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05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화르륵- 하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것 같은 파공음과 함께였다.
새어 나오는 가스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위기감지Ⅲ’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수혁이 일행을 데리고 한쪽으로 피했다.
동시에…….
콰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으윽!”
“가스 폭발이다!”
갑자기 정면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자, 중국 대원들은 대경실색하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자신들뿐이었다.
수혁과 톰, 심지어 통역사마저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저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길은 이쪽 근방에도 닿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마치 여기가 안전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대피시킨 것 같은 모양 아닌가?
폭발이 일어날 것을 예상한 것도 놀라운데, 그 와중에도 안전한 장소를 찾아내 피한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우연이겠지?’
중국 대원들은 당연히 이 모든 일이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수혁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아무리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그 결과 자체는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영웅이라 불린다더니…….”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미국에서 고평가를 받고 있어서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면 인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톰이 수혁에게 물었다.
자신들이 향하고 있던 방향은 방금 전의 폭발로 길이 막혔다.
불길은 크지 않아 방화복을 입은 상태론 충분히 뚫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사람이 건널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방금 폭발로 땅이 갈라졌다.
지하에서 새어 나온 가스로 인해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무너져 내리며 커다란 균열이 생겨 버린 것이다.
대충 봐도 10m는 가뿐하게 넘어 보이는 틈.
심지어 아래쪽에서는 아직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으니, 도저히 건널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조금 돌아가는 수밖에.”
이건 수혁도 무리였다.
결국 일행은 이동 경로를 수정해야만 했다.
‘미니맵’을 확인한 수혁은 건너편으로 가기 위한 최단경로를 확인했다.
“이쪽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수혁이 가리킨 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 한 채가 있었다.
“저길 통과한다고?”
톰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혁을 믿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건물은 무너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그 커다란 폭발에도 붕괴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혁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당장 무너질 것 같아도, ‘위기감지Ⅲ’는 저 건물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의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수혁밖에 없었다.
통역사를 통해 수혁의 말을 들은 중국 대원들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절대 저곳으로 가지 않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저쪽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군요.”
중국 대원들이 가리킨 곳은 상태가 꽤 괜찮아 보이는 장소였다.
수혁과 가리킨 건물과는 정반대의 모습.
열 명에 가까운 자신들이 지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그러니 중국 대원들이 저쪽을 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수혁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안 된다고 말하는 수혁의 모습에 통역사가 살짝 당황했다.
“저기는 안 됩니다.”
수혁의 눈에는 똑똑하게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는 붉은색이.
* * *
제임스는 마스크를 벗고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후우.”
아직 봄도 오지 않았건만, 이 근방은 너무도 더웠다.
매섭게 타오르는 불길에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팀원 중 한 명이 제임스를 불렀다.
“왜?”
“1팀과 합류하라는 요청이 내려왔습니다.”
“……뭐?”
제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현재 제임스가 맡고 있는 팀은 FILO 소속 구조 2팀.
조금 전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1팀과 합류하라니?
“지원팀이 그래? 1팀에 합류하라고?”
“그렇습니다.”
“아니, 대체 왜?”
제임스도 그렇지만, 그의 팀원들 역시 구조 일에는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다.
단순히 경력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대우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짐 머레이가 심혈을 기울여 모집한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임스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일하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좋은 대우에 FILO로 오기는 했지만, 모든 관심은 1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 인정했다.
1팀의 실적과 활약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으니까.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각 팀의 재량권을 무시하고, 1팀에 합류하라는 요청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리보고 걔들 밑에서 일하라는 뜻이지, 이거?”
지원팀에서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저 서로 협력해서 효율적인 구조를 하라는 뜻이라고 할 테지.
하지만 제임스와 그의 팀원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그런 속내가 아니겠습니까?”
지원팀이 무슨 뜻으로 그런 요청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거부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웃기지 말라고 해. 우리 팀은 단독으로 알아서 움직일 거라고도 전하고.”
중국 대원들의 지원도 거부했다.
