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419화 (419/425)

레스큐 시스템 419화

‘꿈인가?’

눈을 뜬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어둠만이 가득 보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환한 빛과 함께 새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눈부심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

‘이거 꿈 아니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봤다.

앞을 막고 있던 흙더미가 무너지며,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요구조자를 찾았다고 소리쳤지.’

거기까지 떠올린 수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구조된 거구나.’

대체 어떻게? 누가?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망할 곳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것과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수혁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눈이 부시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기꺼웠다.

눈부심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병원이겠고.’

베이스캠프에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아니었다.

텐트가 아니라 건물 내부였으니까.

하긴, 수혁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당장 큰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전신의 뼈가 모조리 박살난 데다 척추까지 다쳤다.

거기에 탈수까지 겹쳤으니…….

‘살아 있는 게 용하지.’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수혁이, 죽음을 각오하고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만약 구조대가 발견하는 게 몇 시간만 늦었어도, 수혁은 사망했을 것이다.

수혁은 기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기분을 느꼈다.

살아난 것이야 너무도 좋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감 역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끄응.’

수혁은 고개를 살짝 들어 밑을 내려다보았다.

‘……미라가 따로 없네.’

침대에 누워 있는 수혁의 전신은 온통 붕대와 깁스로 떡칠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잃은 사이 수술까지 진행한 흔적도 보였다.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리겠구나.’

물론 ‘회복Ⅱ’ 스킬이 있었으니 평범한 사람보다야 훨씬 빠른 치유력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상태가 위중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다리는?’

수혁은 엄지발가락에 힘을 줘보았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아주 살짝이지만 미동을 한 것이다.

찌릿- 한 통증까지 느껴지는 걸로 봐선, 다행히 부상을 입은 척추 쪽이 회복된 것 같았다.

혹시나 안 돌아오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하반신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혁은 자연스럽게 제임스를 떠올렸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의 양쪽 다리를 절단했으니까.

‘제임스는 어떻게 됐지?’

제임스는 수혁보다도 위급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1인실인지 수혁 외의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수혁도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된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수혁은 제발 제임스가 무사하길 빌며, 누군가 병실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래야 제임스에 대한 소식을 물어볼 수 있었다.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눈만 멀뚱히 뜨고 있길 몇 분.

마침내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히 수혁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어머! 깨어나셨네요!”

간호사일 그녀는 눈을 뜬 수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들어왔던 문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김수혁 환자가 깨어났어요!”

어찌나 목청이 큰지, 수혁의 귀가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혁에겐 자신이 살았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건 그렇고, 한국 사람이네?’

간호사는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수혁은 이곳이 한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병원의 간호사가 한국말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간호사는 수혁의 상태를 알리고는 곧장 침대로 다가왔다.

“김수혁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수혁은 대답하고 싶었지만,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는지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은 지금 10일 만에 정신을 차린 거예요. 몸이 많이 아프시죠?”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시간이 꽤 흘렀을 거란 예상을 하긴 했지만, 10일이나 지났다니?

간호사는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곧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해 드리겠지만, 지금 환자분의 상태는 꽤나 안정적이니까요.”

수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선 간호사가 부른 의사인 것 같았다.

“김수혁 씨?”

어찌나 급히 뛰어온 것인지, 의사는 숨을 헐떡이며 수혁을 찾았다.

그러곤 수혁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의사는 곧 침대에 매달려 있던 차트를 꺼내 들곤 확인했다.

“전신에 30군데가 넘는 골절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개방형 골절은 없어 출혈은 적었지만, 늑골이 골절되며 내부 장기가 손상되었고요.”

그건 수혁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땅바닥을 그렇게 기어 다녔으니, 안 다치는 게 이상했다.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잘 끝나 후유증은 적을 겁니다.”

수혁의 상태는 어느 한 과에서 도맡아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형외과, 외과, 내과 등.

