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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15화 (415/425)

레스큐 시스템 415화

수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X발!’

지금 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중요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생겼다.

‘대체 언제부터?’

붉은 표시가 이렇게 퍼져 있을 정도면,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10분 이상.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수혁에게 경고했을 터.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머저리 같은 놈…….’

아무리 힘들고 괴롭다고는 하지만, 이런 징조를 놓치다니!

수혁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수혁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붕괴? 폭발?’

수혁은 이 상황에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추가 붕괴였다.

‘위험감지Ⅲ’도 확인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길을 뚫으며 왔으니, 언제 붕괴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바로 폭발.

가스가 새며 대규모의 폭발이 자주 일어났다.

덕분에 저 위에는 아직도 불구덩이인 곳들이 많지 않던가?

‘아니, 폭발은 아니야.’

폭발이 나려면 처음 이곳이 무너져 내릴 때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가스 폭발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붕괴인데…….’

만약 정말로 붕괴가 일어난다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했다.

또다시 실수할 순 없었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제임스의 옆으로 다가갔다.

길이 너무도 좁아 쉽진 않았지만, 불평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만약 늦는다면 제임스는 그대로 죽을 테니까.

수혁이 공간을 넓혔다.

길을 억지로 뚫느라 손톱이 다 빠져버린 손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흐으으…….”

수혁의 입에서 울음인지, 소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 둘 모두일 수도 있고.

수혁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내며 간신히 공간을 만들어냈다.

‘돼, 됐다.’

어찌나 서둘렀는지, 수혁의 이마에서 땀이 후드득- 하고 떨어져 내릴 정도였다.

‘이제 붕괴 타이밍만 재면…….’

그때였다.

붉은빛이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그리고 땅이 울렸다.

‘여진!’

수혁의 머릿속에 이전 생이 기억이 떠올랐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구조대들의 희생이 많았던 이유.

바로 여진 아니던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건만, 너무도 정신없는 상황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젠장!”

진동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잔해들을 보며, 수혁은 ‘실드’를 곧바로 사용했다.

콰과과과과광-!

* * *

“피해! 빨리 거기서 벗어나!”

아수라장.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대원들이 경악하며 현장 근처에서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쌓여 있던 건물의 잔해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 돼!”

그나마 외곽 쪽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히 안전한 지역까지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길을 뚫기 위해 현장에 매달려 있던 이들은 뭔가를 하기도 전에 그대로 잔해에 파묻혀 버렸다.

“으아아악!”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진에 파묻혀 이내 들리지 않았다.

“율리안!”

“알고 있습니다!”

위쪽에서 구조 준비를 하고 있던 FILO 구조 1팀은 땅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현장을 향해 달렸다.

아직 진동은 끝나지 않았지만, 처음보단 많이 약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빠르게 현장 근처로 온 그들은 무너져 내린 잔해를 보며 움찔- 했다.

교대 전 보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붕괴…….’

제발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벌어졌다.

박상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 지금, 저 밑에서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망할 새끼가.’

이번엔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선배님!”

손민준이 떨려오는 박상태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박상태가 눈을 떴다.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박상태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수혁을 구하기 위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구조대원들이, 붕괴에 휩쓸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구조자는 수혁만 있는 게 아니다.

저들 역시 구조가 간절히 필요한 요구조자였다.

“로프!”

방금 전 여진으로 인해 균열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단이 모두 박살이 난 상태였다.

박상태가 손을 내밀자 손민준이 로프를 꺼내 건네주었다.

“로프 연결하고 바로 내려간다. 괜찮겠죠, 톰?”

“물론. 나는 교대조에게 상황을 전달하도록 하지.”

지금 저 아래쪽은 아비규환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려가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부탁드립니다.”

박상태는 율리안과 슈미츠, 손민준과 함께 로프를 연결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또 여진이 올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

율리안이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진 대원 한 명의 뺨을 때렸다.

“어, 어?”

“지금 바로 구조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준비해!”

딱 봐도 생존자는 고작해야 20명 남짓에 불과했다.

