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08화
‘여긴 어디지?’
수혁이 눈을 떴다.
방금 제임스를 지혈하려고 무리하게 움직이다, 정신을 잃은 것을 기억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처음 보는 곳이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수혁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뭐냐, 여긴?’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기절한 사이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긴 아무리 봐도 병원이 아니었다.
아니, 현실조차 아닌 것 같았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안 아프군.”
제임스를 지혈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통증이 전혀 없었다.
“꿈인가.”
그렇게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수혁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처음 과거로 돌아왔을 때.
눈앞에 있는 박상태를 보고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놀랍게도 현실이긴 했지만.
괜한 기시감에 수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또 죽은 건 아닐 테고.”
고통이 심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회복Ⅱ’과 ‘응급 처치I’까지 사용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는 건 정말 꿈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꿈을 꿔도 이런 걸…….”
수혁은 허탈하게 말을 하다 흠칫- 놀라 뒤를 쳐다봤다.
뭔가가 뒤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수혁은 분명 인기척을 느꼈고, 그것은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확실했다.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은 수혁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이면 악몽인가?’
여기가 정말 꿈이라면, 악몽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당신은 삶에 충실했습니까?]
화들짝-!
갑작스럽게 음성이 들려왔고, 수혁은 제자리에서 뛰어오를 정도로 놀랐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음성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당신은 사명을 다했습니까?]
‘사명? 삶?’
뜬금없는 질문에 수혁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게 무슨 말이지?’
[당신은 고난의 길을 택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까?]
수혁의 몸이 굳어졌다.
‘고난의 길.’
이건 잊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과거로 돌아와 퀘스트가 수혁에게 내준 선택지 중 하나였으니까.
수혁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영광의 길’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덕분에 고생도 많이 했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게 몇 번이던가?
스킬과 레벨의 힘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성’과 ‘회복Ⅱ’, ‘응급 처치I’가 없었더라면…….
‘붕괴와 함께 죽었을 거야.’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임스 역시 수혁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터.
수혁은 질문을 다시 곱씹어 봤다.
그러곤 알 수 있었다.
이 음성의 주인이, 자신에게 능력을 준 자라는 것을 말이다.
‘삶에 충실했냐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수혁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덕분에 이전 생에서는 구하지 못했던 이들도 구했고, 최은송과 결혼도 했으며, FILO라는 단체를 세워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혔다.
이 정도면 충실했다고 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두 번째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사명…….’
수혁이 움직인 것은 과연 사명감 때문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혁은 확신했다.
지금까지 수혁을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은 사명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들진 않았을 테니까.
돈? 명예?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했다.
수혁 역시 아무런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 움직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멀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가?
“후우.”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이 꿈속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알겠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아직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뭔가를 얘기해 주고 싶은 것 같은데.’
기절하자마자 갑자기 이런 곳에서 눈을 떠,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
지금까지 퀘스트가 쓸데없는 짓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상황도 분명 의미가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보기엔 요즘 너무 뜸하긴 했지?’
퀘스트는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점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퀘스트를 주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아주 가끔 한 번씩 나올 뿐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도 퀘스트는 없었다.
이런 대형 재난 현장에서 말이다.
수혁은 왠지 퀘스트가 힘을 잃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존재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은 이제 끝났다는 듯이 말이다.
[당신은 고난의 길을 택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까?]
그때, 다시 한 번 세 번째 질문이 들려왔다.
수혁이 대답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후회하지 않느냐고?”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그럴 리가.’
선택한 대로 수혁이 걸은 길은 고난, 그 자체였다.
지금이야 명성도 높아졌고, 신체 능력도 크게 상승해 위기랄 것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에 이를 때까지 수혁은 수많은 위기를 거쳤다.
“오히려 고맙다, 이런 삶을 살게 해줘서.”
수혁은 진심을 다해 음성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당신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숭고한 사명감으로, 안타까운 이들을 향한 측은으로, 오직 사람들을 돕겠다는 헌신으로.]
