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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18화 (418/425)

레스큐 시스템 418화

“이게…….”

빌리는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푸드 트럭?’

미국인인 그로선 푸드 트럭이 그리 생소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의 크기와 장소를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뭡니까, 이건?”

“보시다시피 밥차죠.”

박정우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밥차?”

빌리는 그게 무엇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현장에서 밥을 해주는 차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할 겁니다.”

‘그게 푸드 트럭이잖아.’

비록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목적 자체는 똑같았다.

“이게 왜……? 혹시 FILO에서 준비한 겁니까?”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이 장비를 준비한 건 짐 머레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을 부탁하고, 요리를 하고 있는 건 최은송이었다.

박정우는 대충 수혁의 아내가 자신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준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그 말에 빌리는 트럭 위에서 요리하고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그럼 저분이?”

“네, 맞습니다.”

최은송은 쉬지도 않고 계속 요리를 했다.

100명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으니,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만약 짐 머레이가 사람 몇 명을 지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턱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얼른 줄 서서 밥 받으세요. 빨리 먹고 일해야죠.”

박정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기다랗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뒤로 가서 섰다.

빌리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런 박정우의 뒤로 갔고.

잠시 후, 접시에 밥과 반찬들을 받아온 그들은 식사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메뉴는 전형적인 한식이었다.

최은송이 한식 전문 요리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외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불고기를 메인으로 삼아 호평 일색이었다.

“내 평생 현장에서 이런 식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이거 꽤 맛있잖아? 이름이 뭐라고?”

각국의 소방관들은 잠시 고된 육체를 쉬며 수다와 함께 식사를 이어갔다.

“저 셰프가 김수혁의 와이프라던데.”

“아, 그래?”

소방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험지까지 와서 요리를 해주기에 무슨 봉사단체에서 파견을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혁의 아내라니.

최은송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살짝 빛났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얻어먹었으니, 대충하진 못하겠네.”

“밥값은 해야겠지.”

“대충할 생각이었나 보지?”

“그건 아니고.”

소방관들이 파하하- 웃었다.

이곳에 있는 소방관들은 모두 수혁을 구하기 위해 자원한 이들이다.

예전부터 수혁이라는 소방관에게 존경과 경의를 느끼던 이들이란 뜻이었다.

특히나 미국과 독일의 소방관들은 수혁에게 조금 더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명예시민 아니던가?

군인과 소방관에 대한 예우가 남다른 미국에서는 수혁을 기필코 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마저 있었다.

“어서 먹고 움직이자고. 교대해 줘야지.”

이 많은 수의 소방관이 한 번에 식사를 할 순 없었다.

당연히 교대로 식사시간을 가졌기에 자신들이 늦장을 부리면 부릴수록, 작업조가 힘들어졌다.

그들은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는 접시를 들고 트럭 쪽으로 다가갔다.

“잘 먹었습니다.”

쌀 한 톨까지 모두 싹싹 긁어먹은 접시를 수거함에 넣으며 최은송에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최은송은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소방관들이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건 자신들이었다.

매일 도시락만 먹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은송은 감사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저들은 수혁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바로 얼마 전에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혁을 구하려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꼭 구해 드릴 테니까.”

“저희만 믿으시면 됩니다.”

그런 최은송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소방관들은 접시를 가져다 두며 모두 최은송을 위로했다.

그리고 최은송은 그런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를 전했다.

최은송이 이곳에서 저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것은, 단순히 밥을 든든하게 먹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과는 달리 더 많은 위로를 듣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최은송의 진심을 느낀 소방관들은 구조에 더욱 열과 성을 다했다.

최은송은 그것만으로도 중국까지 온 보람을 느꼈다.

이런 보답을 바라고 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저들이 수고해 주는 만큼 수혁이 무사히 구조될 확률이 더욱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최은송 역시 마음을 더욱 굳게 다잡았다.

“이제 저녁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이제 끝이다.’

수혁은 자신의 한계를 체감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발악해도,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고야 만 것이다.

아무리 수혁이라지만, 이런 부상을 입고 이만큼 움직였다는 건…….

