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17화
최은송은 흔들리는 버스 탓에 살짝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한국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진으로 인해 도로가 깨져 나가며, 온통 돌조각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려니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었다.
“헬기를 탈 걸 그랬나?”
최문식도 힘들었는지 살짝 후회하는 듯한 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고개를 저었다.
“헬기는 지원 인력을 수송해야죠.”
아무리 헬기의 수가 많다고는 하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속속 각국에서 밀려오는 소방관들을 날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버스라도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딸의 반응에 최문식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라고 그 사실을 모를까?
너무 불편하다 보니 그저 불평 한마디 해봤을 뿐이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최문식은 말을 돌리려는 듯, 슬쩍 지원팀에게 질문했다.
“이제 거의 도착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곳이 저희의 베이스캠프입니다.”
직원이 앞쪽을 가리키며 대답하자, 최문식과 최은송이 고개를 쭉- 빼 들었다.
고작 1㎞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거리였다.
말끔한 도로 상태였다면 1~2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엉망인 지금이라고 해도 10분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거의 다 왔군요.”
“베이스캠프와 수혁 씨가 매몰된 장소까지는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최문식은 이제 버스에서 내릴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안심했지만, 최은송은 오직 수혁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다행히 그곳까지 길을 뚫어둔 상태입니다. 지원을 가는 차량에 타면 5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바로 갈 생각은 아니겠지?”
최문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딸에게 물었다.
“짐만 두고요.”
짐 머레이는 베이스캠프에 이들 부녀를 위한 텐트를 설치해 주었다.
특혜는 아니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유가족들을 위한 텐트 역시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설치된 텐트의 수만 해도 수만 개.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짐에게 감사 인사는 한 뒤에 가야지.”
두 사람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짐 머레이 덕분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입국조차 하기 힘들었을 터.
아무리 조급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예의였다.
최은송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혁은 죽음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괜찮을 거다.”
최은송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최문식이 손을 붙잡았다.
“네가 말했었지, 그놈은 불사신 같다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놈은 언제나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말이야.”
그런 적이 있었다.
결혼 전.
전신화상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을 때.
그때 최은송은 수혁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절대 현장에서 죽지 않고,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최은송은 믿었다.
수혁은 언제나처럼 무사히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얼굴 펴라. 네가 죽을상을 하고 있으면 현장의 동료들도 불안해할 테니까.”
“……알았어요.”
최은송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최문식의 말이 맞다.
수혁을 믿는다면, 이렇게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퇴근이 조금 늦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수혁은 돌아올 것이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두 부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버스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 * *
“뭐?”
박상태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다시 말해봐. 지금 뭐라고?”
“제수씨가 왔다니까요.”
대체 이놈은 그걸 어디서 들은 걸까?
분명 여기서 자신과 함께 쉬지도 않고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박상태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조잘대고 있는 박정우를 노려봤다.
“아, 또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다. 계속 말이나 해봐.”
박상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박정우를 재촉했다.
“방금 한 말이 끝이에요. 제수씨가 조금 전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고, 조금 이따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대체 왜…….”
말을 하려던 박상태가 입을 다물었다.
사적으로는 제수씨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실종자의 보호자였다.
자신의 남편이 매몰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니 달려오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터.
짐 머레이라는 인맥도 있었으니, 여기에 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아.”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은송이 어떤 마음일지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현장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도 여진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그런 현장에 오다니…….
할 수만 있으면 말리고 싶었다.
“여기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텐데. 그냥 베이스캠프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면 안 되나?”
“글쎄요. 저도 그냥 얘기만 들어서. 이따 오면 형이 한 번 얘기해 보시죠.”
최은송은 박상태를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하게 대했다.
그러니 자신은 몰라도, 박상태의 말이라면 들을 수도 있었다.
“그래. 내가 설득해 봐야겠다.”
만약 최은송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수혁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저건 뭐냐?”
잠시 허리를 풀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박상태의 눈에 이상한 것들이 들어왔다.