괜히 말도 통하지 않는 놈들을 데리고 다녀봐야, 귀찮아지기만 할 뿐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팀장인 제임스와 다섯 명의 팀원.
자신들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만한 실력과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지원팀에는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쯧.”
제임스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FILO에서는 자신들을 들러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기회에 똑똑히 보여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누가 주인공인지 말이야.”
제임스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모두 준비해!”
마스크를 다시 뒤집어쓴 제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휴식은 그만하고 구조를 시작한다.”
휴식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건만,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팀원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팀보다 무조건 더 나은 활약을 보여주자. 우리는 들러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자는 말이다.”
1팀이라는 말에 팀원들의 얼굴에 의욕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수혁의 팀을 질시하는 사람은 제임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움직여!”
2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원팀과의 연락도 끊고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2팀이 향하는 곳은, 바로 수혁이 있는 쪽이었다.
* * *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답니다.”
통역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아…….”
수혁 역시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분째인가?
한시가 급한 상황에 이곳에 서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 마음대로 하라며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저들이 몽땅 몰살당하고 말 테니까.
중국 대원들이 가리킨 곳은 겉보기와는 달리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발을 딛는 것과 동시에 무너져 내리며 그들을 집어삼킬.
그러니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길을 찾아보죠.”
수혁은 어쩔 수 없이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자신이 고른 길과 중국 대원들이 고른 길이 아닌, 제3의 길을 찾는 것.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받아들이겠다는군요.”
수혁의 말을 전달한 통역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잠깐 주변을 둘러봅시다.”
수혁은 일행에게 주변의 수색을 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미니맵’을 확인했다.
‘젠장.’
주변에 괜찮은 곳이 보이질 않았다.
반대편으로 건너갈 만한 곳이 몇 군데 보이긴 했지만, 위험하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저기가 가장 좋은데…….’
균열의 틈을 잇는 건물.
토대가 튼튼한지, 용케 버티고 있었다.
주변 수백 미터 이내에서 저기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없었다.
‘돌아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결국은 설득을 해야 하나?’
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김 팀장님!”
갑자기 통역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리다, 눈을 크게 떴다.
‘구조 2팀?’
통역사 근처로 눈에 익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FILO 구조 2팀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구조하며 안면을 튼 사이였기에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혁은 저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생각하다 ‘아!’ 하며 깨달았다.
‘지원팀에서 보냈나 보군.’
현장이 너무 광범위하고 극악의 난이도를 보이는 탓에,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요청을 보냈었다.
수혁은 그저 중국 대원들이나 더 보내달라는 뜻이었는데, 지원팀서 구조 2팀을 보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했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실력이나 의사소통 면에서는 중국 대원들에 비해 구조 2팀이 훨씬 뛰어난 게 사실이었으니까.
수혁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2팀 팀장인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제임스.”
수혁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여기 있을 줄 몰랐군요.”
누가 봐도 탐탁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말을 들어보면 수혁에게 합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합류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제임스는 칼같이 수혁의 말을 끊었다.
“저희는 알아서 구조할 테니, 서로 간섭하지 맙시다.”
그러고는 쌩하니 수혁을 스쳐 지나갔다.
헛웃음이 나왔다.
지원팀의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한 건 수혁의 착각이었다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동료끼리 저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왠지 모를 차가운 태도에 수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닌데.’
순간적이었지만, 제임스의 눈에 스쳐 지나간 건 바로 질투였다.
그런 눈빛을 예전부터 하도 받아온 수혁이었는지라, 제임스의 기분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런 현장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제임스와 2팀은 자신의 부하가 아니다.
오히려 동등한 입장이었다.
수혁은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얼굴을 붉히느니, 조금 양보하고 나중에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끝낸 수혁이 2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제임스! 거긴 안 됩니다!”
제임스가 팀원들을 이끌고 향한 곳은 바로 수혁이 꺼리던 그 사지였던 것이다.
수혁은 제임스를 향해 소리를 치며 다급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제임스는 수혁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은색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