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09화
“김수혁! 정신 차려라, 김수혁!”
제임스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고개를 떨군 수혁을 보며 소리쳤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호흡을 확인할 수도, 맥박을 잴 수도 없다.
하다못해 체온도 확인할 수가 없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제임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수혁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일어나라, 김수혁!”
“으음…….”
그렇게 몇 분이나 소리를 질렀을까?
너무 다급하게 외치느라 목소리가 쉴 때쯤 되자, 수혁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들은 제임스의 눈에 희망이 떠올랐다.
“김수혁! 김수혁!”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수혁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징조였다.
“하아…….”
제임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흠칫- 했다.
‘나는 쓰레기구나.’
방금 느낀 안도감이 수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남지 않아도 된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제임스의 안도는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제임스는 자기혐오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애초에 수혁이 이런 꼴이 된 이유가 자신에게 있었음에도, 그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혐오스러웠다.
“여긴…….”
그때 완전히 정신을 차린 수혁이 입을 열었다.
“깨어났나?”
제임스는 입술을 깨물고 수혁을 불렀다.
“아…….”
수혁은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제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실망감이 역력한 수혁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여기서 구조가 되는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절망에 빠진 요구조자들이 흔히 겪는 일이었기에, 제임스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수혁은 제임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꾸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아.”
질문하던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모두 시계가 고장 났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얼마 안 됐다. 고작해야 십여 분 정도.”
시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은 되었다.
아무리 길어도 10분 내외였다.
“그렇군요.”
수혁이 대답을 하며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제임스는 다시 정신을 잃은 줄 알고 기겁했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그저 힘이 빠져 고개를 들고 있을 여력이 없었을 뿐이었다.
‘스킬의 힘은 남아 있어.’
수혁은 고개를 숙인 채 스킬들을 점검했다.
‘생명감지Ⅲ’, ‘미니맵’ 등등.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여전히 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뭐지?’
꿈속에서 음성은 왜 다신 나타나지 않을 분위기를 풍긴 것일까?
‘……설마?’
수혁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앞으로 퀘스트는 없는 거구나.’
점점 뜸해지는 퀘스트.
그리고 작별을 고하는 것 같은 분위기.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답이 나왔다.
퀘스트를 내리던 존재가 더는 수혁에게 능력을 줄 수 없는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이 허전해졌다.
솔직히 수혁에게는 더 이상의 힘이 필요 없긴 했다.
물론 더 많은 스킬과 더 강한 신체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말이다.
그런데도 더는 퀘스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수혁은 큰 상실감이 들었다.
단순히 더 많은 능력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뒤에서 항상 자신을 응원해 주던 사람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꿈속에서의 대화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인정받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수혁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변하지 말라고 했었지?’
수혁은 속으로 다짐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구하겠다고.
* * *
이틀이 지났다.
수혁이 구조 2팀과 함께 저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진 지.
하지만 구조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FILO에서 갖고 온 탐지 장치는 아직도 수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고, 다섯 명에 불과한 인력으로는 잔해를 치우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모든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지원팀에서 몇몇 사람들을 지원해 주긴 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었다.
“으음.”
율리안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대로라면 수혁을 발견하는데 몇 주의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수혁은 아마도 사체일 확률이 높았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국 측을 협박이라도 해서 지원 인력을 뽑아오던지, 아니면 독일이나 미국에 요청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 두 국가라면 절대로 수혁을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아, 한국도 있었지.’
정 안되면 짐 머레이에게 요청해서 그 세 국가의 지원을 얻어야만 했다.
“율리안.”
“아, 톰.”
잠시 베이스 캠프에 다녀온 톰이 율리안을 불렀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율리안의 질문에 톰이 고개를 저었다.
“중국에선 여전히 거부 중이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온 이들이 위급한 상황에 빠졌는데도 외면하는 중국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중국을 돕겠다고 오겠는가.
“그래도 새로운 소식이 있네.”
“……그게 뭡니까?”
“각국에서 보내온 지원들이 오늘 내로 중국에 당도할 예정이라고 하더군.”
