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10화
신일서 구조대원들은 미리 준비해 둔 헬기에 올라탔다.
설마 현장까지 헬기를 타고 이동하게 될 줄은 몰랐던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을 했다.
특히나 박정우는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지원 인력들을 헬기로 이송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 우리도 이걸 타고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지원들이 몰리는 바람에 헬기 숫자가 부족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나라도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조용히 좀 해라.”
김강식이 얼굴을 찌푸리며 박정우에게 한마디 했다.
가뜩이나 로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바락바락 소리까지 질러가며 말을 하는 박정우 때문에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김강식의 핀잔에 박정우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삐죽이며 조용히 투덜거리는 것이, 김강식의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헤드셋이 없었기에, 김강식이 짐 머레이를 향해 크게 물었다.
그러자 짐 머레이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두 시간일 리는 없었으니, 20분이라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도착 시간에 김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인마. 우리가 간다.’
김강식을 비롯한 신일서 대원들은 잔뜩 굳은 얼굴로 전의를 가다듬었다.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있는 박정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 * *
“지원이 도착했답니다!”
무전을 들은 손민준이 재빨리 팀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몇 명이나?”
쉬지도 않고 구조에만 집중하고 있던 박상태마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그게…….”
손민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재촉하는 듯한 팀원들의 눈빛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 명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박상태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율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 명이라면 한 개 팀도 되지 않는 인원 아닌가?
열 개 팀이 붙어도 모자랄 판에, 고작 네 명이라니…….
가슴이 싸늘하게 식을 만도 했다.
“하, 하지만 이건 1차 지원이고, 이제 곧 다른 지원들도 오기로 되어 있으니…….”
손민준이 빠르게 말을 이었지만, 팀원들의 분위기는 이미 가라앉은 뒤였다.
“그래, 그 네 명은 어디에서 왔다고 하던가?”
그나마 톰이 가장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물었다.
“한국.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말에 톰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한국에서 지원을 50명 이상 보냈다고 들었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손민준이 들은 소식은 그저 한국에서 지원 네 명이 도착해 지금 이쪽으로 향했다는 것뿐이었다.
“뭐, 그래도 그게 어딘가?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니.”
톰은 네 명이라도 와준다는 사실이 고마운지,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언제쯤 도착한다는지 들었나?”
“좀 전에 출발했다니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아, 저기 오나 봅니다.”
손민준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팀원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아직 거리가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숫자가 네 명이 아닌, 여섯 명이었다.
율리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 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안내해 주는 지원팀 직원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율리안은 팀원들에게 잠시 휴식을 명령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점차 가까워지며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박상태였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었던 것이다.
“짐?”
그다음은 율리안.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짐 머레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거리가 되자, 박상태가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새끼들? 너희가 왜?”
여기서 신일서 애들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온 지원이라고 해서 그저 해외지원구조대 중 일부일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팀장님!”
그들 역시 박상태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빠르게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냐? 너희가 여길 왜 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묻는 박상태를 보며, 김강식이 미소를 지었다.
“수혁이 놈이 위험하다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죠.”
“뉴스에서 아무런 지원도 없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빡이 쳤는지. 그 자리에서 사표 던지고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박정우의 말에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뭐? 사표를 던져?’
박상태가 깜짝 놀라는데, 이재한이 박정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인마, 팀장님이 들으면 우리가 다 그만둔 건 줄 알겠다.”
이재한은 그간의 사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사표를 쓴 것은 사실이었지만, 서장은 그것들을 모두 반려하고 기간 없는 휴가를 내주었다고.
거기에 짐 머레이가 이곳에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사실까지.
“이 새끼들…….”
박상태는 그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한때 같이 일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지금은 소속조차 다른 데 말이다.
“그놈이 지금은 여기서 팀장이라고는 하지만, 우리한텐 영원한 막내거든요. 막내가 위험하다니 형들이 나서야죠.”
박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웃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박정우는 애써 분위기를 띄웠다.
현장의 분위기가 처져 있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들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참혹한 현장이라도, 이렇게 한 번씩 분위기 전환을 해줘야 힘이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구조는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아직 멀었다.”
