는 눈을 끔뻑이며 자신의 앞에 선 시애를 쳐다봤다.

‘니가 여기 왜?’라는 표정이었다.

시애가 그들을 여기서 볼 것이라 예상치 못한 것 이상으로, 박상태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박상태는 어버버- 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나선 것은 박정우였다.

“저, 저희야 수혁이 도와주러 왔죠. 그런데 시애 씨는 어떻게?”

“저는 그냥 수혁 오빠가 괜찮은지 궁금해서…….”

생각해 보니 걸그룹 멤버가 이렇게 찾아오는 게 언론에 들키기라도 한다면 꽤나 시끄러울 것 같았다.

특히나 수혁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언론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시애는 벗어두었던 마스크를 황급히 다시 착용했다.

다행히 더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지만, 시애는 혹시 몰라 매니저에게 눈짓을 했다.

한번 확인해 보라는 뜻이었다.

매니저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지금 수혁이는 면회가 안 되는데.”

자신들도 한참을 기다렸다.

간호사에게 들은 말로는, 의사들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최은송과 최문식, 짐 머레이를 제외하면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최문식과 짐 머레이만 난감하게 되었다.

괜히 면회할 수 있을 거라 설레발을 쳤다가…….

“아, 그래요?”

시애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정신을 차렸으니 당연히 면회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한국에서 날아왔는데 불가능하다니.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오늘은 될지도 모르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상태가 말했다.

“아까 의사 선생님이 잠깐씩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들었거든.”

물론 우르르 몰려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수혁이 구조되었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런 상태로 구조된 지 고작 며칠밖에 흐르지 않았다.

아무리 회복이 되고 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을 병실에 들여보낼 순 없을 것이다.

고작해야 한두 명 정도.

그것도 긴 시간이 아닐 게 뻔했고.

“뭐, 우리는 나중에 봐도 되니까.”

이재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 누구보다 수혁을 보고 싶은 건 자신들이었다.

사표까지 쓰면서 달려올 정도로 아끼고 걱정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시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며 양보하기로 한 것이다.

“아뇨, 전 괜찮아요. 당분간은 스케줄도 없어서 천천히 봐도…….”

시애가 두 손을 내저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의 기회마저 빼앗을 정도로 생각이 짧진 않았다.

‘나보단 저분들이 더 먼저 봐야지.’

자신이 단순한 지인이라면, 신일서 대원들은 서로의 목숨을 맡기고 싸우는 동료다.

자신이 그 사이에 끼어들 자격은 없었다.

김강식과 박정우가 나서서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시애는 한사코 거절했다.

정말로 한 달이란 시간을 통째로 비워두었기에, 전혀 급할 것이 없었다.

수혁이 안 되면 최은송을 만나도 되는 일이었고.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저랑 잠깐 밖에 좀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시애는 수혁의 면회 대신, 다른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요?”

“네. 아, 혹시 면회 기다리고 있으신 거라면…….”

“그건 괜찮습니다.”

김강식이 상관없다는 듯 말하자, 시애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뭐 좀 가져온 게 있거든요.”

* * *

“……시애가 왔다고요?”

수혁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호흡기를 제거해도 될 정도로 회복이 된 수혁을 보며 최은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 오빠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한국에서 수혁 씨 문병을 하겠다고 날아왔다던데요?”

수혁은 속으로 허허- 웃었다.

요즘 너무 바쁜 스케줄 덕분에 연락도 잘 오지 않던 시애가, 중국까지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럼 얼굴이라도…….”

“지금은 안 된대요.”

한국에서 중국까지 왔는데,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괜찮은데, 의료진들은 여전히 그를 마치 유리처럼 다루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건드리면 깨질까,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수혁에겐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시애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요. 그분들도 수혁 씨를 위해서 한 결정이니까.”

“알았어요. 대신 은송 씨가 가끔 나가서 만나고 그래 줘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건 걱정하지 말고요.”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기로 약속해 두었다.

최은송 역시 수혁만큼 시애를 친한 동생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면회는 언제부터 가능하대요?”

