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16화
어두웠다.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주변을 살필 수 있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정말로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혁은 고개를 들었다.
“X발.”
신체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뒤, 수혁은 거의 욕설을 내뱉지 않았다.
욕할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갇힌 후, 벌써 몇 번이나 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수혁의 주변은 온통 흙과 돌덩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드’ 덕분에 더는 덮치지 못하고 있었지만…….
‘스킬이 끝나면 끝장이다.’
수십 톤에 달하는 잔해들이 수혁과 제임스를 파묻어 버릴 것이다.
그럼 아무리 수혁이라도 버티지 못한다.
강철과 같은 육체를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강철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주변의 상황을 파악한 수혁은 이번엔 제임스를 확인했다.
‘호흡은 있고.’
여진이 닥쳐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제임스 역시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임스의 다리는 보지 않아도 심각했다.
절단을 한 데다 이 먼지 흙구덩이에서 질질 끌려 다녔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감염도 문제였고, 출혈도 문제였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하지만 ‘응급 처치I’로도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이대로라면 제임스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전에 깔려 죽으려나?’
이대로라면 출혈이나 탈수가 아닌, 압사를 하고 말 것이다.
그전에 방도를 마련해야만 했다.
‘일단 ‘실드’가 사라지기 전에 지지대부터 세워야겠다.’
수혁은 숨을 가득 몰아쉬고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지지대로 삼을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온갖 자재들이 있었는지라,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것들을 이용해서…….’
‘실드’의 남은 횟수는 네 번.
그것을 모두 사용하기 전에 지지대를 세우고 버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만 했다.
다행인 건 독일에서 한 번 경험해 봤다는 것.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몸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 번 경험을 해봤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실드’ 사용 네 번 만에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독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긴 했지만, 수혁은 만족했다.
무려 한 번의 ‘실드’를 남겨놓았으니까.
만약의 일에 대비해 한 번 정도는 남겨두고 싶었는데, 다행히 생각대로 되었다.
수혁은 등을 땅에 대고 누웠다.
계속해서 엎드려만 있다 자세를 바꾸니 조금 살 만했다.
부러진 갈비뼈에 압박이 사라져서 그런지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고.
“진작 돌아누울걸.”
그때는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엎드려 있던 것이었지만, 수혁은 괜히 툴툴- 거렸다
‘스킬을 한 번 써볼까?’
수혁은 살짝 고민했다.
회수를 제외하면 아무 대가도 없는 ‘실드’와는 다르게, ‘생명감지Ⅲ’나 ‘미니맵’은 수혁의 체력과 정신력을 많이 갉아먹기 때문이었다.
지금 수혁의 상태로는 제대로 사용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사용한다면?
‘또 기절하겠지.’
가뜩이나 탈출을 위해 무리하는 바람에 몸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스킬을 사용했다가는 그대로 졸도를 할 확률이 높았다.
아직 위험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후우.”
수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이젠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진으로 인해 붕괴가 되며 주변이 불안정해졌을 확률이 높았다.
‘실드’의 횟수가 많이 남아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까지처럼 이동했겠지만, 오늘 남은 횟수는 단 한 번이다.
이걸로는 불안했다.
‘하루를 쉬고, 내일부터 다시 움직여야겠군.’
수혁이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것이, 마치 사체를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작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조금만 더 버팁시다.”
물이 공급되면 좋았겠지만, 아마 위쪽에서도 난리가 난 것 같았다.
물은 한 방울도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피해가 별로 없었으면 좋겠는데.’
갑작스러운 지진에 예기치 않은 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이전 생에서도 그랬으니까.
수십 명의 소방관이 죽고, 수백 명의 소방관이 다쳤다.
911테러 이후로 가장 많은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여진과 붕괴에 휘말려 순직하는 소방관들의 소식이 들려왔었다.
수혁은 당시 신일서에 있었지만, 그곳의 분위기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동료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죽음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이제 계속 일어날 테고.’
수혁은 가슴을 내리누르는 답답함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시간에 이곳에 갇혀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으니…….
‘그래도 좀 쉬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수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제임스를 무사히 구조하는 것뿐.
그것을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만 했다.
‘어쩌면 또 팔목을 그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제임스에게 탈수 증세가 오기 전에, 뭐라도 먹여야 했다.
그리고 남은 건 피밖에 없었다.
