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14화
‘이제야…….’
최은송은 창을 통해 비행기 밖을 바라봤다.
한밤중인지라 많은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저 아래에는 지금 지옥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최은송은 푸켓에서 쓰나미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쓰나미에 휩쓸려 폐허가 된 푸켓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모습은 그보다도 심각해 보였다.
지진이 일어난 지 10일이 넘었음에도, 아직 곳곳에는 화재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밤에도 현장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최은송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직 수혁이 살아 있고, 무사히 구조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불안하냐.”
옆에 있던 최문식이 물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쯧.”
그 모습을 본 최문식이 혀를 찼다.
애써 강한 척하며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지만, 아비인 최문식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딸의 속마음이 말이다.
그런데도 최문식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위로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정답일 수도 있지.’
최은송은 강한 아이다.
수혁이 걱정되고, 혹여나 잘못되진 않을까 불안하긴 하겠지만, 잘 버텨낼 것이다.
최문식은 딸을 믿었다.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비행기 안에는 최은송과 최문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FILO의 지원팀들도 있었고, 최문식을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비서도 있었다.
그중 최문식의 비서가 다가와 도착 사실을 알렸다.
“공항에서 현장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그게…….”
최문식의 질문에 비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최문식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현장으로는 가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왜지?”
“구조인력을 제외한 모든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합니다.”
“음.”
당연한 말이었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재난현장에 민간인의 출입을 허가하는 국가는 없었다.
“설득을 해보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누구와 연락을 했나요?”
그때 최은송이 불쑥 물었다.
“아, 중국 측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답을 들은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FILO를 가리켰다.
“저분들을 통해서 짐에게 연락을 해보세요. 아마 통과될 거예요.”
짐 머레이의 힘이라면 자신들 정도는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지금 중국은 FILO에 엄청난 빚을 진 상태.
마냥 무시할 순 없을 터였다.
큰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혁의 가족들을 통과시켜달라는 요구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확률이 높았다.
비서가 최문식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해도 되겠냐는 뜻이었다.
“짐에게 연락해.”
“알겠습니다.”
최문식의 허락이 떨어지자, 비서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가능할까?”
최문식은 살짝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한 나라의 장관이 부탁한 것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런데 짐 머레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최은송은 짐 머레이와 그의 돈을 믿었다.
“될 거예요.”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것이 느껴졌다.
* * *
“하아, 하아.”
수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공기가 폐를 채울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갈비뼈도 몇 개나 골절된 상태였으니, 폐가 부풀어 오르면 통증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팔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부러진 상태로 계속 움직였으니, 문제가 생길 만도 했다.
“젠장.”
‘각성’이 끝나고, 제임스를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척추가 다쳤는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오직 팔의 힘만으로 길을 뚫고 기어갔더니, 수혁조차도 체력이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는 못 움직여.’
수혁은 제임스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래도 다행히 안전한 장소에는 도착했으니, 당분간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못 움직여.’
때려죽여도 전진할 수가 없었다.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통증이 너무 심각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쇼크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수혁은 땅에 얼굴을 파묻은 채 호흡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차츰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니 쌓여 있던 먼지가 날렸다.
‘여기서 살아 나가도 폐암으로 죽게 생겼네.’
아마 지금쯤 폐는 먼지가 가득할지도 몰랐다.
혼자 낄낄- 대던 수혁은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붉은 표시는 없고.’
당분간은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물이…….”
흐르지 않았다.
조금 전에 먼지가 폴폴 날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쪽으로는 방수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물이 흐를 만한 길이 없는 것인지.
‘미니맵’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큰일인데.’
여기서 오랫동안 머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물은 계속해서 필요하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지금, 물마저 마시지 못한다면 제임스는 버틸 수가 없다.
‘더 이동해야 하나?’
수혁이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다.
딱히 힘을 주지 않고 있음에도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이 심상찮아 보였다.
‘못 움직여.’
정말로 한계였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정말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을 해봐도 방법이 없었다.
선택지는 단 두 가지.
이곳에 있던가,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 이동하던가.
그중 현실적으로 수혁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전자밖에 없었지만…….
한숨을 내쉬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제임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로프가 있던가?’
수혁이 품을 뒤져 보았다.
다행히 로프가 있긴 했다.
수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로프를 꺼내 들었다.
“끄응.”
고작 그 행동만으로도 몸이 박살나는 것만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른 수혁은 로프 한쪽을 자신의 팔에 묶었다.
그러곤 다른 한쪽은 제임스의 팔목에 묶었고.
너무 힘이 드는지라 단단하게 고정을 하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제임스를 끄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갑시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결국 움직이고 말았다.
‘죽을 것 같은 거지, 죽은 건 아니니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상은, 끝까지 노력해야 했다.
더는 능력이 부족해 요구조자를 잃는 경험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통증이나 죽음에 대한 걱정보다, 요구조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수혁의 목을 옥죄어왔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그랬다면 수혁은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이 구조든, 죽음이든.
하지만 제임스라는 요구조자의 존재가 수혁의 육체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밥 한 끼 정도로는, 절대, 퉁 못 칩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앞으로 이동했다.
로프에 묶인 팔이 뜯겨져 나갈 것 같았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또 멈추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똑-
그때였다.
수혁의 뒷덜미에 뭔가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흠칫-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로 움직이던 수혁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설마?’
수혁은 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또옥- 똑-
“물이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었으니, 주변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이곳에서 잠시 버텨도 될…….
“어?”
수혁의 눈이 커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주변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 * *
“잠시 멈춘 후에 다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탐지 장비는 수혁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표시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속도가 느리군.”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으니까.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저렇게 꾸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대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그 반대였다.
‘너무 느려.’
몸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박상태가 율리안을 쳐다봤다.
율리안 역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속도를 더 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만.”
박상태의 조용한 속삭임에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저렇게 힘겹게 움직이고 있다면, 상황이 심각한 게 확실하니 구조 작업에 속도를 더 내야 했다.
“그보단 일단 방수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혁이 이동을 하며 잠시 물 공급을 멈춘 상태였다.
수혁의 위치에 따라 붕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계산을 다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체력도 많이 바닥이 난 상태일 터.
탈수 증세가 오기 전에 방수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계산은 끝났습니까?”
율리안이 옆에 있던 대원 한 명에게 물었다.
수혁의 이동 경로와 붕괴 위험을 계산하던 대원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 지점에 집중적으로 방수를 하시면 요구조자에게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험도 최소한으로 할 수 있고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길을 뚫으며 물을 공급하는 것밖에 없었다.
잠시 후, 방수가 시작되며 물이 잔해 사이에 파고들었다.
물은 조만간 수혁이 있는 곳에 도달해 바짝 말라 있을 그의 목을 축여줄 터.
“이제 저희는 다시 작업하러 갑시다.”
아직 FILO 구조팀의 교대시간은 몇 시간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수혁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 이상,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야만 했다.
박상태는 율리안의 말에 동의하며 팀원들을 데리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의 상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손민준이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니, 모든 팀원이 수혁을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나 수혁을 신처럼 생각하고 있던 슈미츠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아직은 낙담할 때가 아니다. 조금 굼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이라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팀장님이 그 정도면…….”
“잠깐!”
톰이 갑자기 손을 들며 손민준의 말을 막았다.
깜짝 놀란 팀원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 톰을 쳐다봤다.
“방금 아무것도 못 느꼈나?”
톰이 물었지만, 팀원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톰이 느꼈다는 것을 아무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땅이 진동하는 것 같은…….”
톰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 때였다.
쿠르르릉-!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진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