커다란 트럭이 펌프차를 지나쳐 현장 근처에 주차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장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보급인가?”
하지만 보급이라 보기도 이상했다.
FILO에서 매 교대 시간마다 보급품들을 보내주기 때문이었다.
식사부터 시작해 편의용품이나 교체가 필요한 장비들까지.
덕분에 물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럼 뭐지? 넌 뭐 들은 거 없어?”
“저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박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쯧. 뭐 쓸데가 있으니까 가져왔겠지. 일단은 신경 끄고 일이나 하자.”
여진으로 인해 매몰되어 있는 대원들은 거의 밖으로 꺼낸 상태였다.
사망자도 많이 나왔고, 부상자는 그보다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현장의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행동도 조심스러워졌고, 그래서인지 속도도 많이 줄었다.
그 말은 곧, 수혁의 구조가 더욱 늦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자신들만이라도 더욱 힘을 내야 했다.
박상태는 박정우를 포함한 신일서 대원들을 이끌고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두 명의 요구조자를 더 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위쪽으로 올라왔을 때였다.
“어? 저거 움직이네요.”
한쪽에 세워져 있던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에 달려 있던 트레일러가 마치 날개처럼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건?”
“주방?”
“밥차 아니야?”
신일서 대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토록 궁금했던 트럭의 정체가 밥차였다니?
한국도 아니고, 중국의 지진현장에서 저런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터라 놀라움은 컸다.
호기심을 느낀 이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저게 대체 뭡니까?”
“푸드 트럭 같은 건가 본데? 크기가 너무 크긴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대원들은 물론, 율리안과 톰, 슈미츠도 그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 저기 저기!”
그러다 박정우가 손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제수씨예요!”
그 말에 박상태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박정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최은송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왔군.”
박상태는 최은송을 보자마자, 저 트럭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재료들은 이쪽에 놔주세요. 아뇨, 그건 저쪽에.”
최은송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원팀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직접 수혁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진 못한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최은송이 선택한 건 바로 요리였다.
직접 발로 뛸 순 없겠지만, 수혁을 구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위해 든든한 식사를 만드는 것.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자신의 요리를 먹고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수씨!”
한창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아, 여러분!”
언제 온 것인지, FILO 구조 1팀과 신일서 대원들이 그녀의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최은송의 딱딱했던 얼굴이 풀어졌다.
수혁의 동료들.
그리고 수혁을 구하기 위해 중국까지 직접 발걸음한 이전 동료들.
그들의 얼굴을 본 최은송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은송 씨?”
수혁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
‘꿈이었나?’
그토록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건만, 잠시 잠들었던 것 같았다.
“하아.”
꿈속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최은송의 얼굴을 봤더니 힘이 조금 나는 듯했다.
‘약속하고 올 걸 그랬나.’
수혁은 이번에 출동하며 최은송에게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해주지 못했다.
너무도 위험한 현장이었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신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왠지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자신이 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까?’
너무도 미안했다.
다시는 이렇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설마 여기 온 건 아니겠지?’
최은송의 성격이라면 중국까지 날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미 와 있을 수도 있었다.
최은송이 더 걱정하지 않게 하려면,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게 안 돼서 이 고생을 하는 거지만.’
수혁은 잠시 몸을 움직여 보았다.
잠에 빠지기 전보다는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체력도 어느 정도 보충이 된 것 같았고.
이 상태라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났는지 ‘실드’ 역시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각성’은 무리일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각성’을 사용했다가는 또 까무러칠지 모른다.
차라리 ‘생명감지Ⅲ’나 ‘미니맵’을 사용하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물론 그 두 스킬 역시 무리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대충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한 수혁은, 제임스를 확인했다.
‘안 좋아.’
시간이 흐를수록 제임스는 점점 쇠약해져만 갔다.
이때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이틀.’
그 안에 무조건 이 안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제임스가 그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능할까?’
객관적으로 보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혁은 가능성을 따지는 대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각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때였다.
로프를 다시 한 번 꽉 묶은 수혁이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