[지금까지 당신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왠지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여태껏 자신이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하지만 앞으로도 당신의 앞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수혁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 삶을 선택한 이상, 쉬운 길을 갈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었다.
“나도 알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당신 혼자만의 힘으론 헤쳐 나갈 수 없는 어려움도 있을지 모릅니다.]
수혁은 동료들을 떠올렸다.
박상태, 율리안, 톰, 슈미츠, 손민준.
그리고 함께해 왔던 신일서와 특수구조대의 동료들.
지금까지 만나왔던 많은 이도 기억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음성의 말대로 위험한 일도 계속 생길 테고, 혼자선 이겨낼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혁은 자신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이 모든 것을 마주할 자신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다.
[당신의 숭고한 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것 역시 이전에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헌신적인 마음에 변함이 없길 기원합니다.]
수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왠지 마음이 싸해졌다.
음성이 마치 작별을 고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의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길…….]
“자, 잠깐!”
수혁은 음성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김수혁! 정신 차려라!”
제임스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수혁은 눈을 떴다.
* * *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강현성은 혀를 찼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날이다.
눈엣가시였던 수혁의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고, 잘만 하면 매장시킬 수도 있었던 날.
하지만 강현성은 그 계획을 실행할 수가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수혁의 매몰 소식에 난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런 상황에 수혁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트릴 순 없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사람의 인성 논란을 터트린다?
역풍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얼굴을 굳히고 있던 강현성은 뉴스를 확인했다.
타이밍 좋게도 뉴스에서는 수혁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흠…….”
헬기까지 띄워 수혁이 매몰된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을 본 강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죽었겠군.”
현장 경험이 없는 강현성이었지만, 소방청장으로써 그동안 듣고 봐왔던 것이 있다.
그의 경험상 저런 현장에선 절대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기적적으로 살아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구조가 되기 전에 죽을 테니까.
분명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고, 그 부상으론 구조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놈의 구조에 투입된 인력이 다섯 명이라고 했던가?’
중국에서는 수혁을 구하기 위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것은 FILO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수혁의 팀원이었던 다섯 명만이 구조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했다.
애초에 구조팀의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 숫자면 최소한 일주일 이상은 걸릴 것이다.
어쩌면 2주 이상 걸릴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 저 안에서 생존한다?
“불가능하지.”
강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TV를 껐다.
“아쉽군.”
이왕이면 자신의 손으로 수혁을 나락까지 끌어내리고 싶었다.
준비는 충분했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쓸모없어졌다.
이미 죽은 놈의 이름에 먹칠을 해봐야 무엇할까?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실행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정서 상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고인에 대한 비판은 엄격했으니까.
그것이 영웅이라 불리던 이라면 더욱 그럴 테고.
강현성은 계획을 깔끔하게 접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죽었으니 더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살아나온다면, 그때 다시 진행해도 되니까.’
강현성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속내는 더럽고 추악하기 그지없었지만…….
* * *
“좀 쉬시죠.”
“……저는 괜찮습니다.”
율리안의 만류에도, 박상태는 쉬지 않고 돌들을 들어 옮겼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가는 쓰러지고 말 겁니다.”
피지컬 괴물인 손민준과 톰마저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쉬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흘러 땅바닥을 적시고 있었음에도 절대 쉬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움직였다.
“저는, 괜찮다고, 말했습니…….”
박상태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역시나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 모습에 율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막무가내로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일단 FILO에서 가져올 장비들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조금 쉬는 게 좋을 겁니다.”
수혁의 위치는 아직 특정할 수 없었다.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었는데,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탐지 장비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을 한 상태였다.
일단 탐지 장비로 수혁의 위치를 확인한 뒤, 계획적으로 구조 작업을 해야만 했다.
박상태처럼 했다가는, 제풀에 지쳐 제대로 된 구조는 시작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여전히 율리안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수혁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밖에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 새끼야. 내가 너 꼭 구하고 말 테니까.’
FILO에서 보급해 준 최고급 구조 장갑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박상태는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