* * *
“이쪽! 들것 가져와!”
침묵과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안쪽과 달리, 밖은 생사를 건 싸움이 한창이었다.
쉬고 있던 모든 대원이 현장에 달려들어 사람들을 구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젠장!”
박상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발견한 시체가 벌써 네 구째다.
이번엔 유럽에서 지원을 나온 대원이었다.
아직 수혁 정도의 나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어린 친구.
그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사망했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박상태는 그런 어린 대원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상당히 지친 상태인지라 잠시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박상태는 꿋꿋하게 그를 안은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저에게…….”
그것을 본 손민준이 대신 받아 들려고 했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한 명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옮기고 싶었다.
수혁을 구하기 위해 지원을 해서 온 이들이다.
이 정도의 예우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품에 안은 대원을 데리고 밖에 있는 구급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순직자입니다.”
부상자들을 바쁘게 치료하고 있던 구급대원이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박상태가 안고 있는 대원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인계받았습니다.”
정중한 음성.
“이제부터 이분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순직한 동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경을 써서 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졌다.
“부탁드립니다.”
박상태는 자신의 손을 벗어난 어린 대원에게 허리를 굽혔다.
사과와 경의를 담아.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자신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이들이 한가득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것이, 목숨을 잃은 순직자들에 대한 예의였다.
“상태 형!”
그때 뒤늦게 달려온 신일서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상태는 일부러 저 녀석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FILO 구조팀과는 달리, 신일서 대원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방관이다.
한 번의 작업만으로도 체력이 바닥나 대부분 앓아누운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작업에 동참했다.
덕분에 한계에 부딪힌 상태였다.
박상태는 그래서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는데, 여진을 느낀 녀석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제야 달려온 모양이었다.
“아니, 왜 안 부른 겁니까?”
박상태 곁에 도착한 김강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인마.”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들에 비해 미숙하다고는 하지만, 저들 역시 소방관이다.
수혁을 구하기 위해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요구조자들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다.
수십 명이 매몰되어 난장판이 되어버린 상황에, 쉬고 있을 리가 없었다.
“너희가 없어도 충분히 사람 많아.”
“그게 말이야, 똥이야!”
이번엔 이재한이었다.
“그런데 이 새끼들이 계속…….”
“아, 됐고. 우리도 지금 바로 투입합니다?”
그러고는 박상태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바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박상태의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자신들을 이끌던 팀장이었는데…….
이렇게 개무시를 당하다 보니 화도 나고, 괜히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여간 발목만 잡아봐. 죄다 뒤통수에 빵꾸 날 줄 알아!”
박상태는 괜히 소리를 한 번 지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 박상태의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율리안이 톰에게 물었다.
“좋지 않네.”
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당연한 말이겠지만, 탐지가 끊겼다는군.”
여진으로 인해 설치해 두었던 탐지 장비는 박살이 난 지 오래였다.
새로 공수해 온 장비를 새로 설치했지만, 한 번 끊긴 수혁의 반응을 찾을 순 없었다.
“사망한 겁니까?”
율리안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건 아직 모르고.”
탐지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꼭 죽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처음 수혁을 발견하기 전까진, 탐지가 되지 않았었다.
“만약 생존해 있다면 움직이겠지. 그럼 다시 탐지가 될 테고.”
FILO가 사용하는 탐지 장비는 소리와 움직임을 감지한다.
만약 수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장비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소리라도 질러주면 좋을 텐데요.”
율리안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수혁은 자신들의 팀장이다.
당연히 FILO에서 구비해 둔 장비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팀지 장비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할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고.”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렀다면?
떨어지는 잔해에 깔려 목이 다쳤다면?
그 외에도 경우의 수는 많았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 건 여진 때문에 잠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네. 그러니 너무 속단하지는 말게.”
톰은 율리안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톰도 수혁의 생존을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그러길 바랄 뿐.
“……알겠습니다.”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요구조자들 구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아직 파악 중입니다. 현재까진 사망이 15명이고, 부상이 27명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인원은?”
“13명입니다.”
많이도 휘말렸다.
“그들을 모두 구조한 뒤에 수혁의 수색을 시작해야겠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여진이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으니, 그에 대한 대비도 생각해 두세.”
“팀장들과 회의를 할 생각입니다.”
“그래그래.”
톰은 율리안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