거의 모든 과가 힘을 합쳐 수혁을 케어했다.

덕분에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수혁은 10일 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의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수혁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를 했으며 어떻게 회복되고 있는지.

그것을 듣고 있던 수혁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모든 말을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봐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특히 척추 쪽에 손상이 있어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만…….”

의사의 시선이 수혁의 발 쪽을 향했다.

그것을 본 수혁은 발가락을 움직여 보였고.

“괜찮은 것 같군요.”

수혁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본 의사는 한시름 놨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회복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수혁 씨는 워낙 체력도 좋고 평소에도 관리를 잘하셨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수혁은 눈에 감사를 담아 의사를 향해 깜빡여 주었다.

마음 같아선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몸 상태라는 게 아쉬웠다.

“혹시 뭔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여기 간호사에게…….”

의사의 말에 수혁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있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펜을 가져와 수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직은 호흡기를 뗄 수 없었기에 이런 식으로밖에 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방법도 쉬운 건 아니었다.

수혁의 팔과 손가락에도 골절이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부러진 팔로 땅도 팠는데 이 정도쯤이야.

수혁은 종이에 자신이 원하는 걸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씨가 괴발개발이긴 했지만, 의사는 다행히 그것을 알아봤다.

“……제임스 씨도 무사히 구조되셨습니다.”

‘아아.’

구조가 되었단다.

그 말은 곧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보다 더욱 큰 기쁨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자신이 그토록 구하고 싶었던 요구조자가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 소방관은 없었다.

수혁의 눈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본 의사는 말을 이었다.

“처음 구조됐을 당시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다행히 안정세에 접어든 상태입니다.”

아직 확신하긴 이르지만, 이대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거란 말도.

수혁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 미소에 괜히 뿌듯함을 느낀 의사는 헛기침하고는 몸을 돌렸다.

“조금 있으면 다른 과의 선생님들도 오실 겁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그분들께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의사는 그 말을 끝으로 병실 밖을 나갔다.

“저 선생님이 애를 많이 써주셨어요.”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간호사가 수혁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환자분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 도중에 몇 번이나…….”

말을 하던 간호사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환자 본인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간호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흠흠. 어쨌든 환자분 가족들이 면회를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바로 모셔올게요.”

그러곤 병실 밖으로 빠르게 나가 버렸다.

‘가족?’

수혁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은송 씨…….’

수혁의 얼굴에 기대감과 함께 난감하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다시 최은송을 볼 수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 기뻤지만, 이런 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너무도 미안했던 것이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일단은 사과부터 해야만 했다.

또 다쳐서 미안하다고.

또 이런 걱정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수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로 그것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밖으로 간호사가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혁 씨.”

최은송과 최문식, 그리고 짐 머레이까지.

수혁의 눈에 반가움이 서렸다.

다시 저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꺼웠다.

최은송은 수혁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다.

당장에라도 껴안고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했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에 그저 손만 살짝 잡을 뿐이었다.

“괜찮은가?”

짐 머레이가 물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네, 이번엔 정말 위험했어.”

그건 그 누구보다 수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 줘서 고맙네.”

짐 머레이는 그간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한층 더 늙은 것 같았다.

수혁의 시선이 이번엔 최문식을 향했다.

무뚝뚝한 장인은 여전히 변치 않은 모습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걱정과 안도감은 수혁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사한 걸 봤으니, 우린 이만 나가세.”

짐 머레이가 최문식의 팔을 잡고 끌었다.

최은송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였다.

최문식은 힘을 주며 버티려 했지만, 결국은 짐 머레이에게 끌려 나가고 말았다.

수혁은 그들을 보며 잠시 웃다, 최은송과 시선을 마주쳤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미안해요.’

속으로 속삭였다.

그리고 최은송은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됐어요. 전 괜찮아요.”

최은송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애써 수혁을 안심시키기 위해 짓는 미소였다.

두 사람은 그 후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