균열 아래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인원이 70명 정도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엄청난 숫자가 붕괴에 휩쓸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여진은 방금 일어났으니, 즉사만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버버- 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박상태와 율리안은 돌아다니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구조대원들을 챙겼다.

덕분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그사이 톰 역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도 여진을 느꼈는지라, 이미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은 이 주변에 깔린 사람들부터 구조해!”

톰의 명령에 미국 구조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FILO 구조팀과 이제 정신을 차린 이들도 금방 합류를 했다.

박상태는 돌 밑에 깔려 정신을 잃은 대원 한 명을 끄집어내며, 붕괴된 잔해를 쳐다봤다.

‘……김수혁.’

죽었을 것이다.

설령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수혁을 구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50명에 가까운 요구조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을 모두 구하기 전까진 수혁을 구조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박상태가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

수혁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 * *

“이게…….”

비행기에서 내려 현장으로 향하던 최은송 역시 여진에 맞닥뜨렸다.

덕분에 버스가 멈추고, 잠시 대기하고 있는 상황.

달리던 차가 뒤집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그나마 정리가 되어 있던 도로가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최은송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자신이 잘못될까 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혁 씨.”

여기서 수혁이 매몰된 곳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만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면, 분명 그곳도 마찬가지일 터.

이번 여진으로 인해 수혁에게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아빠.”

최은송이 최문식을 불렀다.

생각보다 여진의 크기가 큰 것에 걱정하고 있던 최문식이 고개를 돌렸다.

“괜찮을까요?”

최문식은 딸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 녀석이라면 괜찮겠지. 지금보다도 위험한 곳에서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까.”

최은송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건네주었지만, 목소리에 불안이 섞여 있는 것은 감추지 못했다.

최문식도 상황이 심상찮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진이 계속 발생한다면 큰일인데.’

수혁도 수혁이었지만, 이대로 현장에 갔다가 또 여진이 발생한다면 자신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었다.

특히 최은송이 잘못된다면, 최문식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은송아, 아무래도 위험하니 조금 떨어진 곳에…….”

“아니요.”

하지만 최은송은 최문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혁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최문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곳의 상황부터 확인한 뒤에 출발해야겠다.”

최은송은 그것까진 막을 수 없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최문식은 FILO의 지원팀을 불렀다.

“현장 상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연락 중입니다. 그런데 지진의 여파로 문제가 생겼는지, 연락이 잘되지 않는군요.”

“연락이 아예 끊겼단 말입니까?”

최문식이 깜짝 놀라 물었다.

하지만 지원팀은 그게 아니라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통신상태가 불량한 정도입니다. 저희도 계속 시도하고 있으니 금방 소식이 들어올 겁니다.”

그저 잡음이 심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이었다.

“연락이 되면 저에게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만.”

“물론입니다.”

지원팀은 저 부녀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라는 짐 머레이의 명령을 받았기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차에 들어가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원팀은 최문식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이 주변은 여진이 일어나도 크게 위험한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이라는 게 자연재해만 있는 건 아니지 않던가?

갑작스러운 재해로 인해 이 근방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가뜩이나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동네였으니, 괜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최문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모를까, 딸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은송아, 들어가자.”

최문식이 부르자, 최은송은 몸을 돌려 버스로 향하다 멈칫했다.

그러곤 지원팀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부탁한 건 준비가 되었을까요?”

출발하기 전에 짐 머레이에게 부탁했던 것들.

지원팀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출발하기 전에 준비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난리통에 그게 제대로 설치나 되어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원팀은 굳이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현장은 지금 여진의 수습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괜히 그것의 설치 상황을 물어서 방해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최은송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기에 한 착각이었다.

“연락되면 제가 부탁드린 건 무시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데 집중해 달라고 해주세요.”

“……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요구조자들이 우선이잖아요. 제가 한 부탁이 그들의 생명보다 우선일 순 없죠.”

최은송의 말에 지원팀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김수혁 팀장님의 아내라더니.’

쓸데없이 찾아가 현장을 어수선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비록 최은송은 소방관이 아니었지만, 마음가짐만은 그에 못지않았다.

그것이 수혁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그런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지원팀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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