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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02화 (402/425)

레스큐 시스템 402화

율리안은 요구조자를 안심시키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그러곤 수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말씀하세요.]

대답하는 수혁의 음성이 왠지 어두웠다.

‘무슨 일이 생겼군.’

음성만으로도 수혁에게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 닥쳤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수혁의 목소리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것은 요구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율리안은 잠시 망설이다 이곳의 상황과 요구조자에 대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로는 힘들다.”

구조하려면 철근을 자르든지, 요구조자를 들어서 뽑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두 방법 모두 여의치 않다.

철근을 자르려면 유압장비를 사용해야 하는데, 절단 시 생기는 진동이 문제였다.

요구조자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진동으로 인해 상처가 심각해질 수 있는 위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직접 들어서 뽑기에는…….

‘둘이선 힘들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고작 둘이서 요구조자의 몸을 들어 올리기엔 불안정했다.

결국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수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수혁의 물음에 율리안이 요구조자를 쳐다봤다.

철근이 관통한 것치고는 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아 보였다.

“20분, 아니. 30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율리안의 말에 수혁은 잠시 침묵했다.

[알겠습니다. 20분 내로 갈게요.]

고민을 끝낸 수혁이 대답했다.

“알겠다. 그럼 우린 여기를 케어하고 있지.”

[그렇게 해주세요.]

무전이 끝났다.

“저… 심각한 겁니까?”

둘의 대화를 들은 요구조자가 물었다.

뭐, 굳이 물을 필요도 없는 상태란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쇳덩어리에 꼬치가 되어 있는 상황인데 모르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도 요구조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율리안을 쳐다보았다.

“괜찮으실 겁니다.”

율리안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다.

요구조자의 물음은 정말로 궁금해서 가 아닌, 희망을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정말이죠?”

“물론입니다.”

율리안은 호언장담했다.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수혁이 온다면 다를 것이다.

이런 상황쯤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팁시다. 가족들에게 보내 드릴 테니까.”

율리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미소는 따뜻했다.

* * *

“하아.”

수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전을 끊은 수혁의 낯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조금 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네 명의 요구조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 대가로 수혁이 구한 생명은 단 하나.

하나의 목숨을 구하고 넷을 잃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그 죄책감에 수혁의 마음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슬퍼하고 후회할 틈이 없었다.

그것은 알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지금은 잊자.’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잊기로 했다.

훗날, 상황이 진정되면 그때 눈물을 흘려도 늦지 않다.

그때까지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떨려오던 손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또 하고 나자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율리안에게 가봐야겠다.’

정신을 차리느라 낭비한 시간이 5분이 넘는다.

더는 낭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수혁은 율리안에게 가기 전, 먼저 톰이 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톰.”

수혁이 부르자 쉬고 있던 톰이 눈을 떴다.

조금 쉬어서인지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바쁘게 움직여야 할 수혁이 다시 이곳으로 온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수혁의 분위기가 저렇게 다운되어 있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난 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율리안 쪽에서 문제가 생겨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니 이곳은 톰 혼자 맡아줘야 할 것 같다고.

“여기는 걱정 말고 다녀와라.”

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에 수혁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수혁의 걱정스러운 음성에, 톰이 픽- 웃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톰이 자신의 육체를 과시했다.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 따지면, 톰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나이 때문에 체력이 조금 달린다는 것만 제외하면 경험도, 피지컬도 충분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여기는 나한테 맡겨라. 슬슬 지원도 도착하는 것 같으니까 걱정 말고.”

조금 전에 헬기들이 도착하더니, 슬슬 소방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 충분한 수는 아니었지만, 잠깐 동안 톰의 뒤를 받쳐 주기엔 충분했다.

수혁은 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려 율리안이 설명한 곳으로 뛰어갔다.

‘위기감지Ⅲ’와 ‘미니맵’을 이용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경로로 달리자,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가?”

반쯤 붕괴된 건물.

‘생명감지Ⅲ’로 확인을 해보자 확실히 세 명이 건물 내부에 있었다.

‘이건 율리안과 슈미츠고, 이게 요구조자인 것 같군.’

다른 두 명에 비해 확연히 약한 생명 반응.

상태가 최악은 아니었지만, 부상이 심하다 보니 위태로워 보이긴 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위험천만하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색의 위험표시가 잔뜩 보였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용케도 이런 곳을 들어왔네.’