수혁이 매몰된 지 3일째.
수혁의 위치는커녕, 생존 여부도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단순한 건물 붕괴 현장이 아니었는지라, 잔해를 치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으니…….
작업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인력은 걱정하지 말게.”
그사이 다른 팀원들과 인사를 끝낸 짐 머레이가 앞으로 나섰다.
“짐.”
“오랜만이군.”
박상태는 짐 머레이와 악수를 하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인력은 걱정하지 말라니?
지금 가장 문제되는 게 바로 사람 수 아니었던가?
“FILO 구조팀은 여유가 없어서 지원할 수가 없네만…….”
FILO 구조팀은 총 세 개.
그중 1팀은 이곳에 있었고 2팀은 매몰된 상태이니, 남은 건 3팀밖에 없었다.
하지만 3팀을 빼올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다른 곳에서 구조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어, 3팀을 뺐다가는 엄청난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박상태는 FILO의 결정을 이해했다.
짐 머레이는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과 EU에서 수혁을 위한 구조팀을 따로 파견했다네.”
“정말입니까?”
1팀의 팀원 전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하고 있던 참이었다.
미국과 독일에서 가만있진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자, 눈에 기쁨이 차올랐다.
“수는 대충 150에서 2백 정도라고 하더군. 워낙 많아 준비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오늘 내로 도착한다고 전해왔네.”
2백 명.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장비야 FILO에서 준비한 것들이 있었으니, 그 인원만 투입이 되어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구조가 가능했다.
“다행이군요.”
율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수혁은 여전히 저 아래에 있었으니까.
“휴식은 여기까지.”
율리안이 몸을 돌렸다.
“다시 구조 시작합니다.”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적으면 적은 대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야만 했다.
수혁을 구하기 위해서.
* * *
‘아프다.’
수혁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다물었다.
‘응급 처치I’와 ‘회복Ⅱ’을 사용했음에도, 고통은 여전히 수혁을 괴롭혔다.
‘큰일났군.’
수혁은 고개를 살짝 들어 제임스를 쳐다봤다.
자신도 자신이었지만, 정말 큰일은 제임스였다.
3일이 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탓에, 제임스는 심각한 탈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출혈도 심했기에 상황은 더욱 안 좋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수혁이 팔을 움직여 봤다.
살짝 드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대가로 이가 뭉개질 뻔했다.
너무도 아팠기에 자신도 모르게 너무 세게 입을 다문 것이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쇼크사를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무리다…….’
이런 몸으로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팔을 드는 것도 힘이 드는데, 잔해들을 치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수혁은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제임스는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를 버틸 테고, 자신은 일주일 정도가 한계였다.
‘물이라도 마셨으면…….’
그러면 한계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날 터였다.
물론 잠시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방법이 없었다.
결국은 구조가 될 때까지 버티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력감이 수혁을 뒤덮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죽음이 코앞까지 성큼- 다가온 기분.
이런 기분은 예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죽기 전이었지.’
이전 생에서 돌더미에 깔려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때.
수혁은 지금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절망과 후회.
그때와 다른 것은 하나였다.
옆에 있는 요구조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이전 생에서의 요구조자는 수혁보다 먼저 숨이 끊어졌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제임스는, 힘겹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별것 아닌 차이였다.
하지만 그 하나의 차이가 수혁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구한다.’
구해야만 했다.
바로 얼마 전에 다시 다짐하지 않았던가?
도움을 필요한 자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구하겠다고.
수혁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임스를 구하리라 결심했다.
‘일단은 탈수부터!’
제임스의 부상은 지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탈수는 달랐다.
완벽하겐 아니더라도, 갈증을 가시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수혁은 엄청난 고통을 인내하며 팔을 들었다.
그러곤 옆에 있는 잔해에 가져다 대며 힘을 주었다.
푸욱-!
워낙 질긴 피부였는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몇 번 힘을 주자 살이 갈라지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혁은 엉금엉금 기어 제임스에게 다가간 후, 피가 흐르는 팔을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
주르륵-
팔에서 흘러나온 피가 제임스의 입술을 적셨다.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
‘살린다.’
수혁의 눈이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