“빠르면 내일부터요. 이것도 원래 안 된다는 걸, 수혁 씨가 우겨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준 거라고 하더라고요.”

최은송이 풋- 하고 웃었다.

확실히 수혁의 몸 상태는 며칠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좋아졌다.

의사들이 경악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짐 머레이가 미리 무슨 말을 해두었는지,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볼 뿐.

“그나저나 시애가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더라고요.”

“무슨 말이에요?”

“구호 물품들을 산처럼 싸들고 왔어요, 트럭으로 몇 대 분이나.”

시애는 자신의 사비와 더불어 회사의 돈까지 털어 어마어마한 구호 물품들을 준비했다.

본래라면 수혁에게 그것들을 맡길 생각이었지만, 그건 불가능했으니 신일서 대원들에게 건네주었다고 했다.

“개인이 보낸 기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양일 거예요.”

피해 규모에 비하자면 미미한 도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이 준비한 것치고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인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순수한 마음만 있는 기부는 아니었다.

회사 측에서는 이 기회에 버블걸스의 중국 진출을 노리고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오직 시애의 이름으로만 기부를 한 것이었고.

덕분에 벌써부터 중국에서는 버블걸스와 시애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쁜 일은 아니다.

서로 윈-윈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얼굴 보면 칭찬이라도 해줘야겠네요.”

“그걸로 되겠어요?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죠.”

바쁜 와중에 자신을 보러 온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피해자들을 위해 그 많은 것을 챙겨 왔다니.

너무도 기특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들어왔다.

세계적인 신경외과의로 프랑스 국적의 의사였다.

“아, 선생님.”

최은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좀 어떠시죠?”

최은송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의사가 물었다.

“좋습니다.”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의사 역시 웃음을 보였다.

“잠시 확인 좀 해보겠습니다.”

그는 침대 아래쪽으로 가서 수혁의 발가락을 건드려 보았다.

“느껴지십니까?”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

하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요.”

“음…….”

의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직 왼쪽 다리는 회복이 되지 않는 모양이군요.”

수혁은 척추를 다치며 신경이 손상된 상태였다.

다행히 오른쪽 다리는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왼쪽은 감각조차 돌아오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수술을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판단하기엔 일렀지만…….

‘이건 어렵겠군.’

경험 상, 이런 상태에서 다리가 회복되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수혁이 경이로운 회복 능력을 보여주고는 있다지만, 그것은 외상의 경우일 뿐.

신경을 회복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 앞에서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는 법.

의사는 잠깐 굳어졌던 표정을 풀었다.

“조금 더 지켜봅시다.”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다. 분명히 회복되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의외로 수혁의 표정이 너무도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다리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면 심하게 불안해한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육체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공포, 그 자체니까.

그런데 수혁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치 자신이 다 나을 것이란 확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리가.’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말의 불안감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수혁은 단순히 지금 상황을 정확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것뿐이다.

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쁘진 않아.’

자신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너무 걱정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환자의 마음이 편안해야 예후도 좋은 법이니까.

“면회는 가능할까요?”

의사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수혁이 물었다.

“아, 면회는…….”

습관적으로 거절을 하려던 의사가 멈칫- 했다.

‘괜찮지 않을까?’

안 그래도 수혁의 거듭된 요청에 조만간 면회를 허락할 생각이었다.

다리를 포함한 몇 곳을 제외하면 상태도 좋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회복도 되었으니까.

긴 시간은 안 되겠으나 하루에 몇 분씩 정도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기분 전환에도 좋겠지.’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분들과 상의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부터는 가능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의 표정이 밝아졌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FILO 구조 1팀은 물론이고, 신일서의 선배들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지원을 온 분들까지.

‘그리고 유족들도…….’

자신을 구하려다 희생된 분들이 너무 많았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해줄 순 없었지만, 감사와 사과는 직접 해야만 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의사가 병실을 나갔다.

그러자 최은송이 살짝 웃으며 수혁을 쳐다봤다.

“누구부터 부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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