만약 율리안 없이 슈미츠 혼자 들어왔다면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다.

율리안 덕분에 별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수혁은 방심하지 않고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율리안.”

수혁의 음성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왔군.”

“네. 이쪽입니까?”

가장 먼저 수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철근에 꿰뚫려 있는 요구조자였다.

의식도 있었고, 철근 덕분인지 출혈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장기가 상했을 텐데…….’

철근의 위치를 보면 신장 쪽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빗겨 나갔으면 좋았겠지만,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지.’

그래야 변수를 줄일 수가 있었다.

최악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면 당황해 제대로 된 처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많이 아프십니까?”

“아, 아프진 않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건 좋은 징조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건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요구조자 분을 위로 들어 올릴 겁니다.”

장비가 없다.

지금 유압 절단기를 가져오는 건 시간 낭비였다.

요구조자에겐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수혁이 있다면 이편이 훨씬 빠르고 안전했다.

‘응급 처치I.’

수혁은 일단 요구조자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이제 이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요구조자를 빼낼 때 조심만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터.

“그, 그래도 됩니까?”

요구조자가 겁에 잔뜩 질린 음성으로 물었다.

들어서 빼내다니?

복부를 뚫고 위로 솟아 있는 철근의 길이는 족히 1m는 되어 보였다.

그 말은 자신을 1m 이상 들어 올린다는 뜻이었고.

지금 당장은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지만, 그때도 아프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철근이 몸 안을 휘젓는데 괜찮을 리가!

“괜찮습니다.”

수혁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도 없이 그저 단 한 마디의 말이었다.

하지만 요구조자는 왠지 두려움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수혁의 모습도 듬직하긴 했지만, 뒤에서 바라보는 두 명의 구조대원 모습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신뢰.

율리안과 슈미츠는 수혁을 믿었다.

그런 신뢰가 요구조자에게도 전해졌는지, 수혁을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안함이 많이 가셨다.

“……아플까요?”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아마 까무러칠 정도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요구조자의 경우에는 신경 쪽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응급 처치I’ 스킬까지 사용했으니 통증은 없을 것이다.

“잠깐 눈을 감고 계시면 금방 끝날 겁니다. 아프지도 않을 거고요.”

“믿겠습니다.”

요구조자의 말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율리안.”

수혁의 부름에 율리안이 옆으로 다가왔다.

“들어 올릴 거예요.”

“알았다.”

이미 요구조자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율리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어깨와 다리를 맡아주세요. 제가 허리 쪽을 들 테니까.”

수혁이 지시하자, 율리안과 슈미츠는 곧장 움직였다.

‘천천히 올려야 해.’

빠르게 빼내는 것이 요구조자에게는 부담이 덜할 테지만, 그렇게 하면 상처가 벌어질 위험성이 컸다.

그러니 조금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천천히 올리는 것이 좋았다.

“셋 하면 천천히 올립니다. 하나, 둘, 셋.”

수혁의 구호에 맞춰 요구조자의 몸이 위로 올라갔다.

“으음…….”

요구조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지.”

요구조자의 몸이 멈추었다.

“아프십니까?”

“아, 아니요. 아프진 않은데…….”

통증은 없었지만, 철근이 몸 안을 훑는 느낌이 너무도 이상했다.

“안 아프면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요구조자의 허리를 붙잡은 수혁은 온 정신을 집중해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살짝 왼쪽, 멈추고! 다시 조금 아래로…….’

1mm 단위로 붉은색이 보였다 사라졌다.

손을 조금만 떨어도 위험할 수가 있었기에, 수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수혁의 이마에서 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요구조자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던 수혁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지금!”

수혁이 외치는 것과 동시에 마침내 요구조자가 철근 위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급 키트!”

요구조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수혁이 소리를 쳤고, 슈미츠가 반사적으로 챙겨 온 키트를 넘겼다.

혈관을 막고 있던 철근이 사라지자, 피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아무리 ‘응급 처치I’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출혈까지 막을 순 없었기에 수혁은 재빨리 지혈을 시작했다.

“다, 다 된 겁니까?”

요구조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네. 당신은 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나올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조금 전 다짐했던 대로, 눈앞의 요구조자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살렸으니까 됐어.’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렸으니까.

수혁은 오직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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