경이롭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마를 땅바닥에 처박은 수혁은 숨을 헐떡였다.

‘이젠 때려죽여도 못 움직여.’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게 불굴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었다면, 수혁은 이미 제임스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뇌에서는 계속해서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수혁의 육체는 그것을 거부했다.

헐떡이며 숨을 내쉬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바닥에 박힌 코와 입으로 먼지가 계속 들어왔지만, 고개를 돌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럴 힘도 없었으니까.

크게 벌리고 있는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올 만도 했지만,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하루 종일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동하다 가끔씩 발견한 물은 모두 제임스의 입으로 들어갔다.

자신보단 제임스가 더욱 위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조금은 마셔둘걸.’

수혁은 그것을 후회했다.

단 몇 모금이라도 물을 마셨다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면 제임스는 벌써 죽었겠지.’

수혁이 눈동자를 굴려 제임스를 확인했다.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젠 못 움직인다.

그 말은 이곳이 마지막 종착지라는 뜻이었다.

‘미안합니다.’

반드시 구해내리라 다짐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몸이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은,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머리를 처박은 채 기다리는 것 외에는.

그것이 구조대든지, 아니면 죽음이든지.

수혁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니, 이번 생에서는 처음인가?’

마지막으로 느꼈던 게 죽기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피식- 웃었다

죽기 전, 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아직 죽기 싫은데… 였나?’

아무도 듣지 못한 말이라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그것이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혼자 속으로 낄낄- 거리며 웃던 수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좋을까?

그래도 한 번 경험해 봤다고, 처음보단 조금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생은 덤이나 다름없었다.

죽음 이후, 덤으로 받은 삶.

덕분에 수혁은 이전 생과 달리,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구하지 못했던 사람도 구했고, 생각지도 못한 명성도 얻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었던 이전 생과는 달리 존경을 받기도 했다.

고시원은 커다란 단독주택으로 바뀌었고, 버스와 지하철은 값비싼 수입 SUV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

최은송.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참으로 행복했다.

이번 생은 수혁에게도 충실한 삶이었다.

오히려 차고 넘칠 정도로 행복했고, 만족스러웠다.

단 한 가지.

혼자 남게 될 최은송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왔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랬더라면 자신 때문에 마음 졸일 일도 없었을 텐데.

최은송이라는 이름이 가시처럼 수혁의 가슴에 박혔다.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혁은 이제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결국은 구조대가 도달하기를 바라야 할 텐데, 그마저도 희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열 명쯤이었나?’

그 정도로는 수혁을 구조하기는커녕 제대로 작업도 시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수혁의 생존조차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지.’

가끔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했지만, 모를 일이다.

수혁은 제임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도 닥치면 결국 기적을 바란다.”

수혁 역시 그랬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그래서 이 망할 곳에서 벗어나, 최은송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길.

일어나지 않을 기적을 바랐다.

‘무리겠지만.’

죽기 직전의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도 수혁은 같은 기적을 바랐다.

제발 저 빌어먹을 불길을 뚫고 부하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기를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런데도 빌었다.

하지만 결국 지원은 오지 않았고, 수혁은 죽음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사방이 막혀 있는 이 흙더미가 치워지고, 빛이 들어오길 바랐지만…….

이번에도 그런 기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제임스와 함께 쓸쓸히 죽어가겠지.

“그래도 이번엔 혼자 죽진 않겠구나.”

제임스가 있었으니 말이다.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수혁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이젠 정신을 부여잡고 있을 만한 체력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신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건만, 그것도 끝이었다.

‘미안해요.’

최은송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제임스를 향한 것인지 모를 사과를 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이런 능력을 준 존재에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수혁은 지쳤고, 간신히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리며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파스슥-!

흙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그것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체라도 온전히 남기고 싶었는데, 하늘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흙이 무너지는 소리와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수혁은 그것이 붕괴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소리가 들릴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힘없이 감겨 있던 수혁의 눈이 번쩍- 떠졌다.

“찾았습니다! 요구조자 두 명! 찾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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