지진이 일어난 지 며칠이 흘렀으니,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긴 했다.
“어디에서 보내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EU 합동구조대와 미국,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들에서도 보냈다고 하네.”
그곳들뿐만이 아니었다.
워낙 거대한 지진이었기에 여력이 되는 국가들에선 전부 지원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톰의 말에 율리안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지금도 속속 중국의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고 있었으니,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혁의 구조를 위한 지원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터.
율리안은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톰에게 다시 물었다.
“짐도 오고 있다고 하던데.”
“몇 가지 처리할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더군.”
“처리할 일이라면……?”
“대통령과 협의 중이라 들었네. 수혁의 구조를 위해서.”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미국의 명예시민이었다.
자국의 평범한 시민이 이런 상황에 처해도 모든 지원을 다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명예시민이라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자신들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에서 계속 거부하는 이유가 미국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율리안은 수혁이 미국 명예시민이기 때문에 중국이 도움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신빙성이 높은 생각이었다.
“EU의 구조대에겐 제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율리안은 독일 최고의 소방관이었다.
지금은 퇴직하고 FILO에 왔지만,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미국과 독일의 인력이 도착하면 속력이 붙겠군.”
지금 가장 부족한 건 사람이었다.
장비야 차고 넘쳤지만, 운용 인력이 너무도 부족해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지원이 오면 본격적으로 구조 작업에 착수할 수가 있었다.
‘인력이 조금 더 충원되면 좋을 것 같은데.’
율리안이 박상태를 쳐다봤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초췌한 모습으로 돌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만약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박상태는 벌써 병원에 실려갔을 것이다.
율리안은 그런 박상태를 보다 고개를 저으며 손민준을 찾았다.
지금 박상태는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민준.”
율리안이 손민준을 부르자, 그는 손에 있던 돌을 마저 옮기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수혁이 없는 지금, 팀을 맡고 있는 사람은 율리안과 톰이었다.
손민준은 그 두 사람을 임시팀장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고.
“혹시 한국과 연락이 가능한가?”
“한국이요?”
손민준이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일을 하던 곳의 선배들이라면 모를까, 그 위쪽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애초에 연락할 방법도 없을뿐더러, 지금 한국은 FILO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 소방청의 위상을 높여줄 수혁을 빼돌렸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율리안은 한국의 지원을 받을 생각인 것 같았지만, 글쎄…….
손민준은 회의적이었다.
물론 한국 정부에서는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방청은 아니었다.
‘팀장님을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고 했지.’
박상태와 함께 조를 이뤄 구조 작업을 하며 들은 얘기다.
수혁이 강현성 청장에게 몇 번의 엿을 먹였다는 이유로, 거기선 자신들을 좋게 보지 않고 있다고.
그때는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문제가 되었다.
그가 들은 소방청장의 성격이라면, 절대로 지원을 허가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율리안은 손민준의 부정적인 반응에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한국의 대원들이 조금만 더 지원해 준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 같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다시 움직이죠.”
쉴 만큼 쉬었다.
이젠 다시 수혁을 구조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 * *
정저우 신정국제공항.
평소에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복을 입고, 엄청난 장비와 물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온 구조대원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비행기 위에서 현장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일부분에 불과했지만, 무너져 내린 도시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곳에서 사라졌을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자연히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군.”
방금 막 착륙한 비행기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서두르게. 이동할 준비는 끝났으니, 몸만 가면 될 걸세.”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은 무슨. 오히려 내가 고맙지.”
수혁이 위험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이었다.
사표를 내던질 각오까지 했지만, 저들의 서장은 오히려 무기한의 휴가까지 내주며 응원해 주었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온 노인, 짐 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 괴물은 절대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놈이 죽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요, 장을.”
“제가 알아본 것에 의하면, 미국과 EU에서도 지원을 보내주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구할 수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는 대원들.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수혁이 기다리겠습니다.”
이들의 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짐 머레이를 재촉했다.
“그렇게 하지.”
앞장서는 짐 머레이의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김강식, 이재한, 박정우, 강효상.
바로 신일서 구조 1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